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아드

2023.10.08 16:09

돌도끼 조회 수:147

1987년 게임아츠에서 PC-8801용으로 발표한 게임입니다.

85년 테구자, 86년 실피드로 연달아 대박치고있던 게임아츠가 87년을 노린 야심작이었지만 실패했습니다. 왜 망했는지는... 뭐 이유가 있었겠죠. 어쨌든 실패했기 때문에 88버전 출시전에 이미 개발중이었던 X-1 버전을 제외하면 다른 기종으로 일체 이식되지 않았습니다. 현재에도 일본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명작 정도 위치입니다. 어지간한 마이너 게임도 다 올라와있는 일본어 위키에도 항목이 없고요. MSX나 게임기로도 나오지 않았으니 울나라에도 알려질 일이 없었죠.

THEXDER, 실피드를 미국에 포팅해서 크게 재미를 보았던 시에라가 젤리아드도 혹시나 싶었는지 미국에 내봅니다. 이때는 1990년. 조금 시기가 늦었죠. 미국에서도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IBM 버전이 나와준 덕에 이 게임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고, 초대박이 났습니다. 한국말고도 다른데서도 대박난 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상황으로 이 게임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썩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뭐 대박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80년대-90년대 초까지 한국 일반가정에서 컴터의 주된 용도는 '명목상으로는' 교육용이었죠. 그래서 주 이용층도 대개 중고딩들, 성인층은 컴퓨터란 물건 자체를 낯설어했죠. 그저 교육에 도움이 된다니까 비싼 돈들여서 사주셨을 뿐 본인들이 직접 다룰줄은 몰랐고 애들이 실제로 그걸로 뭘하는지도 모르고...ㅎㅎ

정부에서 그런 부모님들의 사정을 어여삐 여겼던지 교육용 컴퓨터 사업을 리뉴얼 하면서 IBM PC를 공식기종으로 지정했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잘한 일이었지만 당시 애들한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 IBM PC라니... 교육용 컴퓨터를 IBM으로 지정했다는 건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게임금지령을 내린 거나 같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IBM 게임들을 구해서 해보기는 했는데 영 재미가 없는거예요. 스타일도 완전히 달라서 낯설고. 그렇게 암흑기를 보내던 때에 젤리아드가 등장한 겁니다. 8비트 MSX 혹은 콘솔 게임과 비슷한 감각의 게임.

나온 시기를 따진다면 백만년은 지난 구시대 게임이지만, 그래도 한국 게이머들 입장에선 처음보는 게임이니 신작이었고, 당시 국내에서 IBM으로 할 수 있던 게임들 중에서는 제일 박력있고 화려한 축에 들었더란 말입니다. 인기가 없을 도리가 있나요.(당시 한국 게임 시장의 특성상 그 인기가 많이 '팔렸다'는 소리는 아니라서 판매량을 따지자면 한국에서도 사실상 쪽박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어쨌든 그당시 컴퓨터 가진-혹은 컴퓨터 학원 다니는 애들 사이에서는 폭발적 인기였죠.)


롤플레잉의 요소가 포함된 액션게임입니다. 처음 나올 당시 게임 아츠가 자칭하기로는 환타지 액션게임이라 했고, 사람들은 보통 ARPG로 보고있고 시에라는 액션 '어드벤처'라고 불렀고 요즘들어서는 매트로바니아로 분류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아무데나 끼워맞춰도 대충 맞는 거 같아요ㅎㅎ


게임의 기본적인 틀은 국내에서는 별로 안유명한 오락실 게임인 드래곤버스터를 기초로 하는 횡스크롤 칼질 게임입니다. 롤플레잉의 성장 요소를 도입하고 복잡한 미로 속에서 적을 뚜드려 패며 돌아댕기다 중간중간 만나는 NPC들한테 힌트를 얻고 뭐 그렇게 진행됩니다. 그중에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미로에서 헤매는 거라서, 갠적으로는 미로게임이라고 부릅니다ㅎㅎ

특이한 점은 게임속 고유명사들 중 다수가 스페인어라는 거(틀린 부분이 꽤 있다는가 봐요ㅎㅎ)


평화롭게 잘 살고있던 펠리시카 왕국에 이름 모를 마왕이 쳐들어와 깽판을 칩니다(마왕한테 이름이 없다는 게 일본게이머들한테는 상당히 깨는 설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ㅎㅎ 단 시에라판에는 대~충 지은 이름이 있습니다) 다들 난감해하고 있던 차에 젤리아드의 정령이라는 존재가 갑툭튀해서는 용사 하나를 던져주고 갑니다. 용사는 마왕을 퇴치하고 카보나이트틀에 갇혀버린 공주를 구해야합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대체 젤리아드가 뭔가?
보통 게임의 제목으로 붙는건 배경이 되는 세계의 이름이던가 주인공 이름이던가 때려잡는 마왕의 이름이던가 구하는 공주이름이든가 뭐 그렇잖아요.
근데, 배경 세계는 펠리시카이고, 주인공 이름은 듀크 갈란드, 마왕은 이름이 없고 공주 이름은 펠리사(시에라판은 펠리시아)입니다. 그럼 젤리아드는... 오프닝에 갑툭튀하는 정령 말고는 게임에 나오는 다른 모든 요소들이 젤리아드와는 일체의 연관이 없습니다.

이 젤리아드 정령은 오프닝에서 듀크 갈란드를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준 뒤로는 내내 코빼기도 안보이다가 게임 다 끝나고 엔딩에 또 갑툭튀해서는 듀크에게 다른 일거리가 있으니 그리 가라고 하는게 하는 역할 전부입니다. 중간에 나와서 도움을 준다든가 그런것도 없어요. 그러니 납득이 안되는 거죠. 젤리아드가 대체 뭔데 제목에 떡하니 박혀있는 거냐고. 정작 게임 내용과는 1도 관계가 없는데...

아마도 젤리아드는 알바몬 같은 일자리 알선업체의 상호인가봐요. 하는 게 딱 그렇잖아요. 용사한테 일자리 소개시켜주고는 빠져있다가 일 끝나니까 다시 다른 일터에 소개하고... 제목이 젤리아드인 걸 보면 속편 나오고 시리즈화 되면 젤리아드가 용사 회원들에게 소개하는 이런저런 일감들을 보여주려고 했었을지도...ㅎㅎ


게임이 지랄맞게 어렵습니다. 이 게임도 처음 한두판은 적당히 난이도를 낮게 잡아서 사람들을 낚았다가 뒤로 가면 사람잡는 난이도로 결국 포기하게 만드는 게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인기를 끌었으면서도 끝까지 가서 엔딩봤다는 사람은 별로 볼수 없었던...(데이터 조작해서 엔딩 바로보는 꼼수가 알려지긴 했습니다ㅎㅎ)
일반적으로 그시기에 일본 게임이 태평양 건너가면 난이도가 상승했습니다. 물건너 사람들은 그걸 좋아한다나... 시에라가 냈던 다른 게임아츠 게임들도 원본보다 난이도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젤리아드만 난이도를 원본보다 떨어뜨려놨어요. 어쩌면 시에라도 게임 난이도를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도...ㅎㅎ
그래서 시에라판이 체력과 경제력을 유지하기 더 쉽지만, 그렇다고해도 여전히 지랄맞은 난이도입니다. 미로 게임이라니까요. 체력 좋고 돈 많다고 길 잘 찾아지는 거 아니잖아요. 진짜 지랄맞은 미로예요ㅎㅎ 만든 사람들 말로는 인간 심리의 헛점을 찌르는 어쩌구...

어쨌든 뭐, 그래픽도 나쁘진 않았고 처음 한두판 정도는 패고 다니는 손맛도 괜찮았고 거기다 음악도 출중하고 지금도 심심할 때 잠깐 돌려보기엔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도스박스로 시에라 버전이 지원하는 온갖 그래픽 모드와 음원을 전부다 재현할 수 있으니 이래저래 바꿔가며 해볼 수도 있고... 흥미롭게도 VGA 256모드로 하면 나오는 그래픽이 딱 MSX2의 표준 색상을 그대로 쓰더군요. 정작 MSX2 버전은 나오지 않았지만...


음악은 어떤 음원으로도 다 좋은데 그중에서도 PSG(탠디) 사운드를 듣고는 놀랐어요. 미제 IBM 게임중에 이렇게 PSG를 빡세게 쓰는 건 처음 봤더래서... 아마도 원본이 일본 게임이었으니 PSG 잘 다루는 일본친구들이 손좀 봐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시에라는 PSG로 그런 소리 낸적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거든요.(VGA 모드의 팔레트도 그렇고 PSG 사운드도 그렇고 만약에 MSX2 버전이 나왔더라면 대충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볼 수도 있었던...)





PC88판의 오프닝이 전설적입니다. 음성지원이 되는데 8비트 컴퓨터의 좋지않은 음성합성기술과 흉악한 발연기가 플렉스되어서...ㅎㅎ


시에라판 패키지 아트는 양키센스가 폭발한 괴악한 그림... 거기보면 엉뚱하게도 털복숭이 바이킹 아재가 그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게임에 나올 일이 없는 인물인데 대체... 그치만 젤리아드가 진짜로 알바 알선업체라면 나름 이해가..... 표지에도 매뉴얼에도 나오는 거 보니 홍보모델인가보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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