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후에는 거의 처음인 거 같은데 비록 1박 2일이지만 혼자 여행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행선지는 후쿠오카였구요. 


목적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위스키를 좀 사오자는 것이 첫번째, 역시 마시기 힘든 위스키를 좀 저렴하게 마셔보자는 것이 두번째 였으니 일전에 글로 남긴 적이 있는 위스키 취미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글을 다시 읽어보고 왔는데 그때와 지금은 또 상황과 생각이 달라져 있네요. 위스키 병수도 늘었고 지식도 좀 따라서 늘었고 간땡이도 부었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후쿠오카는 비행시간 1시간 남짓이라 어쩌면 제주도보다 가깝게 방문할 수 있는 타국입니다. 당일치기로 다녀 오라고 해도 딱히 무리가 없을 거 같아요.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주문해 둔 위스키를 찾고 이래저래 일본에서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다가 밤에는 나카스 환락가의 중심에 있는 바 히구치라는 곳을 방문했습니다. 


위스키 바라는 곳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대부분 칵테일을 같이 파는 그런 바입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위스키의 리스트가 무척이나 방대하고 국내에서는 마셔보기 힘든 것들을 나름 저렴하게 팔기 때문에 흥미롭고 재미있죠. 


바 히구치의 시그니처 칵테일은 직접 담근 생강주를 이용한 모스크 뮬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그걸 시키시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 다프트밀이라는 위스키를 주문했습니다. 다프트밀은 스코틀랜드중에서도 증류소가 그리 많지 않은 로우랜드 지방의 신생 증류소입니다. 보리를 키우는 과정부터 병입까지 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작은 증류소라 소량 생산이 기본이고 프리미엄이 어마어마하게 붙는 위스키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직구해야 하는데 세금 붙으면 거의 한병에 60만원이 넘고 그마저도 구하기가 힘들어 운이 따라줘야 하죠. 


그래서 다프트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긴 했지만 직접 보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다프트밀은 버번캐스크도 있고 셰리 캐스크도 있는데 바에 있는 건 두 병다 버번 캐스크였습니다. 버번캐스크에 숙성 시킨 위스키는 대부분 아메리칸 오크의 특성 탓인지 바닐라, 아세톤, 농익은 사과와 배의 향..같은 것들이 특징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렌 카담이 그렇게 명확한 버번캐스크 위스키죠. 다프트밀은 그런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 위스키였습니다. 바닐라, 캬라멜, 농익은 사과.. 그리고 버터와 토피, 향만 맡아도 너무 근사해서 시간이 멈춘 거 같더군요. 일본에서도 구하기 힘든 위스키라 그런지 가격은 좀 비쌌지만 그래도 너무 기쁜 마음으로 잘 마셨습니다. 


두 잔만 마시기에는 아쉬워서 오래된 스프링뱅크도 한잔, 스뱅의 캐스크 스트랭스도 한잔, 글렌 카담 22년도 한잔씩 더 마셨는데 이 쪽은 놀랍게도 잔당 가격이 만원대 초중반이었습니다. 도입 당시의 가격으로 책정된 잔당 가격을 시세에 따라 올리지 않아서 그런 거 같은데 맘 같아서는 며칠 더 묵으면서 다양한 위스키들을 쭈욱 마셔 보고 싶더군요. 다음번에도 후쿠오카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미리 구해뒀던 피트 위스키의 끝판왕 옥토모어 13.1과 카발란 솔리스트 엑스버번 2015년 출시분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카발란은 꽤나 예전에 나온 바틀이라 이안 창이라는 마스터 디스틸러의 사인도 있는 바틀입니다. 손에 넣을 수 있어 기뻐요. 좋은 날 따고 싶습니다. 


내년 6월에는 후쿠오카에서 위스키 토크라는 덕후들의 행사가 있습니다. 그때는 아내와 같이 방문해서 축제의 기분을 맛보고 싶네요. 취미가 있다는 것,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다는 건 삶에 큰 활력이 됩니다. 고마운 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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