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영화이고 일반 극장 개봉은 작년에 했습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8분. 스포일러는 '거의' 없... 는데요. 혹시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는 분이라면 이 글 읽지 마시고 일단 그냥 한 번 보시는 쪽을 추천해드립니다. 영화는 아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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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에 대한 정보를 알고 보면 대놓고 신파에 가까운 포스터가 아닌가 싶구요.)



 - 세미라는 고등학생이 악몽을 꾸고 학교에서 깨어납니다. 얼마 전에 자전거에 받혀서 병원에 누워 있는 절친 하은이 나오는 악몽을 꿨다나요. 그래서 하루 종일 부산을 떨며 하은이 걱정을 하다가 결국 하은이를 보러 가요. 딱 그 또래 한국 여학생들 느낌으로 부산을 떨며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잠시 보낸 후... 문제는 다음 날이 수학 여행 날이라는 겁니다. 일단 다리를 다쳐서 못 가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뭐 이 정도면 가도 되겠구만~" 이라는 세미의 등 떠밀기 때문에 그럼 가 볼까...? 라고 생각하는 하은이지만 돈이 없어요. 집안 형편이...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예전에 누구에게 선물 받은 캠코더가 있네요. 어차피 쓰지도 않는 거 이거 팔아서 수학여행 따라가 볼까? 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둘은 신이 나서 일을 추진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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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두 분이 다섯 살 차이더라구요. 박혜수는 결국 29세에 고등학생 역할을 한 셈인데 전 이 분을 거의 몰라서 대략 갓 성인 정도일 줄 알았습니다;)



 -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어디서 본 무슨 글인지는 기억나지 않는 그 글에 대문짝만하게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이란 얘기가 적혀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사 영화를 보고 나니 괜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건 스포일러일까요 아닐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이 영화 관련 기사나 인터뷰들을 찾아보면 감독이나 배우들부터가 그냥 대놓고 얘길 하니까요. 듀나님 리뷰를 봐도 콕 찝어 '이건 뭐다!' 라고 말씀은 안 해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눈치 챌만큼은 설명을 하고 계시죠. 

 

 그런데도 영화를 보면서 '이게 스포일러일까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이 영화의 태도 때문입니다. 런닝 타임의 절반이 지날 때까지 영화는 그냥 '수학여행 하루 전날의 두 고등학생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절반이 지날 때쯤에 주어지는 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 이름이 적힌 역 간판 뿐이구요. 영화가 클라이막스에 달했을 때에야 이게 2014년의 이야기라는 걸 짐작하게 하는 힌트가 나오죠. 그리고 그게 전부입니다. 세월호에 대해서도, 그 죽음에 대해서도 끝까지 언급하지 않는 영화이고 이야기도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끝나요. 극단적으로 삼가 말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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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몇 종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 다들 연기도 잘 하고(?) 또 이야기 속에서 활용도 알차게 잘 됩니다.)



 - 하지만 사건이 사건 아니겠습니까. 미리 알고 보긴 했지만 모르고 봤어도 아마 초반에 금방 짐작을 했을 겁니다. 

 일단 하필이면 제주도라는 행선지가 반복해서 언급이 되고. 보다 보면 이게 현재보단 한참 전의 이야기라는 것도 소품들을 통해 대충 보여요. 그리고 뭣보다 시작부터 당황스러울 정도로 죽음, 이별과 관련되는 이미지들로 도배가 됩니다. 세미가 꾼 악몽도 그렇고. 미장센도 집요할 정도로 꾸준하게 불길한 기운을 드리우고요. 그리고 주인공이 세미란 말이에요. 수학 여행 참가가 확정된 녀석이 수학 여행을 못 갈 녀석을 걱정하며 돌아다니는 이야기이니 이게 또 절묘하구요... ㅠㅜ


 그런데 그런 것과 별개로 영화는 시치미를 떼는 척하며 한참 모자란 중생인 세미가 좌충우돌하며 내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럼으로써 흐뭇한 엔딩을 맞이하는 청춘 로맨스물의 이야기에 집중을 합니다. 개인적으론 이게 참 절묘하다 싶었던 것이, 이게 그냥 세미의 성장 & 로맨스 이야기로 봐도 그 자체로 충분히 완결성이 있어요. 그런데 이걸 보는 사람들은 초장부터 이게 '내일 세상과 작별할 10대 청소년의 이야기'라는 걸 인식하고 있으니 이 전통적인 이야기가 두 겹 이상의 층을 가진 심오한 무언가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세미가 노래방에서 '체념'을 부르는 장면이 그래요. 이걸 그냥 청춘 로맨스로 생각하고 보면 전형적으로 웃기는, 그러면서 '너 이 자식 화이팅!'을 외치게 만드는 그런 코믹 장면인데, 그게 막 슬픕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결말이 행복해질 수록 비극은 더 커지는 구조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악한 감독님은 마지막에 거의 최상급의 해피 엔딩을 마련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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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룻 동안 참으로도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주인공들입니다.)



 - 대단히 삼가 말하는 이야기라는 식으로 설명을 했지만 그건 대략 중반까지의 이야기이고. 중반을 넘어 클라이막스 즈음이 되면 영화는 되게 직설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공격합니다. 강아지 사건이 마무리 된 후에 길게 이어지는 개 주인의 대사는 어떻습니까. '내가 너였고 네가 나였다'라는 세미의 꿈 이야기는 어떻구요. 어째서 주인공들은 하필 그런 장소(?)에서 서로의 마음을 털어 놓는 겁니까. 중심 이야기가 다 끝난 상황에서 갑작스레 길게 이어지는 세미와 엄마 아빠의 '즐거운 한 때'는 어떻구요. 흔한 표현으로 그냥 노골적으로 관객들에게 "울어라!!!" 라고 외치는 클라이막스와 엔딩인데요. 그게 계속해서 정곡을 콕콕 찌릅니다. 의도가 뻔한 데도 알면서도 당하게 만드는, 청춘 야구 만화 주인공이 9회말에 던져 대는 시속 160km 짜리 직구를 구경하는 기분이었네요. 그 날의 희생자들을 그냥 숫자로 기억하면 안 된다는 것. 그 하나 하나에겐 세미와 하은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있고 삶이 있었다는 것을 이렇게 팍팍 와닿게 보여주니 어쩌겠습니까.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요. 그게 나쁜 것도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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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해서 나오는 202번 버스. 근데 검색을 해 보니 안산에서 운행하는 버스는 아닌 것 같은데요. 별 의미는 없는 거려나요.)



 - 주연 배우 리스크가 있는 영화였죠. 애시당초 크게 흥행할 일도 없는, 제작비 3억짜리 인디 영화였지만 어쨌든 그랬습니다.

 근데 전 박혜수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이 영화로 처음 봤어요. 보고 나니 그 이슈가 터졌을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화를 냈던 사람들도, 또 그 중에 부디 박혜수가 무고한 걸로 결론나길 바랐던 사람들도 다 이해가 가네요. 연기를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사랑스럽게 너무 잘 합니다. 세미와 하은이가 둘 다 주인공인 건 맞지만 이야기 구조로 보나 비중으로 보나 세미가 원톱 주인공인 영화인데 그 막중한 책임을 너무 잘 소화했어요. 

 물론 하은 역의 김시은씨가 똑같이 잘 했기 때문에 박혜수의 연기가 더 살아난 것이기도 하죠. 보고 나서 이 분의 다른 출연작은 뭐가 있나... 하고 찾아보니 보고 나면 인생 암울해질 것 같아서 제가 애써 미뤄두고 있는 '다음 소희'에서 소희였군요. 허허(...)


 그리고 박정민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 몇 년간 구경한 이 분 연기들 중에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어찌보면 전체적인 톤에서 많이 튀는 장면의 튀는 캐릭터였는데, 어쨌든 아주 잘 했어요. 덕택에 잠시 환기하는 기분으로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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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 때 전체 시나리오는 못 읽어보셨던 것인지 이런 톤의 영화인 줄 몰랐다고 나중에 감독에게 투덜댔다지만... 암튼 잘 하신 똘이아범님. ㅋㅋ)



 - 의외로(?) 사운드와 음악에도 많이 공을 들인 작품이었습니다. 비록 집구석에서 봤지만 다행히도 볼륨을 맘껏 키울 수 있는 상황에서 봤는데. 음악들도 튀지 않으면서 감정 고양을 제대로 되도록 잘 짜여져 들어가 있구요. 클라이막스부터 막판까지 가면 배우들의 목소리나 효과음들이 또 조금씩 느낌의 변화를 주며 전해지거든요. 그걸 디테일하게 효과적으로 잘 구성을 했더라구요. 특히 마지막에 세미가 마르고 닳도록 반복하는 어떤 대사는 그런 식으로 효과를 입히지 않았으면 좀 이상하게 들렸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더 적절했던 듯 하고. 암튼 집에서 보시더라도 가능하면 괜찮은 장비(?)로, 큰 볼륨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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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마마의 '체념'이 이미 나온지 20년이 넘은 노래라는 거 알고 계십니까... ㅋ 2003년 곡이었네요.)



 -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것.

 영화 초반에 좀 당황했거든요. 아니 대체 이 뽀샤쉬는 무엇인가. ㅋㅋㅋㅋ 마치 사진 보정이란 걸 처음 해보는 사람이 '이렇게 해놓으면 예뻐서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하고 소프트하게 보정을 하다가 선을 넘어 버린 듯한 느낌의 뽀샤쉬가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데... 

 역시나 당연히도 노림수가 있는 거였죠. 이게 보다보면 이야기가 점점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풍기거든요. 노골적으로 설명되진 않지만 영화 속에서 세미가 겪는 하루는 과거, 현재와 미래까지 슬쩍슬쩍 뒤섞여 있는 환타지의 공간입니다. 어찌보면 이미 모든 사건과 비극이 다 벌어진 후의 유령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구요. 특히 막판에 등장하는 세미의 긴 대사 장면에서 누군가가 홀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 같은 건 현실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때문에요.


 암튼 그래서 다 보고 나면 마치 유령 안 나오는 유령 이야기를 본 듯한 기분이 들구요. 그래서 이 과도한 뽀샤쉬 화면도 뭔가 되게 의미심장한, 아련하면서도 슬프고 그걸 넘어서 조금은 으스스한 주술적인 느낌까지 들게 하는 무언가가 됩니다. 참 여러모로 신경 많이 써서 만든 영화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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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샤쉬를 이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구나... 라며 감탄한 영화였습니다.)



 - 대충 마무리하자면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세요. 작년에 비평가들이나 팬들이 '올해의 한국 영화'로 꼽았던 게 전혀 호들갑이 아니었구나... 싶었던 두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어지간해선 영화 보면서 울컥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영화의 중심 소재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 대비 좀 감정이 덜 격했던 사람인데 말입니다. 중반 이후부턴 그냥 완전히 몰입해서 감독이 웃어라! 하면 웃고 울어라!! 하면 울컥하고... 그러면서 힘들게 잘(?) 봤습니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야' 라는 좀 안 재밌는 정치 구호스런 메시지에 이렇게 공감해 본 것도 처음이었구요. 뭐... 그러했습니다.




 + 글 제목의 의미는... 이게 최근에 티빙에 올라왔는데 이제 4월이고, 그래서 곧 10주기입니다. 아마 곧 다른 OTT들에도 올라오겠죠.



 ++ 그래서 박혜수 배우의 능력과 매력을 처음으로 느껴봤는데 이 분의 그 이슈가... 호기심에 검색해 보니 아직 결론은 없고 법적 절차도 아직 진행중이더군요. 이 영화를 이렇게 좋게 봐 버렸으니 무고하다는 게 진실이었다는 쪽으로 확실히 결론이 나면 좋겠지만 대충 사건 경과를 읽어 보니 어느 쪽으로든 속시원한 결말은 무리일 것 같구요. 흠...;



 +++ 이건 농담인데요. 세미가 참으로 배려가 모자라고 자기 중심적인 아이라는 건 영화 내내 세미가 하은이를 얼마나 걷고 뛰고 돌아다니게 만드는가만 봐도 대략... ㅋㅋㅋㅋ 다리 다친 사람이 아니어도 녹초가 되어 뻗을만큼 헤매고 다니는데 가만 보면 그게 거의 세미 때문이란 말입니다. ㅋㅋ

 덧붙여서 '오늘 돈 구해서 내일 수학 여행 같이 가자'도 마찬가지죠. 학교란 데가 그렇게 서비스 좋게 돌아가는 곳이 아니랍니다 학생...



 ++++ 기회가 될 때 학생들에게 보여줘도 좋을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세미가 자기 잘못을 깨닫고 성장하는 이야기만 해도 충분히 교훈적이고 참으로 건전하지 않습니까!) 에... 아마 얘들은 다 보고 나서도 이게 무슨 얘기인지 캐치를 못할 것 같아서 관두는 걸로. ㅋㅋ 그 사건 당시 네 살, 다섯 살이었던 애들이니까요.



 +++++ 사실 보면서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주인공들이 나오는 부분이 아니라 들뜬 분위기로 수학 여행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몽타주로 길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조금은 튀는 느낌으로 들어가 있었음에도 울컥 또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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