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

2023.10.07 14:59

돌도끼 조회 수:246

베데스다에서 1991년 [터미네이터2]의 개봉 시기에 맞춰서 IBM PC 용으로 터미네이터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 개봉에 맞춰 나온 게임판이라니 똥겜일 확률 99.9999%...ㅎㅎ.

그렇지만 이 게임은 [터미네이터2]가 아니고 1편을 소재로한 게임이란 반전이... 적어도 [T2]의 화제성에 묻어가려고 급조된 게임은 아닐거란 걸 알 수 있죠. 그랬다면 2를 제목에 붙이고 나왔을테니.

놀라운 사실은 이게 처음으로 나온 터미네이터 라이센스 게임이라고 합니다. 온갖 시덥잖은 영화들도 다 게임으로 꼬박꼬박 나오곤 했는데 [터미네이터] 정도의 명성을 가진 영화가 7년이나 지나서야 게임으로 나왔다는 거죠.

게임 스토리는 영화와 같습니다. 카일 리스가 되어서 사라 코너를 지키고 터미네이터를 죽이는 거죠.

또는, 터미네이터가 되어서 사라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시기에 영화를 소재로 해서 나온 게임들은 대개 제목만 다르지 게임 스타일은 다 비슷비슷했죠. 주인공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총 아니면 주먹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잡몹들을 때려잡는 거. 영화에서 따온 건 배경 설정과 미술/음악 정도고.

거기 비하면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는 영화의 스피릿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 툭 떨어진 주인공은 일단 무장부터 한 다음에 사라 코너를 찾아야합니다. 무장을 하려면 총기상에서 무기를 구입하거나 털거나(혹은 군시설을 털수도 있습니다) 해야하고 무기등 장비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하니 은행해서 대출(...)을 받거나 은행을 털거나 할수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세계는 실제 LA 시내를 베이스로 모델링한 사방 10킬로 이상의 널찍한 공간이고 이 넓은 세상을 걸어서 다 돌아다니는 건 무리니까 자동차를 훔쳐서 타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딱히 해야하는 일이나 가야하는 루트가 정해진 건 아니라 지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경찰과 일전을 치룰 각오를 한다면 비합법행위도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말한게 그다지 신선하게 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딱 GTA 스타일이죠. GTA가 GTA 스타일이 되는것 보다 10여년 먼저 나왔을뿐ㅎㅎ. 그니까 샌드박스라고 하는 계열 게임들의 조상님이 될겁니다. 지금도 샌드박스 쪽에서 베데스다가 날리고 있는게 다 이유가 있겠죠.

글고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으로 진행되어서 FPS의 원조들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이 게임은 총쏠일이 그리 많지는 않아 좀 애매하긴 한데 후속작들은 확실히 FPS가 됩니다.

출시 당시에는 타이틀 버프로 좀 팔렸다지만 그 뒤로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평론가들은 참신함에 고평가를 했고 일단 게임에 빠져든 사람들은 재미있다고들 했지만 빠져들기까지 진입장벽이 높았어요. 사용하는 키만 수십개라 거의 비행 시뮬레이션급. 그리고 일단은 액션게임인데 액션 게임으로서는 게임이 정적이고 화려함이나 박력이 좀 부족했어요.

문제는 너무 일찍 나왔다는 거. 램 1메가 미만의 AT 컴퓨터가 주류이던 시절에 샌드박스를 구현했다는 거죠. 그것도 '풀3D'로. 최대한 실행속도를 뽑아내려고 100% 어셈블리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8비트도 아닌 16비트 이상에서 100% 어셈블리는 보기드물죠. 그래도 한계가 너무 분명해서...

그래픽은 그시기에 3D 그래픽을 사용했던 다른 게임들, 비행기 시뮬레이션이나 자동차 게임들과 대충 비슷합니다. 투박한 다각형 3D 모델. 거의 상자를 겹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죠. 자동차 주행 모드에선 동시기 다른 자동차 게임들과 상당히 유사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런 사물들 뿐 아니라 그보다 훠~~~ㄹ씬 더 복잡하게 생긴 물체, 사람들까지 3D로 만들었단 말이죠. 거기다 사방 10킬로 정도의 방대한 지형을 1메가 미만 메모리에 쑤셔넣어야하니 복잡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사람들은 질량이 있어보이는 3D 모델이라기 보다는 2D 폴리곤처럼 보입니다. 꼭 색종이를 오려붙여 만든 것 같은. 기술적으로 따져보면 상당한 결과물이지만 당시로서도 사람들 이목을 잡아끌만한 외양은 아니었습니다.(저도 처음 봤을 때 그래픽이 구려서 접어버렸던...) 다음해에 나온 [어둠 속에 나홀로]가 사람들에게 신기하다는 느낌을 줘서 바로 관심을 끌었던 것과는 달리...
글구 게임내내 하는 일 대부분이 길거리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는 거고 액션도 그렇게 익사이트하지는 않아서 가게에 진열된 게임 데모 혹은 남이 플레이하는 걸 보고는 '아 이거 재미있겠다 나도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들 과는 아니라는...

그래서 대히트까지는 하지못했습니다. 100% 어셈블리라는 것도 악재였는데 다른 기종으로 이식이 안되었음은 물론, 이 게임 이후에 나온 고속 CPU에서도 실행 안되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도스박스가 나왔던 초기에도 실행하기 까다로운 게임들 목록에 있었죠. 그러다보니 고전게임들이 활발하게 재조명되던 시기에도 타이밍을 못맞춰서 현재까지도 듣보라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듯...


너무 일찍 나왔던 게임이니 현재의 기술로 리메이크를 했음하고 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게 영화 라이센스 게임이다 보니 힘든듯 합니다.




베데스다는 이왕 얻은 터미네이터 라이센스, 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후속작들을 내면서 각각 다른 스타일들을 시도했지만 묘하게도 콩라인스런 테크를 타게되었다는... [둠]과 거의 동시기에 나온 [둠] 스타일 게임 [터미네이터 램페이지]라든가... 풀 3D FPS로 만들었던 [터미네이터 퓨쳐 쇼크]가 나중에 나온 [퀘이크]의 임팩트에 묻혀서 잘 거론도 안되고 있다든가... 그래서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 게임들은 FPS의 역사에 큰 기여를 해왔음에도 썩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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