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화에 무관심해진 이유

2019.03.09 13:22

흙파먹어요 조회 수:1687

무공이라면 일단 허공답보쯤은 가볍게 해주는 게 강호의 도리인 풍선껌들의 나라 중국.
도가의 경지이자 민초들의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바람 불로장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네스북 같은 거 우린 몰라, 이백오십여 년 살다갔다고 주장되는 인물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리칭윈. 약초꾼이자 무도가였던 실존 했다는 김수한무.
소문 무성한 자의 뒷모습 걸맞게, 어느 날 문득 '이제 난 쉬어야겠다'며 이불 덮고 별세 하셨다니
그야말로 호상 중의 극호상. 인생은 리칭윈처럼.
참고로 장수기록 공인 기록 보유자는 122년 살다 가셨습니다.

인생사 오욕칠정 다 겪은 분들 말씀이 자식 앞세우는 고통만큼 괴로운 것 없다는데
이백오십여 년 살아 자식이 무어냐, 손주들의 장례까지 다 치렀을 리칭윈.
그래서 자신의 죽음 앞에 그리 무던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여기, 젊어서 무도가의 영광과 열정을 모두 불사르고
무려 삼백여 년을 살아 외딴 섬에 자신을 위리안치시킨 한 남자가 있습니다.

무도가로 명망이 높았으나 수련의 비법 묻는 자들에게 내려 준 비답이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먹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는 것".
I My Me Mine 같은 말씀이나 하시고.
끝내 제자도 들이지 않았지만, 어느 날 문득 누가 봐도 좀 모자란 바보 듀오를 거두어
한 놈은 지구 최강자로, 다른 한 놈은 우주 최강자로 길러냅니다.
제자가 자신을 뛰어 넘기를 바라 변장까지 한 채 맞붙어 전력을 이끌어 낸 남자.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자 두 말 않고 돌아서 섬으로 돌아간 남자.
제자의 죽음을 직감하자 사람 목숨을 개미의 그것 보다 가벼이 여기는 그 세계에서, 조용히 눈물 흘린
불꽃사나이...

무천도사 입니다.

타노스의 손가락 따윈 용신 소환 한 번으로 가볍게 비웃어주고,
헐크 정도는 천진반 선에서 정리해주시는 우주괴수들의 집합.
퀵실버 잡아다 패대기 치는 것쯤은 일도 아닌 오버 스펙으로 괴로운 세상에
너구리가 말을 해? 야, 오룡 좀 와보라고 해.
우리는 마땅히 드래곤 볼을 보았기에 마블의 세계가 놀랍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언젠가부터 MCU에 매력을 느끼지 못 하게 된 것은
이미 드래곤 볼에서 그 서사들을 다 보아서가 아닙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리 재밌었던 드래곤 볼이 영 재미 없어져버린 이유와 같습니다.
원기옥 까지 모아 프리저를 저승으로 보낸 시점에서 끝냈어야 하는 드래곤 볼이지만,
장사는 계속 되어야 하기에, 작가는 무천도사의 입을 통해 설파했던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수련하는 인간의 길에서 핸들을 틀어버립니다.

강한 적을 물리친 후에 할 일이 없어져 버린 손오공 앞에 등장하는 것은 서사 아닌, 더 강한 새로운 적.
토니가 토굴에서 납땜질을 하듯, 동료들이 쓰러져가는 와중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수련을 쌓았던 오공은 사라지고,
작가는 이미 힘대 힘의 역치를 넘어 선 대결을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우주 어디에선가로부터 소환.
드래곤 볼에는 이제 힘의 이유와 서사 따위는 사라진 채 오로지 힘을 위한 힘만이 남아버렸습니다.

해변에서 올려다 본 집채만 한 파도는 두렵도록 거대하여 그 자체로 블록버스터지만,
웬 놈들 입바람 불어 파도의 향방 겨루고 카메라 거기 바짝 붙어 있다면
그건 이미 우리 아닌, 그들만의 얘기.
늦은 오후 한량 둘이서 담배를 피우며 한 잔의 커피를 두고 바람 불기 놀이를 하고 있다면
차라리 코미디라도 될 것을.

듣자하니 캡틴 마블이 막판에 초샤이어인으로 각성도 했다던데,
마블은 이 커질 대로 커진 판과, 장사를 이어나가기 위해 또 어떤 적을 만들어
관객들과 어벤져스 앞에 던져줄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은 모든 이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줬더랬습니다.

사연 있는 과거, 각성과 노력, 시련과 실패, 그리고 유머

토니 스타크는 그 자체로 무천도사이자 손오공이었어요.

마블은 이 시리즈를 앞으로 10년 더 할 계획이라는데

나이 때문이라도 힘들어질 토니의 퇴장이 쓸쓸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적당한 시점에 아므로 레이와 샤아를 죽여버린 토미노 감독이 현명했어

이미 이야기는 산으로 갔다
호크 아이, 넌 팝콘이나 튀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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