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2시간 4분. 스포일러는... 막 구체적으로 드러내진 않겠지만 크게 신경 안 쓰고 적겠습니다. 엔딩이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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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란의 사랑'이라는 한국 제목... 도 솔직히 나쁘지 않아요. 그 시절 한국인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자연스레 나올만한 제목이 아닌가 싶어서요. ㅋㅋ)



 - 파티장에서 나오는 젊은 커플, 세일러(니콜라스 케이지)와 룰라(로라 던)의 행복한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근데 다짜고짜 왠 남자가 접근해서 '마리에타가 시켜서 널 죽여주겠다!'고 외치고. 세일러에게 두들겨 맞고 죽어요. 그리고 그 마리에타라는 사람은 룰라의 엄마네요. 세일러는 바로 감옥에 가고, 출소하자마자 룰라를 찾아갑니다만. 마리에타는 여전히 '이 만남 절대 반댈세' 모드이고 그래서 둘은 도망칩니다. 하지만 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사실 다른 이유도 있고 그게 더 크지만) 마리에타는 자기 애인 겸 시다바리 같은 아저씨를 시켜 둘을 추적하게 하고. 둘은 그 추적으로부터 도망치며 로맨틱한(?) 미국 유람을 시작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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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잡지, 기사 등에서 수백번은 봤을 그 짤! 아마 노래도 머릿 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분들이 많겠죠.)



 - 데이빗 린치가 한창 핫하던 시절에 나온 영화였죠. 그 버프를 받은 덕인지 깐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도 받았지만 '이게 맞나?'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덕택에 한국에 수입되어서도 당시 들끓던 씨네필 워너비들에게 매우 사랑 받았고 저도 덩달아 봤고 심지어 재밌게 봤어요. 다만 뭐랄까... 그냥 "우왕 ㅋㅋㅋ 진짜 깬다!! ㅋㅋㅋㅋㅋ" 대략 이런 식으로 재밌게 봤을 뿐 머릿 속엔 물음표가 수백 개... 그렇게 흘러간 영화였는데요. 왓챠에 있는 걸 옛날 옛적에 찜해두고 방치하다가 '지금 다시 보면 뭐가 좀 이해가 되려나?'라는 맘으로 다시 봤습니다. 그 결론이야 뭐 이미 제목에 적어놨구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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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벨로 로셀리니가 예쁘고 매력적인데 어딘가 비정상, 비현실적 느낌의 배우... 라는 소릴 들었던 게 린치 영화에 나와서일까요, 아님 원래 그래서 린치 영화에 잘 나왔던 걸까요. 종종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ㅋㅋ)



 -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를 설명하자면 뭐, 기본적으로는 되게 평범합니다. 영화 자체는 되게 괴상하지만 그 괴상함을 대충 걷어내고 이야기의 틀만 생각해보면 그래요. 결국 순수한 젊은이 커플이 세상으로부터 허락 받지 못해 도피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구요. 나중엔 본의가 아니게 어두운 일에 살짝 발 한 쪽만 걸쳤던 과거가 있던 남자 쪽이 '딱 한 번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뭐 이런 식이죠.


 게다가 이 주인공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나이브하기 짝이 없어요. 둘 다 그냥 '착하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룰라 쪽은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나쁜 일 하는 게 하나도 없구요. 세일러 역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찬가지에요. 도입부의 살인은 정당 방위였고 그래서 감옥 간 죄목도 과실 치사였죠. 이후로도 남이 먼저 도발하지 않으면 싸움도 안 하구요. 마지막에 범죄에 가담하는 건 잘 한 짓이 아니지만 그것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악당'이 할만한 일은 하나도 안 합니다. 게다가 본인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싹 다 법적으로 책임을 지는 책임감의 남자이기도... ㅋㅋㅋㅋ


 결정적으로 그 유명한 엔딩은 어떻습니까. '나는 내 취향에 당당하고 쪽팔림 따윈 없다!!!'라고 외치는 린치옹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참으로 과격하게 로맨틱한 그 엔딩 말이죠. 제 정신인 영화 감독이라면 절대 꿈도 안 꿀 듯한 파격적 엔딩이지만 그 막나가는 장면들에는 일말의 놀림이나 농담 기운도 없구요. 그냥 다 진심입니다. 결국 이건 순수한 로맨스물인데 다만 그걸 만든 게 데이빗 린치이고, 이 양반이 자기 취향을 팍팍 넣어서 만들었을 뿐... 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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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면만 해도 당시에 볼 땐 정말 괴상하고 웃겼는데. 다시 보니 그냥 라디오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꿈도 희망도 없는 뉴스에 분노하는 의로운 청춘들을 애틋하게 보여주는 장면 아닌가 싶었구요.)



 - 그리고 또 가만 생각해 보면 주인공들은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다 저 세상 취향이긴 하지만 정작 실제로 보이는 행동거지들은 그렇게까지 괴상하지도 않아요. 많이 대책 없는 놈들이지만 그렇게 큰 일을 막 벌이지도 않구요. 그리고 그 '주고 받는 이야기'들도 말투가 안드로메다 화법이어서 그렇지 내용을 들여다보면 격하게 건전합니다. 룰라 캐릭터는 늘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구요. 세일러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행복한 시간 보내면서 그대로 오래오래 잘 사는 것 외엔 관심이 없는 불타는 사랑꾼일 뿐이죠. 보통 영화에 나오는 순수하고 착한 커플 치고는 지나치게 섹스를 좋아하긴 하는데 그게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ㅋㅋ


 그러는 와중에 '기괴하고 음침함'을 드러내는 건 이들을 뒤쫓고 막아 서며 방해하는 악당들입니다. 자꾸만 마녀의 형상으로 주인공들에게 어른거리는 룰라 엄마. 룰라 엄마를 돕는 척하며 옭아 매는 악당 산토스. 그리고 막판에 등장해서 그냥 대놓고 악마 흉내를 내는 윌렘 데포의 캐릭터라든가... 이쪽 편에는 확실히 정상이 하나도 없고 다 데이빗 린치 식의 변태, 막장 군상을 보여주죠. 그게 상당히 강렬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주인공들과는 분명히 선을 긋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악역'들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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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에 스타킹 뒤집어 쓰고 벌칙 게임 수행중인 데포 옹. 혹시라도 스크롤 내리다가 놀라신 분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 드립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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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룰라 엄마는 뭐 그냥 시작부터 끝까지 충격과 공포의 연속입니...)



 - 그래서 장면 하나하나의 디테일과 의미 해석, 분석 같은 건 일단 신경 끄고 심플하게 이야기와 캐릭터들 구도만 놓고 보면 정말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거칠고 험한 세상'을 상징하는 악당들에게 쫓기는 순수한 젊은이들이 애틋하게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하며 고난과 역경에 맞서 나가는 스토리인 거죠. 그걸 최대한 낭만적으로 아름답게 그린 영화인데, 이미 했던 말이지만 그걸 그 시절 데이빗 린치 취향대로 남 눈치 안 보고 만들어 버리니 괴상한 아트 필름 같고. 난해한 것 같고. 내가 뭘 이해하지 못하고 놓친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들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니 물론 '아 이건 무슨 의미지?' 싶은 장면들이 엄청나게 나오고 그 중 상당수는 실제로 의미가 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인용하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디테일들이라든가. 중요한 상황마다 튀어 나오는 불꽃의 이미지라든가. 또 주인공들의 대화 속, 여행길 속에서 등장하는 심히 상징적인 이런저런 사건들이라든가. 당연히 의미가 있겠고 그걸 따져보는 게 영화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냥 심플하고 쉽게 봐도 충분히 성립이 되는 이야기이고, 또 그렇게 봐도 재미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굳이 이런 걸 강조하는 건 제가 이런 거 해석을 못 하니까... ㅋㅋㅋㅋ 정 궁금하면 이미 똑똑한 분들이 30년간 정리 해 놓은 것들 찾아 읽으면 될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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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가장 괴상하면서도 쌩뚱맞았던 건 이 장면인데요. 장면 자체도 기괴하지만 이 인물들이 이 장면 이후로 아무 설명 없이 그냥 안 나온다는 게 가장 괴상했...)



 - 자꾸만 튀어 나오는 과격한 장면들과 기이한 유머 코드들 때문에 그 시절에 유행했던 그냥 막 나가는 코미디 영화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면도 있는데요. 그런 영화들과 이 영화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면, 이 영화의 그런 과격함과 기이함은 튀거나 막 나가서 쇼크를 주기 위한 게 아니라 그냥 린치의 진심으로 느껴진다는 겁니다. 뭐 이미 이 사람 영화와 드라마를 수십년 째 지켜봐 왔으니 드는 생각이긴 합니다만. 뭐 그래요. 


 보통의 다른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네 사고 방식은 신의 미스테리야!' 라고 말한다면 그건 웃기자는 농담이겠지만, 이 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로라 던에게 그렇게 말하면 그냥 진심어린 찬사이자 애정 표현으로만 보이거든요. 그리고 엔딩 직전에 등장하는 천사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린치가 그걸 웃기자고 그렇게 연출했겠습니까 아님 걍 그게 좋아서 그렇게 찍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후자 같잖아요. ㅋㅋㅋㅋ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니 영화가 제법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 풍진 세상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순수함과 정직함,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 뿐인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하는 영화도 의외로 흔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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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쉐릴 펜이 짧게 나오셨는데요. 트윈 픽스의 인연인가? 해서 확인해보니 뭐... 그게 맞을 것 같긴 한데, 드라마 첫 공개와 영화 개봉까진 4개월 밖에 차이가 안 나네요.)



 - 그래서 결론은 뭐.

 영화 속 모든 장면을 일일이 이해하겠다는 야심(?)을 버리고 그냥 가볍게 복고풍 로맨스로 즐겨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 라고 생각합니다.

 쓸 데 없이 야하고 괴상한 게 자꾸만 끼어들어서 정상 취향(?)의 관객들에겐 좀 거시기 할 수도 있겠지만 린치 스타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마저도 충분히, 그것도 가볍게 즐길 수 있겠구요.

 케이지의 그 케이지스런 똘끼 연기도 즐겁고, 로라 던이 철 없는 어린 여자애 연기하는 걸 2023년에 보니 참 신기하고 귀엽기도 했구요. ㅋㅋ

 애초에 그 시절에도 '린치답게 난해하긴 하지만 많이 쉽고 나이브하게 만든 영화'라는 평이 많았었죠. 저도 대충 비슷한 느낌이었고, 그게 맘에 들어서 재밌게 다시 봤습니다. 어차피 2006년 '인랜드 엠파이어' 이후로는 극장용 장편 영화는 아예 손 놓고 사시는 양반이니 이 분 스타일 생각나면 이렇게 옛날 영화라도 다시 파 봐야죠. 암튼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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