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 또는 죽음의 승부

2023.10.27 13:55

돌도끼 조회 수:240

뉴트 아놀드 감독 1988년작.
미국의 전설적인 무술인 프랭크 듀크스(Dux)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하는 전기영화입니다.
...나왔던 당시에는 그렇게 홍보했던 영화죠.


지금이야 인터넷의 발달로 허위경력을 꾸며내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만 70,80년대에는 누군가 구라를 쳐도 그걸 딱히 검증할 수단이 없었기 땜에 온갖 사이비들이 횡행했습니다. 소설에나 나올법한 설정을 짜서는 자기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거죠.

프랭크 듀크스는 서양인들이 헤벌레하는 동양의 신비를 이용해 약을 팔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서양인 중 최초로 동양인들에게 인증서 받고 신비의 닌자 무술을 전수받은 초절정 고수라는 거였죠. 진짜 동양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들으면 코웃음칠 허접한 헛소리들이었지만 무지한 미국인들에게는 먹혔습니다. 글구 뭐 동양 사람들조차 닌자니 소림사니 하면서 스스로도 환타지 포장을 해서 약을 팔고 있었으니 뭐 남말할 처지도 아니었고...

듀크스는 자기의 그 무용담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고, 80년대에 쇼 코스기의 닌자 영화들과 척 노리스의 가라데 영화들을 내놓으면서 미국 무술영화의 메카쯤으로 부상한 캐논 그룹이 제작을 맡게됩니다.

주인공은 장클로드 반담.

오사원 제작/원규 감독의 영화 [특명 어벤저]에 악역으로 나와서 업계 신고식은 치루었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없었던 사람입니다.
반담이 주인공으로 낙점된 건 물론 반담의 실력 덕이겠지만, 당시 반담이 폭스에서 만드는 대작 SF 영화에 타이틀롤로 캐스팅된 상태였던 것도 한몫했다고 합니다. 캐논 그룹으로서는 어쩌면 메이저 스타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미리 찜했다고 좋아라했겠죠. 다만... 반담이 그 영화에서 얼굴도 안나오는 외계인 역할이었다는 건 몰랐다는 듯....(게다가 제작도중에 하차해서 출연진 명단에 이름도 못올렸습니다.    )

이야기 배경이 홍콩이라 상당부분 홍콩에서 촬영했고 홍콩 영화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장철의 후기작에서 무술지도를 했던 이가정이 스턴트 코디네이터(중국식으로 표현하면 무술지도)로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합니다. 대표 무술지도는 프랭크 듀크스 본인 이름이 올라와있지만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완성된 영화가 아주 끔찍했다고 합니다. 반담이 보고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이대로 개봉하면 자기 끝장난다고... 캐논 그룹의 골란 사장님도 극장개봉을 포기하고는 비디오로 직행시킬 생각이었는데 반담이 하소연해서는 [타워링]의 편집자(아카데미 수상자)를 불러와서 재편집했다고 해요. 그리고 테스트 시사회를 해본 결과 반응이 좋아서 결국 극장개봉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영화의 스토리는... 프랭크 듀크스가 이런저런 역경을 딛고 세계 최강자를 결정하는 (극소수만이 아는 비밀이지만 모르는 사람은 또 없는) 어떤 무술대회에서 우승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스포츠근성물입니다.

역시나... 어설픈 동양 지식 파편의 짜깁기로 만들어진 황당한 내용...
배경무대는 홍콩 야쿠자가 개최하는 쿠미테라는 대회이고 악당으로 나오는 건 동남아 사람처럼 생긴 얼굴에 괴상하게 읽는 한자 이름을 가지고 있고 태극마크를 달고있는 인물... 서양사람이 상상하는 동양의 온갖 이미지가 짬뽕되어 나오는 거죠.
지금 이런 영화가 나왔으면 대차게 까이고 듀크스는 바로 사기꾼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만... 이 영화 나온 뒤로도 한동안 큰소리치고 잘 살았으니... 뭐 80년대에는 그런식의 구라가 통했다는 거죠.

이야기 자체는 클리셰 덩어리, 딱히 별거 없는 흔한 이야기인데... 무술영화니까, 무술액션이 훌륭하면 되는 거죠.
영화가 이종격투기 대회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무술이 나와 볼거리는 부족하지 않았어요. 당시만해도 인지도가 낮았던 카포에라도 볼 수 있었고... 영화의 액션은 홍콩 무술팀의 참가덕인지 (당시까지의) 미제 무술영화와 홍콩 영화가 섞인것 같은 느낌이고.
글고 반담이 잘했죠. 어쨌거나 영화를 보고나면 재미가 있다고 느꼈건 없다고 느꼈던 반담에게 강한 인상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는 들인돈(캐논 영화니까)에 비하면 엄청난 대박을 쳤습니다. 그렇게 이 한편의 영화로 반담의 전성시대가 열렸습니다.

한편, 끝판왕 역으로 나온 양사에게도 이 영화는 제2의 출세작입니다. 양사는 [용쟁호투]에서 인상적인 악역(한번 보면 잊기 힘든 외모라...)으로 서양 무술영화팬들에게 눈도장만큼은 단단히 찍어놓은 사람이었고, 이 영화가 히트하면서는 아예 ([용쟁호투]에 출연했던 캐릭터명인) '볼로'를 영어 예명으로 삼아 미국 무술영화계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는 신문기사로 먼저 소개되었었습니다.
주인공이 일본무술을 하고 아주 비열하게 나오는 악당넘이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한국비하영화라고,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까지 언급이 되었죠. 올림픽을 앞두고 한창 국뽕이 차오르던 시절인데 그렇게 나쁜쪽으로 소문이 나버린 영화를 극장에 걸 용기있는 회사는 없어서 시간 좀 지난 뒤에 슬그머니 [투혼]이라는 이름으로 비디오로 출시되었습니다. 아직 비디오 시장이 아주 활성화되기는 전이었죠. 반담의 국내 극장데뷰작인 [어벤저]가 개봉한 뒤에 은근슬쩍 [어벤저]의 속편인것 처럼 위장해서 [죽음의 승부]라는 이름으로 뒤늦게 개봉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 제목을 [투혼]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죽음의 승부]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전 후자. 아무래도 비됴가 극장보다 훨~씬 오랜기간 노출되기 때문인지 [투혼]파가 더 많은듯...)

[죽음의 승부/투혼]은 반담의 첫 주연작이면서 최고작이라고 할만합니다. 이 영화에서 반담은 그뒤로 나올 영화들에서 보여줄 것들을 미리 다 보여줬죠. 이후 나오는 반담 영화의 액션들은 거의 여기서 했던 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아요. 나오는 영화마다 맨날 똑같은 액션을 또 보여주는데도 사람들은 반담 신작이 나올 때마다 또 봤네요.ㅎㅎ 그만큼 그시기에는 반담이라는 배우 그 자체가 훌륭한 구경거리였던 거겠죠.




영화의 원작자(?)인 프랭크 듀크스의 평판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모탈 컴뱃같은 게임이나 미국의 격투기 문화에도 꽤나 영향을 끼쳤고 아직도 꽤 인기가 있어서 2010년대에 리메이크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원작자의 이력이 개뻥이란게 다 까발려졌는데 이제와서 리메이크가 무슨 의미냐싶긴 한데 '쿠미테'라는 대회 이름이 그쪽에선 21세기가 되어서도 계속 먹혔던 모양입니다. 그냥 가라데 연습 코스로 스파링이라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단어인데 그게 무슨 천하제일의 무술가를 뽑는 비밀대회 이름이라니 그냥 웃기는 소리지만 걔들은 그게 신기한가보죠. 대회 제목이 '스파링'이었어도 그렇게 좋아라 했을지...
리메이크는 아직도 안나온 걸 보면 결국 무산된듯 하지만 여성판 쿠미테 이야기인 [(레이디) 블러드 파이트]가 나오긴 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에서 상해 갱두목으로 나왔던 교굉이 주인공의 일본인 사부로 나와서 좀 깼습니다. [용쟁호투]에서 교굉이 이소룡 사부로 나왔던 것 때문에 섭외한 거겠죠.

사실 반담의 캐논 영화 데뷰작은 [브레이크 댄스]ㅂ니다. 거기서 시선 확 끄는 엑스트라로 나왔죠(아마도 골란 사장님은 기억 못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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