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80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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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지식 아예 없이 본다면 '아벨 페라라'라는 뮤지션이 낸 앨범 표지 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ㅋㅋ)


 - 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에 도전 중인 ‘캐서린’이 주인공입니다. 시작부터 영화의 주제를 노골적으로 들이 대는 미군의 양민 학살 사건 다큐멘터리를 보여줘요. 얘들은 왜 이런 잔인무도한 짓을 저질렀을까. 과연 책임자 하나 처치하고 국가는 뒤로 쏙 빠져 버린 게 말이 되나. 뭐 이런 대화를 친구와 나누고 혼자 귀가하던 캐서린은 거리의 성매매 여성...처럼 보이나 좀 과하게 차려 입은 분에게 붙들려서 목을 물어 뜯기고, 흡혈귀가 됩니다.

 그 다음은 뭐라 해야 하나... 이것 저것 많이 벌어지기도 하고 별다른 사건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처음엔 충격을 받구요, 거부하구요, 참아보려고 하다가 결국 사람을 물겠고. 그렇게 흡혈귀로서의 삶에 익숙해지면서 본인 전공대로 자신의 그런 행위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교수와, 친구와 언쟁도 하고... 뭐 대충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요. 철학 박사(과정) 캐서린의 흡혈 라이프 체험기랄까. 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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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왕! 나 물렸음!!! ㅠㅜ 했던 주인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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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렇게 싫으면 싫다고 하랬잖아?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함? 앙??? 하고 자신이 당한 악행을 그대로 전파하게 되는 이야기구요. )


 -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어떤 여건과 어떤 환경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천지 차이로 달라질 수 있다... 라는 건 당연한 얘깁니다만. 아마도 VHS 시대를 경험한 세대가 이런 느낌에 대해선 경험으로 가장 잘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게 VHS 테이프였거든요. 그것도 무려 14인치 소형 아날로그 티비에 물려서 봤죠. 티비의 화면비야 말할 것도 없이 옛날식이었구요. 흐릿한 기억이지만 VHS의 상태도 그렇게 좋진 않았던 것 같아요. 뭔가 흐리고, 잘 안 보이고 이랬던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그 시절 제 소감은 ‘뭔지 모르겠지만 되게 가난하고 예술적이며 어려운 영화구나’ 정도였습니다. 흡혈귀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워낙 튀는 작품이다 보니 재미가 없진 않았고 호감도 좀 있었지만, 암튼 그랬구요.

 그걸 이제 왓챠로, 커다란 티비에다가 깔끔한 화질로 감상을 하니 과연 이게 내가 봤던 영화가 맞나 싶었던 거죠. ㅋㅋㅋ 이러다 옛날에 비디오로만 본 영화들은 죄다 다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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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관련 짤들 중 가장 유명하고 자주 보이던 이미지 아니었나 싶은데. 위의 다른 사진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화 이렇게 안 흐려요. ㅋㅋ)


 - 그래서 멀쩡한 화면비에 깨끗한 화질, 적절한 명암으로 못 알아볼 구석이 별로 없는 상태로 다시 보니 이게 영상미가 상당히 훌륭한 영화였지 뭡니까. ㅋㅋㅋ 흑백 화면 파워와 폼나는 미장센, 세련된 연출 덕에 오래 묵은 영화라는 느낌도 별로 없고, 오히려 '이게 이렇게 스타일리쉬한 영화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구요. 덧붙여서 스피커도 14인치 티비 내장 스피커보단 훨씬 나은 걸 쓰고 있어서 그런지 사운드나 음악들도 임팩트 있게 잘 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영화라는 얘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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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자꾸만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헷갈리는 배우들 중 한 분! ㅋㅋ 그래도 이젠 안 헷갈리고 잘 구분합니다. '숏컷' 덕분인가 봐요.)


 - 영화가 참 어려운데 동시에 쉽고 그렇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철학과 박사 과정이고, 이 양반이 마주쳐서 대화하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교수거나 같은 대학원 동료거나 그래요. 그리고 매번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사상이 소환되는 언쟁을 벌이죠. 그러니 당연히 어렵습니다. 무슨 철학 개념을 읊고 나면 꼭 간략하게 개념 정의를 해주긴 하는데, 어쨌든 그걸 머릿 속으로 정리를 해야 이해를 할 텐데 대화는 무심하게 계속 흘러가거든요. ㅋㅋㅋ 

 근데 그렇게 영화 속 모든 대사를 제대로 이해해야쓰것다! 라는 야심을 버리고 그냥 이야기의 흐름에만 집중한다면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감독님이 친절하세요. 처음에 적었듯이 시작부터 이것이 영화의 주제가 아니라면 너무 쌩뚱맞을 다큐멘터리 클립을 보여주고요. 거기에 대해서 등장 인물들이 토론을 하고요.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들 중에 중요한 사건들은 대체로 다 저 주제와 쉽게 연결이 됩니다. 

 예를 들어 캐서린을 처음 무는 뱀파이어가 물기 전에 했던 행동을 캐서린이 영화 내내 똑같이 계속해서 반복하거든요. "나더러 꺼지라고 당당하게 외쳐 봐. 너의 의지를 보여봐!!" 라고 하는데 언제나 희생자들은 공포에 질려서 적극적으로 거부를 못 하고 "제발 안 그래주시면 안 될까요 엉엉" 하다가 물립니다. 계속해서 주인공들이 '어째서 평범한 인간도 잔인무도한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으니 이런 장면의 반복이 의미하는 건 정말 뻔하다 하겠구요.
 이걸로도 혹시 부족할까 싶었는지 영화 말미에는 캐서린이 긴 나레이션으로 거의 핵심 요약 정리를 해주다시피 해요. ㅋㅋㅋ 그러니 이 영화에 언급되는 철학자들 이름도 모르고 이론도 모르는 저 같은 사람도 다 보고 나면 대충 이런 기분으로 상쾌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거죠. 상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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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쌩뚱맞은 얘기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에디 팔코는 원래 팔이 튼튼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프라노스'에서 늘 이 분의 팔근육이 부러웠...)


 - 반가운 배우들이 많기도 합니다. 전 그 시절엔 릴리 테일러도 몰랐거든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을 보기 전이었기도 했고. 암튼 이 분의 젊은 시절 모습과 열정적 연기 보는 것도 즐거웠구요. 주인공 친구로 나오는 에디 팔코, 소프라노 집안 마님의 젊은 모습은 정말로 처음 봤어요. ㅋㅋ 거기에다가 영화가 끝날 때쯤엔 마이클 임페리올리가 잠깐 나와서 더 재밌었죠. 역시 '소프라노스'로 제게 각인된 분이라. 
 그런데 정작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건 중간에 10분 나올까 말까한 크리스토퍼 워큰입니다. 사실 캐스팅부터 반칙 아닙니까. 이 분을 뱀파이어로 캐스팅이라니. ㅋㅋㅋ 게다가 이게 정상적인 뱀파이어가 아니라 많이 괴상한 뱀파이어에요. 물론 아주 사악하구요. 정말 지구에서 본인이 가장 잘 해 낼 역할을 맡아서 매우 폼나고 불쾌하면서 매력적으로 잘 해주셨네요. 이 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 10분 때문에라도 꼭 보셔야할 영화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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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팅 자체가 치트키!!!)


 - 암튼 뭐 영화의 메시지나 철학 토론 같은 부분에 대해서 제가 길게 설명할 재주와 능력은 없구요. 
 그러니까 지난 세기에 나온, 이제 30살이 다 되어가는 흑백 저예산 아트하우스 호러 영화... 이다 보니 사람들 손이 잘 안 가겠고. 또 그런 인상이 아주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영화가 진짜 뱀파이어 장르물스런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그와 비슷한 재미를 주는 순간은 다 해봐야 10분 내외거든요. 게다가 그냥 인물들이 대놓고 철학 토론을 하기까지 하니. 음... 
 근데 위에도 적었듯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아니구요. 보기 좋고 듣기 좋게, 세련되게 잘 찍어 놓은 영화면서. 또 영화가 다루는 '악의 전염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머리 굴려가며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막 지루하거나 그렇게 난해하지 않아요. ㅋㅋ 관심 있던 분들이라면 한 번 시도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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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닙니...)



 + 각본을 감독 본인이 쓰진 않았어요. 하지만 각본가님도 아마 자기가 쓰는 이야기가 어떤 느낌일지 충분히 알고 계셨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게, 중간에 크리스토퍼 워큰의 캐릭터가 한참 일장 연설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주인공에게 이러거든요. "내가 너무 추상적인가??" ㅋㅋㅋㅋㅋ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결국 주인공은 타인의 피를 빨고 흡혈귀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에 중독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것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논문도 기존의 철학 담론을 아주 과감하게 두들겨 패는 도발적인 내용으로 (적어도 영화 속에선 그렇게 묘사됩니다 ㅋㅋ) 작성해서 박사 코스도 통과하구요. 그런데 주인공은 학위 수여식날에 '축하 파티를 열겠다'며 대학 교수들과 동료들을 대거 집으로 초대하구요. 그 파티장에 그동안 자기가 흡혈귀로 만든 사람들을 좌라락 불러다 놓고서는 "내가 그동안 배우고 깨달은 것에 대해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말을 남긴 후 광란의 피빨기 난리를 칩니다. 결국 거기 참석한 사람들 전원을 죽이고 흡혈귀로 만들어 버린 거죠.

 그런데 그 뒤가 좀 갑작스럽습니다. 파티가 마무리된 후 주인공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회의가 들었는지 밖으로 나가 피칠갑을 한 모습으로 거리를 걷다가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가요. 이렇게 생면부지의 시민들과 병원 간호사의 따뜻한 호의를 받은 주인공은 병실에 걸린 십자가상을 한참 바라보다가, 간호사에 블라인드를 걷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마도 자살을 시도한 것 같은데, 그 순간에 다른 흡혈귀가 나타나서 주인공의 선택을 비아냥거리며 블라인드를 다시 쳐놓고 사라져요. 그리고 잠시 후 들어온 신부와 함 주인공은 참회의 기도를 드리구요.

 장면이 바뀌면 갑자기 주인공의 묘비가 보이고, 거기에 누군가가 꽃을 놓는데요. 주인공입니다. 그러니까 대충 죽음을 위장해서 자기 무덤을 만들어 놓고는 자유롭게 살기로 했나 봐요. 그러고 걸어가면서 마지막 나레이션을 하는데... 한 번 영화의 분위기를 느껴 보시라고 그 대사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결국 실체와 맞서기 위해 빛 앞에 서서 본성을 드러낸다. 자기 현시는 자아 소멸이다."

 하하하. 대략 이런 영화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뭐 영문 대사를 찾아보니 번역의 문제도 있긴 한 것 같은데요. 암튼 그렇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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