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이제 스물넷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지낸 동창 중에 벌써 넷이 죽었습니다.

중학교 동창 중 한 명은 저희 반 반장이었는데, 아버지 업무 상 고등학교는 외국으로 진학하게 됐어요. 그로부터 1, 2년 뒤였나, 처음 다시 듣게 된 그 친구 소식이 '죽었다'는 이야기였어요. 외국에 살던 한 한국인 가정의 가장이 부부싸움 중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자수했다던 신문 기사 꼭지 속 가족이 그 친구네 가족이라는 이야기와 함께요.

대학에 와서는 또다른 중학교 동창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친하진 않았지만 늘 반 뒷자리에 앉아 이상한 농을 던지곤 하던 아이로 기억은 하고 있었어요.

두 번 다 안 됐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던 아이들이라 그렇게 '죽음'이 와 닿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꽤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작년에 들었어요. 뇌수막염 증세로 통증을 호소했는데도 군의관에게 타이레놀만 처방받고 결국 죽음에 이른, 한 동안 뉴스에서도 자주 다뤄진 그 훈련병이 제 친구였습니다.

처음엔 너무 믿기지 않아서 외려 제게 소식을 전해준 친구에게 아무리 장난이 치고 싶어도 어떻게 그런 걸로 장난을 칠 수 있냐고 버럭 화를 내고 욕을 퍼부었어요. 평소에도 장난이 잦은 친구가 갑자기 누구누구 죽었대, 하니까 믿길리가요. 게다가 죽었다는 그 친구는 덩치는 작았어도 몸도 단단하고 체력도 좋은 친구였어요. 심지어 소식을 전해준 친구도 그 소식에 하도 벙쪘는지 전화하면서 허허 웃어대는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어요.

장례식장에 갔는데도 실감이 안 나서 눈물도 거의 안 났어요. 친구 어머니께서 절 붙잡고 친구 영정 사진을 들이미시며,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달라고, 그러면 들을 거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아무 할 말이 없었어요. 죽은 것 같지가 않았거든요. 화장하는 걸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습니다. 살면서 제가 그렇게까지도 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대전 현충원까지 가서 친구의 마지막을 볼 때도 한참 울었어요.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와 친구들과 고등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는데, 그러고보니 또 그 친구가 죽었다는 게 꿈 같더군요. 아직도 그 친구가 군에 있는 양 '그 새끼 나한테 빚진 거 있는데ㅋㅋ' 해 대며 부러 그 친구를 가벼운 농거리 삼아 씹어대기까지 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 추모 미사를 다녀오고, 그 친구 기일을 챙겨 대전에 또 다녀오고하면서 이젠 정말 없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동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고, 같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리 친하지는 않은, 그래도 보면 인사는 하는 그런 친구였어요. 그도 그럴 게 같은 반은 달랑 한 번 한 게 전부고, 저는 내성적이었던 반면 그 친구는 활달했고, 저는 집안이 풍족치 못했던 반면 그 친구는 잘 사는 집 아들이라 노는 무리 자체가 달랐거든요. 대학교에서도 서로 과가 달라서 거의 볼 일이 없었어요. 그나마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 준비하던 시기가 좀 겹쳐 거기서 몇 번 아는 척 하긴 했네요. 그 뒤론 페이스북 친구라는, 거의 허울에 가까운 인연으로 지내며 소식을 어렴풋이 듣고 있었어요.

그 친구는 제게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어요. 잘생겼고 집도 잘 살고 어딘가 고상해 보이는 분위기이면서 사교성이 좋아 친구도 많고... 어쩌다 우연히 뉴스피드에서 그 친구의, 제 입장에선 꽤 화려해 보이는 일상의 일부를 보게 될 때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등감에 견디기 힘들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등졌답니다. 쟤는 늘 행복하겠지, 부러울 거 없겠지, 나도 저렇게 되어 봤으면, 하던 친구가 이 젊은 나이에... 바로 어젠가 그제에도 페북에 글 쓴 걸 봤는데 이제는 없는 사람이 됐다는 게 역시 또 믿기지가 않네요.

스물넷이면 죽음을 알기엔 젊은 나이라 생각했어요. 물론 저보다 어린 나이에 더 많은 죽음을 겪어온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 거기서 동떨어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도 거기 그렇게 있는 줄 미처 몰랐던 죽음이 이제 비로소 늘 제 가까이 있단 걸 느낍니다. 삶이란 게 굉장히 허망하네요. 이 나이에 져 버리는 이들을 주변에서 보는 건 꽤 괴로운 일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감정 상태인데 글로는 뭐라 표현할 길이 없네요. 어떻게 보면 제가 많이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친구가 부디 좋은 곳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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