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개인적으로 어떤 확신에 차서 쓰게 되었어요. 엔딩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이 영화의 특성상 이 글이 흔히 말하는 스포일러적인 성격이 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이 글을 읽는다고 해서 이 영화의 재미가 크게 떨어진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정보나 어떤 해석 없이 이 영화를 보고자 하신다면 영화 감상 후 읽어주세요.)

장우진 감독의 <겨울밤에>는 올해 개봉한 최고의 한국영화 중의 한 편일뿐 아니라 앞으로도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소위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작품에 접근하기 힘들어하는 관객들에게 다리를 놓아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외면당한다면 너무 슬프고 아쉬울 것 같다. 시네필이나 영화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예술영화 계열의 감독들의 영화만큼 <겨울밤에>도 한국영화로서 비범한 성취를 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겨울밤에>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두 편의 이탈리아 고전을 끌고 오고 싶다. 그 두 편의 이탈리아 영화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1960)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1954)이다. 이 두 편의 영화들을 끌고 온다고 해서 <겨울밤에>가 이 두 편의 영화들에 필적하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겨울밤에>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영화로 선택한 것뿐이다.

<겨울밤에>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중년의 부부인 흥주(양흥주)와 은주(서영화)는 30년만에 춘천에 왔다가 귀가하던 중 은주가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핸드폰을 찾으러 청평사로 돌아간 부부는 배가 끊기는 바람에 민박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고 그 하룻밤 동안 흥주와 은주 사이에서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안토니오니의 <정사>와 <겨울밤에>는 서사적인 구멍이 끝내 메꿔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안토니오니의 <정사>는 한 섬으로 놀러갔던 부르주아 일행 중 한 명인 안나가 갑자기 섬에서 사라지는 일이 생기고 사라진 안나를 찾기 위해 안나의 친구인 클라우디아와 안나의 애인인 산드로가 안나를 찾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안나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는 안나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칸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정사>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지점이 바로 이 안나의 행방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보통의 이야기는 인과율을 바탕으로 진행되는데 안나가 사라진 이유를 밝히지 않는 <정사>의 서사는 당시로서도 파격적이고 관객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사>는 오늘날에 와서는 바로 안나라는 서사의 구멍 때문에 모던 시네마의 이정표로 여겨지고 있다. 나는 안토니오니가 안나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밖 현실을 강력하게 환기시키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서사의 구멍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현대인들이 처한 부조리의 상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정사>에서의 서사의 구멍은 인과율이 뚜렷한 서사를 가진 영화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겨울밤에>에서도 <정사>와 유사한 면이 있다. <정사>에서 안나의 행방이 끝내 밝혀지지 않는 것처럼 <겨울밤에>에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은주의 핸드폰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냥 일상적인 하나의 해프닝으로 여겨졌던 은주의 핸드폰 분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의미를 더해가더니 영화의 초반에 보여지지 않았던 흥주와 은주 사이의 관계의 균열을 촉발시킨 촉매제가 되며 급기야 영화의 말미에 가면 이 서사의 구멍은 영화를 정지시키기에 이른다. 이러한 서사의 정지를 통해 <정사>가 그랬던것처럼 <겨울밤에>도 영화 밖의 현실을 환기시키고 <겨울밤에> 속에서 무언가 상실된 감각을 관객들 스스로도 강력히 인지하게끔 유도한다.

장우진 감독은 은주가 휴대폰을 분실한 상황이 서사를 정지시키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과감한 시도를 한다. <겨울밤에>의 엔딩 부분은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마치 <겨울밤에>의 첫 장면을 다시 보는 것 같은 기시감 말이다. 그런 기시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장우진 감독은 흥주와 은주가 영화의 오프닝과 똑같은 택시 운전사(김학선)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는 설정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흥주와 택시 운전사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오프닝을 상기하게끔 만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영화는 엔딩에서 마치 영화가 리부트되어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적 경험이야말로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아닌 다른 예술 장르에서 물리적으로 이렇게 시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은주는 갑자기 택시 운전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하고 깜빡거리는 헤드 라이트를 배경으로 은주와 흥주가 서 있는 가운데 영화는 청평사 주변의 빈 풍경을 몽타쥬로 보여주고 은주가 여전히 청평사 주변을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우리가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은 눈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은주이다. 그렇다. <겨울밤에>의 서사는 표류하는 상태로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관객은 이 영화가 끝난 이후의 서사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된다.극단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봤던 모든 이미지들을 전부 지우고 지금부터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고 가정해도 무방하다. 즉, 흥주와 은주가 택시를 타고 가다가 은주가 갑자기 차를 세웠고 그 둘이 도로 한복판에 서 있다는 상황을 전제로 관객 스스로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떠올려봐도 된다. 흥미롭게도 장우진 감독은 이 영화의 인터랙티브한 측면이 있음을 암시라도 하는 것처럼 엔딩 크레딧에서 어떤날의 ‘출발’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흘려보낸다. 이 노래가 흐르는 동안 관객은 <겨울밤에>의 이야기를 새롭게 출발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겨울밤에>에는 신과 신 사이에 ‘심우도’라는 그림이 삽입된다. ‘심우도’는 동자가 잃어버린 소를 찾는 과정을 통해 그가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내용을 담은 그림이다. 이 영화에서 심우도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행보가 마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맞닿아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있는 은주를 동자와 같은 인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비 관계도 은주의 서사에 힘을 싣는 기능을 한다.

또한 <겨울밤에>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1954)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탈리아 여행>은 한 중년 부부가 저택의 처리 문제로 이탈리아에 갔다가 관계의 균열로 인해 붕괴 직전까지의 위기 상황을 겪고 기적적으로 다시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겨울밤에>는 <이탈리아 여행>처럼 한 중년 부부의 위기 상황을 다룬다는 면에서 <이탈리아 여행>과 공통점을 갖지만 부부가 기적적으로 화해하는 <이탈리아 여행>과는 다르게 관계의 균열이 끝까지 봉합되지 않고 결국 영화 속 상황을 종료시킬 정도로 심화된 채 영화가 끝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겨울밤에>는 춘천에서 <이터널 선샤인>적인 시간의 미로 속에서 헤매는 <정사> 또는 <이탈리아 여행>적인 커플이 등장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영화의 역사에서 <겨울밤에>와 같이 서사에 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영화들은 수두룩하다. 다만 <겨울밤에>에서의 서사적 실험이 한국영화로서는 새로운 지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겨울밤에>의 엔딩에서 영화가 리부트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영화 속 서사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명쾌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워드 혹스의 걸작 <몽키 비즈니스>와 자크 리베트의 걸작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가 이에 해당된다. 

혹스의 <몽키 비즈니스>는 오프닝에서 버나비(캐리 그랜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버나비 역을 맡은 캐리 그랜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화면 밖에서 (하워드 혹스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남자는 캐리 그랜트에게 “Not yet, Cary.”라고 말한다. 그러자 캐리는 다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화면에 자막이 뜬 후 다시 캐리 그랜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또 다시 화면 밖에서 한 남자가 “Not yet, Cary.”라고 말한다. 그러자 캐리 그랜트는 또 다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화면에 자막이 뜬다. 캐리 그랜트가 세번째로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제서야 영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도 결국 버나비는 문 밖으로 나서지 않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애초에 버나비의 부인인 에드위나(진저 로저스)와 파티에 가려던 버나비의 계획은 변경된다. 버나비의 집 밖에서 버나비의 집을 바라보고 있던 카메라의 위치도 다음 쇼트에서 버나비의 집 안으로 이동한다. 혹스는 이 오프닝을 통해 영화 속에서 서사란 감독이 등장인물을 어떤 공간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쾌하게 전달한다. 즉 서사는 인물이 카메라가 포착하는 공간을 이동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는 아예 이런자막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자막에는 ‘흔히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라고 적혀있다. 자막이 사라지면 도서관 사서인 줄리(도미니크 라부리에)가 공원 벤치에 앉아서 마술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줄리는 그녀의 앞을 지나가는 나이트 클럽의 마술사인 셀린느(줄리엣 베르토)를 우연히 보게 된다. 셀린느는 바닥에 물건을 떨어뜨리는데 물건이 떨어진 줄 모르고 그냥 걸어간다. 그러자 줄리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서 셀린느에게 갖다주려고 그녀를 쫓아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무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셀린느와 줄리가 겪는 이상한 모험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3시간이넘게 이어질 이야기의 첫 출발은 셀린느가 줄리 앞에서 물건을 떨어뜨렸다는 간단한 상황이다. 이 상황 하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3시간이 넘게 이어지고 그 결과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몽키 비즈니스>에서 버나비가 집에서 나갈까 말까하는 상황과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에서 셀린느가 줄리 앞에서 물건을 떨어뜨린 상황이 서사를 촉발시키는 것처럼<겨울밤에>에서 은주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상황이 서사를 촉발시킨다. 그리고 핸드폰 분실로 인해 촉발된 서사는 1시간 30분 가량 지속되다가 마지막 순간에 급기야 리부트되는 지경에 이른다. 장우진 감독은 이러한 서사적 실험을 통해 관객 스스로 서사의 본질과 속성에 대해 흥미롭게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겨울밤에>에서의 은주의 감정 상태를 관객들에게 전달한 후 서사를 완결짓지 않고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주도권은 마지막 순간에 극 중 인물로부터 관객에게로 넘어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영화는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비로소 이 영화의 서사의 여백들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니까 장우진 감독은 이 영화에서 서사는 최소화하고 서사의 여백을 통해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주가 휴대폰을 분실한 상황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환기시킴으로써 관객들 스스로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을 떠올리게 만들고 은주와 흥주가 30년 전의 과거와 대면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의 첫사랑을 포함한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극이 진행되면서 상실의 감각은 점점 심화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의 현실 속에서 관계의 균열마저 들여다 보게 만든다. 그렇게 됨으로써 이 영화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비록 완전히 똑같은 경험은 아닐지언정 등장인물들과의 유사한 감정과 상황의 접점 속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이해하게끔 유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붉은 빛을 내뿜는 열풍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은주가 흥주에게 당신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울먹일 때 신기하게도 우리는 은주의 감정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관객이 은주의 감정에 공감하게 만들고 결국 영화의 엔딩에서 은주가 영화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감각마저 납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관객이 <겨울밤에>의 서사를 물리적인 시간 안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주로 롱테이크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극 중 인물들에게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관객은 그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물들과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가 한 신 안에서도 과거와 현재 혹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공간 안에서 각 인물들의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잡고 일관되게 끌고 가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인물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크게 혼란을 겪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시공간이 해체된 상황에서 어떤 감정 상태에 도달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속 인물들에게 관객들이공감할 수 있게 되는 시간의 메커니즘과도 유사하다.

위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겨울밤에>는 홍상수의 영화를 제외한다면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영화 속에서 과감하게 서사적 실험을 감행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서사와 극 중 인물의 감정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 속에서 은주의 감정적 혼란 상황이 결국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영화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공간적인 면에서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춘천 출신인 장우진 감독은 춘천이라는 지역의 특유의 공간성을 영화 속에 담아내는 데 능하다. <겨울밤에>에서 장우진 감독은 청평사 주변의 일상의 풍경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장우진 감독의 말에 따르면 청평사 주변은 실제로는 <겨울밤에>에서 관객들이 볼 수 있는 풍경보다 어둡다고 한다. 우리가 <겨울밤에>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설원의 풍경은 각 신에 맞게 디테일하게 설계된 조명 효과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청평사 주변의 풍경은 오직 영화 속에서만 일회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비일상적인 것이며 영화의 환상성의 맥락과 맞닿아있다. 따라서 청평사 주변은 초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무대로의 변신의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며 이러한 잠재성을 바탕으로 영화 속에서 탁월한 미쟝센을 통해 형상화된다. 추운 겨울의 한기를 보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얼음의 표면의 감촉이 전달될 정도로 겨울 풍경의 질감을 섬세하게 잡아낸 촬영으로 인해 영화 속에서 초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일상의 공간들은 실감의 차원을 획득한다. 따라서 <겨울밤에>에서 한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을 하고 현실 속으로 환상이 틈입해 들어오더라도 청평사 주변의 각각의 공간들은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될 수 있다. 비선형적으로 조각난 시간의 덩어리들을 경험하게 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서 인물들간의 감정이 점점 쌓여가는 형태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갈 수도 있다. 그러나 <겨울밤에>는 세심하게 선택되고 섬세하게 시각화된 공간 속에 인물들의 감정을 잘 녹여내고 있다. 즉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공간적 정서를 통해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요컨대 이 영화는 내면의 풍경으로서의 공간을 시간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을텐데 이러한 공간적 개념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안토니오니의 <정사>와 유사하다. 

이 글의 서두에서 나는 <겨울밤에>가 소위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작품에 접근하기 힘들어하는 관객들에게 다리를 놓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건 <겨울밤에>가 다른 예술영화들에 비해 관객의 눈높이에 알맞은 수준으로 영화적인 테크닉들을 탁월하게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우진 감독은 하룻밤의 꿈 같은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의 기본 요소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 <겨울밤에>가 영화의 기본요소들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설사 장우진 감독이 의도치 않았을지라도 이 영화는 일정 부분 영화에 대한 교육적인 목적마저 달성하게 된다. 

<겨울밤에>의 마술적인 한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은주와 흥주는 민박집을 같이 운영하는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러 민박집으로 이동하려 한다. 바로 이전 상황을 살펴보자면 흥주는 은주에게 이 식당은 우리가 30년 전에 왔던곳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의 후경으로 두 개의 실루엣이 비친다. 그리고 흥주와 은주가 화면의 왼쪽으로 사라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한 젊은 여자(이상희)와 한 젊은 남자(우지현)가 화면의 왼쪽에서 프레임 인을 한다. 단순히 화면 속에서 한 커플이 사라지고 또 다른 한 커플이 등장한 상황일 뿐이지만 이러한 프레임의 사용은 놀라운 효과를 만든다. 흥주와 은주가 30년 전에 왔던 식당에서 그들이 사라지지마자 나타난 젊은 커플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이 두 명이 과거의 흥주와 은주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추론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장우진 감독은 인물들의 프레임의 인, 아웃만으로 현재와 30년 전의 과거가 교차하는 놀라운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흥주가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와 식당 앞에 서 있을 때 그의 눈 앞으로 오뎅국을 끓이는 연기가 세차게 피어오르고 카메라가 연기쪽으로 줌 인을 하는 가운데 갑자기 후경으로 해란(김선영)이 나타나 흥주를 지나쳐 가는 장면도 연기가 해란의 등장을 촉발시켰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되어 있다. 

<겨울밤에>에서 장우진 감독은 이렇게 간단하게 영화의 요소들을 사용하면서 순식간에 현재 우리가 화면에서 보고 있는 곳을 낯설고 복수적인 의미를 가진 모호한 공간으로 손쉽게 바꿔버린다. 이 영화 속에서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가 서서히 움직이는 것은 화면 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관객에게 예고하는 것이고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인해 화면 속의 한 인물이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됨으로써 한 화면 속에서 과거와 현재 혹은 환상과 현실은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2.35대 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 비율도 청평사 주변의 공간들을시각화하기 위해 탁월하게 활용한다. 장우진 감독은 예를 들면 폭포 장면에서 젊은 커플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거나 그들이 우연히 은주를 만나게 되는 때에 화면의 가로 길이를 잘 활용해서 프레임 속의 면들을 잘 구획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탁월한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하는 데 성공한다. 

이 영화는 주로 롱 쇼트를 활용해서 인물들과 인물의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는 식의 촬영으로 일관하다가 영화의 말미에 열풍기가 돌아가고 있는 방에서 은주와 흥주가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두 인물의 얼굴을 한 화면에 클로즈업 쇼트를 이용해서 보여준다. 이때 등장하는 클로즈업 쇼트는 이전 장면들의 롱 쇼트와 대비가 되면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이전 장면들보다 은주와 흥주의 얼굴의 표정과 시선이 훨씬 잘 보이기 때문에 이 쇼트를 통해 관객은 이 부부의 심리적인 상황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화면의 우측에 있는 열풍기가 회전하는 가운데 열풍기가 내뿜는 붉은 색을 배경으로 한 인물의 얼굴에 실루엣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상태가 반복되는데 이러한 조명 효과는 은주와 흥주의 대화 내용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우러져 이 장면에서의 정서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겨울밤에>에서 예외적인 클로즈업 쇼트의 사용을 통해 장우진 감독은 일반적으로 영화 속에서 클로즈업 쇼트가 어떤 정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객에게 단박에 입증해낸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겨울밤에>는 영화 속에서 프레임, 카메라 이동, 클로즈업, 조명, 편집 등의 영화의 요소들이 어떤 기능들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쉽고도 명쾌한 사례들을 제시해주는 면이 있다. 물론 뛰어난 영화들은 당연히 영화의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다. 그러나 <겨울밤에>처럼 이러한 영화의 요소들을 쉽고 명쾌하게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 <겨울밤에>는 기존에 만들어진 뛰어난 예술영화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토 로셀리니, 자크 리베트, 홍상수, 지아장커, 차이밍량,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테오 앙겔로풀로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의 영화들에 왜 우리가 그동안 매혹되어 왔으며 그들의 영화가 왜 영화적으로 훌륭하고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작금의 레퍼런스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밤에>는 한국영화의 지형도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영화의 역사는 항상 어떤 영향 관계 안에서 과거의 작품이 동시대의 작품에 영향을 끼치며 진행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에드워드 양의 <해탄적일천>과 <공포분자>가 각각 안토니오니의 <정사>와 <욕망>을 떠올리게 하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을 카피하다>가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에드워드 양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의 창의성이 폄하되지 않는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들개>에서 총을 잃어버린 설정을 두기봉의 가 가져왔다고 해서 두기봉의 영화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이 이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욕망>에서 탐구하는 이미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모던 시네마로서의 <욕망>의 성취가 퇴색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안토니오니의 <욕망>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해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컨버세이션>이나 브라이언 드 팔마의 <블로우 아웃>의 스릴러 장르로서의 탁월함의 의미가 축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장우진 감독의 <겨울밤에>가 이전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단지 그 이유 하나만 갖고 <겨울밤에>의 예술적인 성취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척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일관되게 ‘춘천’이라는 특유의 지역성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계획된 각본보다는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연출로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춘천을 탐구하고 있는 장우진의 독창적인 행보는 반드시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고 지지를 받아야 마땅하다. 

사실 <겨울밤에>는 올해 국내 개봉작 중 최고의 화제작 중의 하나였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테넷>은 SF 첩보 스릴러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놀란의 관심은 ‘인버전’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흐트러진 시간의 퍼즐을 맞춰 서사를 재구축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의 영화를 통해 놀란이 메타적으로 영화의 서사를 다루는 데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겨울밤에>는 하룻밤 동안의 시간의 미로 속에서 조각난 퍼즐들을관객 스스로가 맞춰갈 수 있도록 서사를 이끌어감으로써 영화 속에 관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영화이다. 관객이 시간의 미로 속에서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겨울밤에>와 <테넷>은 유사하다. 다만 <테넷>이 첩보 스릴러라는 장르를 활용해서 시종일관 관객에게 서스펜스를 자아내게 하는 연출로 시선을 끄는 반면에 <겨울밤에>가 다소 느리고 사색적인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서사적 실험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밤에>가 단순히 진행 속도가 느리고 <테넷>과 같은 장르적인 재미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는다면 그것은 납득하기 힘들며 큰 비극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겨울밤에>가 결코 외면되어서는 안 되는 동시대적인 이유를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겨울밤에>는 엄연히 따지자면 여성 서사의 영화라고 볼 수는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여성 서사적인 측면이 간과되어서도 안된다고 본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했던 중년의 부부 중 남편인 흥주보다는 아내인 은주의 비중이 점차로 커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은주가 단순히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일상적인 사건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그녀와 흥주 사이에 메우기가 힘든 깊은 골이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관객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의 균열 상태는 급기야 영화를 정지시키는 초현실적인 상황마저 초래하고 만다. 이 영화의 마지막 쇼트에 등장하는 인물이 은주라는 것도 이 영화 속에서 은주의 중요성을 강조해준다. 은주의 채울 수 없는 감정의 골이 화면 밖으로 흘러넘쳐 영화를 정지시킬 정도라면 과연 그러한 은주의 상태를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겨울밤에>는 중년 여성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영화 속에서 흥주와 젊은 남자에 비해 은주와 젊은 여자와의 만남과 그들 서로에 대한 위로가 더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영화가 단순히 서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한 여성이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당면하게 되는 문제를 섬세하게 그려내지 않았다고 해서 빼어난 여성 서사로 칭송을 받은 동시대의 여성 서사의 영화들보다 여성의 문제를 덜 비중있게 다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기존의 여성 서사의 영화들이 여성의 문제를 캐릭터를 통해 서사적으로 풀어냈다면 장우진 감독은 영화의 형식의 문제와 연계해서 좀 더 과감한 형식 실험을 통해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독 개인이 영화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서사보다 형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선호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감독의 성향이 <겨울밤에>가 서사 중심의 여성 영화보다 결코 폄하되거나 덜주목을 받도록 유도하는 원인 제공을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서영화라는 배우의 존재감 때문에라도 반드시 조명받아야 마땅하다. 흔히 서영화는 지금까지 홍상수 영화에서의 빼어난 조연 역할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서영화는 <겨울밤에>로 제22회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당당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것은 마치 그동안 조연 전문 배우로서 알려진 서영화가 <겨울밤에> 속 은주가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비중이 커지는 것처럼 이 영화를 통해 당당히 주연 배우로서 인정받았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실제로 <겨울밤에>에서 서영화의 존재감은 눈부시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그녀만의 특유의 연기 스타일로 부부 관계에서의 위기에 직면한 중년 여성의 삶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서영화는 배우로서 더욱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겨울밤에>가 비록 여성 서사를 표방하고 만들어진 작품은 아닐지라도 여성 서사적인 측면에서 어떤 유의미한 시도를 한 영화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국내 영화계에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여성 서사 영화의 열풍과 함께 <겨울밤에>의 여성 서사적인 측면도 주목받기를 기대해본다. 2020년 코로나 시국이라는 지독한 겨울밤을 1년 내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제작년도에 비해 너무 늦게 도착한 장우진 감독의 젊음의 패기가 넘치고 도전적인 <겨울밤에>가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영화적인 경험과 함께 한 줄기 위로와 희망을 선사할 수 있기를, 이 영화를 강력히 지지하는 한 명의 영화 팬으로서 간절히 바라면서 이 긴 글을 마친다.

P.S: 저도 이 글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부디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긴 글을 완성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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