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연휴 맞이 산 책

2023.09.29 21:38

thoma 조회 수:320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는 작가 스티븐 킹 님도 살고 있다는 메인 주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연작 소설이었네요. 이곳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여름에는 외지 사람들이 휴양지로 찾고 여유 있는 은퇴자들이 여생을 보내는 장소로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아래에 위치한 뉴욕 같은 대도시와 많이 떨어져 있진 않으면서도 자연 풍광이 좋은 곳인가 보다 짐작해 봅니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도 생각났는데, '올리브 키터리지'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도는 '더블린 사람들' 보다는 아래에 위치하였습니다. 문장의 유려함이나 인물의 생생함 그리고 시간상 더 멀리 있고 더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신비감이 만드는 매력면에서 '더블린 사람들'이 가장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두 연작 소설과 변별되는 점은 '올리브 키터리지'는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동네 주민인 이 나이든 여성 - 40대였다가 소설 후반엔 74세에 이르게 되는 올리브가 중심이 되고 거기에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곁들여 진다는 것입니다. 

올리브는 서른 해 넘게 지역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수학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상냥, 다정 이런 거와는 거리가 멀고 무슨 말이든 이왕이면 짧고 퉁명스럽게 하는 것이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떠올리며 읽게 되는데 소설에서는 키도 골격도 눈에 띄게 큰 사람이랍니다. 부드럽고 소심한 성격의 남편 헨리와 때로는 지겨워하고 충돌도 하였으나 그런대로 도우며 의지하고 살았네요. 작가가 인물을 만들고 보니 성격이 강해서 올리브 이야기만으로 끌고 가면 일종의 피로감 같은 것이 생기겠다는 우려를 했고 그래서 동네의 다른 구성원들 에피소드를 여럿 넣어서 사는 지역을 좀 더 부각시키는 식으로 물타기(?)를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은 갸우뚱하게 되는 인물의 에피소드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중심 인물의 개성에 독자로 하여금 정을 들이게 하여 쉽게 다가가기 힘든 인물의 속을 기꺼이 들여다 보고 사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중심 인물인 올리브가 노인이고 덩치 크며 울끈불끈하는 성격의 여성이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사실상의 주인공은 우리의 주인공이 보낸 세월이라는 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라 한 단락 소개하겠습니다. 뒤에 해설에도 소개되는 것을 보니 많은 사람들의 뼈를 때리는 장면이었던가 싶네요. 동네에서 평생 약국을 운영했던 죽은 남편 헨리의 젊은 날 사진을 발견하고 올리브가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헨리의 다른 사진은 키가 크고 마른 해군 시절의 모습이었다. 당신은 짐승 같은 여자하고 결혼해서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 거야, 올리브는 생각했다. 아들이 하나 생길 거고, 그애를 사랑하게 될 거야. 하얀 가운을 입고 키만 훌쩍한 당신은 약을 사러 온 동네 사람들한테 끝도 없이 친절할 거야. 당신은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어 휠체어에서 생을 마감할 거야. 그게 당신 인생이 될거야.'

저도 제 초등학교 시절 사진을 들여다 보며 뭐라고뭐라고 중얼거려 볼까 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이러이러하게 살게 돼...' 이제는 내가 알고 있고 변화의 여지없이 확정된 나의 과거가 된, 사진 속 너의 미래.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죄어 오는 느낌이 들어 훗날로 미루었습니다. 세월이란. 

힘 있을 때 뭐든 하시고 가고 싶은 곳은 주저 말고 막 가시고 무엇보다 열심히 노십시다. 독후감이 이상한 흐름으로 가고 있지만, 한 나이라도 젊을 때 마구 놉시다! 

      

이런 인물 저런 인물의 성격과 일상과 선택과 사건들을 돌아가며 보여 주는 연작은 자칫하면 인간시대 같은 티브이다큐 비슷한 감상만 남길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 사는 게 이렇답니다, 라고 건드리며 삽화그리듯 하면서 변별을 없애고 쉬운 관조에 빠지는 위험 말입니다. 

연작이나 단편 보다 중심 인물 한 명 또는 몇 명을 두고 넓고 깊게 파내려가는 장편 소설을 좋아합니다. 어떤 서술 방식을 택해도 장편은 작가가 독자를 장악하는, 독재적이고 일방적인 접근의 느낌이 있지만 작가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본격 소설이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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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위기'는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한병철 저자는 금속공학을 전공했다가 철학으로 바꾸어 지금은 독일에서 철학 교수로 있다고 하네요. '피로 사회'로 널리 알려졌는데 저는 이번 책이 처음입니다. 몇 페이지 봤는데 벤야민을 인용한 구절이 여럿 나오고 있습니다. 약간은 아포리즘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철학 에세이 같습니다? 책은 140페이지 정도로 얇고요. 뉴스, 작품에 대한 타인의 감상글, 인스타의 타인의 경험 후기들. 팟캐스트를 들으며 작품과 경험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남의 후기만 따라가는 수많은 읽기와 듣기에 대해 생각하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라 읽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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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발표가 다가오네요. 수상자인 솔 벨로는 명성만 오래 듣다가 '오늘을 잡아라' 넘 좋다, 재미있다는 추천이 많아 읽으려고 샀습니다. 160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입니다. 조만간 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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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은 게시판에 보신 분이 많지 않을까, 저만 뒤늦게 알아가지고 이제 읽어 보려는 거 아닌가 싶네요. 형제 작가 분의 명성을 이제 접해 보려고요.

현대문학에서 시리즈로 5권이 나왔는데 실물 책이 하드커버에 무척 예쁩니다요. 구경하실 분은 아래 주소로. 

https://www.aladin.co.kr/shop/common/wseriesitem.aspx?SRID=100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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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맞이 산 책이 몇 권 더 있으나 오늘은 요것만 올려 봅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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