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온지 얼마 안 됐구요. 런닝타임은 1시간 50분이구요.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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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전 아직도 공작, 백작, 남작을 헷갈립니다. 뭐가 가장 높고 뭐 이런 거 있잖아요. ㅋㅋ)



 - 한 흡혈귀 남자의 일생을 요약하며 시작합니다. 대략 200년 남짓 살고 있나 본데, 뭐 다른 건 됐고 이 분의 이름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라는 게 포인트입니다. 저처럼 역사 무관심, 무식자 조차도 이름과 대략의 경력은 모를 수가 없는 그 분이죠. 칠레의 전설의 독재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사실 흡혈귀이고, 사실은 죽은 척하고 칠레 변두리 외딴 섬에 숨어 살고 있다... 는 게 기본 설정이에요.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 분의 자식들이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합니다. 아빠가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서 피를 끊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빠가 리즈 시절에 잔뜩 벌어다 숨겨둔 유산들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온 거죠. 물론 엄마가 멀쩡히 살아 있긴 하지만 워낙 큰 돈이니 나눠 먹으면 되니까!

 근데 문제는 이 자식들이 소환한 회계사입니다. 찾아낸 재산을 불협화음 없이 공평히 나누기 위해 불러 온 젊은 회계사인데, 사실 이 분의 정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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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인물을 가지고, 그것도 자기 나라에서도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는 가운데 여전히 열성적 지지자들이 존재하는 인물로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좀 부럽...)



 - 그냥 포스터 이미지부터 확 꽂혔고. 시놉시스를 보니 제가 딱 좋아할 영화 같아서 찜을 해놨다가 이번에 봤습니다. 이 정도면 엄청 빨리 본 편이죠. ㅋㅋ

 근데 이렇게 선택을 했다 보니 영화의 국적도 몰랐고 감독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냥 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처럼 크게 안 유명한 감독이 가난하게 만든 저예산 호러 영화를 기대하고 봤는데 말입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덕택에 더 즐겁게 본 것 같으니 잘 됐죠. 가끔은 이렇게 무식하고 용감한 게 인생에 보탬이 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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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님도 출연 결정하기가 아주 쉽지는 않았을 것 같구요. 그냥 내내 피노체트 놀려대고 까대는 영화라서요.)



 - 일단 이야기의 기본 설정이 워낙 세지 않습니까. 만약 한국에서 박정희를 소재로, 사실 그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흡혈귀였고,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살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서 피를 빨고 심장을 갈아 먹고 있다... 라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러고보면 칠레는 한국보다 선진 멘탈의 국가였던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조금 해봤습니다. 실상은 모르겠습니다만. ㅋㅋ 


 게다가 영화가 피노체트를 다루는 태도는 정말 자비심이 없어요. 말하자면 요즘 헐리웃 영화나 서양 게임들에서 히틀러를 출연 시켜 놓고 갖고 노는 거랑 동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냥 성질 고약하고 천박하며 탐욕스럽기 그지 없는 수백살 먹은 노친네일 뿐 그 어떤 위엄이나 카리스마, 혹은 인간적 연민을 자아내는 구석도 없구요. 그래서 영화가 하는 일은 시종일관 이 캐릭터(와 그 가족들)에게 한심한 짓을 시켜 놓고 놀려 먹는 겁니다. 다시 한 번, 한국에서 박정희를 실명으로 등장시켜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과연 감독이나 출연 배우들이 한국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살 수 있을까요. 이상한 걱정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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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자식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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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저 중 상당수는 지금도 멀쩡히 살아 있을 텐데 말입니다. 뭐... 이렇게 조롱 당해도 할 말 없는 사람들이긴 하지만요.)



 - 흑백이죠. 여기에 대해 무슨 거창할 해석을 할 능력은 없습니다만.

 일단 영상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화면을 가득 메운 한심이들이 한심할 짓들로 파티를 벌이고 있을 때도 화면은 우아하고 보기 좋아요. 특히 우리 흡혈귀가 먹잇감을 찾아 하늘을 훨훨 나는 장면들은 '시적이다' 라는 저답지 않은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예쁘더라구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막판에 등장하는 (스포일러라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행 장면은 특히나 아름다웠습니다. 하늘에서 발레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런 흑백 화면이 배경이 되는 황량한 섬, 무너져가는 낡은 저택과 어우러져서 만들어 내는 분위기도 정말 좋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그 인간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 겸 흉물들인지를 흑백 화면 속 미장센으로 잘 보여줘요. 게다가 사실 이게 분명 21세기, 피노체트 사후가 배경인데 이 섬의 풍경은 20세기를 넘어 거의 19세기 느낌이라 더 낡고 쇠락한 느낌이 들구요. 그래서 멍청이들만 잔뜩 나오는 코미디 영화인데도 왠지 모를 무게감 같은 게 생기더군요. 웃기는 영화는 맞는데 좀 예술적으로 웃기는 영화랄까.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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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가 포스터 이미지로 쓰는 요 장면 때문에 보게 된 것인데요. 이렇게 스틸로 보면 좀 어색하지만 영화로 보면 되게 근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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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이 정말로 근사하다구요. 믿어주세요. ㅋㅋ)



 - 이야기 측면에선 되게 여유롭게 흘러가는 영화입니다.

 여기서 '여유롭다'라는 건 느리다는 뜻이 아니구요. 막 타이트하게 짜여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유롭게 이 얘기 하다가 저 얘기 하다가... 좀 그런 느낌이에요. 이 영화의 스토리를 핵심만 갖고 요약하면 정말 짧아지거든요. 특별한 사건이랄 것도 몇 개 벌어지지 않구요. 그냥 나레이터가 계속 서술자적 논평을 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그런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긴장감 드는 장면은 거의 없고 웃기는 장면도 막 화끈하게 웃긴다기 보단 허허실실 웃기는 느낌. 하지만 종합적으로 지루하지 않고 계속 재미납니다. 이야기가 담고 있는 유머도 좋지만 서술자의 나레이션이 그걸 더 웃기게 치장해주는 효과가 좋거든요. 그리고 이 나레이션은 정말로 이 영화의 핵심인데... 이 부분은 아직 안 보신 분들은 모르고 보시는 게 낫겠군요. ㅋㅋ 암튼 이 영화에서 나레이션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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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이 그 회계사 캐릭터인데... 무슨 말을 해도 스포일러 같아서 말을 못 하겠군요. 험.)



 -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잔인한 장면도 나오고 베드씬도 나오고 그렇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영화의 톤이 시종일관 블랙 코미디이기 때문에 미성년이 아니면 부담 없이 다 보실만한 영화구요.

 칠레 감독이 직접적으로 자기네 독재자를 실명 등판 시켜 까는 영화지만 이걸 즐기는 데 역사적 지식이 많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그냥 현실 정치, 독재, 종교에 대한 우화라고 생각하고 봐도 납득 되고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아요. 특히 그 회계사 캐릭터의 이야기도 그렇구요.

 감독 전력도 그렇고 시각적 스타일도 그렇고 참으로 '아트'스런 느낌이 강한 영화지만 역시 그런 거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냥 웃기는 영화에요. 부담 없이 즐길만한 코미디 영화 원하시는 분들은 아마 크게 실망 안 하실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또 간만에 괜찮은 걸 하나 만들어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잘 봤어요.

 그러합니다.




 + 이걸 보실 분들은 어지간하면 자세한 정보는 찾아보지 마시고, 캐스팅 정보도 안 보시는 게 낫습니다. 막판에 특별 출연(?)이 하나 있고 그게 좀 대박이라서... ㅋㅋㅋㅋ 아. 그런데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오해하실까봐.



 ++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피노체트에 대해 검색을 좀 해보니 시시콜콜해 보였던 부분들 중 상당수가 실제 피노체트의 행적이나 소문에서 따 온 거였더군요. 음. 역시 아무래도 많이 아는 분이 보시는 게 훨씬 재밌긴 했겠습니다. ㅋㅋ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자식들이 불러 온 젊은 미모의 회계사의 정체는... 수학을 겁나게 잘 하는 수녀였습니다. 사실 자식들은 아빠가 흡혈귀니까 쉽게는 안 죽을 거라 생각해서 이 수녀를 이용해서 아빠를 처치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렇잖아요. 그렇게 많은 재산이 있는데 이 인간이 영원히 안 죽어 버리면 물려 받을 게 없어지니까. ㅋㅋ 

 그런데 문제는 우리 피노체트님께서 그 회계사에게 반해 버렸다는 겁니다. 팍팍 늙은 본인 본처 따위야 뭐 자기 부하 흡혈귀랑 썸을 타든 바람을 피우든 상관 없고 난 이 여자를 가져야 쓰것다!!! 라는 맘을 먹게 되면서 피노체트는 다시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되고. 그러면서 모두가 다 함께 곤란해지죠.

 그래서 후반에 들어가서 결국 피노체트는 회계사, 아니 수녀를 물어요. 이게 좀 웃기는 게, 그 전까지 수녀가 계속 뭐 자기는 주님의 도구이고 이런 악마를 물리치기 위한 소명을 받았고... 이러면서 대단한 능력이라도 숨기고 있는 것처럼 굴었거든요. 근데 그냥 다 헛된 믿음 때문에 혼자 착각 했던 거고 아무 일 없이 흡혈귀가 되어 피노체트랑 섹스도 하고. 신이 나서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며 춤을 춥니다. 뭔데. 대체 왜 이러는 건데. ㅋㅋㅋ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정체 불명의 여성이 머나먼 곳으로부터 하늘을 날아 이 섬을 향합니다. 아니 이건 누구지? 했는데... 나레이터에요. ㅋㅋㅋㅋ 알고 보니 나레이터가 그냥 나레이터가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였던 거구요. 이 양반은 피노체트 앞에 나타나서 폭탄 선언을 합니다. '내가 니 엄마다!!!' 그러니 너는 이제 뻘짓거리 그만 두고, 저 어린 여자애는 대충 죽여서 치우고 자길 따라와서 자기랑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여기에 덧붙여서 이 나레이터 흡혈귀의 정체는 바로 마거릿 대처입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여기서부턴 여러모로 막장 전개가 이어집니다. 피노체트와 대처가 말씨름을 하는 사이에 피노체트 와이프는 자기가 썸 타던 피노체트 부하에게 물려 흡혈귀가 되구요. 자식들은 아빠에 이어 엄마까지 불사가 되니 열받아서 온갖 집기를 집어 들고 부모를 처단하려 나섭니다.

 그런데 남편이랑, 일생 처음 만난 시어머니랑 또 기싸움을 벌이던 와이프가 먼저 피노체트에게 심장을 뚫려 살해당하구요. 그때 우리 흡혈 수녀님은 자신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려는데... 그게 뭐냐면 '우리 교회의 부활을 위해 피노체트의 재산을 훔쳐 오렴'이라는 교회 성직자들의 오더였습니다. ㅋㅋ 그래서 무기명 채권이니 뭐니 이런 거 열심히 챙기고 있는데, 자기 애인이 죽어 버린 것에 분노한 피노체트 부하가 와서 질질 끌고 가선 단두대에서 목을 잘라 버려요. 이 분은 이걸로 허망하게 끝. 그리고 마무리는 열받은 피노체트가 그 부하를 처단하는 걸로.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자식들은 결국 저택에 남은 골동품들 중 그나마 돈 될만한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초라하게 섬을 떠나요. 사실 아빠의 서재에 주욱 꽂혀 있던 옛날 책들이 엄청나게 비싼 역사적 서적들이었지만 그걸 알아본 교양이 없었던 거죠. 그리고 대처와 피노체트는 사이 좋게 그 비싼 아이템들을 챙긴 후에 흡혈귀에게 엄청난 영양과 젊음을 가져다 준다는 흡혈귀의 심장(아마도 부하 것이겠죠)을 사이 좋게 갈아 마시고는 젊어지는데요. 특히 피노체트는 아예 어린 아이가 되어서 다시 한 번 칠레에서 인생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이 장래의 독재자 어린이가 즐겁게 등교하는 모습과 그걸 배웅하는 대처 여사님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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