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작 감상 기행... 같은 시리즈로 갈 생각은 없구요. 그냥 '하피'를 찾아보다보니 이것도 올레티비 무료 영화로 있길래 내친 김(?)에 봤어요. 스포일러는 없구요.



 - 제목이 '조선' 미녀 삼총사이니 조선이겠지... 싶지만 고증 같은 건 고이 접어 날려버린 니 멋대로 환타지 사극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하지원, 강예원, 손가인이 현상금 사냥꾼 삼총사이고 그들에게 오더를 내리는 게 고창석 아저씨죠. 어느 날 무려 1만냥짜리 미션에 투입되어 이러쿵저러쿵하다 보니 오래 전 하지원이 빵꾸똥꾸였던 시절에 아버지를 죽이고 집안을 멸망시킨 원수가 그 미션의 배후라는 걸 알게 된 삼총사는...



 - 전설의 망작!!! 을 기대하고 일부러 찾아보지는 마세요. 이 영화는 그런 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합니다.

 그러니까 망작은 분명한 망작인데 '전설'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만큼의 독보적인 아우라가 없어요. 특별한 매력 없이 그냥 많이 못 만든 영화일 뿐입니다. 최악이죠.



 - 그 못 만듦에 대해 설명을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전에 얘기했던 '하피'의 경우엔 정말 모든 면에서 완벽할 정도로 압도적인 못만듦이 포인트인 영화였죠. 근데 이 영화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어요.

 일단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돈 좀 들였다, 최소한 저예산은 아니었다는 건 확실히 티가 납니다.

 배우들 연기를 칭찬을 못 하겠지만 그래도 '하피'처럼 '저도 지금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라든가 아마추어 배우들 와장창 쏟아 부은 느낌은 아니구요.

 스토리도 (물론 허접하고 개연성은 민망하지만) 어떻게 흘러가는 중인지 확실히 파악은 되는 수준이고.

 액션 같은 경우엔 그냥 평범 무난합니다. 가끔 힘을 주는 순간 민망해지긴 하지만 보통의 액션씬은 그냥 준수해요. 보기 즐겁진 않지만 걸리적거리지도 않는 정도.


 그럼 뭐가 그렇게까지 문제여서 이렇게 망작 취급 받는 영화가 되었는가... 를 생각해보면.


 1. 이 영화는 키치적 재미를 목표로 하고 만들어졌다는 게 사실일 겁니다. 과장되고 유치찬란함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연출이 많거든요. 애초에 이 영화가 노골적으로 (제목부터 대놓고!) '미녀삼총사'를 추종하고 있는데 그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잖아요.


 근데 문제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영화가 종합적으로 함량 미달이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유치찬란한 재미'를 목표로 만들었는데 잘 못만들어서 '재미'가 없으니 그냥 '유치찬란'만 남아서 찬란하게 빛나는 물건이 되어 버린 거죠. 왜 누군가가 자학 개그를 시전했는데 그게 안 웃기면 그냥 자학만 남아서 서로 민망해져버리지 않습니까. 이 영화의 꼴이 딱 그 모양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내가 저 배우들이라면, 그런데 집에서 vod로 이걸 보고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하지원 신작 기자 회견 같은 데 찾아가서 이 영화 얘길 꺼내면 하지원이 화를 참을 수 있을까 없을까...


 2. 어차피 키치한 코미디로 갈 생각이었으면 좀 더 뻔뻔스럽게 막나갔어야 합니다. 사실 손가인과 강예원이 나오는 장면들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봐줄만한 게 이 캐릭터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냥 코미디만 하기 때문이에요. 근데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하지원 캐릭터에게 궁서체로 진지한 비극 스토리를 쥐어주고 그걸 이야기의 메인 메뉴로 삼아 버립니다. 그러니 영화의 톤이 수시로 쌩뚱맞게 오락가락하고 영화 전체의 컨셉인 키치한 코미디가 다 죽어버리죠. 애초에 제목부터 '조선 미녀 삼총사'처럼 유치찬란하게 지어 놓은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하지원 파트가 잘못 들어간 거라고 봐야 할텐데 실상은 그게 메인 요리이니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증거겠죠.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하지원의 그 비극적인 스토리는 정말 진부하고 뻣뻣하고 지루한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 뭉탱이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지한 주제에 개그 파트 랑 똑같이 개연성 없는 건 물론이구요.


 3. 마지막으로... '미녀 삼총사' 말고 다른 캐릭터. 특히 남자 캐릭터들의 비중이 쓸 데 없이 큽니다. 이것도 역시 하지원 파트의 문제인데요. 등장 시간 말고 이야기의 비중 측면에서 주상욱의 똥폼 무사 캐릭터가 가인, 강예원보다 훨씬 비중이 큽니다. 얄팍한데다가 무지무지 지루하게 똥폼만 잡는 캐릭터이고 '미녀'도 아니면서 '삼총사'도 아닌 인물이 그렇게 큰 비중으로 나와서 하일라이트 액션의 과반을 잡아 먹어 버리고 그 옆에서 하지원은 그 지긋지긋한 '다모' 연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아무리 가인과 강예원이 온몸을 내던지고 쪽을 팔아가며 노력해도 영화가 살아날 수가 없죠.



 - 사실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던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일단 컨셉이 뭐가 됐든 여성 3인조의 코믹 액션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한국 영화판에선 환영받을만한 것이었구요.

 고창석의 캐릭터는 걍 흔한 한국 영화의 뚱뚱 아재 몸개그로 일관하긴 하지만 그냥 딱 그 평균만큼은 되는 가운데 송새벽은 은근히 웃겨줬어요.

 또 유치찬란하긴 해도 가인이랑 강예원 둘이서 꽁냥거리며 웃기는 장면들 중엔 나름 귀여운 장면들도 없지 않구요.

 하지원은... 음... 코믹 연기에는 영 재능이 없어 보이긴 합니다만 (놀랍게도 주인공 3인방 가운데 가장 민망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래도 주창욱 캐릭터를 아예 잘라내 버리고 3인조 vs 메인 빌런의 구도로 가면서 시종일관 깨방정 유치뽕짝 개그 모드로 갔으면 지금의 결과물만큼 보기 민망한 연기가 나오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아까워요. 도대체 한국의 영화 제작자들은 왜 굳이 코미디를 만들면서도 그렇게 진지하고 교훈적인 코드를 크게 넣어두려고 몸부림일까요.



 -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되게 못만든 영화 맞습니다. 그런데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내러티브 측면에서의 문제가 크고, 그것도 기본 완성도가 어마어마하게 수준 이하라기 보다는 이야기의 방향을 자신의 컨셉과 역행하는 방향으로 잡아 버린 멍청함의 탓이 커요. 제가 사랑(?)하는 망작들의 리스트에 넣어줄 수 있는 물건은 전혀 아니었네요.

 그래서 '하피'를 은근슬쩍 추켜세우며 추천했던 저이지만 이 영화는 절대 아무에게도 추천하지 못하겠습니다. 이건 그냥 너무 지루한 영화일 뿐이라 존재 가치가 없네요. 다행히도 하지원, 강예원, 손가인은 이 영화 이후로도 잘 활동하고 있으니 이 분들의 지인들이라면 가끔 놀려 먹는 용도로 써먹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그런 드립을 치기 전에 절교를 단단히 각오해야할 것 같습니다.





 - 고증이 개판이다... 라는 측면에서도 욕을 많이 먹던데 음. 그건 좀 핀트가 어긋난 것 같습니다. 애초에 고증 따윈 집어 치우고 환타지 사극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하고, 뭣보다도 2013년의 가인을 스모키 메이크업을 지운 상태로 영화에 내보내서 행복해질 사람은 누구입니까?(...)



 - 무려 12세(!) 관람가인데 그런 것치곤 폭력 장면의 수위가... 아니 뭐 어른들 보기에 수위 높은 장면은 전혀 없습니다만. 12세 관람가 치고는 좀 그렇더군요. 지구적 스케일로 서로 두들겨 패고 부수고 다니는 어벤져스 영화들에서 피 한 방울도 안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 이 영화엔 피가 상대적으로 참 많이 나오거든요.



 - 키치함과 진지함 사이에서 헤매다가 이 영화의 꼴이 한심해졌다... 는 걸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장면 하나가 인상 깊었습니다. 막판에 악당들 수십명이 주인공들을 향해 활을 쏴대는 위기 장면이 나오는데, 가인이 그냥 일어나서는 탁 트인 곳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아주 천천히 활을 한 방씩 쏴요. 그럼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들이 모두 가인을 비켜가는 가운데 가인의 화살은 하나씩 하나씩 명중합니다. '어차피 가벼운 영화'라고 생각하면 가인이 휙휙 날면서 화살을 피하고, 동시에 오만가지 폼으로 재빠르게 화살을 날리면 그걸 맞고 적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수퍼 히어로 영화식 과장 연출이 맞겠죠. 아마도 감독은 '여기선 가인이 최대한 카리스마있게 보여야해!'라고 생각하고서 그렇게 가만히 서서 천천히 한 방씩 날리도록 연출을 한 것 같은데, 그 결과는 '못말리는 람보'가 되어 버렸습니다. 감독님하... orz



 - 어떻게든 웃기는 장면을 계속해서 넣으려다 보니 무리수가 꽃을 피우는데, 그 와중에 인종 차별적인 개그도 나오고 그럽니다. 7년 묵은 영화이긴 해도 그 때도 분명히 21세기, 2010년대였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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