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라 해도 역시 70년대 이야기고 아버지 얘기에요. 지금은 아버지와 냉전 중이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저는 자랑하라고 있는 딸이었거든요.

70~80,90년대까지도  얼마나  남아선호사상이 대단하던 때였는지 아시는 분은 기억하실거에요.

지금에야 딸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지만, 무엇보다 자녀들이 서너 명은 기본이라 아이가 귀한 시절도 아니였어요.

다만 아버지가 늦게 결혼해서 30대 중반에 본 첫 아이라는게 특별한 기쁨이었던거죠.

 

그저 내 자식, 내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맹목적인 사랑이 평생 변하지 않았다는건 확실해요.

엄마 말로는 예쁘지도 않은 못생긴 딸을 일요일이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옷을 입히라고 해서 포대기에 싸서 안고 온동네를 다니면서 딸자랑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괴롭혔다라고 하셨어요.

대학생 때부터 친척집에 있으면서 동네 사람들을 다 알고있으니 아는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슬쩍 딸을 들이밀며 한마디 칭찬이라도 듣고 딸자랑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일요일 산책을 다녔다는 거죠.


저도 아기들을 무조건 귀엽다고 애정표현을 잘해주는 사람도 아니고 할 말도 없어서 남의 집 아이를 불쑥 들이밀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당황스러웠을까 싶어요.

늦은 나이에 얻은 자식이라 기쁘겠지만 참 유난스럽다 했겠지요. 그 당시 괴롭힘을 당했을 그 동네 주민 분들한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군요;;;;

 

제가 얼굴의 질서가 많이 안잡혀 있을 때였고 사진에서 봐도 항상 얼굴표정도 뚱한 것이 예쁜 아기와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방글방글 잘 웃고 사랑스럽고 예쁜 여동생이었다면 훨씬 남들도 아이구, 예쁘구나하면서 기쁘게 봐줬을텐데요.

 

2~3살까지도 내 사진을 보면 올드보이의 대사처럼 넌 누구냐?”라고 묻고 싶을만큼 과연 저 아이가 나인가? "엄마가 안고 있으니 나겠지 뭐" 그럴만큼 낯선 얼굴.

 

당숙고모님이 쟤는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없겠다.”라고 하셨는데 이마가 워낙 튀어나와서 비가 와도 안맞겠다는 독설을 날리셨다해서 너무 하셨다 했더니

아버지의 유난한 자랑질에 질리다 못해 한마디 하신거죠.

 

 

사촌오빠를 원래 귀여워했는데 내가 태어난 이후로 퇴근 후에는 나만 예뻐해주니 오빠가 아기를 다락방에 올려놓으면 안되냐고 질투했다 할만큼 그랬어요.

 

아버지는 동생도 그렇고 두 딸의 안전에 대해서도 유난스러서 풍선도 불지마라” “고구마도 먹지마라풍선불다 목에 걸리고 고구마먹다 체해서 죽는 경우도 봤다.

 그런 과잉보호 속에 참~~~ 안전하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생활능력 떨어지는 아이로 사는게 답답했던 기억.

 

그렇지만 자라면서 그닥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고 아버지가 먼~~~~유치원을 버스로 태우고 데려다주고 데려올 때 아버지 무릎에 기대고 가면 이마를 쓸어주던게 유일한 기억일 뿐

 아버지랑 막상 놀았던 기억은 없군요.

 

, 서해안으로 친구 가족들이랑 여행갔던 적이 있는데 아빠가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에요.

엄마가 말해줬죠. “아빠가 너를 위해서 불러주는 노래야

그 노래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한참 나이가 들었을 때도 니가 부산같은 곳으로 시집을 가도 나는 너를 못봐서 괴로울거다. 외국같은 곳으로 자식이 떠나면 견딜 수가 있겠느냐

 

저는 결국 아버지의 클레멘타인으로 이렇게 늘 옆에 있게 되었네요.

이제는 결혼 못한(안한) 딸이 걱정스러워서 내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살까하면서 여동생한테 전화해서 한탄을 하신다는데 나야 참 쓸데없는 걱정을 굳이 결혼한 여동생한테 말해 무엇하리 싶어요.

 

평생 아침에 해가 동쪽에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듯이 아빠는 나를 사랑했고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도 없었고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아요.

오랜 세월 사실은 냉담했고 내가 아무리 냉담해도 아버지가 나를 이기지 못할 것도, 돌아서지 못할 것도 알고 있었죠.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이나 믿음이 나의 자존감에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사실이에요.

 아버지 사랑을 받기 위해 9첩 반상을 차리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사랑받지 못한다며

끝내 열등감으로 남는 친구를 보면서 우리 아버지의 유난스러운 사랑이 정말 큰 힘이 돼서 나를 밀어줬구나 싶어요.


나는 늘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믿음을 받으면서 자랐으니까요.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만 해주고 전혀 물질적인 서포트는 안해줬다고 했지만

사실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라는 반복되는 말들이 나를 얼마나 맨땅에 헤딩하면서도 이 자리까지라도 밀어준건데요.

 

사랑하고 잘나지도 않았는데 늘 자랑스러워하고 무엇보다 내 능력, 내 성실함,,,,모든걸 믿었죠. 어쩌면 아빠는 자기 자신보다도 나를 더 믿었어요.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나한테는 늘 약자였죠. 늘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나였으니까요.

사실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최악인 2020년의 마지막 날들에 이 글을 써보네요. 아버지 살아 생전에 얼마나 회복이 될른지 모르겠어요.

 여기에 쓰지 않은 숱한 과거의 상처와 증오, 지옥같은 나날들 속에서 그러나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해요.

 

 

이제는 아버지의 장례식 준비와 장지는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아버지는 건강하시지만요.

아버지가 우연히 TV에서 보고 바다에 가서 유골가루를 뿌리는 사람들도 있어. 그런데 그러면 가족들이 어떻게 다시 찾아갈 수가 있지?????“

 

엄마와 나는 친척들과 의논 끝에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에 아버지 유골을 합장하는 형식으로 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큰 사람이 고향땅에 묻히는게 훨씬 낫지 않겠나 싶고

 굳이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찾아갈른지는 모르겠으나- 전 사람이 죽은 후에 묻힌 장소나 유골함 있는 곳에 가서 추모하는데 별 의미를 못찾겠어요.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이라면 찾아갈 수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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