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죠

2021.04.02 12:46

어디로갈까 조회 수:886

오전에 어느 갤러리 전시장에 갔다가 잊고 있던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한참 동안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만큼 다른 관심/공간적 거리가 있었던 거겠죠. 그와 커피 한 잔 나누는 중에도 이 마주침은 착란이 아닐까 싶었으니까요.

그가 물었습니다. "나를 그리워한 적이 있어요?"
제가 답했습니다. - 그런 질문은 어떤 거짓말보다 나쁜 거에요. 
그가 물었습니다. "왜요?"
제가 답했습니다. - 뻐꾸기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는 기적을 인생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착란이라고 해도 혼자서 느끼는 거니까 설명할 수는 없죠. 
그가 한숨쉬었습니다. "넌 하나도 안 변하고 고대로구나."
제가 맞받았습니다. - 그렇게 서로 이해 못한 채 다르게 살다가는 게 인생인 겁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은하철도의 밤>에 나오는 조반니가 연상되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우주에서 자청룡빛 별들을 보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스탠스가 느껴졌달까요. 아니면 지상에 붙은 땅강아지처럼 코를 박고 사는 것에는 영 흥미를 못 느끼는 성향이 느껴졌달까요. 대학 졸업 무렵, 은사님이 저와 잘 맞을 거라며 강력 추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레브로프의 <우주와 지구와 인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주정거장에서 하루이틀은 자신이 속한 고향과 자기 나라만 찾아본다. 사흘나흘이 되면 자신의 나라가 속한 대륙만 보인다. 닷새엿새가 되면 지구가 하나라는 사실에 문득 눈뜨게 된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코스모노트라고 하죠.  그는  그런 사람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제 느낌/판단입니다. 지구가 하나라는 사실,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본다는 코스모노트의 관점을 존중하지만 그가 술은 예전보다 좀 줄였기를.... 그야말로 우주예술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덧: 보스가 맛있는 밥 사주겠다는데 토기가 일어서 응할 수가 없습니다. 뜻밖의 조우에서 받은 감정적 영향이 제법 큰가봅니다.  -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1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7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96
125970 결혼하신 분들께 질문드려요. 정말 배우자 외모는 1년도 못가나요? [30] 아카싱 2010.10.19 18639
125969 로보캅(1987) 제작 비화 [16] 치이즈 2014.02.13 18634
125968 중고 식기세척기 혼자 설치하기 [5] 톰티트토트 2010.07.26 18588
125967 하이킥 신예 김지원 별명은 간디 [4] 로사 2011.09.20 18553
125966 나라마다 다양한 손가락 욕 [14] amenic 2013.04.12 18547
125965 여자가 반했다는 증거? 이 게시물을 보고... 경험자로서...^^;; [9] 라곱순 2012.09.23 18467
125964 [퍼옴] 초등교사가 올린 금일 정세 분석 [2] 게으른냐옹 2016.11.15 18368
125963 사소한 궁금증) 맨발로 구두 신으시는 분들? [23] 에아렌딜 2014.07.02 18120
125962 살 너무 뺀 스타들 [8] 가끔영화 2011.09.16 18117
125961 커플링은 오른손인가요? 왼손인가요? [4] 물망초 2011.07.01 18104
125960 농협 인터넷뱅킹 하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12] 달빛처럼 2013.10.21 18090
125959 a la mode의 유래 [5] 해삼너구리 2011.11.21 17946
125958 [공지] 듀나의 새 책 [아직은 신이 아니야]가 나왔습니다. [5] DJUNA 2013.09.18 17900
125957 30대 초반의 체감 평균연봉(=월급)은 얼마나 될까요? [28] 뚜루뚜르 2012.12.27 17860
125956 [19금] 성매매와 나이트클럽 원나잇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155] 아카싱 2010.10.05 17839
125955 [미술] 위키아트에서 그림 보니 재밌어요. [16] underground 2016.04.06 17671
125954 엔하위키의 괴담, SCP 재단. [5] mithrandir 2012.05.15 17592
125953 [듀9] 목 아플 때 찬물이 좋은가요 따뜻한 물이 좋은가요 [11] 13인의아해 2011.10.25 17502
125952 엄마 멘붕시키기.jpg [12] 라곱순 2012.01.25 17485
125951 아웃룩 닷컴... [5] theforce 2012.08.16 174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