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유시민: 아, 오지요. 100% 오지요. 그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

노무현: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

유시민: 그럴 수는 있죠. 후보님은 첫 물결이세요. 새로운 조류가 밀려오는 데 그 첫 파도에 올라타신 분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근데 이 첫파도가 가려고 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이 첫 파도가 못 가고, 그 다음 파도가 오고 그 다음 파도가 와서 계속 파도들이 밀려와서, 여러차례 밀려와서 거기 갈 수는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 정신과 새로운 변화, 새로운 문화를 체현하고 있으시기 때문에 첫 파도 머리와 같은 분이세요 후보님은. 근데 가시고 싶은데까지 못 가실 수도 있죠. 근데 언젠가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갈 거에요. 근데 그렇게 되기만 하면야 뭐 후보님이 거기 계시든 안 계시든 뭐 상관있나요

노무현: 하긴 그래요, 내가 뭐. 그런 세상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내가 꼭 거기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2002년 대선 당시 후보였던 노무현과 유시민이 나눴던 대화입니다. 현재 민주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은 가히 콘크리트라고 불릴만큼 단단하고,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한가지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가 노무현이 없는 노무현의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재임 시절에는 많은 분들이 기억을 하시겠지만, 정말 인기가 없었습니다. 지금과 비교를 할 수 없을만큼 상황도 나빴었지요.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은 일치단결해서 노무현 정부를 까내리기에 바빴습니다. 거기에 진보 진영에서 조차 등을 돌리었고, 무슨 일만 생기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고정 지지층이라고 할만한 사람들도 없었고, 언론에서, 야당에서 떠들어대니, 아 그게 맞나보다 하는 것이 여론이었습니다. 지지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었을 겁니다.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고, 의심하지도 않았던 시대였었죠.

그리고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 뒤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잃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10년의 암흑기였습니다. 너무 빨리 민주화에 들어갔기에 당연히 감내해야할 반발이기도 했었죠. 10년에 걸친 민주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 그리고 당시 무능했던 여당과 그 인사들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나온 결과 였습니다.

복합적이라는 말은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 특정한 무언가를 원인으로 지목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상황은 정말 뒤죽박죽이였습니다. 지금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검찰을 예로 들어볼까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검찰조직 우선 주의, 남성 주의, 기수 우선 주의를 깼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검찰 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바로 검찰의 반격을 받게 됩니다. "불법대선자금 수사" 이로 인해 검찰에 힘이 실리면서, 개혁 동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검사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게 되는데, 그 중 한 검사는 노무현에게 몇 학번이냐고 물어보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이게 왜 만행이냐면 노무현이 고졸 출신인 것을 모를리가 없는 자가 단순히 비꼬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발언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벌과 조직적 우위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또한 강금실 장관의 검사 인사 개편에 대해서도 반발을 하게 되는데, 검찰총장과의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인사를 정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렇듯 검찰은 공개적으로 대통령이나 장관의 지휘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권력 체계를 구축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은 언론이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였으니, 정말 상황은 복합적으로 문제였습니다. 독립 이후에 정상적이지 않은 정부가 세워지고, 그 시간이 가히 반세기가 흘렀으니, 그 동안 쌓여왔던 문제들을 10년의 세월로 해결하려던 시도가 어쩌면 무모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10년이 흘러 노무현의 친구인 문재인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까지는 노무현의 대선 과정만큼이나 위태위태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안철수가 아니였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있었던 온갖 바이러스를 그렇게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한번에 끌고 나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손학규, 박지원, 김한길, 천정배, 정동영, 이언주 등등 당권은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당을 방해할 수 있음직한 면면들을 싹 끌고 나가는 업적을 달성한 것은 정말이지 민주당에서 동상을 세워 줄만큼 인정을 해야될 업적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당에 보탬이 전혀 안되는 인물들이 나가고 문재인 중심의 당이 편성이 되면서 시스템 정당으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그렇게 이어진 것이 20대 총선과 대선의 승리였죠. 그리고 그 힘은 아직까지도 지지율로 이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문재인 개인의 역량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노무현의 희생이 만들어낸 시대의 유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야말로 노무현이없는 노무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문재인을 지지하지만, 그 뒤에 있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이고, 그가 생전에 있었을 당시 챙기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마음의 빚을 갚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팬덤 정치'라고 비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 잘못 생각했다 틀렸다라고 할 이유는 없어요. 하지만 노무현이 그렸던 세상을 문재인이 이어져 나간다고 한다면, 그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팬덤 정치라고 비판 받을 지언정, 정부를 지지함으로써 힘을 실어주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욱이 '팬덤 정치'라고 비판을 하지만 그 안에서 딱히 대안을 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지요.

아마 "노무현이 없는 노무현의 시대"는 이번 정부로 막을 내릴 것입니다. 이것은 문재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다른 누구가 노무현과 문재인을 있겠다고 한들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요. 흔히들 이명박의 실수는 후계자를 만들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뒤에 뭍어놓은 죄들이 많은데 그것이 자기의 목줄이 될까 두려워 그것을 관리할 사람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문재인도 마찬가지로 이인자를 만들지 않았고, 만들려는 생각을 하지도 않고 있는데, 결국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어나간다고 한다면, 노무현의 시대가 쭉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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