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저자의 고민, 그 결과물

2014.06.23 11:41

dmajor7 조회 수: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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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에게 책이란

나에게 책이란?

첫사랑에 관한 질문만큼이나 나를 감상적으로 만드는 질문이다.

책은 나에게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책벌레 꼬마 시절 허풍선이 남작과 먹보 거인 가르강튀아를 읽으며 넓은 세상을 꿈꾸었다. 셋방 처지였어도 책만 있으면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부잣집 도련님 친구 집에 놀러간 날, 천정까지 가득 찬 서가 앞에서 남의 인생을 빼앗고 싶은 리플리의 심정을 처음 느꼈다. 사춘기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중에 나는 어느 쪽 인간일까 중2병스런 고민을 하곤 했다. 영어 교과서 밑에 일본전후문학전집을 숨겨서 읽다가 들켜 선생님에게 그걸로 머리를 얻어맞던 고교 시절, 책은 감방에서 마당에 핀 꽃을 바라보는 창문이었다. 대학 시절, 책은 모피어스의 빨간 약이었다. 진짜 세계의 맨얼굴을 대면하는 고통을 선사했다.

 

하지만 어느 이즘보다 먹고살이즘이 중하기에 책은 곧 억지로 머리에 쑤셔넣어야 하는 밥벌이가 되었다. 이제 나이 먹고 밥벌이는 하면서도 뭐가 불안한지 자꾸 실용서에 먼저 손이 간다. 뒤늦게 고전을 뒤적거려보지만 책은 속절없이 ‘마녀사냥’, ‘썰전’ ‘왕좌의 게임’ 다시보기와 카톡방, 밴드, 페북에 넘쳐나는 석 줄짜리 언어들에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나에게 책이란 그런 존재다.

언제나 사랑했고,

언제나 쉽게 버렸던 친구.

 

2. 프로필

 

3. 추천도서

(1) 밤이 선생이다(황현산 산문집)

: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 년 전에도, 수수만 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우리의 모국어는 이렇게 서늘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2) 그 섬에 내가 있었네(사진, 글: 김영갑)

: 이 책의 제목은 과거형이다. 그렇다. 김영갑은 그 섬에 있었다. 기적같이 아름다운 제주 중산간 들녘에 있었다. 여명이 다가오는 풍만한 오름을 홀로 오르고 있었다. 연인도 혈육도 떨치고 사진기 하나에만 목숨을 걸고 있었다. 비바람만 겨우 피하는 단칸방에서 필름 살 돈을 남기려 굶주림을 참고 있었다. 365일, 24시간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섬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탐하며 들짐승마냥 산중을 헤매고 있었다. 끼니를 굶으며 매년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 개인전을 열고 있었다. 그렇게 20년을 섬 속의 작은 섬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치료를 거부하며 몸의 근육들이 녹아 없어지는 것을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는 중산간 마을 폐교를 빌려 자기 묘지, 갤러리 두모악을 돌 한 덩이씩 모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투병 6년 만에 자기 손으로 만든 그곳 마당에 뼛가루가 되어 뿌려졌다. 그렇다. 김영갑은 그 섬에 있었다. 이 책은 그의 유혼(幽魂)이다.

 

(3) 인간의 조건(고미카와 준페이)

: 사춘기 소년 시절, 짐승의 시간에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남기’라는 것이 목숨과 영혼까지 걸어야 하는 것임을 정말 육체적인 고통까지 느껴질 정도로 충격적으로 후려쳐 알려주던 책.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만주에서 벌인 대동아전쟁이라는 살육의 광기 한가운데서 휴머니스트인 주인공 가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투쟁의 기록. 이 책을 읽던 소년 시절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남기’란 전쟁 중이 아니어도 지난(至難)한 것임을 우리 모두는 목도하고 있다.

 

(4) 잘 표현된 불행(황현산 비평집)

: 이 책은 그야말로 제목에 매혹되어 아무 정보도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른 책이다. ‘잘 표현된 불행’, 이 여섯 글자만으로 시(詩)라는 불가해한 존재를 완벽하게 정의하지 않았나 싶었다. ‘잘 표현된 불행’, 그렇지 않은가. 서툴게 표현된 불행은 그저 넋두리고, 표현되지 않은 불행은 시로 승화되기 전의 실존이며, 행복만 목소리 높여 외쳐대는 노래는 신도들의 찬양이다. 시란 기쁨과 행복을 노래할 때조차 그 유한함과 덧없음에 대한 한탄이 배음(overtone)으로 노랫소리에 섞여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맞이한 책은 대가의 10년 세월이 빽빽하게 응고된 본격적인 시 평론집이었다. 언어와 문학과 철학과 사유가 그린델발트 유스호스텔에서 넋 놓고 바라보던 아이거 북벽처럼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결코 쉽게 오를 수 없다. 금방 읽다 포기하게 된다. 바쁜 삶에 지친 보잘 것 없는 대뇌에게 휴식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서가에 놓인 지 해가 넘도록 가끔 몇 페이지 넘기고 다시 제자리에 경건하게 돌려놓는 책이다. 그런데도 추천하는 이유는, 이 인스턴트 세상에 한 권쯤은 그렇게 불편하고 힘들게 올라야 하는 산 같은 책이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나중에 왜 권했냐고 욕하시면, 경고하지 않았냐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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