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애니메이션 점박이...

2024.03.13 22:37

돌도끼 조회 수:204

스토리 개요:
8000만년전의 한반도는 포탈이 열려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는 온갖 고대동물들이 출몰하는 가운데, 1대1 대결에서 져서 상대방에게 잡아먹히지 않는한 어떤 대미지를 입어도 멀쩡하게 살아남는 하이랜더 공룡들이 활개치는 환타지랜드였습니다.



EBS에서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었습니다.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는 CG를 이용해 공룡의 생태를 그려낸다는, 이미 식상하다시피한 형식이지만, 다른나라에서 만든 프로그램에서는 다뤄줄 리가 없는 한국의 공룡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는 충분했죠.
근데 정작 내용이... 다큐멘터리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사실성을 확보하지 못한 환타지 애니메이션이었죠. 그래도 재미있게 봤어요. 저야 뭐 공룡만 많이 나오면 사죽을 못쓰는 넘이니까...ㅎㅎ

그 작품의 크레딧에서 오래간만에 다시 보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민병천. 영화계에서 안보인다 싶더니 분야를 바꿨던 거구나... 반갑기도 하고, 그러면서 약간의 미묘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본편이 끝나고 나서 메이킹 다큐까지 보니 의심은 거의 확신으로 굳었습니다.

허구의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내용의 본편을 방송하고 마지막에 메이킹 다큐를 보여주는 것까지, CG 공룡 다큐의 원조인 [공룡대탐험]에서 썼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한반도의 공룡]은 '한국판' [공룡대탐험]이었고... 분야는 조금 바뀌었지만 이분은 그때까지도, 외국에서 이미 했던 걸 그대로 재연하는 일, '한국의' 뭐뭐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더랬어요.
민병천이란 사람이 노력해서 이루어낸 기술적인 성취도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런 기술적인 성취가 꼭 '작품까지 같이 모방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가... 하는 건 다른 문제죠. 그 좋은 기술로 '어디선가 본듯한 것'만 만들게 아니라 좀 더 창조적인 모습을 보여줄 순 없는 건가 하고...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뭐... 어쨌든 [한반도의 공룡]은 꽤 인기를 끌었고 극장판 [점박이] 까지 나왔습니다.(극장판에서는 민병천 선생은 제작총지휘라는 직함을 크레딧에 올리고 있네요.)


[점박이]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는 [한반도의 공룡]의 이야기를 재탕하면서 거기다 추가 요소들을 섞어놨습니다. 그 추가 요소가... 디즈니의 [다이노소어]라거나 스필버그가 제작했던 [공룡시대]같은 작품들이 오버랩되죠.(그러니까... 또 '어디선가 본듯한 것들'...ㅎㅎ)

[점박이]는 형식상 다큐멘터리를 표방했던 [한반도의 공룡]과는 달리 극영화입니다. 그러니 [한반도의 공룡]에 비해 이야기에 대한 제약이 좀 덜하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잇점을 안좋은 쪽으로 활용합니다. [한반도의 공룡]도 다큐멘터리의 사실성 면에서는 함량이 아주 부족했는데, [점박이]에서는 아예 끈을 놓아버렸어요.

이 작품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정리가 됩니다. '티라노사우르스'
아니, [한반도의 공룡]에 티렉스가 웬말입니까.
픽션이니 양보해서 나올 수 있다고 치죠. 애초에 주인공인 타르보사우루스도 '한반도'의 공룡은 아니었고.(얘는 몽고출신) 그치만 단순히 나왔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티렉스가 나옴으로 해서 이야기까지 꼬여버렸다는 겁니다.

이 영화 주인공은 타르보사우루스ㅂ니다.
그전까지 나왔던 아동 대상 공룡 애니메이션은 육식공룡, 상위 포식자를 주인공으로 삼는걸 꺼렸던 편입니다. 남을 잡아먹는다는 성격상 거의 악역 단골이었죠.
상위 포식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려면 동물들이 약육강식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다같이 사이좋게 지내는 동화속 세계를 배경으로한 작품에서나 가능하겠죠.

[공룡시대]나 [다이노소어]에서도 주인공은 초식공룡이고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에게 쫓기는 구도로 진행됩니다. 그러니 (약육강식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육식공룡을 주인공으로 한 [점박이]는 나름 색다른 경우였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이렇게 색다른 선택을 했으니 당연히 거기 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짜야겠지만, 기존 작품(어디선가 본듯한 것)들의 구도를 그대로 재활용했어요.

여기서도 최상위 포식자가 악역으로 나옵니다. 애꾸눈 티렉스. 티렉스가 악역을 하기 위해 머나먼 한반도까지 출장나온 겁니다.

점박이와 애꾸눈의 대립구도는 기존 영화들에서의 초식공룡(좋은편)-육식공룡(나쁜편)의 대립구도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근데, 타르보사우루스도 육식공룡이고, 티렉스랑은 사는 동네가 다를 뿐 똑같이 상위 포식자란 말이죠. 둘이 먹이감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는 될 수 있겠지만 뭘 기준으로 좋은편 나쁜편으로 가를 수 있겠어요.

일단은 점박이가 어리기 때문에 약자라는 핑계를 대고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이 비틀어진 대립 구도는 뒤로 갈수록 괴상해집니다.

점박이는 티렉스와 랩터(얘들도 몽고에서 살던 애들...)를 사악한 존재라고 비난하면서 은근슬쩍 자신을 초식공룡들과 동화시킵니다.

초식동물 입장에서 티렉스/랩터나 타르보사우루스나 다를게 뭐가 있겠어요. 지가 무슨 근거로 초식공룡들이랑 한편인 척 하냐구요. 자기가 다른 공룡 잡아먹는 건 로맨스고 다른 육식공룡들이 그러는건 불륜인가? 육식공룡인 점박이가 푸른 원을 만났다고 좋아하는 데 이르면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가출하게 됩니다. 초식공룡(=자기 먹이감)이 많아질테니 좋아할 것 같긴 합니다만...ㅎㅎ 기존의 초식공룡-육식공룡의 대립구도를 그냥 복붙하다보니 주인공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혼동하게 된 거 같아요.ㅎㅎ


애꾸눈과 점박이의 대결구도는 그 자체로 맥이 빠지는게... 초반에 점박이가 불리할 때야 긴장감이 성립되지만... 새끼인 점박이가 성인성룡이 될때까지의 세월동안에 대립이 지속되다 보니 너무 늘어집니다. 중간에 너무 자주 만나서 뒤로가면 '쟤들 또만났네' 정도로 느껴지고... 점박이가 다 자라 장정이 되는 동안 애꾸눈이라고 나이를 안먹었을 리 없고 이게 무협지처럼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내공이 쌓여 더 강해지는 그런 세계도 아닐테고 막판에 가면 다 자란 장정 점박이가 노인노룡이 된데다 장애까지 있는 애꾸눈을 학대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단 말이죠.(어쩌면 애꾸눈은 오늘내일하는 나이였을지도...ㅎㅎ)


왜 타르보사우루스가 주인공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짐작은 가요. 공룡계의 최고 스타라고하면 두말할 것 없이 티렉스죠. 근데 티렉스는 대표적인 미국산 공룡입니다. 아무리 캐스팅하고 싶어도 제목이 ['한반도'의 공룡]인데 티렉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거고... 그래서 티렉스의 아시아 버전이라고 할 타르보사우루스를 불러온 거 아닌가 싶어요.(걔가 한반도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는 건 살짝 무시해주고...) [한반도의 공룡]은 그나마 다큐 포맷이었어서 참았던 것 같지만 픽션인 극장판에서는 정말로 티렉스를 불러와버렸네요.


[점박이]는 기술적으로 나름 성취가 있고 뭐 재미도 나름 있기는 하지만, 교육적인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올바른 시야를 가진 작품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거짓정보를 너무 많이 담고있죠. 다큐가 아니니까 다소간...의 오류를 인정할 수 있다고하기에는... 영화 여기 저기 설명형 나레이션이 잔뜩 들어가있고 스스로가 마치 세미다큐인 체 하고 있으니... 그냥 극영화로 밀고나가기로 했으면 아예 다큐 흉내를 내지 말든가요. 그니까... 재미삼아 보는건 상관없겠는데 어린친구들이 볼때는 시청지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ㅎㅎ






-'한반도의 공룡'이란 타이틀과 영화의 내용을 억지로 연결시킨다면... 공룡들이 짐싸서 다른 데로 이사간다는 게 후반부의 주내용이니까... 원래 한반도에 살던 공룡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가서 지금은 남은게 (거의) 없다....라고 하면 되겠군요. 즉, 전세계 공룡들의 원산지는 전부 한반도...(ㅠㅠ)

-주인공과 집요한 악연으로 엮여서 악착같이 쫓아다니는 티라노사우르스의 모습에서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대공룡시대]가 떠올랐습니다. [점박이]의 일본개봉제목이 [대공룡시대]던데... 혹시 일본 영화업자 중에도 저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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