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가 이 게시판에 올린 글과 리뷰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이 영화에 호의적인 편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말도 결코 좋은 의미로 쓰인 건 아니지요. 어쨌든 전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떤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고 이렇게 오랫동안 정신적 충격과 고민을 안겨주었던 작품은 아직까지는 없었으니까요.(제가 과문해서겠지요) 정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이 메슥거립니다. 그게 꼭 폭력행위의 묘사 수위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어느 시점까지 이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호의 적인 생각으로 따라가고 있었으니까요. 


중간에 간호사 강간 장면에서 의문을 품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제 태도를 결정한건, 수현의 약혼녀 가족이 몰살당한 후 였습니다. 경철이 '이렇게 해야 약이 오를라나?'라고 말하며 아빠를 내려치는 순간부터 약혼녀 여동생의 시신이 발견될때까지 이지요. 그 전에 약혼녀의 여동생이  수현에게 그런 복수를 하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설마설마 했습니다. 만약 이게 정말 나중에 복선으로 작용한다면,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니까요. 


약혼녀가 아무 이유없이 살해당한 건 그런 살인마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적 가정아래에서 양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와 동생까지 죽이다니요. 심지어 이 영화는 그 장면을 위해 모든 과정을 예비해 나간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참, 강렬한 결말부지요. 심지어 이 영화에서 경철은 후반부 반격을 위해 거의 악마적인 회복력을 보여주더군요. 제가 본 폭력의 강도로는 적어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의 부상은 아닐텐데 말이에요.


그 후에 수현이 경철에게 '나는 니가 죽은 후에도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라는 대사와 함께 나름의 복수를 하지만, 글쎄요. 그건 그냥 수현의 바램일 뿐 제가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건 철저한 무력감이었습니다. 오히려 경철이 '넌 이미 졌어. 난 고통같은거 몰라. 두려움 그딴것도 몰라. 그러니까 넌 이미 졌어'라고 선언하는 순간 이 영화는 적어도 제 입장에선 그냥 끝나버렸습니다. 경철이 목이 잘리건, 그걸 그의 가족이 지켜본들 남는건 정말 철저한 무력감 뿐이에요.


어떤 예술 작품에서건 윤리와 미학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갖기 마련이죠. 그 양상이 갈등이든 화해든 그걸 '윤리적 긴장감'이라고 표현해 볼게요. 그게 싸구려 윤리고 싸구려 미학이라도 적어도 그런 긴장감은 존재하는거자나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게 전혀 없어요. 저는 이 영화에서 '윤리적 긴장감'을 철저히 배제한 '탐미주의자'가 내놓은 악마성을 보았습니다. 단순히 피튀기고 뼈가부서지는 장면에서 느끼는 잔인함 보다 그 부분이 제겐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차라리 제가 영화관에 포르노를 보러 간 거였다면 이런 고민은 없었겠죠. 


김지운 감독이 쓴 연출자의 변을 보면 자신이 보고싶은 것을 찍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태도가 바로 그거에요. 보고싶은걸 보자는 거죠. 그리고 같이 보자는 거죠. 악마를 같이 한번 보자는 거에요. '이것 참 근사하지 않니?' 전 그게 너무 너무 무섭습니다. 전 그 '구경꾼'의 자리야 말로 악마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이 영화에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는 '구경꾼'의 자리밖에 없어요. 이 영화를 보고 '악마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이 영화 속에는 일체의 망설임이나 ''멈춰서서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네. 이 영화는 저의 삶에 영향을 끼친것 같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말마따나 현실은 이 영화보다 더 잔혹하죠. 그리고 저는 늘 구경을 하고 있죠. 아니 어쩌면 수동적 구경이 아니라 '보고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이끌린 능동적 구경일지도 모르죠.  제 안의 악마성. 저는 제가 생각 이상으로 무신경하고 탐욕스러운 구경꾼이라는 사실을 느낍니다. 이 영화는 그 자리가 옳지 않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네요. 옳지 않은 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었구요. 


물론 그렇다고 제 일상이 갑자기 크게 변하는 건 아니겠죠. 다만 적어도 앞으로 영화를 보는 태도 혹은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는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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