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님이 듀게 내에서의 기독교 논쟁 부분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정리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이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았는데요, 일단 '종교포비아'라는

용어가 썩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첫째,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종교포비아'가

호모포비아와 비슷한 성질, 혹은 같은 급의 비윤리적 양태라고 주장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anony님 글에서 문제가 되는 대상은 사실상 '개신교'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를 '종교'라는 단어로 확장하는 것은 현상을 왜곡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포비아라는 단어가 남용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보는데요,

anony님이 사용하신 '포비아' 인식틀은 지나치게 확장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듀나 게시판에는 '한나라당 포비아'라든지, '이명박 포비아'라든지 하는 게 있다,

듀게의 소수자인 한나라당 지지자로서 모욕감을 참기 힘들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다

바보나 악당들인 양 묘사되는데, 우리도 세금 낼 거 다 내고 지역 사회에서 자원 봉사도

하고 이웃들에게 친절한, 평범한 소시민들 많다, 게시판 내 ‘한나라당 포비아’들의

집단 린치도 일종의 폭력이다, 한나라당 비난을 자제해 달라"는 주장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힘들겠죠.



  제가 생각하기엔 듀나 게시판에서는 소위 종교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첫째는 종교라는 믿음의 체계가 지니고 있는 비합리성에 대한 비판(A)입

니다. 즉, 이론적 비판이지요. 둘째는 대한민국의 종교 단체 및 종교인들이 보여 주는

부도덕성,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B)입니다. 즉, 현상적 비판입니다.



  A에 대해서는 종교인들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실상 종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전근대의 낡은 맹목적 사고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목'이라는 어휘의 사용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만,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과학적 실증적 사고가 등장한 이래 기존 종교들의 이론적 오류가 수도 없이 논파

되었음에도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최후의 버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나 실증보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본인의 신앙이 옳다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직관적으로 신뢰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속성은 결국 '맹목적인 믿음' 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며 진행되었던 종교적 권위의 붕괴는 아직 완료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과정의 한 가운데에 있죠. 종교의 절대적 영향력은 축소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삽니다. 그렇다면 종교인과 비종

교인간 상호 존중하며 간섭하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과학적 실증적 세계관은 그 속성상 각종 오류와 무지의 영역에 간섭하여 지식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누적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혈액형별 성격론’이

세를 불리는 현상이 발생했을 때, 과학적 실증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도저히

그 황당한 믿음의 체계를 방관하기 힘들죠. 분석하고 검증하여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적 세계관과 과학적 실증적 세계관은 완전히 모순된 것이기 때문에 양자의 충돌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인간의 종에 속하는 각각의 개체들은 그

충돌이 발생하는 전장,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죠. 지금까지의

진행양상으로 보면 종교가 과학적 실증적 세계관의 문제제기에 설득력 있는 해답을

내놓거나 반격에 성공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건 종교적 세계관으로 과학적 실증적

세계관과 대항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현실적으로 일방적인 ‘공세’를 감수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 다음 B의 문제인데요. 사실 듀나 게시판에서 B의 문제로 비판받는 것은 압도적

으로 개신교라는 특정 종교입니다. 불교나 가톨릭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

지요. 가톨릭을 포괄하는 기독교라는 용어가 사용되며 도마에 오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

도 대부분이 실제로는 개신교가 그 대상인 경우입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한데요. 한국

에서 개신교가 타종교와 달리 확실히 어떠한 인계점을 넘어 버렸다는 징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anony님의 경우는 그러한 개신교의 일탈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또

우려하고 있는 분으로 보입니다. 즉, 개신교 비판에 흔히 등장하는 탐욕스럽고 타락한

목회자라든지, 그들을 무지몽매하게 따르는 신도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에 대한 듀게의 비판적 분위기에 대해 ‘종교(개신교)

포비아’라는 용어를 끌어내 사용할만큼 불편함을 토로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어떤 집단 카테고리를 활용한 비판은 그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게 마련입니다. 이는 비판의 대상을 모 집단으로 설정할 경우 발생하는 일종의

부작용일 수 있는데요. anony님의 경우는 개신교에 대한 비판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다만 비판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대형교회나 일부 목회자로 비판의

범위를 축소, 구체화하는 것으로 그들과 무관한 본인, 그리고 ‘아무 잘못 없는 일반’

신도들이 도매금으로 비판의 대상 카테고리 안에 묶여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피하고

싶으신 것이죠.



  허나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이, 앞에서도 말했듯 그 비판받아 마땅한 타락한

대형교회들이 이미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표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anony님은 “의식

있는 많은 신도들은 한국 기독교를 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하셨는데, 저는 정말 그럴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의 기독교

수뇌부가 강한 힘을 갖고 있고 그 세가 커서 일거에 뒤바뀌기 힘든 것”이라고 하

며 한국 개신교의 주류가 그들임을 또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개신교의 주류가

‘비판받아 마땅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개신교인뿐 아니라 비종교인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개신교’라는 단어를 사용한 비판의 자제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개신교인들이 개신교에 대한 비판에 불편함을 느끼는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개신교’라는 단어에 너무 충실히 투영하고 하고 있는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억울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개신교’라는 단어가 이 정도로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개신교의 이미지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 놓은 주류 개신교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주목

할만한 조치를 취하고 일정한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감수해야 할 짐이 아닌가 생각됩

니다. 좋든 싫든 ‘그 타락한 개신교’들도 엄연히 개신교이고, 심지어 주류인 것이 사실

이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종교(개신교) 포비아’가 아니라 문제 제기에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저는 최근 듀게의 언어가 너무 공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듀게의 특

징 중 하나가 욕설 사용의 금지와 존대어 사용인데,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존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존대라는 형식적 틀만을 유지한 언어의 폭력성이 갈수록 심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anony님이 ‘종교(개신교) 포비아’라는 용어까지 끌어낼 정도로

심적 고통을 호소하신 상황까지 온 데에는 사실 이 부분이 훨씬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종교 비판, 혹은 개신교 비판의 논리는 논리 그 자체에서 끝나야지

폭력적 언어 표출의 정당화를 위한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듀게 내 종교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본인의 종교적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오류 가능성에

대한 고민, 혹은 자신이 속한 종교 집단의 타락과 일탈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어야지, 같은 게시판을

공유하는 유저들이 가하는 인격적 모독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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