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돼 애니덕후가 되어버려...

2021.06.10 11:33

Sonny 조회 수:662

제가 만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들 애니매이션을 좋아하는 거냐고 되묻곤 합니다. 둘 다 고루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애니메이션은 선천적으로 좋아지지가 않더군요. 활자로 보면 그래도 견딜만한 설정과 대사들이 사람의 목소리로 나올 때는 너무 유치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펜으로 그려진 만화의 그림체가 애니메이션으로 넘어가면 뭔가 미끄덩하고 반짝이는 재질로 변질(?)되는 것도 좀 싫고, 되게 급박한 순간인데 대사전달하느라 그 긴장감이 깨지는 것도 좀 싫습니다. 만화는 어차피 멈춰있는 순간들의 집합체이고 그 공백들을 제가 머릿속에서 이어가면 되니까 활자량이 얼마나 되든 별 상관이 없는데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말 속도 때문에 시간이 질질 끌리는 느낌이 나죠. 


https://www.youtube.com/watch?v=SsBHZbWtMIE


이런 게... 이런 게 싫습니다!!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질질 끄는 것도 많고 말도 너무 많고 오버액션도 자주 나오는 느낌...


그럼에도 제가 빠져든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아실만한 분들은 다 아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입니다. 이 중에서도 제일 흥하고 원전 취급받는 3부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원작의 팬으로서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구현이 되었을지 궁금해서 봤는데,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재미를 아주 잘 살린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들과, 만화에 없는 소리가 결합되어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죠죠 시리즈는 매니아들이 많고 이런 저런 평들이 따라붙습니다만 제가 볼 때 본질은 결국 액션물입니다. '스탠드'라는 정체불명의 분신이라거나, 아라키 히로히코가 그리는 요상한 포즈라든가, 느끼하기까지 한 이탈리아 미소년 형의 이목구비라든가 하는 요소들이 있지만 이 작품을 흡입력 있게 만드는 건 뒤에 가서 악당을 신나게 두들겨 패는 액션 그 자체죠. 그래서 이능력 배틀물이라는 장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언제나 아주 빠르고 강력하게 사람을 두들겨패는 피지컬 액션 히어로들입니다. 


죠죠를 이능력 배틀물로 보기에는 조건들이 난해하고 추상적입니다. 캐릭터들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나중에는 정답을 찾아낸 것처럼 떠드는데 그게 명료하게 이해가 되지도 않고 이런 저런 조건을 끼워맞추는 느낌이 강해요. 그래서 "어쨌거나" 주인공이 핀치에 몰렸다는 호러식 장르문법으로 이어지다가 "어쨌거나" 해결책을 찾아낸 주인공이 적에게 되갚아주는 방식으로 에피소드들이 진행이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건 트릭을 풀어낸 방식이 아니라 주인공이 잔뜩 당하는 와중에도 벼르고 별러온 주먹떡 세례를 마지막에 퍼부어주는 그 한 장면입니다. 이 작품은 결국 사람을 못살게 구는 쩨쩨한 잔머리 악당을 힘세고 우람한 주인공이 호쾌하게 두들겨 패주는 마초이즘 쾌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사내답지 못한 교활함을, 사내다운 무력으로 응징하는 만화인거죠. 일본판 마동석 장르입니다. 너 이제 죽었다...!! 하는 묘한 기대와 흥분을 갖고 보게 되니까요.


애니메이션에서 제일 잘 살려낸 것은 바로 저 '두들겨패주는 장면'의 쾌감입니다. 



a0084228-4c2cab3bf40d5.jpg


원작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현되던 장면이


dd0acd1de8d3f69d5e06f2ed6891af4e.gif


이렇게 실시간 움직임으로 표현되면서



https://youtu.be/TMSiCJgaCS0?t=38


성우의 걸쭉한 목소리와 타격음이 곁들여지면



https://www.youtube.com/watch?v=0fBy_DTGNW8


신나고 호쾌한 액션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특히나 죠죠가 애니메이션이 재미있는 이유는 비장한 분위기를 살리는 사운드트랙에 있습니다. '이제 모든 수난이 끝나고 오지게 패줄 시간이 왔다!!'는 두근거림을 사운드트랙이 웅장하게 표현하죠. 만화로 보면 의례적인 순서인데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이 사운드트랙과 함께 보면 흥겨운 느낌이 몇배가 됩니다. "오라오라오라오라!!" 라는 의미불명의 괴성과 함께 악당을 두들기는 장면들을 보면 너무 시원해서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이게 정의로운 느낌이라기보다는 건드려선 안될 사람을 건드려서 화끈하게 밟힌다는, 일종의 길티 플레져에 가까워서 그런 것도 있어요. 주인공인 죠타로가 일종의 귀족 깡패거든요. 딱히 근거는 없는데 프라이드가 대단한 인물이라서 보다 보면 아 저 사람은 괜히 심기 거스르면 안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싫지가 않고 괜히 납득하게 됩니다.... 이런 걸 BADASS 물이라고들 하죠?


만일 보신다면 3부만 일단 보시는 걸 적극 추천합니다. 1부와 2부는 그렇게 재미있지가 않고 3부부터 본격적으로 주인공의 알 수 없는 후까시(?)와 카리스마가 넘쳐나니까요. 넷플릭스에 올라와있으니 시간 떄우기로 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보다보면 주인공 일행이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조금만 있으면 진짜 뒤지게 패준다...'며 벼르고 있을 자신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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