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시간은 속절 없이 흘러가서 짤막하게 궁금한 점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뒷 이야기를 조금 찾아보니, 이 영화 만들 때는 시간도 자원도 넉넉하게 하야오 하고 싶은 거 다 해, 식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기한도 한정없이 늘어나서 7년이 걸렸고, 모든 콘티를 하야오가 직접 손으로 다 그렸다고 합니다. 즉 이 영화는 시간이 없어서 덜 만들어졌거나, 어떤 압박으로 인해 수정되거나 틀어진 부분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아주 작다고 생각하면 되나 싶었습니다.


먼저는 이 영화를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일화로 보고 그 상상 속 세계는 자신이 만들어온 창작물들, 펠리컨과 앵무새는 마음대로 하고픈 투자자들, 직접 말했듯 황새는 프로듀서라고 생각하면 꽤 풀리는 부분들이 있어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야오도 직접 시사회에선가 '여러분들 이해 안 가죠? 저도 그렇습니다.' 같은 말을 했다고 하니 그렇게까지 앞뒤가 맞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편하게 생각해도 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상상 속 이세계를 외부의 힘을 통해 구성한 큰 할아버지가 자신의 후계를 선정하기 위한 과정을 치르다 실패한다 정도로 축약해볼 수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몇몇 궁금한 부분들이 있더군요.


1. 영화 초반 오래된 저택으로 인도하는 황새의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황새는 중반부터 유리 장미를 떨어트려 주목시킨 할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미지의 세계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나 초반에는 주인공의 죽은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있다면서 주인공을 유혹하는데요. 불의 이미지를 가진 엄마를 정반대인 물의 이미지로 가짜로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 장면에서도 다시 가짜를 더 잘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때까지의 주인공을 향한 황새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2. 새엄마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몇몇 영화 해석들을 봤지만 새엄마의 위치가 모호하게 해석되더군요. 아예 배제된 경우도 있고. 영화 묘사상 새엄마는 아이를 낳기 위한 산실에 들어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산실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금기의 영역이었고요. 하얀 종이 봉인을 깨어버리고 주인공은 새엄마를 거기서 꺼냅니다. 그 과정에서 새엄마 뒤에 '무덤의 주인'에서 봤던 고인돌 모양의 공간이 잠시 보이기도 합니다. 새엄마는 황새를 쫓기 위한 활도 가지고 있었죠.


전쟁이 시작한지 4년 후, 엄마는 병원에서 죽습니다. 그 후 1년 후 아빠는 엄마의 여동생인 새엄마와 함께 살게되죠. 이미 새엄마의 뱃 속에는 아이가 있고요. 얼마나 빠른 호감이 있었길래 그렇게 순식간에 애까지 가질 수 있었을지. 상황상 원 가족은 시골에서 나와 도시로 이사해서 살고, 새엄마는 시골의 그 공간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그 시골에서 태어났던걸로 보이며 그 과정은 현재의 새엄마가 겪는 입덧과 비슷해 보이죠. 새엄마의 산실로 인도하는 것은 그의 언니인 엄마입니다. 다만 돌이 기대하고 있고, 자신이라면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죠. 혹시나 자신도 출산 이전의 시기에 그 공간에 갔을지도 모릅니다.


후손의 피만 그 공간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아이가 그 공간에서 태어났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황새와의 접근을 막은 이유는 주인공을 그 공간에서 배제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런 세계 창작 권력의 헤게모니는 어떤 뜻인지가 궁금하더군요. 어렸을 시절 엄마와 새엄마가 둘 다 아빠를 사랑했고, 먼저 엄마와 결혼한 후 가진 아이인 주인공이라 그렇게 미워한 것인지, 아니면 새엄마로서 원래의 아이를 미워한 것인지.


3.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가?


주인공이 아래로 가라앉아 맨 처음 가게 되는 곳은 어떤 무덤입니다. 같이 가게 된 할머니에 의해 '무덤의 주인'에게서 보호받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되는데요. 아마 '나를 배우면 죽게 된다' 같은 의미심장한 설명이 입구에 써져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고인돌 몇 개가 배치된 그 공간은 무엇인지.


----


대략적으로 평생 쌓아온 자신의 창작세계가 물려줄 바 없이 무너지고 잊혀지기 직전에 놓였지만, 그걸 호쾌하게 밀어버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습에서 비장미가 느껴저 눈물이 찔끔 났답니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만 평생을 쌓아온 거대한 세계가 박살난다는건 참.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의문증이 들어 그렇게 쉽게 풀이가 되는건가 싶었습니다. 단순하게 어머니의 죽음을 다른 해석으로 받아들인 어린이의 마음이라고 하기엔 찝찝한 부분이 많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70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22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740
124892 낭낙이가 세상을 떠났군요. [10] 스위트블랙 2013.03.26 7513
124891 놀러와 보헤미안 편에서 이상은씨..... [36] 29일 2010.07.15 7513
124890 콩나물국밥vs베트남쌀국수, 뭐가 해장에 더 좋나요? [27] 나미 2010.09.16 7510
124889 배철수 아저씨는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3] 달빛처럼 2010.06.03 7509
124888 첫경험 때 피임하셨습니까? [22] 침엽수 2012.04.03 7507
124887 엑셀 고수들의 착각 [18] bete 2013.07.09 7498
124886 [역사 야그] 그도 한 때 왕따였다, 율곡 이이 [18] LH 2010.08.06 7498
124885 애인에 대한 뒷조사는 필수가 아닐까한다는... [14] 도돌이 2010.09.22 7492
124884 [신간] 춤추는 자들의 왕, 괴물 이야기, 지하도의 비, 캣칭 파이어, 장르라고 부르면 대답함, 약탈자 등등 [9] 날개 2010.09.17 7487
124883 드럼세탁기 청소 + 드럼세탁기는 참 문제가 많은 것같아요 [24] 한여름밤의 동화 2011.11.01 7485
124882 셔츠나 블라우스, 티 같은 상의를 바지 안에 넣어 입는 거요.. [9] 베레 2013.06.13 7484
124881 가루의 힘은 대단하군요 [45] 씁쓸익명 2012.08.19 7481
124880 진중권, 나꼼수를 저격하긴 했는데 어째 영 [42] management 2011.10.31 7480
124879 공지영 "남자 70% 성매매 경험이 있는데.." [115] 보아는행콕 2012.01.31 7479
124878 베를린 표절에 관한 기사와 류승완의 입장. [13] 자본주의의돼지 2013.02.09 7478
124877 [도와주세요] 28살에 수능 다시 보기 - 괜찮을까요? [20] 살리 2012.12.06 7478
124876 <치즈인더트랩> 유정 중심으로 애정전선 짤방 [10] 환상 2011.10.20 7478
124875 방금 뮤직뱅크 무슨일 있었나요???? [44] 감동 2010.06.25 7478
124874 대선후보자토론회 불판깝니다~ [229] 이음 2012.12.04 7470
124873 예쁜 처자들... (유인나 잡담도) [26] DJUNA 2012.06.09 747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