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8 14:35
1.저는 제가 듀게에서 실수한 일들을 몇가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미국 의료가 생각보다 괜찮다고 한 것이예요. 한 십년도 넘은 구 게시판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당시 저는 젊었고, 병원 갈 일이 거의 없었고, 가더라도 감기 정도였으며 제 보험료는 꽤 쌌어요. 그때는 의료기술과 의료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나이먹은 사람에게 질병만큼 고통스러운 건 의료비라는 것, 나이먹으면 아무리 자기 관리를 해도 점점 아픈 데가 생긴다는 걸 몰랐어요.
오늘 너무 많이 울어서 체력을 소진해 저절로 잠이 올 정도네요. 최근에 중병일 지도 모르니 검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검사비는 제가 큰 맘 먹고 생각한 액수에 영을 하나 더 보태서 나왔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계획을 세워놓고 플랜 에이, 플랜 비, 플랜 씨까지 만들었습니다.
지금 죽어도 요절은 아니에요. 제 또래에 이미 죽은 친구들도 몇 명 있고.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운 것은 아니예요. 제가 속한 조직에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아직 중병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프로젝트에서 저를 제외하고, 불이익을 주고, 이럴 줄 생각못했어요. 당연한 건데. 하지만 참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칼을 꽂더군요. 전체 프로세스가 하루도 걸리지 않았어요. 사연은 긴데 엿먹어라 하고 나왔어요. 제가 이렇게 싸늘하게 화를 낸 게 지난 10년만에 한 세 번 있는 일 같네요. 저는 성실하게 일했고 벤치마크보다 더 높은 성과를 올렸는데, 그게 큰 의미 없네요. 너무나 클리셰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건 이 와중에도 제가 평소에 똑똑하다 생각했던 사람들은 똑똑하게 행동한다는 거예요. 제가 설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똑똑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내가 도와줄 게 뭐야. 말해”라고 말하더군요. 상황 파악은 끝났고 자기가 할 일을 알려달라는 거죠, 그리고 제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과연 그렇게 행동하구요. “지금 너를 돕지 않으면 내가 도대체 어떤 인간이겠니?”라고 답했어요. 내가 이 사람을 믿어서 배신당한다면 그건 저 사람의 탓이 아니고 나의 결정이 잘못된 거다 라고 생각한 사람. 이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선하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은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더군요. 이 사람은 겉으로는 친절하게 행동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바로 뒷통수를 치구요. 이 사람은 무책임하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은 바로 그렇게 행동하구요. 그리고 나를 가장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 알게 되네요.
2. 존 르 까레의 ‘나이트 매니저’를 다시 보았습니다. 책 말고 드라마요. 톰 히들스턴이 멋지게 나오죠. 이 사람이 조나단 파인스 라는 첩자로 분해서 리처드 로퍼라는 무기상의 근거지에 침투합니다. 코키라는 사람이 있는데, 리처드 로퍼 (보스) 의 기존 심복이예요. 코키는 조나단이 싫습니다. 그래서 해산물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웨이터에게 시비를 겁니다. 아니 우리 보스의 아가씨가 랍스터 샐러드를 달랬는데 없다면서. 그런데 왜 옆자리에는 랍스터 샐러드를 주는 거야. 뭐 미리 주문한 거라고? 그럼 저 주문을 취소하고 우리 테이블에 랍스터 샐러드를 갖다줘.
그러자 조나단 파인스가 일어나 싸움을 중재합니다. 우리 친구의 행동에 대해서 사과합니다. 사과의 뜻으로 제가 이 테이블의 식사를 사도 돨까요? 그리고 샴페인도 한 병 더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다시는 이런 실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호텔의 나이트 매니저로 단련된 고객 접대 기술을 보여주죠. 리차드 로퍼는 무기상이지만 상류사회의 맛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코키를 창피하게 느끼고 조나단에게 끌립니다.
이 장면에서 조나단이 폭력에 대응하는 부분이 발레처럼 아름다워서 자세히 봤습니다. 비굴하지도 않고 오만하지도 않게 우아하게 갈등을 봉합하는 부분이죠. 이런 매너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매혹합니다.
2018.03.28 14:48
2018.03.28 14:54
아 저 오늘 컴퓨터 샀어요. 그거라도 안하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할 것 같았거든요. 제일 좋은 걸로 달라고 했어요. 돈은 어떻게 치르나는 좀 있다 생각하려구요. 여러 사람이 잘했다 하더라구요.
2018.03.28 15:56
잘 하셨어요.
2018.03.28 17:14
잘 하셨네요.
2018.03.28 14:49
2018.03.28 14:53
쾌차하시길 빕니다.
2018.03.28 14:53
어떤 상황이신지 모르지만, 쾌차 하시길 빕니다.
2018.03.28 14:54
겨자님 말씀만 들어도 너무 마음 아프네요. 차라리 한국 와서 검사 받고 들어가시는 건 어떨지 (막 던져보는 얘기입니다만 그런 분도 있더군요) 역시 사람의 인간성은 위기에서 드러나는 법이죠. 거를 사람 확실히 거를 기회가 된 듯 하네요. 칼같이 나오는 걸 보며 많이 서운하셨겠네요. 글만 봐도 제 속이 다 부글거립니다. 하지만 (배려를 가장한 차별인지, 차별처럼 보이지만 배려인지 잘 식별해야겠지만..) 프로젝트 빠진 것 서운해 하지 마시고 치료겸 안식년이다 라고 편하게 마음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회복에 도움이 될 거예요. 커리어와 인정받는 삶을 포기하란 말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한 걸 되찾아야죠 ㅠㅠ
2018.03.28 15:04
제 상황을 들여다보신 것처럼 딱 관련있는 댓글을 쓰셨네요. 방금 말씀하신 이야기가 나왔어요. 차별 아니냐 이게 관건 중 하나였습니다. 스토리는 길지만요. 그리고 한국에서 검사 받는 것은 어떠냐 아니다 어찌됐든 여기서 해야한다 등. 제게 평소에도 잘해주고 호의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상황이 가난하거나 바쁘거나를 떠나서 자기 스케줄 비우고 최대한 저에게 호의를 베풀더라구요. 제가 미안할 정도로. 그런데 한가지 다른 건 칼같이 나온 게 아니고 제 등에 바로 칼을 꽂았어요. 제가 다 만들어놓은 프로젝트였거든요.
2018.03.28 15:09
떼인돈받아드림님, Journey님, 가라님/ 감사합니다.
2018.03.28 15:39
검사 결과 아무 것도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컴퓨터 사신 거 잘 하셨어요.
2018.03.28 15:43
잘했죠! :)
2018.03.28 15:54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니 검사 결과가 좋기를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사건이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어떤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2018.03.28 16:19
이대로 죽을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몇년전까지만해도 그런 위기감의 한구석엔 설마 그럴리가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젠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세가 되더군요. 아닐수도 있지만 아닌게 아닐 경우를 위해 차근차근 정리는 해두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찬란하게 칼을 꽂기도 하지만 내안의 칼을 뽑아주는것도 결국은 사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울고 싶을때 우시고 어떤 검사결과에도 정신바짝 힘내시길 바랍니다.
2018.03.28 16:23
전혀 도움이 안되겠지만.. 이겨내시길 조용히 기원하겠습니다.
2018.03.28 16:31
일단 정밀검사를 받고 결과를 받아봐야 행동 방향이 서겠네요. 힘내세요!!!
(저라면 컴퓨터 대신 평소에 못 먹어본 맛있고 영양가 많은 음식이나 실컷 사먹을 텐데...
다들 저랑 생각이 다르시군요.)
2018.03.28 16:32
2018.03.28 16:37
이 와중에 지르신 컴퓨터가 어떤건지 무척 궁금해서 죄송합니다;
이 게시판 눈팅족중에 제 건강문제를 올리면 너무 심각하게 걱정을 할만한 분이 게셔서 따로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또래의 사람들이 그즈음 대부분 겪게 되는 통과의례라 하루 하루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평상시 건강관리를 잘해온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그냥 복불복인걸 너무 많이 봐서 더 허무하더라구요.
한가지 확실한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내상이 나이 들어갈수록 더 커지는거 같아요.
충분히 감당하실수 있는 통과의례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8.03.28 20:57
i7 cpu, ssd 1tb 이상, 메모리 16GB이상 이어요. 쓰고나니 그다지 호기롭지 않네요. 그 와중에 소심하게도 배달은 무료옵션으로...
2018.03.28 17:21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2018.03.28 17:38
우선은 건강관리에 집중하셔서 아무일 없으시길,
플랜A도 B도 C도 필요없길 기원합니다.
2018.03.28 18:05
소부님 말대로 그러실거라 생각합니다.
인생이 어쩔 수 없이 흘러가 듯 조나단 같은 사람도 그러려고 해서 된 것도 아니고 생의 운이죠.
2018.03.28 18:33
2018.03.28 20:22
2018.03.28 22:58
2018.03.28 23:13
아휴. 그 땐 그랬지.. 그런데 칼 꽂은 사람들에게는 쿨하게 갚아주마.. 고마운 사람들이랑은 평생 가야지...
이렇게 회상하실 날이 오시길 꼭 빕니다. 꼭 그렇게 될 거예요!
2018.03.29 07:09
All/
감사합니다. 프로젝트는 제가 하겠다고 요구했어요.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네요.
2018.03.29 18:17
오랜만에 듀게 들어왔다 겨자님 글 보고 반가와 눌렀는데 이런소식이.. 뭐라도 한마디 하고싶은데
너무 오랜만이라 비번을 잊어 로그인횟수 제한 걸리고 기다리다 겨우 기억해 냈습니다.
겨자님 힘내세요. 꼭이요.
2018.03.29 21:13
링귀네님/ 감사합니다.
2018.04.15 16:22
2018.05.02 00:53
저 댓글 달려고 이렇게 로그인 했어요.
진짜 별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2021.03.04 02:02
감사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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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하루 보내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