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탑건: 매버릭 보고 왔습니다

2022.06.27 18:06

Sonny 조회 수: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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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톰 크루즈의 영화를 보면 이 배우가 다른 배우들과 정 반대의 전략으로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얼리티를 위해 실제 배우나 스타로서의 면모를 최대한 떨치는 게 정석이라면, 톰 크루즈는 반대로 모든 캐릭터에 톰 크루즈라는 슈퍼스타의 이미지를 덧대는 방식이죠. 이전에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도 다소 나르시스틱한 연기를 보면서 이런 연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탑건: 매버릭]을 보면서는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연기 스타일은 영화에 걸맞는 효율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슈퍼스타의 이미지를 소환하는 톰 크루즈의 연기는 썩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연기에서 감동을 전달받는 상당부분은 피트 미첼이라는 캐릭터의 밀도가 아니라 톰 크루즈라는 스타의 헌신일 것입니다. 이 영화는 톰 크루즈를 빼면 아무 것도 안남을테니까요.


매버릭이 아이스맨과 재회하는 씬은 특히 실제 배우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후두암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발 킬머의 상황을 캐릭터에 그대로 적용한 것 설정이나, 36년이란 시간을 버텨내고 속편에서 두 배우가 재회한 설정은 영화 밖 현실을 강하게 상기시키죠. 이 씨퀀스에서 이어지는 대화도 그렇습니다. 아이스맨이 매버릭에게 젊은 장교들을 파일럿으로 키워내라고 할 때 매버릭은 그걸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 때 매버릭은 울먹이면서 자신이 곧 파일럿이고 오로지 그 정체성으로만 살아와서 그걸 잃어버릴 수 없다는 식의 대사를 합니다. 전 이 대사가 톰 크루즈가 영화배우이자 제작자로서의 속내를 털어놓은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 연기에 관객으로서 감동하는 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톰 크루즈가 영화인으로서의 직업에 가진 애착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요. 톰 크루즈를 통해 매버릭을 겹쳐보는 이 슈퍼스타 필터링이 이 영화에서는 꽤나 효과적으로 작용한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자체가 곧 톰 크루즈의 영화 제작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수동으로 조종하는 파일럿들이 설 자리는 없다는 상관에게, 톰 크루즈는 그게 오늘은 아닐 거라고 대꾸하고 나갑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매버릭이 싸우는 것은 가상의 적국이 아니라 무인 조종기의 효율을 믿으며 인간을 파일럿의 자리에서 치워내려는 판단 그 자체입니다. 영화제작에서의 CG 기술을 무인드론에 대입한다면 직접 스턴트를 해가며 자신의 몸을 던지는 톰 크루즈는 비행기를 수동으로 모는 매버릭에 대입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CG 기술은 영화를 찍는데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고 이걸 굳이 거부하면서 맨몸으로 찍는 건 조금 어리석어보이죠. 그럼에도 톰 크루즈는 그렇게 찍습니다. 아무리 정교해도 속지 않는 인간의 눈을 믿고, 그렇게 헌신한 장면에서 느낄 인간의 교감을 믿기 떄문이겠죠. 


톰 크루즈의 얼굴은 관객과 영화 속의 가상세계를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리얼리티의 교두보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누구도 이게 영화인 걸 잊지 않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극장 스크린의 씨지와 실제 촬영을 딱히 구분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나기 한참 전에 톰 크루즈가 실패하거나 죽을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톰 크루즈는 그냥 헛된 공을 들인 것일까요. 조종석에 앉아서 중력을 실제로 견디는 톰 크루즈의 얼굴이, 이륙하기전 비행기에서 바깥을 향해 힘차게 경례하는 톰 크루즈의 그 손짓이 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숨을 참고 그와 다른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만드는 효과는 그가 씨지를 배제한 실제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인간으로서의 현장감일 것입니다. 관객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왜 36년이나 지난 영화를 되살려가면서, 저렇게 호화스럽고 비효율적인 실제 촬영을 고통스럽게 하는가. 영화 최대의 과제인 리얼한 감동과 고통을 톰 크루즈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현시키려 합니다. 


연기는 스타로서 하되 스턴트는 물불 가리지 않는 진짜 방식으로. 이게 톰 크루즈의 캐릭터로 자리잡았고 톰 크루즈는 또 이 톰 크루즈 장르를 구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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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을 보면서 좋았던 건 캐릭터나 영화가 꽤나 원숙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탑건 1은 이야기로는 그렇게 좋은 영화가 아닙니다. 혈기 넘치는 천재 파일럿이 심지어 친구를 죽게까지하는 사고를 일으키면서 침체되었다가 본인의 재능을 다시 한번 되살려 파일럿으로서 자리잡기를 한다는 내용이죠. 라이징 스타가 화려하게 재기한다는 내용 자체는 매혹은 있을지언정 사람이나 세계에 대한 이해는 꽤나 피상적입니다. 일종의 락스타 컴백 이야기를 해군의 비행기로 옮겨놓았는데 장면 가운데가운데에 있는 구즈와의 우정이나 아이스맨과의 라이벌 대립각은 너무 도식적이라 지금 보면 낯간지럽습니다. 탑건: 매버릭은 이 이야기에 인간미를 훨씬 더 불어넣었습니다. 탑건 1의 이후 흐른 36년이란 시간을 부여해서 말이죠. 이건 진짜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대의 청춘스타들은 노쇠해서 그 때의 매력이 없고, 파괴적이면서 자기중심적인 캐릭터들은 너무 유순해지기 때문이죠.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생각해봅시다!)


탑건: 매버릭의 이야기는 단순한 에고 뽐내기가 아니라 훨씬 더 사려깊고 프로페셔널한 이야기가 됩니다. 매버릭에게는 자신의 철없는 혈기로 친구를 죽게 한 과오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관계의 목표가 있고, 이대로 늙어가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할 수는 없다는 세월과의 대결이 있습니다. 때문에 탑건: 매버릭의 주제곡인 Danger Zone은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됩니다. 전편의 무의미한 혈기보다, 톰 크루즈라는 배우가 여태 도전해온 위험천만한 직업정신이 결합된도전정신으로 번역된달까요.


비행기 액션도 더할나위 없습니다. 중반까지 교관으로서 학생들과 전투기 조종술을 겨루는 씬들이 1편에 대한 오마쥬라면 그 이후 매버릭의 단독 미션과 실전 임무에서의 도그 파이트는 엄청난 속도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앞으로 어지간한 전투기 장면은 이 영화를 기준으로 비교당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최상의 스턴트영화입니다. 사운드가 빵빵하고 커다란 관, 아이맥스 관에 보시는 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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