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기구 제공


한국에서 난민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정우성일겁니다. 원래 배우로서 유명했던 그가 난민구호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펼치면서 그는 난민이슈에서도 제일 유명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들은 대다수가 반대 일색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미남스타로서 대한민국 최고의 입지를 다져놓은 사람이 하는 말조차도 이렇게 무력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난민 이슈 앞에서는 슈퍼스타의 호감도 먹히지 않는 걸 보고 이 나라가 얼마나 닫혀있는지 실감이 되더군요. 사회적으로 섬나라 70년을 지낸 여파가 이렇게 오는 걸까요. 단일민족의 환상에 젖어 살면서도 백인중심 인종주의와 결합하니 어두운 피부색을 한 난민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고깝게 볼 수 밖에요. 


이 잘생긴 사람이 난민에 대한 어떤 말을 하는지 좀 궁금해서 그의 책을 중고로 사서 보았습니다.


그의 책은 난민의 개념에 대한 소개와 난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실황을 정우성이 목격하고 기록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책 중간중간에는 난민들과 정우성이 어우러져 찍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굉장히 평이한 구성인데, 의외인 부분이라면 바로 난민의 비참한 삶을 시각적으로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의 책에는 난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저 떠올릴만한 빈곤의 이미지가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정우성과 활기차게 웃고 있고 어른들은 정우성과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런 이미지를 통해 난민이 아닌 독자가 난민을 동정하는 그런 시혜적 시선을 가지게 되는 걸 정우성을 경계했던 것 같습니다. 모 평론가가 말하던 다큐멘터리의 포르노그래피적 함정을, 이렇게 난민을 다루는 책에서 피해가는 걸 보니 영화를 오래 해온 사람이라 그런가 하는 괜한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정우성은 이 책에서 그가 난민들을 만나던 경험담 중 하나를 소회합니다. 난민 아이들은 자기가 오는 걸 굉장히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고요. 왜냐하면 난민촌에 머무르는 아이들은 놀 거리가 없어서 이렇게 외부인이 오고 인사를 나누는 게 굉장히 신나는 경험이라고 합니다. 난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우리는 아주 쉽게도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을 그저 관찰하는 수직적인 구도를 상상하지만 정우성이 직접 경험한 것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난민들의 삶은 언제나 불행이 압도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타인의 불행을 정체성으로 규정하려는, 계급적 시선이 아닌가도 싶더군요. 이들의 삶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퍽퍽하고 괴로운 가운데에서 휴식과 웃음이 중간중간 끼어있는 형태에 더 가까울 겁니다. 


정우성은 계속 이 보편성을 강조합니다. 아마 자신도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기에 더 그럴수도 있겠죠. 책에서도 자신의 그런 유년기를 언급하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난민 이슈는 구체적인 다른 이슈가 아니라 보편적인 복지 이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 나와 같은 사람인데,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 처해져서 힘들어야 할까. 이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과 선택으로 지금의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이 아닌데, 왜 이 사람들의 상황을 개인적 불운으로 치부해야할까. 아마 정우성의 책이 계속해서 난민들의 미소를 보여주는 것은 그 보편성을 실감시키기 위해서일 겁니다. 이렇게 우리와 똑같이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 웃지 못하게 되는 것을 가만히 놔둬도 될까 하고요.


그의 책 중 또 인상깊었던 건 예멘 난민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대를 분석하는 그의 시선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난민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권 문제를 투영하는 목소리들이라고요. 정우성이 난민을 깊이 이해하는 만큼, 이 이해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한테 전달할지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예멘 난민의 제주도 거주를 안전 문제로 반대하는 여성들은 그만큼 여성의 삶이 위험한 것이라는 신호일 것이고 세금 낭비와 복지 문제로 반대하는 사람은 그만큼 그 세금을 자신에 대한 복지와 연결해서 보고 있을 것이라고요. 그것이 사실이거나 거짓이라는 이야기 대신에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사람들의 가장 절박한 목소리로 듣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좀 놀라웠습니다. 이렇게까지 숭고한 태도를 제가 과연 본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마저 들었습니다. 난민의 행복이 우리와 같은 종류의 행복이라면, 난민의 불행 역시도 우리와 같은 종류의 불행이겠지요.


그의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난민이란 단어가 오히려 난민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것 같다는 인상마저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난민은 하나의 상태에 불과하지 우리와 아주 다르고 위험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우성은 거듭 말했습니다. 난민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이고 그 국가가 너무 불안정해서 일시적으로 떠나올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이라고. 돌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 거처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뭔가를 크게 빼앗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더불어 난민들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다서 서구 중심적인 인종과 종교에 대한 편견도 재고해볼만한 계기가 되겠지요.


어쩌면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질문을 대한민국 정부가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도 우리는 반대를 해야하는 것일지, 우크라나이를 위해 기도한다는 그 말을 곧바로 실천할 수 있을지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답해야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예멘 난민과 다른 난민들에 대해 가혹한 시선을 가졌던 한국인들이 우크라이나의 난민들을 통해서라도 조금 더 열린 시각을 갖길 바랍니다. 우리가 정우성의 얼굴과 키를 갖고 태어나진 못했지만 그의 마음을 본받기는 훨씬 더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https://news.v.daum.net/v/20220318201319327?x_trkm=t&fbclid=IwAR3Qi1jgvHY39sFH2S7bYVh6VC0qTB3EZvSMApncoMGXKYyxWybPQ6HF-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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