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에 셰릴 크로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운드체크 사진을 보고 부랴부랴 예매해서 금요일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뒤늦게라도 공연 전에 알게 된 게 다행이지만, 셰릴 크로우가 할리웃 볼에서 공연 예정인 걸 제가 놓쳤을 리가 없을 텐데 하고 의아했었는데  공연 도중 보니 레이트의 건강 문제로 대신 공연하게 되었고, 모두가 보니 레이트의 쾌유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덕분에 20년 팬질 끝에, 미국에 온 지 몇 년 만에 최초로 최애 뮤지션의 라이브를 할리웃 볼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할리웃 볼은 뭔가 비현실적이고 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공연장이더군요. 무대 뒤로 산의 굴곡을 드러낸 공연장 위치, 시야 확보가 잘 된 거대한 관중석, 비현실적으로 깔끔한 음질.


관객 중에는 익숙한 곡의 인트로가 나오면 환호하고 코러스를 따라 부르는 정도의 라이트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평균 연령대가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었는데 제임스 테일러의 곡을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신기했죠. (물론 이 사람들은 제임스 테일러를 보러 온 사람들이니까...) 


셋리스트는 100퍼센트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 곡들을 불렀습니다. 급하게 준비했을텐데 어떻게 이 정도의 퀄리티로 공연을 하지 싶을 정도로 CD 보다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If It Makes You Happy

Sheryl Crow (1996) 앨범 수록곡. 가사 중 "You listen to Coltrane, derail your own train" 이란 부분을 "You listen to Coldplay, derail your own train" 으로 바꿔 부른 것 같았는데, 정말 콜드플레이를 듣기 때문인지 라임이 신경쓰였기 때문인지 좀 궁금했습니다. 


All I Wanna Do

"All I wanna do is have some fun. I got a feelin' I'm not the only one. All I wanna do is have some fun. Until the sun comes up in the Santa Monica Boulevard" 

특히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지난 20년 동안 지겹게 들었을 곡인데 코러스를 신나게 따라부르던 사람들이 마지막 구절에서 조용해 지는 걸 보고 셰릴 크로우가 빵 터지더군요. LA 치고는 나쁘지 않다면서. 자긴 20년 이상 로스앤젤레스에 살았고 나름 그립다 등등의 멘트를 했습니다.


My Favorite Mistake

The Globe Sessions (1998) 앨범 수록곡이고 역시 앞의 두 곡 만큼 잘 알려진 곡. 


Can't Cry Anymore

오늘 부를 노래 중에 여러분이 아는 노래도 있고 모르는 노래도 있겠지만 아마 이 곡은 아는 노래일 것 같다고 하면서 부른 데뷔 앨범 Tuesday Night Music Club (1993) 수록곡입니다. 데뷔 앨범에서 네 곡, 두번째 앨범에서 세 곡을 부르고 몇 몇 앨범은 완전히 스넙 당했는데, 아마 대타니까 익숙한 곡 위주로 선곡하다 보니 그랬겠죠.


Redemption Day

Sheryl Crow (1996) 앨범 수록곡입니다. 자니 캐쉬의 사후에 발매된 American VI: Ain't No Grave (2010) 앨범에 자니 캐쉬의 리메이크가 실려 있습니다. 무대에서 자니 캐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셰릴 크로우가 가상의 듀오처럼 공연을 했습니다. 


Best of Times

2013년에 발매된 컨트리 앨범인 Feels Like Home 수록곡입니다. 현재의 미국 상황을 우려하는 멘트와 함께, 최고의 시간이 곧 오기를 바란다면서 이 곡을 불렀습니다. 자기 컨트리 앨범을 산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자조적인 농담을 하더군요. 컨트리 앨범을 발매한 것도 당시엔 상업적인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trong Enough

50이 넘으니 옛날 일이 잘 기억이 안 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이 곡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데뷔 앨범 수록곡. 


Soak Up the Sun

2002년 발매된 C'mon C'mon 앨범 수록곡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셰릴 크로우 앨범이고, 셰릴 크로우 커리어의 정점에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하는데 관객들의 호응이 좋아서 기뻤습니다. 


I Shall Believe

데뷔 앨범에 수록된 발라드. 미국의 암울한 상황에서 억지로라도 희망을 가져보자는 의미로 이 공연의 전반적인 선곡을 한 것 같았습니다. 


Everyday Is a Winding Road 

15살 때, 태어나서 두번째로 본 콘서트가 제임스 테일러의 공연이라며 그 때 저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둥의 립서비스 같은 멘트를 하다가, 제임스 테일러가 등장해서 같이 이 곡을 불렀습니다. 역시 Sheryl Crow (1996) 앨범 수록된 히트곡 중 하나. 



그리고 후반부는 제임스 테일러 공연이었습니다. 저도 한 때 제임스 테일러의 음악을 지겹도록 들었었지만, 공연에는 흥미가 안 가서 집에 갈까를 몇 번 생각하다가 그냥 앉아있었는데 결과적으론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파를 피해서 공연 끝나기 전에 나오긴 했지만). 나이 때문이겠지만 목소리 컨디션이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그 큰 공연장을 멜로우함으로 가득 채우고 관객들도 엄청 좋아하더군요.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제임스 테일러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로 열정적으로 '코러스만' 따라부르던 관객들이 "Fire and Rain" 을 첫 구절부터 따라 부르던 순간입니다. Greatest Hits 앨범에 있는 곡들은 거의 다 부른 것 같았고, 저는 잘 모르는 곡들도 몇 개 불렀는데 관객들은 잘 아는 눈치더군요.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고요. 


"Concert Review: James Taylor Brings Heart and Soul to Hollywood Bowl" 

https://variety.com/2018/music/reviews/james-taylor-hollywood-bowl-2019-1202828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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