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피자

2010.11.16 23:35

메피스토 조회 수:1970

* 바로 아래 예전에 비싼 음식 얘기에 피자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긴데.

 

아마 피자헛이었을꺼에요. 안산에 살때였죠. 아주 어릴때, 그러니까 국딩 3학년인가 4학년. 아니면 그 이후일수도 있지만 그게 뭐 중요하겠어요.  중앙동에 지금은 롯데백화점인가 애경백화점인가가 있는 자리에 있던  LG마키(도대체 '마키'는 무슨 뜻인가요. 분명 마키였어요. 마켓이 아니라) 앞에 피자가게가 들어왔던 시기던가. 아마 피자헛일꺼에요. 국딩인 철없는 메피스토는 맨날 피자피자 노래를 불렀어요. 뭔진 모르겠지만 맛있어 보이잖아요. 그 쭈욱 늘어지는 치즈라니.

 

그때당시 안산엔 장을 볼만한 곳이 두군데였어요. 하나는 중앙동, 또하나는 보성프라자 & 라성시장. 대형할인마트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 얘기죠. 중앙동은 돈 좀 들고 나가서 비싼거 사는 곳이었고, 라성시장은 준재래시장이었죠(지금도 그렇더군요). 상록수도 있었지만 요즘과 같진 않았어요. 아무튼. 어느날인가 피자를 사왔어요. 한번 먹어보라고. 와. 잔뜩기대했죠. 그 둥그렇고 커다란 피자. 위에는 페퍼로니와 치즈와 피망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있었죠. 아니아니. 치즈, 페퍼로니, 피망...국딩한테 이런 개념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TV에 나오던게 눈앞에 있으니 신기할수밖에.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두근거림을 누르고 한조각 입에 베어물었죠. 와...그 짭짤한 맛..............................뒤에 느껴지는 강렬한 매운맛. 소스의 매운맛이 아니었어요. 고추의 매운맛이었지. 타바스코소스는 그렇게 내리누르는 듯한 묵직한 매운맛을 내지 못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피망이 아니라 청양고추였을꺼에요.

 

점원인지 뭔지가 그 피자를 추천했다는군요.  이름도 핫피자. 딱봐도 젊지 않은 부부가 뭘 주문하니 젊은사람들 먹는 보통피자를 추천하지 않고 '한국사람' 입맛에 맞는걸 얘기했을꺼에요. 자기딴엔 배려한다고 했겠죠. 살짝 매울수도 있었다는 얘긴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부모님은 꽤나 만족하셨어요. 어른 입맛엔 그냥저냥 칼칼한 레벨이었으니까요. 전 한조각만 먹고  그냥 내려놓았어요. 정말 너무너무 매워서요. 그래도 새끼 먹으라고 비싼돈 주고 피자를 사오신 부모님 실망시켜드리기 싫어서 배불러서 안먹고 맛은 있다고 했죠. 효자 메피스토에요.

 

문제는 그거에요.  가족 친구 애인에게 감정표현은 분명히 해야하는걸 국딩때 알았죠. 실망시켜드리기 싫어서 맛있다고 한 걸 부모님은 진심으로 알아듣고 이후에도 피자를 사올때 항상 그 망할 똥물에 튀긴 핫피자만 사오셨어요. 두어번 그렇게 먹다가 도저히 못먹겠어서 피자가 매워서 맛이없다라는 얘길했다가 엄청혼났어요. 진작에 얘기하지 돈버리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이후로 부모님이 피자를 사오는 일은 없었죠.

 

이후에 피자는 참 많은 발전을 했죠. 그 망할 핫피자인지 뭔지는 요즘 눈에 안보이네요. 걸리면 질겅질겅 우걱우걱 씹어먹어주고 싶지만. 치즈크러스트에, 리치골드에, 다종다양한 토핑. 여러 토핑이 나왔지만 역시나 콤비네이숀이 가장 만만해요. 지금도 가끔 미스터피자나 피자헛, 혹은 동네 피자집에 가서 먹긴 하지만 요즘은 돈아낀다고 런치셋에 껴나오는 셀러드바를 더 많이 찾아요. 오히려 피자가 사이드가 된 느낌.  이마트, 코스트코피자가 엄청 짜다고 하는데 그 맛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자극에 민감한 메피스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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