동어반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초점에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 집게 손가락 자해공갈 사건을 보면서 정말 여러모로 의문이 생겼는데, 도대체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어떻게 합리적 근거로 인식이 되는지 그게 궁금했습니다. 저쪽에서는 뭔가 말이 되니까 이걸 믿으면서 자와자와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토론들 중에서 이 짤은 조금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남자에게 손가락을 설명하려하는데, 핀잔만 먹었다고 말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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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게이머와 비게이머, 여혐남과 비여혐남의 정치적 진영 구도를 그려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 대화에서 눈에 들어오는 건 "손가락"이란 이미지의 전달입니다. 지금 이 두 남자는 손가락이라는 대상을 언어로만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이런 이미지를 넣었대~" 하고 직접적으로 이미지를 명시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손가락"이라는 명사, 즉 언어로 대상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죠. 


이미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손가락"이라는 언어만으로 대상을 칭할 때, 저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손가락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저희가 뭔가를 집거나 움켜쥐거나 놓을 때 쓰는 육체적 도구로서의 손인거죠. 그러니까 언어로만 "남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할 때는 이 선동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손가락 남혐"은 일상적인 손가락의 이미지를 소거하고 "남혐"으로서의 개념만을 남겨두어야 작동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해당 사건에 대한 보도가 나간 지금 수많은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이 불만을 터트리고 있죠. 왜 "남혐"인데 "집게 손가락"이라고만 보도를 하냐고요. 언론이 이렇게 인식하는 건 당연합니다. 해당 손가락들의 이미지는 사회적 맥락에서 비춰봤을 때 딱히 "남혐"이라고 할만한 건덕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치 문장과 뭐가 다르냐는 저 글쓴이의 질문은... 페미니스트들이 한국남자들을 수백만명 학살한 다음에나 성립한다고 대답해주고 싶네요)


그런고로 현재 남초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선동은 이미지의 효과에 기댄 선동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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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위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이며 비일반적인지는 이미 지적한 바 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여기서 이 선동이 작동하는 방식은 1. 이미지의 제시 2. 이미지의 탐색과정 증명 3. 이미지의 개념에 대한 다수의 합의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무늬가 어떻게 독단적으로 "남혐"이 되는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당 이미지는 손가락을 닮은 문양이지 "남혐"의 맥락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당 이미지를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본인들이 남혐이라고 주장하는 손가락 이미지와 남혐이 아닌 집게 손가락 이미지를 대조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A는 손가락이지만 B는 손가락이 아닌 "남혐"이다, 라고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미지를 제시하고 선언을 하면, 그것은 순식간에 참인 문장으로 퍼져나가버립니다. 이미지의 위력이란 이렇게나 강력하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빨간 액체의 흔적이 있는 담벼락 사진을 찍어놓고 "이건 00가 xx를 한 현장 사진이다!" 라고 주장하면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누구'와 '무엇'과 '왜'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죠. 그런데 이미지와 함께 선언을 해버리면 그것이 완전무결한 명제가 되어버립니다. 정확한 사실을 논증하는데 필수적인 모든 과정을 저절로 생략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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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상에서 프레임을 뒤져서 남혐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떤 의미로 굉장하지 않습니까? 


어떤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선동이 될까요. 제가 그보다 더 눈여겨보는 것은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일어나는 미스디렉션 효과입니다. 이 프레임이 있다, 저 프레임이 있다, 내가 이렇게 프레임들을 샅샅이 뒤졌다, 는 이미지들을 제시하면서 정작 제일 필요한 이미지는 소거해버립니다. 지금 거의 모든 남초에서 남혐이라 주장하는 손가락이 담긴 프레임이 영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일부러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들도 아니까요. 영상으로 보면 어떤 부자연스러움도 찾을 수 없고 심지어 이들이 프레임으로 제시하는 이미지를 관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초 커뮤니티의 대다수 글들은 프레임을 짤라서 정지된 이미지로만 제시하고 있습니다. 해당 프레임이 담긴 영상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남혐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지, 전체적 맥락을 일부러 안보여주고 있죠. 왜냐하면, 본인들이 봐도 모르겠으니까요. 전체적 맥락이 담긴 영상은 자신들의 "남혐 의혹"을 입증하는데 거슬리는 증거가 됩니다. 공중파의 시사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반드시 이 맥락을 이야기할텐데, 남초 커뮤니티는 이런 부분은 또 인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영상으로 물타기를 한다고 하겠죠. 왜냐하면 프레임이란 증거를 본인들이 찾아낸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된다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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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커뮤니티는 "어떤 영상을 프레임별로 굳이 나눠서 의미부여를 하는 짓"이 얼마나 이상하며 비상식적인지 납득하기 어려워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뭔가가 숨겨져있다"는 본인들의 음모론적 망상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테니까요.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숨겨져있는 뭔가를 찾아낸 것이고, 이제 찾아낸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믿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음모론은 비일상적이고 복잡한 독해를 통해서만 성립이 되는 증명과정입니다. 영상으로 보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미지를 가지고 이렇게 떠들어댄다는 게 얼마나 소모적인 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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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eirdhat.net/blog/archives/7691

이런 고찰은 대부분 남초 커뮤니티에서 씨도 안먹힙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너무 강하니까요. 저는 이렇게 비이성적이며 아무 앞뒤가 안맞는 선동이 실시간으로, 대기업 단위로 일어난다는 것이 그저 놀랍습니다. 이미지만 제시하면 모든 연결고리는 "그랬을 것이다!", "틀림없다!"로 건너뛰어버리는 이 감정적 추동이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로 이준ㅅ이 이 사건을 들먹이면서 스튜디오 뿌리의 사과문이 증거인 것처럼 군다면, 저는 나중에 질질 짤 거면서도 개고기를 양고기처럼 팔았던 지 꼬라지나 보라고 해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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