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4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이 이미지는 진짜로 바닷가에서 찍었을까요? 하도 합성이 일상화된 바닥이다 보니 이런 평범한 사진을 봐도 그런 게 궁금하니다. ㅋㅋ)



 - 1923년, 아일랜드의 어느 작은 섬 '이니셰린'입니다. (실제론 없는 섬이라네요.) 아일랜드 내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던 시점... 이지만 스토리에 별 영향은 없구요.

 우리의 주인공은 '파우릭'이라는 순박한 섬 청년이에요. 이 분에게 세상이란, 혹은 인생이란 이 섬과 자기 집, 함께 사는 똑똑한 여동생과 사랑스런 당나귀 한 마리, 그리고 매일 오후에 만나 술 마시며 사는 얘길 나누는 나이 많은 친구 '콜름'으로 구성된 것인데요. 매일매일이 똑같고 똑같이 만족스럽던 파우릭의 행복한 나날은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던져진 콜름의 절교 선언으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대체 이유가 뭐냐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물으며 매달려 보지만 '응 넌 잘못 없어. 근데 이만 좀 비켜주지 않겠나? 아님 내가 가고.' 라고 대응하던 콜름은 파우릭의 처절한 매달림에 결국 그 답을 말해주는데...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다 좋은데 말야. 자네만 꺼져 주면 더 할 나위가 없겠군??)



 - 예상과 다르게 되게 익숙한 이야기라서 좀 당황했습니다. 그러니까 설정 자체가 흔하다는 건 아니구요. 오히려 설정 자체는 많이 특이한 편이죠. 다만 제가 직업상 수도 없이 경험했고 또 계속 겪고 있는 일이라서요. 예고 없는 야멸찬 절교 말이죠.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갑자기 살기 싫고 학교도 나오기 싫다며 세상 끝난 듯이 절망을 하고 있으면 거의 이런 일이거든요. 그리고 10대들의 절교란 게 무슨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며 벌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다짜고짜 어느 날부터 인생 절친이 날 피하고. 이유는 안 알랴줌이고. 뭐 그런...


 이후의 이야기 전개도 현실의 이런 10대들 절교랑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처음엔 절교 당한 아이가 일방적인 피해자인 걸로 시작을 하죠. 그런데 양쪽을 불러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결론은 대충 이런 식입니다. '애초에 안 맞는 애들이 친구가 됐다가, 그 중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쪽이 먼저 그걸 느끼고 관계를 깸. 하지만 차마 이유를 솔직히 말은 못함'. 

 그래서 나중엔 가해자(?) 측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꼭 그렇게 설명도 없이 확 끊어야 했니? 그러기 전에 솔직한 니 생각을 털어 놓으며 가능성을 찾아 보는 게 그래도 친구로 지냈던 사람에 대한 예의 아닐까. 뭐 이 정도의 잔소리는 덧붙여 줘야겠지만, 그 관계에 미래가 없다는 판단에는 충분히 공감을 하게 됩니다. 누가 잘못했다기 보단, 그냥 애초에 영원할 수 없는 관계였던 거죠.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아닠ㅋㅋㅋ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곸ㅋㅋㅋㅋㅋㅋ)



 - 마침 또 보면 이 영화의 두 주인공님들도 딱 그렇게 10대들 마냥 미성숙하고 유치합니다. 피해자로 시작해서 남은 런닝타임 내내 관객들이 콜름의 선택을 이해하게 만드는 일들만 벌여대는 파우릭은 말 할 것도 없구요. 우리 콜름씨가 집요한 파우릭의 구애(?)에 지쳐 저지르는 행동도 도저히 제 정신인 인간이 저지를 짓은 아니죠. 


 주인공들의 이런 황당함 덕분에 영화는 코미디가 됩니다. 저에겐 다행이었죠. 궁서체로 진지한 인간 관계 드라마였다면 끝까지 버티기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코믹함을 배우들이 참 잘 살려줘요. 둘 다 진지한 감정을 담아 연기하면서도 거기에 미묘하게 웃기는 뉘앙스를 넣어서 참 잘 소화를 합니다. 콜린 파렐의 그 세상 억울한 눈썹이 이렇게 역할에 딱 맞게 활약을 한 적이 또 있었을까요. ㅋㅋㅋ 브랜단 글리슨의 거친 '아이리쉬맨' 연기가 이렇게 이야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도 많이 보진 못한 것 같구요. 그리고 이미 같은 감독의 영화에서 함께한 경험 때문인지 정말 호흡도 잘 맞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황당함이 불러오는 효과는 한 가지가 더 있는 것 같았어요. 워낙 어이가 없다 보니 '이거 사실 그냥 인간 관계 얘기인 건 아니지? ...그렇지?'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구요. 아주 친절하게도 영화가 시작과 끝을 '본토에서 들려오는 대포 소리'로 장식해 놓았기 때문에 당연히 아일랜드 내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전 역사 일자 무식이기 때문에 이 쪽은 과감하게 패스하구요. ㅋㅋㅋ



img.gif

 (아카데미 최우수 눈썹주연상을 줘야할 것 같지 않습니까. 눈썹 연기라니!!!)



 - 세팅은 전형적인 사극 세팅이지만 결국엔 사극보단 우화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일단... 아주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을 깔고 진행되는 이야기 치고는 배경이 되는 '현실'에 대한 디테일이 거의 없어요. 얘들은 도대체 평소에 뭔 일을 해서 먹고 사는지도 거의 안 알랴줌이구요. 섬에서 비춰주는 장소들도 걍 이야기상 꼭 필요한 장소들 몇 군데로 한정이 되구요. 게다가 기본적으로 외딴 섬이기까지 하니... 이렇게 현실적 디테일들이 과감하게 생략이 된 이야기라서, 보다 보면 되게 안 현실적인 가공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뭐... 사실은 이게 희곡을 갖고 만든 영화라서 그런 게 크겠지만요. ㅋㅋㅋ 어쨌든 덕택에 영화는 사극이라기 보단 그냥 우화처럼 느껴지고. 영화 내내 보여지는 과장된 캐릭터들도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에 잘 어울려요. 괴상함의 절정을 달리는 그 사망 예보 할머니를 생각해 보세요. 그런 괴인이 시침 뚝 떼고 걍 평범한 이웃처럼 돌아다니는 섬 아닙니까.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이렇게 동물들 써먹는 것 역시 그냥 시골 풍경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우화적 분위기에 일조하는 듯 했구요.)



 - 주인공 둘이 그렇게 나라를 잃은 듯 격한 감정으로 난리를 치고 다니는 동안 곁에서 은근히 알차게 지분을 챙겨 먹는 캐릭터 둘이 있죠. 


 먼저 속 깊고 똑똑한, 그리고 아마도 이 섬에서 유일하게 제 정신을 달고 사는 주민일 파울릭의 동생, 시오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정말로 이야기상 역할이 '제정신인 사람'이죠. ㅋㅋ 미친 놈 둘이 날뛰는 이야기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고 중심을 잡아주며 관객들이 의지할만한 유일한 인물 역할을 참 잘 해주시구요. 이 분이 마지막에서 내리는 선택을 보면 다시 '아일랜드 내전' 생각이 나며 좀 씁쓸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자타공인 이 섬 최고의 멍청이(...) 역할을 맡은 도미닉이 있어요. 처음엔 단순히 인생 우울한 찌질이로 시작해서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이 영화의 다른 주역들처럼) 예상치 못한 면모들을 보여주는데. 특히 파울릭의 '좋은 사람' 부심을 이 캐릭터가 흔들어주는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얘긴 못 하겠지만요.


 둘 다 캐릭터도 아주 좋고 배우들도 잘 합니다. 케리 콘돈은 제게는 '베터 콜 사울'을 제외하면 거의 어벤저스의 컴퓨터 목소리로만 익숙했는데 참 매력적이고 연기도 잘 하셔서 좋았구요. 배리 키오건은... 이 분 알고 보니 되게 잘 나가는 배우였네요. 출연작들을 확인해 보니 함께 한 감독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크리스토퍼 놀란, 데이빗 로워리, 클로이 자오, 맷 리브스... 에다가 마틴 맥도나. 이렇게 널리 인정 받는 감독들과 작업하고 또 그 중엔 DC나 마블 블럭버스터들도 있구요. 드라마 출연작 중엔 '체르노빌'도 있고 내년 1월에 공개된다는 스필버그, 톰 행크스 제작의 2차대전 트릴로지 완결(?)편에도 주연급으로 나오는 모양입니다. 오오 대세!!! ㅋㅋ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어찌보면 이 둘은 모두 파울릭의 멘탈에 데미지를 입히는 인물들인데요. 따져보면 그게 다 파울릭 잘못이라는 게 또 이야기의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 또 쓸 데 없고 알맹이도 없이 말이 길어졌군요.

 대충 정리하자면요. 사극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별로 사극 느낌은 크게 안 나는 우화 내지는 부조리극 같은 느낌의 이야기였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노골적으로 아일랜드 내전 이야기를 깔고 있지만 그거 신경 안 쓰고 그냥 인간 관계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봐도 충분히 생각할 거리도, 이야기 거리도 많도록 잘 짜여진 이야기였구요. 확 몰입될 수 밖에 없도록 화려하게 활약하는 주인공들 외에도 정이 가고 재미난 조연들까지 잘 신경 쓴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뭣보다... 일단 황당하게 웃겨요. ㅋㅋㅋ 굳이 뭐 깊이 생각할 것 없이 주인공들이 벌이는 난장판 구경하며 낄낄거리기만 해도 시간 값은 충분히 하는 영화였습니다.

 잘 봤구요. 맥도나 아저씨도 소처럼 일해서 작품 좀 많이 내놓았으면... 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화이팅이구요~!!




 + 주인공들과 함께 주인공들의 동물들도 함께 활약하는 이야기였는데 본문에 그걸 빼먹었네요. 당나귀 한 마리와 개 한 마리가 참 중요한 역할들을 합니다. 특히 그 당나귀는 참 다방면으로... ㅋㅋㅋ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만. 능력과 기억의 한계로 두 주인공 위주로만 정리해 봅니다.


 의지의 아일랜드인 파울릭이 결국 콜름에게서 들어내고야 만 절교의 이유는 이거였습니다. "니가 좋은 놈인 건 아는데 넌 너무 무식하고 지루해. 너와의 대화는 인생 낭비이고 난 그렇게 낭비될 시간을 아껴서 내 취미인 음악에 전념하고 싶어."

 이 말에 멍... 해진 파울릭은 일단 동네 사람들을 하나씩 붙들고 "내가 멍청해? 내가 지루해??" 이렇게 확인하고 다니며 억울해하구요. 싫다는 콜름을 자꾸 따라다니며 계속 귀찮게 합니다. 그러자 질겁을 한 콜름은 "니가 한 번만 더 말을 걸면 그 때마다 내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서 너에게 줘버리겠다!"고 선언을 하는데요. 당황해서 잠시 참아보는 파울릭이지만 결국 다시 들이대며 콜름을 짜증나게 하구요. 다음 날엔 진짜로 콜름의 손가락 하나가 파울릭의 집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ㅋㅋㅋ

 그래서 잠시 또 참아 보는 파울릭입니다만. 어찌저찌해서 동네 경찰 아저씨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뻗어 있는 모습을 콜름에게 보이고, 어쨌든 인간적으로 파울릭을 싫어하지는 않는 콜름이 이걸 수습해서 집에 돌려보내주니 다시 또 거머리 모드를 발동하는 파울릭. 그래서 콜름은 글쎄... 한 번에 손가락 네 개를 잘라서 파울릭 집 앞에 내던지고 갑니다. ㅠㅜ


 그런데 이걸 어쩌나. 파울릭이 마치 가족처럼 애지중지하는 당나귀가 그 손가락을 집어 먹고 그게 목에 걸려서 죽어 버렸어요. 분노에 차서 콜름에게 달려가 저주하는 파울릭. "니 개와 함께 니 집도 불태워 버리겠다!!!"고 선언하는데요. 정말로 다음 날 콜름의 집을 찾아간 파울릭은 콜름의 개를... 안전하게 옮긴 후 콜름 집에 불을 지릅니다. 이때 사실 콜름이 파울릭이 온 걸 모르는 척하며 집에 앉아 있는 모습이 짧게 보이구요.


 진작부터 내륙으로 가서 자기 좋아하는 일을 살 것인가, 아님 모자란 오빠 곁을 지키며 함께 쭉 살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하던 똑똑한 동생 시오반은 이 쯤에서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섬을 떠납니다. 알고 보니 파울릭보다 똑똑했고 뭣보다 섬세한 심성의 소유자였던 도미닉은 파울릭과 친구 먹지도 못하고 시오반과 연애도 하지 못하는 외로운 삶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스스로 세상을 떠나구요. 이렇게 결국 당나귀 포함 주변의 모든 것을 잃은 파울릭은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구요. 사실은 집에서 빠져나와 살아 남았던 콜름이 그 자리에 나타나 말을 겁니다. 서로를 증오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를 용납할 수도 없고 다시 가까워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두 사람이 씁쓸하게 짧은 대화를 나눈 후 헤어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나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7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1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25
125027 '세인트 모드' 감독 신작 [4] LadyBird 2023.12.20 266
125026 에피소드 #68 [2] Lunagazer 2023.12.19 69
125025 프레임드 #648 Lunagazer 2023.12.19 80
125024 서경식 작가가 돌아가셨네요. [6] thoma 2023.12.19 551
125023 [괴물] 감상 [2] 영화처럼 2023.12.19 350
125022 미래의 범죄들 Sonny 2023.12.19 250
125021 잡담 - 리젠을 생각하다, 연말 새해맞이 추천 노래들(캐럴 포함), 40까지 못쏠인 남자 상수 2023.12.19 159
125020 배우 조나단 메이저스 유죄판결, 마블 스튜디오의 해고와 어벤져스 5 부제 캉 다이너스티 삭제 [4] 상수 2023.12.19 451
125019 [속보] 교황 '동성커플 축복' 공식승인…"하느님은 모두를 환영" [4] 상수 2023.12.19 445
125018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4] 조성용 2023.12.19 443
125017 장문상이 마신이를 칼로 찌른 사건 [1] 돌도끼 2023.12.18 290
125016 드라마 두 편 봅니다 잡담. [4] thoma 2023.12.18 354
125015 프레임드 #647 Lunagazer 2023.12.18 54
125014 듄 화면은 참 복잡하군요 [5] 돌도끼 2023.12.18 430
125013 울티마 6 음악 [2] 돌도끼 2023.12.18 83
125012 돌아오는 베버리힐스 캅! [2] theforce 2023.12.18 227
125011 AI가 온다 : 당신의 밥벌이는 안녕하십니까? (국민은행 콜센터 직원 240여명 이달 말 해고 통보) [14] eltee 2023.12.17 720
125010 국회의원 선거법 관련 (민주당,,,준 연동형 비례제도라도 유지하시라) [5] 왜냐하면 2023.12.17 278
125009 경복궁 담벼락 낙서 훼손, 강추위(고양이가 한강 위를 걸어다닙니다), 4:1이 아닌 4:0 상수 2023.12.17 272
125008 프레임드 #646 [2] Lunagazer 2023.12.17 5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