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십팔동인

2023.09.29 22:50

돌도끼 조회 수:266

1975년 곽남굉 감독작품.

일반적으로 76년작이라고 알려져있는데 76년은 홍콩에서 개봉했던 해이고, 대만에선 75년 연말에 개봉했다고 합니다.

70년대 이후로 한정하면(그 이전은 자료찾기 힘드니까...ㅎㅎ) 소림사 영화의 원조뻘 된다고 할 수있는 영화...
원래 70년대 소림사 영화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장철이라고 해요. 근데 장철 소림사 영화들은 보통은 소림사가 불타 없어진 뒤에 소림사 출신 인사들이 만주인들하고 치고받고 한다는 이야기가 주류이고, 절 그 차체는 그냥 배경설정 이상은 아니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소림사 안으로 들어간 영화는 이게 아마 처음일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대만뿐 아니라 홍콩에서도 대히트했을 즈음에 나유가 '소림목인방'을 만들고, 절 바깥에서 주로 놀던 장철이 본격적으로 절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 '소림사'를 내놓게 되고, 그 뒤로 남소림 영화의 끝판왕이라 할 수있는 유가량의 '소림삽십육방'이 나오고, 나중엔 장흠염의 (이연걸 나오는)'소림사'까지... 본격 소림사 영화 랠리가 이어지고... 그러는 중에 곽남굉도 '십팔동인' 속편을 비롯해 소림사 영화를 꾸준히 만들었습니다.

뭐... 절이라는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다지 흥미진진한 장소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무리 소림사라고 해도 절 안을 무대로 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거에 대해 암묵적인 금기가 있었나봐요. 거기다 절 안이 배경이면 전부 민머리 스님들만 나오게 되니 그래가지곤 흥행이 안된다는 믿음도...ㅎㅎ 뭐 그때는 변발도 배우 미모를 깎아먹는다고 금시기해서 머리 안밀고 댕기만 붙이고 나오던 시절이니까요...

'십팔동인'은 나름 절충한 형태입니다. 영화가 두파트로 나눠져있어 그중 앞부분이 소림사가 무대이고 뒷부분은 주인공이 하산한 후의 속세가 배경입니다.
민머리 문제도 주인공'만' 머리를 안밀고 특별전형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이예요.

이야기 주제인 십팔동인은 아마 이 영화의 창작인 것 같은데, 원래는 남소림 전설에서 유명한 목인항을 비튼겁니다.
남소림 전설에선, 소림사 출신 속가제자들이 강호에서 활약하며 유명해지자 각처에서 소림제자를 사칭하는 인간들이 나타났답니다. 이넘들이 어줍잖은 실력으로 사기치다 뽀록나는 일이 빈번해지자 소림파의 명예가 실추되겠다 염려한 소림사 대빵 지선선사께서는 소림사에 '졸업시험코스'를 신설합니다. 목인항.

무슨 골목같은데 108목인이 늘어서 있다고 하고, 36방의 교습 코스를 제대로 마스터하지 않은 사람이면 절대로 이 목인항을 통과할 수 없다고 합니다. 목인은 대충 기계장치 비슷한 건가 본데 정확히 어떤 건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이야기꾼마다 나름대로 꾸며댔죠.('십팔동인' 이전에 나왔던 장철 소림사 영화에서는 사람이 마치 깡통로봇 처럼 보이는 슈트를 뒤집어쓰고 나오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게 '십팔동인'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고요.)
목인항을 다 통과했으면 화로 하나가 가로막고 있는 문이 나오고, 그 화로에는 좌우로 문양이 새겨져 있어서 그걸 안아서 옮기면 팔에 자동으로 문신이 새겨지고 그게 소림사를 정식으로 수료했다는 졸업장 역할을 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졸업장 위조하기 쉬울것 같은데...) 무려 청나라 때 무협소설에서부터 전해오는 유서깊은 이야기라네요.

이 영화에서는 108목인을 18동인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스케일이 많이 줄어들었고, 뭐 대단한 기믹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걍 산 사람 몸에다 금색 락카칠을 했어요.(근데 왜 금인이 아니고 동인인지는...) 그랬는데 이게 상상 이상의 효과가 있었던 겁니다. 시각적으로 정말 강렬했거든요. 깡통로봇처럼 보이는, 사람인지 기계인지 애매한 개체도 몇 나오긴 하지만 그것보다 맨몸에 락카칠한 사람들이 훨씬 더 강한 임팩트를 줬죠. 아니 어쩌면 설정상으로는 금칠하고 나오는 사람들도 기계일런지도 모르겠어요. 이 영화에선 그래도 많이 사람같아 보이지만 후속작들을 보면 인간같지 않아보이는 묘사들도 나오거든요.
뭐 어쨌든 이 단순한 기믹 하나로도 당시로선 소림사가 정말 신기한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나봐요. 뭔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강렬한 이미지였으니까... 그래서 이 영화 이후 18동인이 108목인보다 더 유명해지게된 것 같습니다. 주성치의 '식신'에도 목인이 아닌 18동인이 나오죠.
 
이야기는 정말 단순하고 갈등도 너무 쉽게 풀리고... 영화가 두파트로 나뉜 게 그냥 다른 영화 둘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앞부분의 절간 배경인 이야기가 당시로서는 신선하고 신기했다면 뒷부분은 그냥 그때 흔했던 무협물이죠. 이 영화가 지금까지 전설로 기억되는 것도 앞부분 때문이고요.

곽남굉은 이 영화가 히트한 후 발빠르게 속편이라 할 수 있는 '대파18동인'을 만들었고, 다시 '화소(불타는)소림사'를 내놓습니다. 이야기는 연결이 안되지만 소림사와 18동인이란 키워드로 연결되는 영화들이죠. 그거 말고도 '팔대문파'같은, 내용상 아무 관련 없는 영화에도 소림사와 18동인이 나오니까(일본에선 이걸 '18동인' 3편이라고 선전하긴 했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곽남굉의 18동인 유니버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울나라에는 77년에 개봉해 대히트하고, 한국에서도 18동인이 소림사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를 잡았죠. 하지만 후속작들 중에 극장개봉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영화의 주인공은 공식적으로는 전붕과 상관영봉입니다. 그치만 제일 눈에 들어오는 건 주인공의 사형으로 나왔던 황가달이었죠. 황가달은 골든하베스트 출범 초기부터 참여해 골든하베스트 작품에서 준주연급으로 꾸준히 출연했지만 단독주연작은 없었던 것 같네요. 75년에 계약이 끝났는지 대만으로 기반을 옮기는데 이때 딱 한편 장철 영화에 출연하고(거의 까메오 수준) 그 후론 주로 곽남굉하고 논거 같아요. '십팔동인'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대파18동인'을 비롯해 주연작들이 줄줄이 나온 거 같네요. 80년대엔 미국으로 간 거 같은데 존 카펜터의 '빅 트러블'에 나오는 걸 보고는 좀 신기했었습니다.




82년에 장흠염의 '소림사'가 일본에 개봉해 대히트하면서 일본에 소림사 붐이 불었습니다. 업자들은 이전에 나왔던 소림사 영화들에 뒤늦게 눈독을 들여서 연달아 수입해 개봉시켰고, 그중에 '십팔동인'을 찜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영화가 너무 올드하다고 퇴짜를 놓았다고 해요. 그래도 미련이 남았던지 다시 컨택을 해왔는데, 영화를 좀더 요새 입맛에 맞게 개조해줄 수 없느냐는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곽남굉이 예술가 계열의 감독은 아니니까... 그걸 수락해서 스토리를 수정하고 다른 영화 장면들을 갖다붙여서 재구성판을 만듭니다.

이 버전이 일본에 '소림사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해 히트했습니다.
문제는... 그 후로 세상에 판매, 서비스 되고있는 게 다 이 재구성판이예요. 국내에서도 TV 방영되고 비됴, DVD로 나오고 몇년전에 재개봉되고 VOD에 올라오고 웨이브 왓챠 티빙등에 있는 것도 전부 그거예요. 77년 첫개봉 당시에 본 사람이 아니라면 다 이 짜깁기 버전으로 봤다는 거죠.

오리지날 버전은 현재로서는 오래전 서양에 출시되었던 영어더빙판으로 그 형태를 짐작해볼 수밖에 없는것 같은데(이것도 꽤 많이 삭제된 정황이 있어 원본은 아닌것 같아서...)
시간순으로 진행되고 주인공의 어린시절이 제법 길게 묘사되는 재구성판과 달리 원판은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처리되고 어린시절은 거의 안나옵니다. 재구성판은 주인공보다 더 인기를 끌었던 황가달 캐릭터의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어 있고, 소림사 파트에 추가된 장면이 많아 소림사의 비중이 더 커졌습니다(원래 신버전을 만든 목적이 그거니까요)

추가된 장면들은 '화소소림사' '팔대문파' '무당28기'등등 곽남굉의 다른 영화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아서 그 영화들을 본 사람이면 알아보고 킥킥거릴 수 있습니다.ㅎㅎ


이것저것 많이 갖다붙였지만 원본에서 잘라낸 부분도 많아서 상영시간은 재구성판이 더(어쩌면 훨씬) 짧습니다.
짜깁기의 흔적이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장면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장익같은 경우 원판에선 호위무사역으로 카메오로 나왔는데 개조판에선 소림사 제자로도 나와서 본의 아니게 1인2역을 하고 있습니다.(미국같음 이랬음 대번에 소송...ㅎㅎ)
사실 개조판이 좀 더 스피디하고 재미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원본을 완전히 대체해버린다면 그건 아니죠. 원본은 75년에 제작되었지만 개조판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걸쳐 나온 여러 영화들이 짜깁기되어 있으니 족보가 꼬입니다. '소림사18동인'은 무협영화의 역사상으로도 대만 영화사상으로도 중요한 작품인데 이렇게 나중에 개조된 버전으로만 알려지는 건 곤란하지않나 싶네요.(조지 루카스가 알았다면 얼마나 부러워했을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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