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와는 꽤 거리가 먼 2021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42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와. 정말 아무 관심도 안 생기는 제목과 포스터 아닙니까. ㅋㅋ)



 - '아드리'라는 젊은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이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형적인 '3루에서 태어나 놓고 본인 힘으로 거기까지 진루한 걸로 생각하는' 젊은이에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게 빵빵해서 인생 한가한데 비주얼은 훈훈하고 성격은 적극적이고. 게다가 얄밉게도 머리도 좀 좋은 편이라 직장인 잡지사에서도 그럭저럭 인정 받는 편이고 그렇습니다.

 암튼 이 양반이 친구들이랑 술집에 갔다가 바에 앉아 있는 여성을 유혹해 보겠다고 내기를 하는데요, 그 여성에게 말도 걸어보기 전에 난데 없이 다른 여자에게 격렬한 플러팅을 당합니다. 자기도 내기 중인데 제발 이기게 해달라며, 걍 마구 우겨대는데 그 기세가 참으로 강렬하거니와 예쁘니까. 결국 낚여서 따라가죠. 그래서 뭔가 '엽기적인 그녀'스런 그 분과 함께 희한하게 즐거운 하룻밤을 보낸 것 까진 좋은데... 다시 만나고 싶은데 연락이 안 되네요? 그래서 거의 상사병 수준으로 고통 받다가 드디어 연락처와 주소를 알아냈어요. 그래서 씐나게 찾아가 보니 그 분이 계신 곳은... 중증 환자들만 전문으로 보살피는 정신병원이었습니다. 가족 아니면 면회도 안 되고 통화도 못 해요. 아 이걸 어떡하나! 하다가 주인공이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그럼 나도 들어가서 함께 지내면 되잖아???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이 두 분은 제가 몇 달 전에 봤던 '첫키스에 반하다'에서도 공연했던 분들입니다. 거기서 저 여배우님이 맘에 들어서 이것도 찾아봤지요.)



 - 제가 전부터 매번 하던 얘긴데요. 스페인 사람들은 좀 이상합니... ㅋㅋㅋㅋㅋ 네. 이것도 스페인 영환데요. 이번에도 여지 없이 21세기적 감성과는 좀 거리가 먼 이야기에요. 하룻밤의 황홀한 사랑을 잊지 못해 정신병원까지 찾아간다! 라니 옛날 같았음 오 아이디어 좋네. 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얘긴 굉장히 위험하죠. 

 게다가 영화 초반에 주인공의 동료 환자들이나 의사, 간호사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더 불편하고 위태로운 기분이 듭니다. 왜냐면 이게 장르가 멜로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거든요. 그래서 인물들 묘사가 다 가볍습니다. 가벼워요. 게다가 우리의 주인공은 긍정긍정 열매를 먹은 열정맨이란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정말 이러다 한 발짝만 삐끗하면 멸망이겠는데... 라는 맘으로 스릴 넘치는 감상을 했네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 20세기였음 그냥 괜찮았을 텐데 이젠 그게...)



 - 근데 걍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다행히도 그렇게 대책 없이 낭만으로 달리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까워요. 

 영화 초반에 "스스로 진심으로 원하고 노력하며 주변에서 함께 해 줄 사람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쳐대는 주인공에게 "넌 태어나서 지금껏 읽은 책이 자기 개발서 밖에 없니?" 라고 쏘아 붙이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게 이 영화의 공식 입장(?)입니다. ㅋㅋㅋ 주인공이 금수저인 것도 럭셔리한 로맨스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가 겪어온 것들 외엔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더러 이러쿵 저러쿵 훈수두는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걸로 보이구요.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철학이 얼마나 쓰잘 데기 없는 헛소리인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고 전보다 많이 상식적인 인간이 되는 해피 엔딩을 맞아요. 의심해서 죄송했습니다 작가님. 죄송죄송... ㅋㅋ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제가 전에 본 작품에 이어 남들보다 훨씬 늦게 철 드는 자뻑남 연기 2연타... 를 선보이신 배우님인데. 그래서 제겐 그냥 그 이미지로 박혀 버렸습니다. ㅋㅋ)



 - 그래서 이런 부분을 제껴놓고 그냥 영화 얘기로 들어가면요.

 굉장히 정석적인 루트로, 공식대로 흘러가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런 이야기들 있잖아요. 처음에 주인공이 자기가 잘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는 집단과 억지로 함께 하게 되고. 당연히 반목하고 거부하고 투닥거리다가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천천히 정 들고. 서로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행복하게 잘 지내다가 나중엔 큰 위기도 한 번 겪고 하지만 결국... 이런 식의 스토리요. 딱 그 루트를 따라 정석으로 흘러가요.


 그런데 일단 (여전히 많이 나이브한 느낌이긴 하지만) 영화가 '그 집단'의 사람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려내구요. 캐릭터들이 은근히 귀엽고 정 드는 면들이 있구요. 병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도 (역시 엄청 나이브하지만! ㅋㅋ) 나름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괜찮아요. 20세기식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흘러가는 클라이막스도 오랜만에 이런 걸 봐서 그런지 보기 좋고 살짝 뭉클하기도 하고 뭐 그랬습니다. 결론적으로 재밌게 봤어요. 특별할 건 없지만, 생각 외로 매끈한 완성도를 갖추고서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랄만한 걸 적절히 잘 만들어 넣어 준 작품이었습니다.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하지만 역시 이런 민감한 소재 갖고 굳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 했구요. 그게 아쉬웠네요.)



 - 뭐 더 길게 얘기할 건 없는데요.

 계속해서 반복 강조합니다만. 여전히 심각한 주제를 두고 나이브하게 만든 이야기라는 건 분명합니다. 내가 만약 저기 나오는 질환들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장면들 보면서 기분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만들더라구요. 각본가님은 정말로 선의에 가득차서 만든 이야기라는 게 충분히 전달이 되기 때문에 그냥 즐기긴 했지만, 좀 아슬아슬한 기분이었구요.

 그런 부분을 살짝 눈 감아주고 본다면 정말 20세기스럽게 선량하고 20세기 스타일로 로맨틱한 로맨스물로서 썩 괜찮은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제가 이걸 본 게 '첫키스에 반하다'를 보고 나서 관련작을 검색하다 걸려들어서 찜을 해 뒀다가 그런 건데요. 그 영화보다 훨씬 재밌게 잘 만든 로맨스물이었어요. 그러니 혹시 그 영활 좋게 보신 분이 있으시다면 이것도 볼만 할 겁니다.

 따지고 보면 넷플릭스에 성인들 보라고 만든 건전 순수한 로맨스물이 진짜 드물잖아요? ㅋㅋ 그런 맥락에서도 존재 의미가 있는 영화였구요. 결국 저는 잘 봤다는 얘기.




 + 초반에 살짝 언급되는데, 영화 속 시설의 한 달 비용이 2천 유로입니다. 영화 속 그 분들 다 부자님들이셨...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지인을 통해 만난 부패 의사님에게서 이것저것 종합 선물 셋트성 진단서를 받아들고 씩씩하게 입소를 하는 주인공이었습니다만. 기어코 재회한 그녀, 까를라의 상상을 초월하게 싸늘한 반응에 짜게 식어서 조기 퇴소를 결심합니다. 근데 엄연히 진단서가 있는데 무슨 개소리냐는 시설 측의 당연한 반응에 말문이 막혀 자기가 다니는 잡지사에 통화를 해보라고 합니다만. 하필 자기 잘난 척에 맨날 희생되던 여직원이 그 전화를 받아서는 '아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라고 답을 해 버리고. 결국 강제 감금 신세가 되는 아드리군입니다. 뭐 쌤통이죠.

 그래서 홧김에, '어쨌든 기사를 보내지 않으면 넌 해고야'라는 보스의 압박에 대한 대답으로 가열차게 이 시설과 시설 사람들을 씹어대는 칼럼을 즉석에서 구술로 전달해 보내고요. 그래도 어떻게든 여기서 탈출은 해야지... 라는 맘에 룸메이트에게 친한 척을 하며 이것저것 정보를 알아냅니다만. 결론은 딱히 답이 없다는 것.


 하지만 어쨌든 멘탈 하나는 참 튼튼하신 우리 주인공은 곧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걸어대며 오지랖을 떨기 시작하구요. 그러다 결국 짝사랑 때문에 고민하던 사람 하나를 부추기고 등 떠밀어서 커플을 만드는 데 성공해요. 나이쓰! 하고 좋아하는 주인공을 보던 까를라는 이 놈 생각보다 개차반은 아니군?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슬슬 말상대도 해 주고. 자기 얘기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이 분이 겪고 있는 건 양극성 장애, 그러니까 조울증이래요. 그 정도가 많이 극심해서 조증일 땐 정말 울트라 하이 텐션이 되어 버리는데, 그 김에 자기가 파 놓은 루트로 병원을 탈출해서 하룻밤 놀아 보려고 나갔다가 주인공을 만났던 거죠. 당연히 다시 만날 생각은 1도 없었던 데다가 주인공이 들어왔을 땐 우울 모드였기 때문에 싸늘하게 대했다. 뭐 대충 이런 거구요.


 어쨌든 까를라가 이렇게 맘을 조금이나마 열어 주니 신이 난 주인공은 그 때부터 정말로 열심히 시설 생활을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챙겨주고 도와주고 나중엔 그러느라 자기도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구요. 결국 어느 날 까를라는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정말일까. 니 말대로 나도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 당연히 주인공은 예스 유 캔!을 외치며 다시 한 번 사랑을 고백하고, "나도 도와줄 테니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말을 하죠. 그렇게 커플이 된 둘은 꿈결 같이 행복한 며칠을 보냅니다. 그랬는데... 그 때부터 약을 안 먹기 시작한 까를라가 어느 날 결국 본인의 기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설 옥상에서 뛰어내릴 뻔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걸 눈 앞에서 본 아드리는 충격을 받구요. 거기에 덧붙여서 입소 첫 날에 회사로 보낸 시설 씹는 칼럼이 실린 잡지를 시설 친구들이 보게 돼요. 까를라는 "니가 그랬잖아! 노력하면 다 고칠 수 있다며!!" 라며 아드리를 외면하고.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외면 당하게 된 아드리를 시설 원장이 부릅니다.


애초에 이 시설은 완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다. 우리의 목표는 저 사람들을 고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이 증상과 함께하면서도 바깥 세상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도록 도와주는 거란다. 이 사람들에게 '너도 노력하면 변할 수 있어!' 같은 소릴 하는 건 걍 니 기분만 좋아질 뿐 저 사람들에겐 민폐이고.  암튼 이제 니가 환자가 아니라는 건 잘 알았으니 이만 꺼지렴.


그렇게 시설에서 쫓겨난 아드리는 회사로 돌아가 자신의 모자람을 책망하며 새 글을 씁니다. 그리고 그 글이 꽤 반향을 일으켜서 잡지사 대표님(정말 멍청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아드리를 포함한 전 칼럼니스트들을 불러 앉혀 놓고 괴상한 회의를 시작하는데... 같은 시각에 시설의 친구들과 까를라도 그 글을 읽어요. 그리고 그 글에 실린 절절한 사랑 고백에 이들은 으쌰으쌰해서 백주 대낮 탈출을 감행하구요. 소소하게 웃기는 코믹 추격극 끝에 시설 직원들을 따돌린 시설 친구들은 잡지사로 바로 쳐들어가 아드리를 만나죠. 당연한 수순으로 아드리와 까를라는 화해를 하고. 어차피 도망 나온 김에 단 둘이서 하루 종일 행복한 데이트를 하고... 밤이 되자 함께 시설로 갑니다. 하지만 당연히 이번에 들어가는 건 까를라 뿐이고요. 까를라는 그동안 알려주지 않았던 본인 전화 번호를 아드리의 손바닥에 적어 주고. 먼 훗날을 기약하며 홀로 타박타박 걸어 갑니다. 그렇게 걸어가는 까를라의 뒷모습으로 끝이에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0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3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57
124749 [핵바낭] 수능 전날 & 기타 등등 일상 잡담 [14] 로이배티 2023.11.15 402
124748 방금 끝난 대종상 시상식 결과 [1] 상수 2023.11.15 452
124747 에피소드 #63 [5] Lunagazer 2023.11.15 72
124746 프레임드 #614 [4] Lunagazer 2023.11.15 72
124745 단독] LG전자, 18일부터 LG트윈스 우승턱 쏜다 daviddain 2023.11.15 204
124744 KS 끝나고 목요일 APBC시작/선발 문동주 daviddain 2023.11.15 127
124743 윤석열과 어번져스(윤핵관) [1] 왜냐하면 2023.11.15 302
124742 나보코프는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8] thoma 2023.11.15 366
124741 [넷플릭스바낭] 데이빗 핀처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꿈을 꾸나요. '더 킬러' 잡담 [15] 로이배티 2023.11.14 594
124740 헐리우드(주로 영국배우) 이름개그 카툰짤 [2] 상수 2023.11.14 244
124739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4화까지 보고 catgotmy 2023.11.14 256
124738 프레임드 #613 [4] Lunagazer 2023.11.14 61
124737 LG, ‘29%할인’ 정말로 검토중이다/코시 하이라이트 [2] daviddain 2023.11.14 279
124736 영웅본색2 한국에서 애니 제작 [1] DAIN 2023.11.14 164
124735 신 울트라맨 12월 6일 한국 개봉 [4] DAIN 2023.11.14 177
124734 3명의 권력자 암살 3차대전 [4] catgotmy 2023.11.14 213
124733 시에라 게임 주제가 [1] 돌도끼 2023.11.14 121
124732 [왓챠바낭] 영화보다 출연진 구경이 더 재밌는, '보디 백'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11.13 323
124731 LG 우승 ㅡ Succede solo a chi ci crede/구글에 LG 트윈스 치면 불꽃놀이 [7] daviddain 2023.11.13 245
124730 프레임드 #612 [6] Lunagazer 2023.11.13 8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