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서 본 영화들

2010.07.19 23:16

lynchout 조회 수:2196


3일 동안 부천에 다녀왔어요. [세르비안 필름] 같은 수위 강한 영화는 못 보았지만, 나름대로 다양하게 보았어요. 짧은 감상 남겨볼게요.




1.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칸 영화제에 초청받아 호평을 받았다는 기사를 접하기는 했지만, '칸영화제 드립'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예매에 임했습니다.

서영희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편이어서, [추격자]에 이어 이번에도 고생하는 역할을 맡은 게 안타깝기도 했어요.

영화는 예상했던 것만큼 세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세게 나올 만한 이유가 앞에서 차근차근 제시가 되요. 그 이유도 사실 무척 세게 제시되지만요. :)

소재 같은 것은 그리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도 따지고 들면 진부한 편이고요. 근데 이 모든 게 정말 정밀하고 아름다운 영상에 담겨 표현되어 있어요. 영화 본연의 윤리, 장르의 공식 같은 것을 감독이 잘 인지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부천시청에서 관람했는데, 분위기가 가히 열광적이었습니다. 표현수위 탓에 그렇게까지 많은 관객을 동원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8월 중순쯤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해요. 관심 있는 분들은 보시길. 개인적으로 센 영화 잘 못 보는 편인데, 이건 아주 재밌게 유쾌하게 보았어요. 유머 코드도 대중적이면서 천박하지 않고, 화면도 아름답습니다. 



2. [사랑의 타이머]


이거 정말 물건이더라구요. 이 영화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해주는 기계가 있다는 아이디어가 핵심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요.

카탈로그에 적힌 그 아이디어에 관한 글을 읽고 예매를 하긴 했지만, 짐짓 그 좋은 아이디어가 단순히 좋은 발상만으로 그치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었죠.

근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그 아이디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온갖 좋은 요소는 다 뽑아냈더라구요. 플롯이 그러니까 무지하게 훌륭합니다. 즐겁고 유쾌하고 의미 있어요.

이야기야 그렇다 쳐도, 촬영이나 연출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뭔가 엉성한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그 우려도 기우였어요.

출연 배우들의 인지도만 조금 더 높았다면, 아마 영화제에 소개되기 전에 개봉해서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을 것 같더군요. 그만큼 매끈해요.

매끈한 연출에 플롯까지 좋고, 게다가 배우들 연기까지 좋습니다. 보는 내내 즐거웠어요.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정말 꼭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3. [엔터 더 보이드]


'스트레인지 오마쥬' 섹션에 초청된 작품이죠. 가스파 노에 감독의 신작이기도 하고, 소재 자체도 '마약으로 대변되는 청춘의 방황' 같은 식이어서 기대했어요.

근데 기대한 것과 사뭇 다른 영화였습니다. 실망스럽다기보다는 당황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실험적인 영화더라구요.

마약을 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로 음악을 재생할 때 나오는 시각효과랑 비슷한 '샷'이 나오는데, 그런 장면이 엄청나게 길게 이어집니다. ㅋㅋ

1인칭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되는 초반부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카메라가 굉장히 경이롭게 움직입니다.

촬영기법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정말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전위적이고 놀랍습니다. 마약과 죽음의 세계를 표현해낸 영상 중에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영상이 아닐까 싶어요.

2시간 40분 가량 되었던 것 같아요. 1시간 정도 분량을 과감히 거두어냈더라면, 굉장히 실험적인 '걸작'이 되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감상이 들더군요. 하지만 이대로도 나름대로 그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4. 그 밖에...


[두 잇 어게인]은 영국 밴드 '더 킹크스The Kinks'의 재결합을 위해 보스톤 글로브 지 기자 겸 음악애호가인 한 사람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페이크 다큐멘터리인지 진짜 다큐인지 잘 모르겠어요)입니다. 킹크스 음악이 뭔지 잘 몰라도 무척 재밌게 볼 수 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일단 게스트가 무척 화려합니다. 스팅, 주이 드샤넬 등등이 나와서 인터뷰하고 노래 부르고 그래요. 정말 유쾌합니다. :)


[화룡]은 홍콩 액션 영화인데 박진감 넘치고 재밌어요. 여명이 수염 기른 형사로 나와서 열연합니다. 


[해골을 청소해 드립니다]는 예상보다 정적이고 완급 조절이 그리 잘 되어 있지 않은 영화더라구요. 우스운 부분도 더러 있지만, 유머러스하다기보다는 부조리한 느낌이 더욱 강하더군요.


[다이]는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였어요. 공식 경쟁부문이어서 나름 괜찮겠지 싶었는데, 그저 갑갑하기만 하더군요. 유년 시절 부모를 잃은 상처로 인해 나름대로 이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배트맨의 '자살자' 버전이라고 하면 적절할 듯 싶더군요. 다만 무척 진부한 버전이요. 소재는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은데, 표현방식이 너무 상투적이고, 인물들도 너무 평면적이었던 것 같아요.



5. 기타.


부천 영화제, 작년에 이어 두번째인데, 예매할 때 말썽이었던 것 빼고는 거의 모든 부분이 만족스럽더군요. 자원봉사분들 교육 잘 되어있고, 친절하고, 상영작도 다양하면서 그 질도 좋은 편이고, 상영시설도 좋고, 부대행사도 나름 빵빵한 편이고 :) 특히 저는 이번 영화제 포스터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여름철 판타스틱 영화제에 매우 잘 어울리는 디자인인 것 같아요. 


아직 영화제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저는 오늘을 끝으로 올해 부천은 마무리 지으려구요. 내년에도 좋은 영화 많이 했으면, 그리고 부디 예매 사고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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