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의 글

2021.03.08 14:37

Sonny 조회 수:956

https://brunch.co.kr/@dongainterview/111#comment


읽고 나서 명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이 이렇게 정갈해질때까지 얼마나 분노가 응어리져있었으며 그것을 마음 속에서 수도없이 언어의 칼과 불로 도려내고 달구어냈을지 어림짐작을 해보게 됩니다. 이 정도로 날카로운 글을 품었다가 휘두르게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 글쓴이를 향해 경탄하다 사회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겪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분노는 사람을 반드시 비이성적으로 몰아가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냉철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합니다.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가게 되서 상대의 모든 논리적 헛점을 다 짚어내고 언어의 낭비 없는 직격탄을 바로 쏠 수 있게 됩니다. 동아제약 성차별 피해자분은 정말로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구직자 여성에게 너는 군대를 다녀오지는 않았다는 그 구별이, 면접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군대를 다녀온 입장에서 군경험이 과연 실무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군대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을 기를 순 있지만 그게 직장에서의 업무와 크게 연관이 있진 않습니다. 계급적 위계에 무조건적 순응을 하는 문화를 습득할 순 있겠으나 그것은 오히려 합리적인 조직문화에 독이 되는 경험입니다. 구체적인 실무는 어차피 직장에서 배우고 사회적응력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노력이 동반되는 친화력에 기반합니다. 면접에서 동아제약의 군대 발언은 특정경험의 유무로 여성을 주눅들게 할 뿐 대단히 불공정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이 동아제약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군대라는 경험에서 남성성을 획득하려하는 사회 전반의 문화로 이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축하가 어울리지 않는 날입니다. 자긍심을 잊지 말라고 세계적으로 외쳐야한다는 것은 자긍심을 그만큼 잊게 한다는 차별을 반증하고 있으니까요. 여성의 날은 남성의 날은 왜 없냐고 가장 많은 질문이 들어오는 날이라는 웃픈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더불어 사회에 화를 내는 글을 자주 쓰는 입장에서 표현의 방식에 대해서도 좀 고심해보게 됩니다. 분노의 주인이 될 순 없어도 분노의 표현을 모방할 수는 있겠지요. 파토스의 함정에 빠지는 대신 로고스와 에토스로 타협없이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는 저 글을 자주 떠올릴 듯 합니다. 여성의 날이 현재진행형의 분노가 아니라 과거를 상기하는데서 그치는 그런 날로 자리잡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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