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온지 얼마 안 됐구요. 런닝타임은 1시간 58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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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짤만 보면 마치 멜빌 스타일의 엄근진 범죄물 느낌이 물씬 납니다만...)



 - 내면적 수다쟁이 킬러 아저씨의 잠복 근무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사냥감을 노리기 위해 최적의 저격 장소를 선점하고 마냥 기다리면서 계속 머릿 속으로 이러쿵 저러쿵 중얼거리는 겁니다. 자신의 직업이 어째서 별 문제가 아닌지, 이 일을 잘 하기 위해선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지금 현재 본인의 기분은 어떻고 평소 자신의 신조는 어떻고 블라블라... 그렇게 하안참 시간을 보낸 후에야 타겟이 등장하고. 일이 꼬이고. 킬러의 인생이 꼬이고. 그 상황을 수습하고 자신의 적들을 처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킬러의 모습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가운데 킬러 아저씨는 끝까지 참 말이 많습니다. 내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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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나게 먹잇감을 노리는 우리의 킬러, 마이클 파스벤더!!)



 - 데이빗 핀처 아주 좋아하고 마이클 파스벤더도 좋아합니다. 틸다 스윈턴이야 말 할 것도 없고요. 또 이렇게 대체로 건조한 (혹은 그런 척 하는) 스타일의 범죄물도 좋아하죠. 나오면 안 볼 이유가 없는 영화였고 그래서 얼른 봤으며 충분히 만족스럽게 잘 봤습니다. 사실 이걸로 할 말은 다 한 셈인데 그래도 맨날 쓸 데 없이 주절거리던 버릇이 있으니 별 의미 없는 글자들을 한참 더 적어야... ㅋㅋㅋ


  먼저 떠오르는 이 영화의 포인트라면. 스토리 측면에서 저엉말 별 거 없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래요. 일단은 이야기가 굉장히 심플한 것이 정말 군더더기랄 게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그 '핵심' 덩어리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클리셰 그 자체입니다. 이야기를 요약해 놓으면 '아니 이런 걸로 데이빗 핀처가 영화를 만든다고?'라는 생각이 들 법한 그런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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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틈 없는 자기 관리를 위해 맥도날드 버거에서 빵을 버리고 먹는 우리의 프로페셔널!!!)



 - 그런 가운데 제게 이 영화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 준 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핀처의 특기인 폼나는 그림이고. 둘째는 디테일이요. 


 나이 먹고 경력과 작품이 쌓이고 이젠 거장 대접을 받은지도 꽤 오래되면서 뭔가 언급이 덜 되는 것 같은데. 원래 핀처의 장기는 비주얼이었죠. '조디악'이나 '나를 찾아줘' 처럼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을 만들면서도 언제나 색감이나 미장센 쪽으로 빈틈이 없게 만들어내던 양반다운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워낙 심플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런 비주얼리스트로서의 역량이 더 눈에 띄는 느낌도 들더군요.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영화의 분위기는 은근히 다채롭게 날뛰거든요. 더운 동네의 한낮부터 눈 쌓인 동네의 밤길, 허름한 길바닥에서의 난장판부터 아주 고급지게 정돈된 주거지에서의 싸늘하게 가라 앉은 대화 장면까지. 그렇게 다양한 배경을 다루면서도 '뭘 다루든 완벽하게 찍어서 보여드려요' 라는 느낌으로 빈틈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도 이 부분일 거라 생각하구요.


 계속 말 했듯이 이야기는 정말 클리셰 그 자체에다가 특별히 기억할만한 부분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만. 그렇게 뻔한 이야기에 거의 강박적인 수준으로 욱여 넣은 디테일들이 나름의 유니크함을 만들어냅니다. 도입부의 '임무 실패' 장면 같은 게 대표적인데요. 계속해서 자신의 완벽한 임무 수행에 집착하는 킬러 아저씨가 미리 세워 놓았던 도주 경로를 따라 열심히 도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무슨 단계 하나하나마다 진심으로 쓰잘데기 없다 싶을 정도로 자세합니다. ㅋㅋㅋ 그리고 이 사람이 영화 내내 하는 일들이 다 이런 식이에요. 매번 임무 수행에 디테일이 꽉 차 있고 그게 비슷한 류의 다른 영화 주인공들이 하는 것보다 뭔가 강박적이란 느낌이 들도록 자세하거든요. 그래서 비슷한 류의 다른 영화들 대비 차별화되는 구경 거리 & 재미를 만들어주는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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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건 어떻게 찍는 걸까요? 헬멧에 비치는 거리 모습을 cg로 합성해 넣은 걸까요. 요즘엔 막 화려한 cg들보단 이런 게 더 궁금하더라구요.)



 - 덧붙여서... 굉장히 정색하고 밀어 붙이는 코미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냥 영화 속 장면들만 놓고 보면 유머라고 할만한 장면이 거의 없어요.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진심어린 웃음을 보여주는 인물이 하나도 없는 삭막 살벌 황량한 영화인데요. 근데 이게 보다 보면 은근히 웃깁니다.


 일단 런닝타임 내내 쏟아지는 킬러 아저씨의 수다가 웃깁니다. 되게 진지하게 자기 직업에 대해, 자신의 전문성과 신념에 대해, 그리고 자기가 세운 계획과 그 수행에 대해 떠들어대는데 그게 사실... 다 그냥 개똥 철학이에요. ㅋㅋㅋ 분명히 유능한 킬러인 건 맞고요. 또 그걸 파스벤더의 얼굴을 한 인물이 파스벤더의 목소리로 풀어 놓으니 꽤 있어 보이는데... 그 쉴 새 없는 나레이션을 통해 느껴지는 건 그냥 중2병 사춘기 애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수준의 내면입니다. 애시당초 지구 인구 통계를 들먹거리며 '살인이 뭐 대수라고' 라고 주절거리는 스타트 지점부터 그랬죠. 그걸로 오랜 세월을 먹고 산 사람이 생각해 낸 핑계란 게 고작해서 그런 수준이라니 좀 부끄러워야 할 텐데 우리의 주인공은 진심으로 그 논리에 만족하고 있어요. 코미디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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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의 내면 세계가 대충 이렇습니다. 텅 비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주인공을 많이 유능한 찐따다. 라고 생각하고 보면 영화의 스토리 전체가, 그리고 주인공을 대적하는 캐릭터들 거의 모두가 또 코믹해집니다. 물론 다들 개정색을 하고 궁서체로 행동합니다만. 살짝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게 다 조금씩 웃기는 거죠. 일단 주인공이 그렇잖아요.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은 중요한 순간마다 꼭 한 번씩 실수 내지는 계산 착오 상황에 빠집니다. 애초에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철저하고 유능한 사람이 못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부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덩치 킬러와의 싸움 장면이 참 재밌었습니다. 액션 안무도 타격감(?) 찰지게 잘 되어 있는데, 그보다는 그렇게 똥폼 잡던 주인공이 갑자기 그렇게 탈탈 털리니 황당해서 재밌고 웃겼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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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을 상대하는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베스트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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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따윈 순식간에 다 날아가 버린 우리의 프로페셔널!!! ㅋㅋㅋㅋㅋ)



 - '건조한 톤으로 그려내는 프로페셔널 범죄자의 세계'라는 점에서 또... 지긋지긋하겠지만 결국 멜빌을 소환할 수밖에 없는데요.

 확실히 이것도 멜빌 영화의 후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런 부분 때문에 차이가 생깁니다. 우리의 주인공에겐 멜빌 영화의 알랭 들롱 같은 야수성이나 비장미 같은 건 없어요. 애초에 그럴 의도로 설계된 캐릭터도 아니구요. 그래서 이야기를 맺는 방식도 다르죠. 스포일러라 말은 못하겠지만 어쨌든 멜빌 영화의 알랭 들롱 캐릭터들이 맞는 그런 거의 신화적인 느낌의 장렬함 같은 건 우리 파스벤더씨에겐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외의 다른 범죄자들도 마찬가지구요. 딱히 폼나는 최후를 맞는 캐릭터가 없죠 이 영화엔.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오르는 건 스티븐 소더버그가 근래에 만들어내는 저렴하고 날렵하면서 깔끔한 소품 장르물들이었습니다. 되게 야심 없어 보이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닮았어요. 그 분의 요즘 영화들에다가 핀처 스타일의 비주얼을 끼얹으면 대충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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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다님의 분량은 크지 않지만 뭐 틸다님은 언제나 사랑이니까요.)



 - 암튼 뭐... 대충 정리하자면요.

 되게 야심 없는 소품입니다. 어디서 읽은 바에 의하면 2007년 경부터 묵혀 둔 프로젝트였다는데 아마도 투자를 못 받다가 근 몇 년간 핀처랑 관계가 참 좋은 넷플릭스가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줬나 보죠. 어쨌든 덕택에 즐거운 두 시간 보냈으니 저야 땡큐일 뿐이고.

 대체로 건조한 톤을 의도하고 디테일한 프로 범죄자들의 세계... 를 그리는 건 맞는데 또 장르적으로 흘러갈 땐 나름 일반적으로 재미난 장면들도 꽤 나오고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되게 별 거 없긴 하지만 파스벤더나 스윈튼 같은 배우들의 연기 구경하는 재미가 그걸 벌충해주기도 하구요. 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애초에 이게 살짝 비틀린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보면 이야기도 재밌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고 그렇습니다.

 종합적으로 날렵하게 잘 만든 소품 장르물이었구요. 핀처나 출연 배우들을 좋아하신다면 아마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잘 봤어요. 간만에 잘 했어요 넷플릭스. ㅋㅋㅋ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자신의 프로페셔널함을 주워섬기던 우리 킬러님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순전히 본인의 실수로 저격에 실패하고 부리나케 자기 애인을 쟁여 둔 은신처로 튑니다만. 자신의 실패를 의뢰인에게 사죄하려는 에이전트님이 보낸 킬러 둘에게 은신처는 이미 털렸고, 애인은 반죽음이 되어 운 좋게 살아 남은 상태입니다. 복수를 다짐하는 우리의 프로페셔널!!


 그래서 우선 에이전트를 찾아가 킬러들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고, 순순히 넘겨주질 않으니 상처를 입히고 목숨으로 겁 줘서 알아내려다가 계산 착오로 그냥 에이전트가 죽어 버립니다(...) 헌데 다행히도 에이전트의 비서가 '나에게 정보가 있는데. 어차피 날 죽일 거면 보험 나오는 방향으로 죽여달라'며 빌어서 정보를 얻어낸 후 소원대로 사고사로 위장해서 죽여줍니다.


 그러고 부지런히 달려서 먼저 킬러 1번 근육맨을 찾아가는데, 되게 꼼꼼하게 잘 준비한 척 하더니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역으로 급습을 당해서 신나게 얻어 터지다가 운 좋게 한 방 역전으로 이기고 살아 남구요. 부지런히 킬러 2번 틸다 스윈턴을 찾아갔는데... 괜한 분위기에 젖어서 이 양반이랑 한참 수다를 떨고 대화를 나누다가 하마터면 속아서 한 방 맞을 뻔... 하는 순간에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 잡고 처치에 성공합니다.


 이후엔 마지막으로, 본인이 실패한 임무의 의뢰인을 찾아가죠. 열심히 관찰하고 분석해서 이 분이 혼자 사는 보안 주택에 샤샤샥 잠입하는 데 성공하고, 신나게 폼을 잡으며 겁을 줘서 복수 따위는 상상도 못하도록 설득을 한 후 휘리릭 떠나갑니다. 그러고는 자기 애인을 옮겨 둔 곳 또 다른 은신처에 가서 애인 곁에 편안히 눕는 걸로 엔딩이에요. 역시나 되게 폼 잡는 대사를 읊어댑니다만, 이미 그동안 봐 둔 게 있어서 그런지 그냥 웃어 넘겨 버려서 기억은 안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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