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올리는 [잠] 후기 (스포)

2023.11.26 01:03

Sonny 조회 수:455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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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앞둔 여자는 남편의 몽유병 증세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지만 남편의 몽유병 증세는 목숨이 위태로운 수준의 자해로 발전한다. 병원에서 진단도 받고 약도 먹어보지만 몽유병을 앓던 남편은 결국 부부가 함께 키우던 강아지를 죽인다. 아이를 갓 출산한 여자는 남편의 이런 몽유병이 아기에게 향할까봐 두렵다. 하지만 남편의 몽유병은 낫는 차도를 보이지 않고 여자는 계속 긴장한 채로 아기를 키워야한다. 여자의 어머니가 냅다 불러온 무속인은 귀신이 들렸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미신을 믿지 않던 여자도 남편의 몽유병이 귀신의 탓은 아닌지 점점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 [잠]을 오컬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오컬트는 호러의 외피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인 수진의 시선을 제외하면 영화가 귀신에 관한 그 어떤 증거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분명한 사실을 두고 이야기해보자. 수진은 남편의 몽유병이 귀신 때문일 거라고 맹신하며 귀신을 쫓아 그 몽유병을 고치려고 하고 있다. 즉 [잠]은 통제가 안되는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데 실패한 아내의 이야기다. 함께 생활하는 동거인이 잠을 잘 때 2인 공동체의 안위를 자꾸 깨트린다. 기존의 평온한 상태로 남편을 되돌리려 고군분투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 아내는 미쳐간다. 이 영화의 진짜 호러는 남편을 통제불능으로 만드는 초현실적 현상이 아니라, 그 남편을 통제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해야한다는 아내의 고충 그 자체다.


이 영화가 몽유병에 대한 공포를 다룬다기에는 생략된 부분이 있다. 일단 몽유병을 앓는 현수 당사자의 공포가 영화에서 빠져있다. 몽유병이라는 어떤 괴현상이 이 부부를 덮쳤다면, 그 현상 앞에서 부부는 함께 두려워해야한다. 심지어 현수는 몽유병으로 반려견을 죽였다. 그러나 현수는 자신의 몽유병에 두려움이 없다. 현수는 자고 일어난 뒤에 자신이 어떤 금기를 깨트린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거나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현수가 몽유병으로 어떤 짓을 저지를지 오직 아내인 수진만이 두려워한다. 이것은 그만큼 현수가 자신의 몽유병에 대한 책임감이 덜하다는 뜻이다.


또 하나 생략된 것은 아내인 수진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분이다. 함께 사는 남편이 잠을 자면서 여러 기행을 하다가 마침내 반려견까지 죽였다면 이 남자가 아내인 자신마저도 해칠 수 있다는 공포가 딸려올 법 하다. 그러나 수진은 현수가 자신을 해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진이 느끼는 공포는 현수가 본인들의 아이를 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이것은 모성애의 차원에서 설명이 불가능하다. 자기 아이를 해칠 수 있다는 불안은 당연히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수진은 현수가 아이를 해하는 불안으로 악몽은 꾸지만 자기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악몽은 꾸지 않는다. 수진의 공포는 오로지 자신의 아이를 지키는데에만 집중되어있다.


타인이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신체의 자유에 대한 불안이다. 남이 함부로 자신의 몸을 착취하거나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타인이 자신이 아닌 또 다른 타인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통제에 대한 불안이다. 즉 수진의 공포는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존재에 대한 책임의 문제다. 자신이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데,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자꾸 생길려고 한다. 남편 현수의 몽유병은 증상 자체가 아니라 수진에게 타인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하는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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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장부터 두 부부의 기울어진 책임의 양을 보여준다. 수진은 롯데푸드라는 대기업에서 일을 하지만 현수는 티비드라마의 단역배우다. 현실적으로 단역배우는 벌이가 좋은 직업이 아니다. 이후 현수는 배우 일을 그만두고 공인중개사라도 해보겠다는 고민을 이야기한다. 수진은 일언지하에 그 제안을 거부하고 현수가 배우의 꿈을 좇도록 응원한다. 얼핏 보면 몽유병과는 큰 상관이 없어보이는 이 설정은 사실 이 영화의 핵심이다. [잠]은 한 가정에서 부부가 동등한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면, 한 쪽이 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현수는 배우 일을 그만둬도 되지만 수진이 대기업 일을 그만두면 그건 이 가족의 위기로 직결된다. 현수가 수진과 동등한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 설정을 바꾸면 이 영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수진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현수는 자기가 버는 돈으로 알아서 병원을 갈 것이고, 더 많은 방과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안전한 육아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 영화 속에서 수진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이 부부에게 참이 아니다. 둘이 함께 하기 위해 수진이 더 큰 책임과 심려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으로서 함께 있지만 그 책임의 양은 같지 않다. 그러니까 둘이 함께 있는 이 가족 자체가 이미 수진에게 더 버거운 책임이 지워진 상태다. 그리고 현수가 몽유병을 앓기 시작했다. 이것은 수진이 경제적 책임에 더해 육체적으로도 현수를 책임져야한다는 말이다. 조금 더 직관적으로 말한다면 이제 수진은 현수의 "병수발"까지 들어야하는 상태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다. 여자에게 육아의 책임이 얼마나 무겁게 지워지는지는 굳이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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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이 시작되면 영화는 수진이 짊어진 책임감을 대놓고 보여준다. 몽유병을 어떻게든 예방하려고 현수는 침낭에 들어가서 자기로 한다. 이 때 카메라는 천장에서 수진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침낭 안에 들어가있는 현수를, 왼쪽에는 포대기에 싸인 채 누워있는 갓난아기를 보여준다. 현수와 갓난아기는 서로 닮은 꼴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수진이 있다. 수진은 아기 한명이 아니라 통제불능의 아기 두명을 책임져야한다. 이 중 한명은 다른 한명을 무의식적으로 공격하거나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이 미쟝센으로 1장에서 수진이 왜 현수가 자신을 해코지 할거라고 걱정을 하지 않았는지 확실해진다. 1장에서 현수가 보여줬던 몽유병 증세는 말안듣는 아기가 자기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과 닮아있다. 현수는 한밤중에 먹으면 안되는 것을 먹고, 떨어질 수도 있는 곳에 올라가고, 긁으면 안되는데 계속 자기 피부를 긁어댄다. 몽유병으로 통제불능에 빠진 상태의 현수는 아기와 비슷하다.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자신에게 향할 폭력을 걱정하지 않는다. 수진은 잠이 들면 아기처럼 퇴화해버리는 현수와 떨어지거나 모른 척 할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감을 배신하는 일이다.


이 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영화에서 제시된다. 바로 현수가 잠을 잘 때만 이 가정에서 따로 분리가 되면 된다. 현수가 자해를 할 지언정, 최소한 수진이 아이를 보호하는 책임은 훨씬 덜어진다. 현수도 성인인만큼 어떤 식으로라도 자신의 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진은 이를 한사코 거부한다. "둘이 함께라면"을 강조하며 현수가 한 집에서 잠을 자고 살기를 밀어붙인다. 2장에서 수진이 담배를 피우러 갈 때 아랫집 여자 민정의 입을 빌려서 '남편만 없어지면 된다'고 힌트를 말해도 수진은 이를 무시한다. 본인의 가정에 대한 책임감 하나로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수진이 현수와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것이 과연 로맨스의 영역일까. 오히려 이것은 상대적으로 남편의 책임보다 아내의 책임이 훨씬 크고 무거운 '비자발적 가모장제'의 정치적 문제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다른 가족구성원이 집을 떠나 고립되는 것을 쉽게 허용할 수 있을까. 맞벌이 부부가 너무나 당연해진 현대 사회에서 한명의 가장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수진은 이를 모른다. 자꾸 "둘이 함께라면"이라는 문장에 스스로 속아 넘어간다. 둘이 함께가 아니어야 해결되는 문제를 두고서도 수진은 이를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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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 가모장제의 문제를 외부의 가족들을 통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총 세개의 가족이 등장한다. 수진과 현수 가족, 그 아랫집에 사는 민정네 가족, 그리고 독립하기 전의 수진네 가족이다. 남편은 없으나(수진의 대사로 미뤄볼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보인다) 수진의 어머니는 옷이나 차나 집을 보면 굉장히 유복해보인다. 수진 역시도 아버지의 부재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즉 수진의 어머니는 외부의 세계로부터 가족이라는 보금자리를 남자의 도움없이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민정네 가족 역시 남편이 부재한 모자 가정이다. 민정네가 들어오기 전 아랫집에 거주하면서 수진 부부를 괴롭히던 할아버지는 민정네의 아버지였다. 이 가정들 사이에서 남편 혹은 아버지가 사라지면 평화가 찾아온다는 가모장제의 법칙을 수진만 깨닫지 못한 것이라면 어떡해야할까. 왜냐하면 인성이나 의식과 무관하게, 남자는 함께 사는 여자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순히 영화 속 개별 가정들의 우연이 아니다. 영화 [잠]은 남편이 부재한 여자의 가족과 남편이 존재하는 여자의 가족을 대조하며 부부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여자가 떠맡는 문제를 우화 형식으로 묻고 있다. 현실의 아내들은 남편을 두고 어떤 불평을 하는가. 밥도 혼자 못차려먹고, 설거지도 안하고, 청소도 못하고 집안 일은 하나도 안한다며 "아들이 한명 더 생긴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뭘 해야할지 아내가 정확히 지시를 해야 남편이 움직일 수 있다"는 변명을 하곤 한다. 이것이 단순히 "인성"의 문제라면 여자들은 안그런 남자를 찾으면 되고 남자들은 좋은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개개인의 도덕에 맡길만큼 간단하지 않다. 데이트할 때 지극정성으로 헌신하던 남자들이 결혼하면 게으르고 무책임하게 돌변해버린다는 이야기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이 문제의 핵심은 "좋은 남자"도 가부장제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결국 퇴화할 수 밖에 없다는 사회적 문제가 아닐까?


현수는 결코 나쁜 남편이 아니다. 그는 수진을 차로 데려다주거나 이것저것 챙길 줄 알고 경제적 부양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으며 육아에도 동참하는 좋은 남편이다. 그런데 그 좋은 남편이 잠만 들면 아내를 괴롭게 한다. 잠을 잘 때 하는 행동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이 영화에서 현수는 무의식적으로 아내 수진에게 '돌봄'의 책임을 더 크게 지우고 있다. 이 설정 자체가 한국에서 여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무섭게 묻는 영화의 질문이라면? 아무리 좋은 남자를 찾아낸다고 해도, 그 좋은 남자가 가정에서 돌변하는 존재라면 여자는 어떡해야할까. 아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행동양식이 교정되지 않으면 뭘 할 수 있을까. [잠]은 가정을 책임지는 부분에서 한국남자들이 뜯어고칠 수도 없는 존재일 수 있다고 무서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가정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규정은 남자가 남편의 역할을 실패할 거라는 가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2장부터 수진이 무엇을 걱정하는가. 현수가 아이를 위험하게 할 지도 모른다는 긴장 때문에 현수가 아이를 내다버리는 악몽까지 꾼다. 이 남자는 내 아이를 책임질 수 없을 거라는, 제대로 된 육아를 하지 못할 거라는 어머니로서의 불신이 깔려있다. 현재 한국의 남자들은 가족에서 부성애를 충분히 실천하고 있는가. 남자는 바깥일을 한다는 가부장제의 사고 아래에서 육아에 여전히 불합격 점수를 받고 있지 않은가. 단도직입적으로 [잠]에서 수진을 미치게 몰아가는 것은 못미더운 남편 때문에 독박육아를 떠맡아야한다는 강박이다. "둘이 함께라면"의 구호는 육아 앞에서 완전히 무너진다.


그러나 수진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가 현수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사실도, 현수가 자신에게 충분한 남편도 아이아빠도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모른척 한다. 그래서 그는 다른 논리를 발명해낸다. 자신의 남편이자 아이아빠인 현수는 좋은 사람인데, 지금 이 사람에게 귀신이 들려서 망가졌다고 외부의 존재를 소환하는 것이다. 그 외부의 존재만 처리하면 이 남자와 세가족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수진은 버리지 못한다. 귀신을 동원해서라도 현실에서 도피해야하는 수진은 얼마나 궁지에 몰려있는가. 이 일방적인 가사의 책임은 여자가 없는 귀신을 찾아내야 할 정도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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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2장 끝에서 수진은 이 강박을 참지 못하고 현수의 뒤통수를 후려 갈겨서 기절시킨다. 수진은 그의 몸을 꽁꽁 묶고 목에 칼을 들이댄채 귀신을 쫓아낸다면서 위협한다. 이 때 수진의 강박은 무당이나 아랫집 할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도 크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진이 잠을 못자 예민해져서 생긴 일이다. 수진은 왜 잠을 못잤는가. 자기가 잠든 사이 현수가 몽유병 증세로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까. 여자가 남편을 돌보면서 아이까지 돌봐야하느라 잠을 못자고 있다. 영화는 독박육아가 얼마나 고되고 잠도 못자는 일인지, 여자가 남편을 죽이고 싶을만큼 미쳐버리게 만든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영화는 진짜 목적을 제시한다. 현수를 잘 재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수진을 잘 재워야한다.


[잠]은 명확하게 1장, 2장, 3장으로 나눠져있다. 이 연극 같은 구성이 편집의 편의 때문이 아니라 수진의 수면을 형상화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눈을 감고 잠을 자면 잠깐의 어둠을 느끼고 바로 다음날이라는 시간의 흐름으로 점프한다. 영화가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암전되는 순간이, 바로 수진이 눈을 감고 의식이 멈추면서 수면을 취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음 장이 시작되면 현수는 몽유병 증상을 앓으면서도 잠은 자는데 수진은 잠을 못잔다. 즉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각 장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수진은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다.


영화가 1장의 끝에서 2장으로 넘어가면 수진은 병원에 있다. 1장 내내 현수 때문에 집에서 잠을 못자다가 수진은 출산 때문에 병원에 갔을 것이고 입원해있으면서 그나마 잠을 잤을 것이다. 2장에서 3장으로 넘어가면 수진은 정신병원에 있다. 2장 내내 불면에 시달리던 수진은 정신병원에서 간신히 잠을 잘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가 암전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 수진은 잠을 잔다. 그런데 잠을 자기 위해서 수진은 병원에 가야한다. 어떤 이유로든 병원에 입원을 해서 현수와 분리되어야만 수진은 잠을 잘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수진이 잠을 자는 조건은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극한의 외부적 요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장이 나뉘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현수의 몸에 들려있던 귀신이 떠나간다고 마침내 믿게 된 수진은 쓰러진다. 그리고 코를 골며 잠을 잔다. 이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현수의 코고는 소리에서 시작했다. 겉으로는 현수의 몽유병이 시작되면서, 현수의 잠이 이상해지면서 영화가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수의 몽유병은 일주일 전부터 이미 그 증세를 보이고 있었고 그 전까지 이 부부 모두가 그 사실을 몰랐다. 이 영화의 시작을 다시 정의해보면 어떨까. 코고는 소리는 잠을 자는 본인이 아니라, 그 옆에서 잠을 자다가 시끄러워서 깬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잠]의 첫장면은 수진이 잠을 깨면서, 수진이 잠을 못자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수진이 잠을 편하게 자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끝이 나지만 어떤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만약 현수의 몽유병이 다시 한번 도지면 그 때는 어떻게 되는가. 몽유병이 완치되었다면, 그 때 이 부부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이 쿨쿨 잠을 잘 수 있을까. 이것은 혹시 잃어버린 잠의 주인이 아내에서 남편으로 바뀌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은 아닐까. 이제부터는 수진을 재우기 위해 현수가 다시 불면의 나날을 지새우며 본인의 강박에 시달린다는 뜻은 아닐까. 이 질문들은 스크린 바깥으로 퍼져나간다. 제몫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남편들이 태평하게 코를 골며 잘 때 아내들은 과연 제대로 잠을 자고 있을까. 귀신을 찾지도 못하고 귀신들린 연기를 해주는 남편도 없는 현실의 여러 가정 속에서 아내들은 과연 미치지 않고 잘 살고 있을까. 아니면, 여자들이 한번 미쳐서 귀신 잡듯이 남편을 잡아야하는 것 아닐까.


@ 내부의 문제를 외부의 문제로 자발적 오해를 하는 이 인식과 그에 따른 파국적 효과에 대해서는 뒤이어 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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