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생입니다. 런닝타임은 2시간 1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모션 픽쳐'!!! 이 표현도 요즘 어디서 들어본지 참 오래 된 것 같구요.)



 - UBS 티비라는 방송국이 있습니다. 그 곳의 간판 앵커맨 '빌'이라는 양반이 있구요. 한 때는 방송계 거물로 잘 나갔지만 이제 퇴물이 됐어요. 시청률도 망했구요. 결국엔 해고 통보를 받는데, 보도국장이자 오랜 친구 '맥스'와 술 한 잔 거하게 걸치고 방송에 나가 사고를 치죠. "나 시청률 땜에 잘렸어. 2주 뒤엔 퇴사하라는데 걍 1주일 뒤에 방송 나와서 권총 자살할래." 라고 말 해 버린 겁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렇게 냅둘 리는 없겠죠. ㅋㅋ 이 사건은 어마어마한 이슈가 되고, 마침 대기업에 인수되어 '망한 시청률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에 목매달고 있던 높으신 분들은 빌을 써먹어서 방송국을 살려낼 작정을 하고. 실적에만 목숨 거는 탐욕스런 리더 '프랭크'와 삶의 어떤 것도 재미가 없고 오로지 티비와 시청률에만 집착하는 능력자 '다이애나'가 빌에게 달라 붙어 참으로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이 분이 그 '빌'이구요.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사람이 주인공은 아닙니다. ㅋㅋ 근데 제가 되게 옛날식 연기 느낌 낭낭한 짤을 골랐군요.)



 - 80년대 영화에 80년대 특유의 분위기가 있듯이 70년대 영화들에도 그 시절만의 톤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일단 당연히 그 시절의 복식이나 생활, 문화 같은 게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있겠습니다만. 뭐랄까... 50~60년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고전적인 느낌이 있어요. 대사들도 그렇고 배우들 연기 톤도 그렇구요. 그러고보면 80년대가 미국은 정말 큰 문화적 격변기가 아니었나 싶구요. 게다가 배우들이 말이죠. 정말로 '고전 영화'에 나오던 분들이 이때까지는 다수가 활동을 하고 계셨거든요. 이 영화만 해도 무려 윌리엄 홀든이 나와요. ㅋㅋ 그 외에도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을 검색해 보면 흑백 사진이 컬러 사진보다 더 많이 나오는 배우들이 반 이상입니다. 


 ...근데 이런 얘길 하다 보니 '고전 영화'란 게 무엇인가. 라는 뻘생각이 또 드네요. 1976년이면 이미 47년 전, 거의 반세기 전 영화인데요. 그럼 요즘 젊은이들은 '고전 영화'라는 걸 어떤 개념으로 생각하는가... 같은 쓸 데 없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만. 이런 얘긴 이만 하구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그리고 그 47년 전에도 이미 듀발옹의 머리 숱은... 죄송합니다;; 근데 이 분 이제 92세이신데 작년에도 영화가 나왔고 지금도 하나 준비 중이에요. 뤼스펙!)



 - 그렇게 옛날 영화이다 보니 지금 보면서 좀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티비가 우릴 다 멸망 시킬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인데요. 사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 무시무시한 티비(정확히는 티비 방송)님께서도 거의 죽어가고 계시잖아요. 뭐 그렇다고 해서 50년 전 시드니 루멧의 예측(각본은 다른 분이 쓰긴 했습니다만)이 빗나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그냥 '요즘엔 누가 유튜브 킬드 더 티비 스타, 테레비 GAGA  같은 노래 안 만드나' 하는 뻘생각을 했구요. 음. 또 이상한 얘기만 하고 있군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언젠간 이런 풍경을 영화나 자료 화면으로만 접하며 신기해하는 세대들도 생기려나요. 아직은 그 정돈 아닙니다만.)



 - 현실성 같은 건 살짝 접어 두고 아주 극단적으로 치닫는 풍자극이자 블랙 코미디입니다.

 시작을 장식하는 기본 설정도 세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면 흘러갈 수록 문자 그대로 점입가경, 현실에선 절대 벌어질 가능성이 없는 방향으로 신나게 달려가요. 빌을 데려다가 단독으로 쇼를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극중에 등장하는 '모택동 타임'이라는 프로그램은 정말로... ㅋㅋㅋㅋ 결말 또한 그렇죠. 막 방송국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리면서 건조하게 전개되는 사회 비판물 같은 걸 생각했다가 좀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그렇다 보니 당연히 캐릭터들도 되게 극단적입니다. 일단 빌만 봐도 처음엔 그냥 술 먹고 사고 친 원로 방송인이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영문을 알 수 없는 괴인이 되어 끝까지 폭주하구요. 로버트 듀발이 맡은 악덕 경영인도 만만치 않은 가운데 페이 더너웨이가 맡은 다이애나라는 인물은 진짜... ㅋㅋ 다 할배들만 나오는 와중에 왜 젊은 여성 캐릭터를 끼워 넣었을꼬... 했더니 '날 때부터 티비와 함께 자라고 티비에 절여져서 세상을 티비로 배운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등장해서 정말 극악에 가까운 인성 파탄 플레이를 보여줍니다. 뭐 그래서 구경하는 재미는 가장 강한 캐릭터였고, 배우가 또 잘 해줘서 좋긴 했지만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사실상의 주인공은 윌리엄 홀든의 맥스 캐릭터입니다만. 가장 임팩트 강한 건 페이 더너웨이 캐릭터였어요. 캐릭터도 세고, 배우도 잘 했고.)



 - 그래서 영화는 런닝 타임 내내 티비에 지배당하는 사회와 인간들의 모습을 살벌하게 보여줍니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 라는 티비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비윤리성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거기에 저항해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란 게 얼마나 무력한지. 덧붙여서 그렇게 티비에 뇌가 절여진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고도 섬뜩해질 수 있는지. 그런 걸 열심히 보여주는데요. 


 글 첫머리에도 얘기했듯이, 지금은 티비도 망한 시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젠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은 사실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플랫폼이 달라졌을 뿐 시청률에 목숨 거는 티비 프로그램이나, 조회수에 목숨 거는 유튜브 채널이나 근본적으로는 같으니까요. 플랫폼이 달라지면서 디테일들은 좀 변한 게 있어도 큰 틀에선 그게 그거, 큰 차이는 없다는 거죠. 여전히 컨텐츠 제작자들은 화제성과 시청률에 목숨을 걸고서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애를 쓰고. 그 자극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신의 뇌를 그쪽에 의탁하고서 수동적인 존재가 되구요. 또 이런 현실에 경종을 울리려는 사람들 역시 그 플랫폼을 이용하며 화제를 끌어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 결국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뭐 이런 식의 이야기에요.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스포일러라 설명은 못 하겠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고 웃기는 장면입니다.)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스포일러라 설명은 못 하겠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고 웃기는 장면입니다. 2.)



 - 아마도 요즘 관객의 입장에서 어색하거나 이건 좀... 싶을 수 있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여기에 윌리엄 홀든과 페이 더너웨이 캐릭터들의 러브 스토리가 펼쳐지거든요. 일단 홀든이 1918년생인데 페이 더너웨이는 1941년생입니다. 23살 차이... 하하.

 아니 뭐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이 둘의 관계를 끝까지 보면 역시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필요한 설정이라는 게 분명하구요. 또 둘의 관계가 전혀 아름답지도, 낭만적이지도 않게 그려지거든요. 오히려 그 반대죠. 또 티비 세대 vs 티비 전 세대의 차이를 보여주는 관계이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야 맞기도 하구요. 하지만 어쨌든간에, 좀 그렇긴 했습니다. ㅋㅋ 윌리엄 홀든은 노년에도 멋져 보이시지만 아무리 그래도 30대의 페이 더너웨이가 뭐 음 암튼. 그랬구요.


 덧붙여서 홀든의 캐릭터 자체가... 좀 그렇습니다? ㅋㅋ 이 분이 페이 더너웨이 캐릭터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대사들을 들으면서 '아 그러니까 이게 이런 메시지로 연결되는구나'라고 납득하면서도 동시에 '근데 너님이 그런 훈계 늘어 놓으실 입장은 아니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어요. 하지만 뭐 반세기 전 영화니까...



?scode=mtistory2&fname=https%3A%2F%2Fblo

 (이 짤은 더너웨이가 극중 모습보다 나이 들어 보이게 나와서 좀 낫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참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ㅋㅋ)



 - 암튼 재밌습니다.

 의외로(?) 전개도 빠르고 영화 속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와다다 벌어져서 지루할 틈도 없어요. 제가 도입부만 보고 'ㅋㅋ 대충 이런 얘기겠구먼?' 이라고 예상했던 것에서 '대충 이런 얘기'가 거의 30분만에 끝나 버려서 당황했네요. 감독님 각본가님 본의 아니게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ㅠㅜ 

 윌리엄 홀든, 페이 더너웨이, 피터 핀치, 로버트 듀발, 네드 비티 등등 배우들과 연기 구경하는 재미도 상당히 좋고. 또 본격적으로 극장 영화 만들기 전에 오랜 세월 티비에서 일했던 시드니 루멧의 경험이 반영된 듯한 방송국 풍경 구경도 디테일이 많아서 구경하는 맛이 있어요.

 뭣보다 이야기가 기대보다 많이 강력합니다. 요즘 영화들과 비교해도 모자랄 게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거의 한계까지 내달리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사회 풍자극이지만 '그냥 세게 막나가는 재밌는 영화' 같은 걸 기대하고 보셔도 아마 괜찮으실 겁니다. ㅋㅋㅋ 저도 그랬구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 다 좋은데 아주 드물게, 두어번 정도 자막이 깨져서 안 보이는 부분이 있더군요. 중요한 대사는 아니었습니다만, 좀 당황스러웠던.



 ++ 등장 인물들 대사 속에 그 시절 고유명사나 정치, 사회적 상황들이 많이 나와서 다 보고 나서 검색도 많이 해보고 그랬습니다.

 나름 중요한 소재로 과격파 테러 집단이 등장하는데, 거기에선 최근에 본 '포커페이스'의 어떤 에피소드 생각도 나고 그러더군요. 미국 현대사도 참 파란만장해요.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빌런들이 런칭한 빌의 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초대박이 나고 회장님도, 경영자도, 편성 담당자도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빌의 친구인 맥스, 그러니까 윌리엄 홀든님은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지켜 보려고 (빌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라고 외치며) 버티다가 결국 해고를 당합니다. 그런데 쌩뚱맞게도 편성 담당자 다이애나(=페이 더너웨이)가 접근해서 옛날부터 팬이었다며 유혹을 하고, 맥스는 젊고 섹시한 후배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서 나중엔 아내에게 쫓겨나 동거까지 하네요.


 하지만 모든 것에는 철이 있는 것. 결국 빌의 쇼는 인기 하락을 겪고, 시청률 측면에서 방송국의 짐짝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티비와 일만이 마이 라이프! 인 페이 더너웨이는 극도의 히스테리 상태가 되고. 그런 애인을 보며 맥스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떠나갈 결심을 합니다만. 그렇게 떠나가면서 뭔가 유체이탈스런 충고를 잔뜩 해주네요. 니가 모든 걸 다 티비 컨텐츠로 생각하며 살아서 그런지 우리 관계도 삼류 티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되어 버렸다. 하지만 해피엔딩이지. 난 젊은 여자에게 홀딱 빠져 일생을 함께한 아내를 저버린 모자란 남자지만 이제 후회하고 반성하며 돌아가 현실의 삶을 살 테니까. 넌 스스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계속 세상을 티비처럼 생각하며 불행하게 살게 될 거다. 라나요. ㅋㅋ 암튼 이게 나름의 '일침'이어서 더너웨이이 캐릭터는 살짝 충격을 받지만, 역시나 뭐가 문제인지,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서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그때 걸려 온 업무 전화를 받으면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갑니다.


 근데 이 타이밍에 회장님께서 빌이 방송에서 하는 말들이 맘에 든다며 절대 프로그램을 없애지 말라고 교시를 내려 버려요. 이 지령에 깊은 고민에 빠진 경영진들은 모여서 회의를 하다가, 누군가가 농담처럼 내뱉은 '우리 방송(=모택동 타임!)에 출연하는 테러 조직 애들한테 부탁해서 걍 죽여 버리면 되겠네'를 실행에 옮깁니다.

 그래서 계획된대로, 생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빌은 방청객으로 위장해 들어온 두 남자에게 총을 맞고 즉사하구요. 카메라는 총을 맞고 쓰러진 빌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비춥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진 빌의 모습이 나오는 티비 모니터와 광고 방송이 나오는 티비 모니터, 그 사건을 전하는 뉴스가 나오는 모니터 등등을 동시에 보여주며 뉴스 프로그램 클로징 음악 비슷한 것이 흘러나오며... 엔딩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7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1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27
124627 [질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1] 잔인한오후 2023.11.01 654
124626 박찬대, 최고위서 경기도 서울 통폐합 주장 천공 영상 재생 “설마하고 찾아봤는데” [5] 왜냐하면 2023.11.01 428
124625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2] 조성용 2023.11.01 468
124624 [왓챠바낭] 제목 한 번 난감한 '더 다크: 그날 이후 난 사람을 먹는다'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3.11.01 354
124623 이것저것 본 잡담 (그어살, PLUTO 등) [13] DAIN 2023.11.01 410
124622 만달로리안을 뒤늦게 보는데(대충 아무 소리입니다) [4] 해삼너구리 2023.10.31 308
124621 플옵 2차전 껐습니다 daviddain 2023.10.31 165
124620 에피소드 #61 [2] Lunagazer 2023.10.31 73
124619 요즘 드라마 출연 배우들의 ost(이두나, 무인도의 디바) [3] 왜냐하면 2023.10.31 287
124618 프레임드 #599 [2] Lunagazer 2023.10.31 71
124617 준PO 3연패 탈락' SSG, 김원형 감독과 계약 해지…"변화와 혁신 필요" [공식발표] daviddain 2023.10.31 138
124616 한동수 “윤석열, 검찰총장 때 ‘육사 갔으면 쿠데타’ ”검찰의 역사는 '빨갱이' 색출의 역사" 왜냐하면 2023.10.31 237
124615 법정 드라마를 보며 잡생각입니다. [4] thoma 2023.10.31 277
124614 [넷플릭스바낭] 점점 더 마음에 드는 아들 크로넨버그, '인피니티 풀'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10.30 483
124613 챗 GPT 음성대화 catgotmy 2023.10.30 175
124612 망가진 신세계의 후계자 [4] 상수 2023.10.30 578
124611 Nc 무섭네요 [6] daviddain 2023.10.30 281
124610 프레임드 #598 [2] Lunagazer 2023.10.30 79
124609 용호의 결투 [6] 돌도끼 2023.10.30 189
124608 바낭 - 나는 당신의 신뢰를 깨는 중입니다, 추앙하거나 싫어하거나 [1] 상수 2023.10.30 30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