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에 대한 비판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몇몇 분들이 좋은 질문도 주시고 반론도 주셔서

바로바로 대응을 더 잘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조금 늘어지는 것 같아도, 무리를 하기보다는 제 생활리듬에 적절한 속도로 좀 더 써볼까 합니다.

 

지난 번에 소개한 서평에서 더글라스 어윈은 장하준에 대해

 

그는 유치 산업 정책의 비용과 편익의 크기를 추정하기 위해 반()사실적 (counterfactual) 분석을 수행하지 않는다.

 

라고 한 바 있습니다.

반사실적 분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은 제 능력을 벗어납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치하게 보일 것이고 수많은 -동일하게 유치한 것을 포함한- 반론이 제기될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읽는 분들을 오도(misleading)하게 되겠죠.

복잡하게 설명하면 많은 통계학적인 기법들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것도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습니다.

 

대신 돌아가는 방법으로, 상대적으로 중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한 외부자의 평가를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참 성실한 평가입니다.

 

나종일(라종일) 선생님입니다.

저는 이 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분의 글만 읽고 든 생각을 간단히 적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 분이 제자들에 대해 어떤 종류의 부당한 행위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런 잘못이 없다고 가정하고, 선의의 믿음 하에서 제가 느낀 인상입니다.

 

제가 경제사를 배울 때는 이 분의 논문과 이 분이 제자들과 번역한 책의 몇몇 장들이 필수 읽기 과제였습니다.

 

17세기 위기론과 한국사」, 『세계사를 보는 시각과 방법』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론」, 『세계사를 보는 시각과 방법』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E.P. 톰슨,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한국에 소개(?)한 이는 백낙청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제가 짐작하기로는

백낙청 선생이 나종일 선생에게 강추하고, 자료도 많이 구해주고 백낙청 선생의 제자들과 나종일 선생의 제자들 중심으로 월러스틴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시차를 좀 두고 90년대 말부터 이 그룹에서 의기투합하여 번역을 완성, 출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의 경우, 이 그룹에 한정숙이라는 거물이 힘을 보탰고요.

 

(지금 세계체제론의 역자 후기를 다시 확인해 보니, 각 권의 각 장을 번역한 사람들을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OEM번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은 지금 상권만 갖고 있어서 역자 후기를 확인할 수 없네요. Yes24에서는 역자 후기는커녕 역자 이름도 다 나오지 않네요;;)

 

월러스틴과 E.P. 톰슨 모두 빼어난 대가이고, 책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월러스틴을 직접 읽기 어려운 경우, 나종일 선생님의 소개논문과 성백용 선생님 등이 쓰신 소개(논쟁) 논문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대충 흐름을 파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고요.

E.P. 톰슨은 직접 읽어보지 않고는 그 맛을 느끼기 어렵고요.

 

흥미로운 사실은 나종일 선생님 본인은 월러스틴이나 E.P. 톰슨이 천착한 주제들과 크게 관련이 없는 주제들을 전공했다는 것입니다.

 

(이것 참.. 왔다갔다 하네요.. 장하준을 장하준이라고 하는 것처럼 나종일도 그냥 나종일이라고 하는 게 낫겠습니다;;)

 

“.. 필자 자신의 시각이나 역사를 연구해온 필자 자신의 방법들을 피력하고 설명한 것들은 아니다. … 연구해오면서 접하게 된 다른 역사가들의 훌륭한 연구업적들을 통하여, 그리고 역사연구의 방법에 관한 그들의 주장들을 통하여 조금씩 깨닫게 된 것들, 그러니까 역사는 이런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뒤늦게야 느끼게 된 몇 가지 생각들을 적은 것이다. … 물론 필자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부족이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그 시대 영국사를 보는 필자의 편협한 시각이나 방법의 탓도 틀림없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편협한 시각이나 방법의 한계와 비효율성에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은 오랜 방황과 시행착오를 겪은 뒤의 일이었으니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전체사를 제안하면서 역사학과 사회학의 통합을 내세우는 브로델의 생각과, … 월러스틴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보자고 권장하려는 것이다.”

『세계사를 보는 시각과 방법』 머리말 중.

 

뒤늦게 내뱉은 권장이 이런 대작들의 완역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기까지 애쓰신 것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정말 고개가 숙여집니다.. (번역의 질은 특A급입니다.)

 

서론이 본론보다 훨씬 길었는데,

 

『세계사를 보는 시각과 방법』 중 「신경제사의 방법」이라는 한 장()에서 나종일은 계량경제사 일반과 그 방법론 중 하나인 반사실적 분석에 대해 자신이 공부한 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소개 논문은 1972년에 발표되었음에도, 지금의 웬만한 경제학 비전공 학자들의 이해보다 훨씬 세련된 이해와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에서 나종일은 노벨 경제학상(1993) 수상자인 Robert Fogel의 논문에서 사용된 반사실적 분석의 실례를 개략적으로 해설하고, Fogel, Gershenkron 등의 방법론에 관한 논의들, 계량 경제사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들을 요약하며, 그 비판들에 대한 재검토를 개진하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최신이었을, 경제학 내외부의 논문들을 꼼꼼하게 인용하면서요.

 

그리 길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으니 관심 있는 분들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bigmail.mail.daum.net/Mail-bin/bigfile_down?uid=yHb6NtebVyXZRuCk6ZyF_34ZwV7JZ79Y

(우클릭-다른 이름으로 저장. 100회만 다운로드 가능한 것으로 압니다. 다운로드가 안 될 경우, 제게 메일을 보내시면 답장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닉네임 등을 밝히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거의 40년이나 지나는 동안 반사실적 분석을 포함한 계량경제사의 방법론, 연구 범위, 대상, 성과는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완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경제학에 대한 몰이해는 과연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의문이고요..

 

사례 2 가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1.     1998~2000 동안 5대 정유사가 국방부 납품 유류 가격 담합을 해서 적발된 적이 있습니다. 형사 소송이 있었고(유죄), 공정위 과징금이 부과되었고(관련해서 행정 소송이 있었고), 민사 소송이 있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는 손해 배상액을 산정해야 하는데, 이 손해액의 산정에 반사실적 분석이 사용되었습니다. 담합을 하지 않았을 경우 시장가와 담합 납품가의 차이에 납품량을 곱해야 할 테니, 공급 시점별 반사실적 가격을 추정한 것입니다.

 

최종 결과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재판 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링크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295444

 

당시에 신동아에서 타블로이드성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는데, 어떤 블로거가 전문을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http://kr.blog.yahoo.com/oilsystem/1047

 

2.     겨자님이 80년대 미국의 일본 자동차에 대한 VER 얘기를 하셨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읽는, Harl Varian의 미시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것이, 많은 미국인들이 승리라고 착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뻘짓이었다고 얘기합니다.

결과적으로 85~86 2년 동안 일본 자동차 수출업자에게 100억 달러의 초과이익을 안겨주었다는 추정치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반사실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Varian선택적 보호무역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얘기도 덧붙이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힌트 겸 길안내 겸해서 알려드리면 이 사례는 과점시장 이론 챕터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겨자님의 글에 대해 반박할 내용은 분량이 좀 많기 때문에 천천히 조금씩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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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의 댓글에서 호레이쇼님과 레옴님이 주신 의견에 대한 답변을 아래에 붙여 넣습니다.

답글 형식으로 글을 구분하면 더 좋을 텐데, 그런 기능이 없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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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이쇼//

수입대체전략의 실패 사례를 근거로 장하준의 주요 논지를 반박할 수 없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알려주신 블로그에 가 보았습니다.

로드릭이 큰 책을 출간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잘 요약된 내용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습니다.

링크를 타고 로드릭의 블로그를 가 본 느낌을 간단히 얘기해 보겠습니다. 바이커님이 직접 링크하신 로드릭의 글을 B라고 하겠습니다. B에는 작년 10월인가에 쓴 다른 글에 대한 링크가 있습니다. 먼저 쓰인 그 글을 A라고 하겠습니다.

 

1.         그는 B에서 some preliminary results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정적인 의견이라는 얘기입니다. A에서는, “내가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지 좋은 아이디어 있는 사람은 좀 알려주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B의 말미에서 링크하고 있는 working paper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좀 더 기다려 봐야 로드릭 본인도 정리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제가 paper를 읽게 되면 다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2.         그는 B에서 the highly anomalous and puzzling phenomenon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우 예외적이고 이상한 현상. 바꿔 말하면 다른 대부분의 현상들은 설명이 잘 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 예외적인 현상을 잘 설명하는 이론은 다른 대부분의 현상들을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으로는 모두를 잘 설명하는 이론이 나오는 것일 텐데, 현재 비주류는 전혀 그런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전망에도 큰 기대를 안 하는 것이고요. 물론 시간이 충분히 지난 후에는 제가 틀렸던 것으로 결론날 수도 있겠습니다.

3.         B의 댓글에는 반대 사례가 발견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론이 필요합니다. 사례와 이론은 둘 다 매우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경쟁적인 모델과 사례들 간의 투쟁이 진행될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의미있는 발견이라고 합의된다면요.

4.         엄밀한 정의와 데이터 등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측정한 것인지도요. A의 댓글 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정확히 측정하긴 한 거지?”라고요.

5.         적어도 A에서는 노동생산성이 높은 산업에서 낮은 산업으로 옮겨갔다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바이커님이 잘못 이해하시거나 잘못 옮기셨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A에서 얘기하는 바는 노동생산성의 향상 속도가 높은 산업에서 그 속도가 낮은 산업으로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로드릭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between effect는 작지만 positive cross effect negative인 것이죠. 이것은 full data level information을 확인하지 않고는 평가 자체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gdp(level) 가 큰 경제에서는 경제성장률(growth rate, 즉 증가 속도)이 더 낮습니다. 바이커님은 모르는 분이고 호레이쇼님에게 큰 부담을 끼치는 발언이 될까 걱정됩니다만.. 정확하게 검증해 보시지 않고일단 우리편이라고 인용하셨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6.         로드릭이 다루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산업간 고용 share의 변화입니다. 이것은 산업간 GDP share의 변화와 별개의 문제입니다. 둘 다 중요하고 둘이 같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분석은 구분해서 해야 합니다. 고용 share 변화의 방향과 GDP share 변화의 방향이 반대된다면, 비용편익을 비교하여 하나를 얻고 하나를 포기해야(trade-off) 할 수 있습니다. 비용편익 계산에는 당연히 실업률이 주요한 고려사항으로 포함될 것이고요. 어찌됐든 1~5 test를 다 통과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부정적인 결과로만 볼 수 있는지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의미입니다. A의 댓글에도 그런 점이 지적되어 있습니다.

7.         한 두가지 더 있었는데, 오전에 읽고 외근 나갔다 왔더니 생각이 잘 안 나네요.

8.         저도 질문이 있습니다.

“장하준이 노동자의 임금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이민 제한 정책 때문이라고 말 할 때, 장하준은 그것이 많은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시당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주말에 친구에게 책을 빌려서, 이제 저도 읽어봐야겠지만.. “장하준이 뭐라고 얘기했는지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독자들이 어떻게 읽는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균형잡힌 장하준 독자인 호레이쇼님의 의견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다른 주제들은 천천히 얘기하겠습니다.

9.         호레이쇼님의 예산 제약과 인센티브는 당연합니다. 그래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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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옴//

 

1.         제가 EH.NET의 검색 결과가 하나밖에 없는 것을 근거로 장하준이 주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얘기한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EH.NET 검색 결과로 중요성을 평가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Reference 교집합 70% 에는 들지 않는다는 fact만 얘기하는 것으로 충분했었다는 생각입니다. 두 가지 정도는 덧붙일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Rodrik은 말하자면 장하준과 더 가까운 비주류이지만 검색 결과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만약 장하준이 더글라스 어윈이 얘기한 대로 estimation을 제시하거나, 기존의 구체적인 논문을 대상으로 반증을 제시하거나, 어윈 등의 비판에 대한 재반론을 논문 등을 통해 제시하였다면 로드릭보다 훨씬 검색결과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훌륭했다면 70% 교집합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고요.

2.         주류 순치적 해석이란.. 그냥 제가 만든 말입니다.

순치하다 [馴致--]  [동사]  1. 짐승을 길들이다. 2. 목적한 상태로 차차 이르게 하다.

순하게 길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자본에 의해 순치된 노동에게 혁명은 어쩌고 저쩌고예전에 이런 식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장하준의 이빨과 발톱을 손질해 주면서 장하준이 주류에서 통용되는,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그를 변호해 주는 것이 과연 그가 원하는 바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개성은 그만큼 무뎌지겠죠. 이것은 장하준 개인이 주류에 대해 어떤 정서적 태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의 핵심 테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로드릭의 블로그 타이틀은 “Unconventional thoughts on economic development and globalization” 입니다. 자기가 unconventional한 비주류라는 얘기입니다. conventional 주류보다 더 나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자의식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저는 장하준도 이에 가까울 것이라고 봅니다. 아니, 장하준의 자의식과는 별도로 장하준이 차별성이 없다면 그를 읽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하준과 주류의 차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의해 보고 옥석을 가리는 것이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이고요.

3.         다른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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