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데블스 플랜.

2023.11.10 09:48

잔인한오후 조회 수:327

복잡하게 글 쓸 것은 없고, 다른 분들이 어떻게 봤을지 궁금해서 글을 써봅니다. 그제 어제 해서 이틀간, 첫 날은 준결승 직전까지 달리고, 둘째날은 결승까지 봤는데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의 [더 지니어스]도 시즌 1을 재미있게 봤고,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한 시즌 2의 절도(?) 사건 이후로 룰 내부 공정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보기 싫어져 안 봤는데 이번에는 그런 점은 없더군요. 그리고 매 주 공개되던 때와는 달리 시청자들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하고 악플 달리고 하는 점도 없어서 깔끔하도 하면서 아쉽기도 하네요. 당시 혐- 누구, 하면서 다들 혐이란 단어에 익숙해졌던 기억이 나며, 지금도 그렇게 했으면 누구는 욕 먹었겠다 싶기도 하고요.


이번 [데블스 플랜]은 사람들이 전보다 감성적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합숙의 효과가 커 보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밀착되고, 확실히 그런 부분이 감정선을 건드리더라구요. 처음애는 애인이랑 함께 보려고, 1화를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일주일을 기다려 틀었는데, '너무 머리 아프다, 너무 룰이 복잡하고 설명이 길다, 그런건 삶과 직장으로 충분하다'라고 해서 컷되고 혼자 쓸쓸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런 게임류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정말 선천적으로 다르게 태어나나 생각하게 되더군요. 보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어김없이 이 프로를 좋아하고, 아닌 경우는 안 좋아하더라구요.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것들에 더 몰입하고 눈물이 나는가 싶었습니다. (심지어 이번 분위기는 상금을 걸고 겨루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더욱.)


제 예상과 많이 달랐던 건 곽튜브 씨였는데, 자신이 계속 이야기하듯 MZ한 사고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더군요. 적자생존을 웅변하고 비열하고 치사하게 살아남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누군가를 보호하고 그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변하는게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 속 어떤 이의 이미지 쇄신은 그가 고통 받을 때구나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초반에 이동재 씨를 상당히 불호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고통받고 후회하는 모습들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더군요. 아마 그가 계속 잘해나가고 누군가한테 잘했다고 하더라도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 웹툰 같은 곳에서 악역을 '세탁한다'고 할 때 흐름을 떠올려보게 되더군요. 거기서는 그 캐릭터가 좀 더 잘 해내고 문제를 바로잡는 방식으로 과거를 정리하는데, 그런 것에는 마음이 안 따라가는 이유를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 전체를 떠받드는 보수(?)와 진보(?)의 충돌도 흥미로웠습니다. '복지 모델의 실패를 보는 것 같다'에서는 피씩 웃어버렸고, '다들 공평하게 적은 피스를 가지게 되었으니 원하는 바대로 되었다'라는 말에는 뼈가 아프더군요 ㅋㅋ. 그런데 저도 이 게임 내에선 보수(?) 쪽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애초에 판 전체가 승자독식이기 때문에 다자승리가 전략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보니까요. 하지만 도덕적 우위로 인해 소수 연합은 계속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결승을 보니, 아무래도 최대한 대본 없이 갔겠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분에 제작진의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해도, 감정선의 진실성에 베팅해봅니다 ㅋㅋ. 그리고 그 감정들이 연기라고 해도, 제가 느낀 감정은 거짓은 아니었을테니까요. (아무래도 요즘 말로 너무 덜 매워서 별로였을지도.)


너무 글이 길어져가니 자릅니다 ㅋㅋ. 다들 어떻게들 보셨는지.


P. S. 저는 대신 연애 예능은 정말 보기 힘들더군요. 아직까지도 [테라스 하우스] 말고는 시즌 하나를 다 본 게 없습니다. 조금만 봐도 왜이리 힘든지 ㅋㅋ.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9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5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62
124956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완결되었어요. [테러리스트] [7] thoma 2023.12.09 308
124955 이런저런 잡담...(육아, 행복과 불행) 여은성 2023.12.09 306
124954 신들 음악 [2] 돌도끼 2023.12.09 111
124953 전단지 잡담이예요 [1] 돌도끼 2023.12.09 131
124952 축구 ㅡ 산투스 강등 [6] daviddain 2023.12.09 100
124951 프레임드 #638 [2] Lunagazer 2023.12.09 54
124950 Ryan O'Neal 1941 - 2023 R.I.P. [2] 조성용 2023.12.09 192
124949 [넷플릭스바낭] '미스터 로봇'을 좋아하셨다면...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8] 로이배티 2023.12.09 475
124948 [일상바낭] 잊지 못할 2023년 12월입니다 [6] 쏘맥 2023.12.08 383
124947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2024년 1월 17일 한국 극장 정식 개봉(본문의 표현수위 높음) [3] 상수 2023.12.08 386
124946 프레임드 #637 [3] Lunagazer 2023.12.08 62
124945 드니 빌뇌브 내한 기념 용아맥 무대인사와 듄 파트 2 프롤로그 상영 후기(파트 2 프롤로그 스포 아주 약간) [2] 상수 2023.12.08 289
124944 드라마 '황금신부'를 보는데 이영아 배우에게서 뉴진스 하니가 보여요... [1] 왜냐하면 2023.12.08 318
124943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겨우 보고(스포 있음) 상수 2023.12.08 282
124942 제논 2 음악 [2] 돌도끼 2023.12.08 65
124941 레알 마드리드 보강 계획 ㅡ 알폰소 데이비스,음바페,홀란두 daviddain 2023.12.08 174
124940 [핵바낭] 올해가 3주 밖에 안 남았습니다 여러분 [14] 로이배티 2023.12.07 435
124939 [피로사회] 좋았네요. [6] thoma 2023.12.07 364
124938 프레임드 #636 [4] Lunagazer 2023.12.07 74
124937 서울의 봄 흥행에 생각난 명대사 - 야 이 반란군 놈의 시끼야 상수 2023.12.07 35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