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란 건 보통 두 가지로 나눠지죠. 생각을 쓰거나 일화를 쓰거나예요. 한데 나의 생각을 쓰려고 해봤자 새롭게 쓸 게 없거든요. 언제나 '돈이 최고' '노력 따윈 쓰레기' '두번째로 좋은 건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 첫번째로 좋은 건 태어나지 않는 것'같은 헛소리들을 조금씩 바꿔서 늘 주워섬기는 걸 몇년째 하고 있잖아요. 보고 있는 사람도 지겹겠죠.


 그래서 재밌는 일기를 쓰려면 실제로 겪은 일들을 써야 해요. 누군가는 '일기란 게 꼭 재밌을 필욘 없잖아.'라고 하겠지만...게시판에 일기를 올리는 거니까, 보는 사람도 조금은 재밌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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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하지만 일화를 쓴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서사물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있었던 얘기를 쓰다가 아직 소개가 안 된 캐릭터가 튀어나오면 아차 싶어요. 왜냐면 설명되지 않은 캐릭터니까요. 사람들이 보기엔 '이 캐릭터를 너는 알겠지만 나는 모르잖아!'라고 외칠 만한 거죠.



 2.일기를 봐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누군가와의 첫 만남'을 소재로 쓴 일기가 많아요. 그야 인상적인(=예쁜)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소재로 삼아 쓴 거긴 하지만 이유는 하나 더 있거든요. 앞으로 있었던 일을 일기로 쓸 때, 그 캐릭터를 어색하지 않게 등장시키기 위해 미리미리 써두는 거예요. 일종의 '캐릭터 소개 페이지'죠. 빌드업 같은 거예요.


 그런데 첫만남을 소개하지도 않은 캐릭터가 뜬금없이 등장하게 되면, 그건 잘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가 되거든요. 그래서 때때로 쓰던 일기를 뒤로 미루고, 그 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와의 첫 만남을 쓰기도 해요. 캐릭터를 설명해야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니까요. 내가 쓴 일기의 일화들을 죽 이어 붙이면 어디서 뭘 했는지, 어느 시기엔 어디를 주로 갔는지 같은 걸 알 수 있죠.



 3.어쨌든 오늘은 상수역을 갔어요. 오늘은 생일 파티를 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연락을 해 봤지만 실패했어요. 그래서 어떤 변호사에게 연락을 해 봤어요. 변호사는 특유의 거만한 톤으로 전화를 받고...지금은 서초 자영업자들끼리 모임을 하는 중이라고 했어요. 그가 말했어요.


 '은성아. 네가 여기보다 더 재밌는 제안을 가져온다면, 2차는 네가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하마.'


 여러분이 이 말을 육성으로 들었다면 '아. 저 변호사가 한 턱 쏘려는 건가봐?'라고 착각했을 거예요. 나조차도 잠깐 착각할 뻔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전화를 끊고 오늘은 혼자 놀겠다고 카톡을 보냈죠.


 생각해 보니 다행이었어요. 술자리는 순수해야죠. 남자라는 이름의 불순물...그런 건 내 술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물론 나는 나니까 빼고요.



 4.휴.



 5.이쯤에서 '소개되지 않았다는 캐릭터가 저 변호사인가?'라고 한다면 아니예요. 변호사는 세 번인가 일기에 이미 등장했지만 아직 닉네임도 만들지 않았죠.


 어쨌든 한 가게에 연락을 해봤어요. 픽업을 와주면 오늘은 거기서 끝까지 있겠다고 하자 사장이 딜을 받아들였어요. 30분쯤 걸린다고 해서 어떤 바에 잠깐 들렀어요. 상수역 쪽에 간 김에 오랜만에 들러서 스캔이나 해보려고요.



 6.그 가게는 예전부터 '이 가게의 사장이 머리만 길었으면 한달에 두 번은 꼬박꼬박 갈텐데...'라고 생각하던 바였어요. 그리고 가 보니 사장의 머리가 충분히 길어져 있었어요. 게다가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이하 흑색)도 있었어요. 


 흑색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잠깐 고민했어요. 지금 온다는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음 주에 가겠다고 할까 말까하고요. 머리가 길어진 버전의 사장과, 흑색과 놀고 싶어서요.


 하지만 그건 완전...간장양념치킨을 시켜놓고 한참 치킨을 튀기고 있을 때, 다시 전화걸어서 '저기~간장양념치킨이 먹기 싫어져서 말이죠. 주문은 취소하기로 하죠.'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였어요. 그 사장은 이미 차를 몰고 오고 있는 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를 나왔어요. 


 

 7.그럭저럭 재미있게 놀고, 홍대입구에서부터 다시 상수역 쪽으로 좀 걸었어요. 


 늘 느끼는 건데, 마포구는 낮의 모습또한 유일하게 궁금한 동네거든요. 강남도 이태원도 중구도 낮의 모습이 어떨지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수역이나 홍대역에서 술을 마시고 새벽의 밤거리를 걸으면 닫혀 있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보며 '이런 곳이라면 낮에도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아기자기한 카페에 도란도란 모여앉아 글을 쓰거나 낙서를 하면 낮의 시간도 괜찮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포구로 이사가야 할까요? 하지만 홍대-상수-합정은 지나치게 북서쪽에 치우쳐져 있단 말이죠. 어디로든 쉽게 갈 수 있는 지금의 동네가 좋기도 해요. 지금 사는 동네는 너무 재미없는 곳이라 말 그대로 '잠만 자는'곳이지만요. 다만 동서남북 어디로든 이동하기엔 좋아요.


 

 8.하지만 밤거리를 달리다 보면 서울이라는 곳은 그래요. 밤이 되면 매우 좁아지거든요. 낮에는 1시간 걸려서 가던 곳도 밤에는 15분...오래 걸려도 30분이면 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마포구로 이사가면 낮에는 마포구에서 살고 도시가 좁아지는 밤에는 딴 곳에 가고...하는 식으로 살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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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나온 흑색이라는 사람을 만난 날의 일기는 쓰긴 썼었는데...감당할 수 없는 허세대사가 너무 난무해서 봉인해 뒀어요. 흑색씨가 나의 인생에 다시 등장했으니 수정해서 나중에 올려 보죠.

 

 오늘이라고 써 있는 건 새벽에 들어와서 저 부분을 쓰다가 자버렸기 때문이예요. 일어나서 이어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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