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34년 묵었습니다. 1988년작이고 1시간 51분. 결말 스포일러는 구체적으로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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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아랫쪽 FBI 수배 문구까지 생각하고 보니 뭔가 코미디 영화 포스터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 뭔가 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으로 시작합니다. 큰 애랑 작은 애가 뭘 막 하고 어른 둘이 뭘 수군수군하고... 뭐 잠시 후면 다 알게 되죠. 4인 가족이 주인공인 이야기인데, 부모가 테러범이에요. 반전 평화 활동을 좀 과격하게 하느라 네이팜탄 생산 공장에 폭탄 테러를 했는데, 아무도 없을 줄 알았건만 정보가 잘못돼서 사람 하나가 다쳤죠. 당연히 지명수배가 됐는데 십수년째 도망치며 살고 있는 겁니다. 그 와중에 애도 둘 낳아서 키우고 있구요. 당연히 한 곳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고, 옮길 때마다 온 식구의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숨겨요. 저게 가능한가? 싶지만 뭐 1980년대이고 지금같은 전산화와는 거리가 먼 시절이니까요.

 

 부모야 스스로 택한 길이니 그렇다 치고, 다행히도 두 아들들이 정말 천사 같은 아이들입니다. 특히 큰 아이 리버 피닉스군은 부모의 사상도 이해하고 또 자기 인생을 이토록 피곤하게 만든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장단 맞춰주며 살고 있었는데. 뜻밖의 방향으로 문제가 생기네요.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 만난 음악 선생이 요 전입생의 뛰어난 피아노 실력에 주목해 버렸고. 명문 음대에 지원하라며 선의의 오지랖을 떨어요. 그 와중에 우리 천재 피아니스트는 그 선생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처음으로 부모의 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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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봄날이 마구 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 가득한 우리의 피아노 신동.)



 -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추억의 명화이자 인생 영화로 꼽던 영화죠. 그래서 글 적으면서 겁이 납니다. 함부로 말했다간... ㅋㅋㅋㅋ

 보통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추억의 영화'란 대략 두 가지 경우에 속하더라구요. 그 시절 영화치고 뭔가 확실하게 튀는 구석이 있어서 강한 임팩트를 남기거나. 아니면 정말로 참말로 아주아주 종합적으로 '좋은 영화'이거나요. 제 느낌에 이 영화는 대략 후자에 속하는 경우였습니다. 참 '좋은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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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좋은 비주얼이기도 하구요.)



 - 설정은 나름 좀 센 편입니다. 아무리 좋은 뜻이었다지만 어쨌든 지명수배된 폭탄 테러범들 이야기니까요. 십여년을, 그것도 자식 둘을 데리고 도망쳐다니는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또 이렇게 과격한(?) 부모 아래에서 자라난 아이의 이야기이니 되게 강렬한 갈등이 있을만도 하구요. 상황상 뭔가 막판에라도 스릴 넘치는, 혹은 파괴적인 전개가 나올 거라고 생각할만 해요. 


 근데 실제 영화의 모양새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ㅋㅋㅋ 정말 보다가 좀 당혹스러울 정도로 평화롭고 순하고 착해요. 이 부모님들은 비록 강력한 신념을 갖고 있을 지언정 진심으로 자식들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속도 깊고 이해심도 많구요. 또 자식들 역시 부모를 닮았는지 정말 참을성도 강하고 부모를 너무너무 아끼고 잘 따르구요. 이들이 이사간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다 그렇습니다. 예쁜 숲과 바닷가가 있는 풍광을 닮으셔서 다들 소탈하면서도 착하시죠. 나름 반항아인 척 하는 리버 피닉스의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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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탈하고 선량하며 행복한 폭탄 테러범 가족의 일상)



 - 그래서 영화는 초반에 던져지는 센 설정과는 다르게 '둥지를 떠날 때가 된 아기새와 그 부모'의 멜로드라마로 흘러갑니다. 서로를 정말로 아끼지만 그래도 이젠 떠날 때가 된 사람들이 결국에 맞게 되는 작별에 대한 이야기죠.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이고, 또 부모도 자식들도 다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운 '좋은 사람들'이니 폭탄 테러범 가족이라는 설정과 관계 없이 쉽게 이입하게 됩니다. 큰 자극 없이 밋밋하다시피 한 영화의 잔잔한 드라마도 오히려 이런 보편성을 강화시켜 주는 느낌이구요. 저는 외모도 피닉스가 아니고 극 중의 피닉스 같은 재능을 가져 본 적도 없으며 효심도 그만 못한 평범 그 자체 청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입이 되더라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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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 놈아가 피아노 신동만 아니었어도 이 가족은 다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었...)



 - 그렇다고해서 영화의 센 설정(?)이 사족 같은 건 아닙니다. 이렇게 선량함으로 가득한 영화가 대책 없이 착하고 건전하기만 한 영화로 흘러가는 걸 막아주며 독특한 현실감을 부여해 주죠.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분명히 리버 피닉스이지만, 그보다 들여다볼 거리가 훨씬 많은 게 이 테러리스트 부모들이거든요. 


 일단 그냥 빚어진 모양 자체가 훨씬 입체적이에요. 이 둘은 참 좋은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엄연히 폭탄 테러로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한 양반들이구요. 둘의 관계도 그리 단단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자기 주장이 살짝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고, 엄마는 예전의 다른 인연에게 마음을 두고 있죠. 십 수년 전에 저질러 버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명 공동체가 되어 버렸고, 그런 측면에서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이지만 그냥 타고난 천생연분 같은 거랑은 달라요. 꾸준히 서로 노력하며 관계를 유지해가는 사람들이랄까요. 뭐 그렇죠. 그게 현실 세계 어른의 삶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이 부부가 현실적인 느낌을 불어넣는 가운데 이들이 의지하는 저항 조직(?)의 이야기가 조금씩 끼어드는데. 그 비중이 아주 절묘해서 메인 스토리를 침범하지는 않으면서 나름의 독특한 디테일을 추가해줘요. 결과적으로 메인 스토리에 현실성을 더해주는 느낌도 들구요. 잘 짜여진 각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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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생긴 아들래미보다도 내내 이 분들의 이야기에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사진이 좀 민망해서 죄송. 둘만 나온 짤이 이것 밖에...;)



 - 참으로 여유롭고도 평화로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전개 속도도 아주 느긋하구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골 동네의 평범한 듯 하면서도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이 그런 분위기를 받쳐 주고요. 거기에 또 아주 훌륭한 음악 활용이 힘을 더합니다. 주인공이 피아노 신동이니 당연히 피아노 연주도 여럿 나오구요. 얘네 부모가 또 음악을 사랑해서 팝 음악 활용도 나오구요. 그냥 음악을 맡은 토니 모톨라의 메인 테마도 좋구요. 근데 그러면서도 곡들이 '이 장면은 내가 주인공이다!!'라고 튀어나오지 않고 조화롭게 잘 스며들어요. 아주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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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기 전엔 당연히 반항아 캐릭터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속 깊고 정 많고 착실한 아이였을 줄이야... ㅋㅋㅋ)



 - 나오는 배우들이 다 잘 하지만 역시 이 시국에 이 영화 얘길 한다면 리버 피닉스 얘길 해야겠죠. 굳이 이런 식으로 생각 안 해도 리버 피닉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영화이기도 하구요.

 참 잘 합니다. 반짝반짝하는 그 잘생김이 한동안 그렇게 확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잘 해요. 결국 보다보면 그게 화면을 장악해 버리긴 합니다만. ㅋㅋㅋ 암튼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청소년 역할인데, 뭔가 디테일이 좋습니다. 표정이나 몸짓, 말투 같은 것에서 꾸준히 어떤 디테일 같은 게 느껴지는데 그게 캐릭터의 느낌을 잘 살려줘요. 실력 있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되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었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이 분의 빠른 사망이 이 영화를 보는 데 더 아련한 기분을 얹어주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걸 빼고 봐도 재능 있는 프로의 성실한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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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렇게 짤로 보면 너무 안 평범해 보여서 개연성 파괴 느낌이 좀 있습니다. 영화 볼 땐 괜찮았는데요. ㅋㅋㅋㅋ)



 - 뭐... 솔직히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이런 '좋은 영화'는 평소 제 취향이 아닌지라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ㅋㅋㅋ

 계속 말하지만 참으로 선량하게 '좋은 영화'구요. 누구나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소재를 설득력 있게 다듬어서 내놓은 영화였구요.

 좋은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 평이한 척하면서 은근히 센스 있는 각본, 이야기에 어울리게 잘 활용된 음악. 이런 '잔잔한 드라마'류의 영화가 수작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느긋느긋한 템포 때문에 좀 따라가기 힘들(?)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느긋하고 차분함 덕에 마지막 장면의 울림이 효과적으로 강조됐다고 생각하니 만약 보신다면 좀 참고 한 번 끝까지 보시길. ㅋㅋ

 늘 말 하듯이 제가 좋아하는 류의 영화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이 영화의 평화롭고도 애틋한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느꼈던 찡한 감정에 대해선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소감 끄읕.




 + 시작할 때 크레딧을 보고 흠칫 했어요. 음악 담당이 토'니' 모톨라인데요. 순간적으로 토'미'인 줄 알고 아니 그 양반이??? 하고 놀랐죠. ㅋㅋㅋ



 ++ 전에 다른 분이 말씀해주셔서 뒤늦게 알았는데, 여기 여자 친구 역으로 나온 마사 플림튼이 촬영 당시에 실제로도 여자 친구였다죠. 전 최근에 '매스'를 보면서 감탄했었는데, 여기서 보여주는 연기도 좋습니다. 그리고 비주얼이 참 매력적이면서 둘이 잘 어울려 보여요. 그렇긴 한데... 실제로 사귀는 사람들을 연인 역할로 캐스팅하다니 좀 재밌네요. 이런 경우가 종종 있긴 했지만 대체로 연애질 중인 두 스타의 스타 파워를 활용하는 영화들 같은 경우 아니었나요. ㅋㅋ



 +++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그만큼 뭉클했던 게 아래의 이 장면이었어요.



 사실 이 장면이 없었다면 이 글의 내용은 좀 많이 시큰둥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ㅋㅋㅋ 그만큼 맘에 들더라구요.



 ++++ 어찌보면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 마냥 딱 모든 게 적절한 순간에 끝맺어 버리는 엔딩이라는 생각이 좀 들더군요. 이후 주인공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막 순탄하거나 행복하게 흘러갈 가능성은 거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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