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작입니다. 1시간 54분에 장르는 드라마... 이긴 한데 스릴러 느낌 낭낭한 드라마구요.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차피 시즌에 밖에 없는 영화 같은데 그럼 아무도 안 보실 테니 그냥 다 얘기할래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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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라 던이 단독 주연인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에... 아. 거의 난생 처음일수도?)



 -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자막이 떠요. 이 이야기는 감독 & 작가인 제니퍼 폭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내용이 좀 충격적이고 보기 불편할 수 있으니 니가 알아서 주의하거라. 뭐 이러거든요. 

 이야기가 시작하면 우리의 로라 던 여사님이 나옵니다. 대학 교수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여성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요. 결혼은 안 했고 애도 없고 걍 건강 튼튼한 애인과 즐거운 삶 살고 계신 걸로 보이는데. 포인트는 이 캐릭터 이름이 '제니퍼'라는 겁니다. 감독 그 자체(...) 

 암튼 문득 거의 연락 없이 살아가던 엄마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근데 쌩뚱맞게도 '짐 정리하다가 니가 13살 때 썼던 에세이를 찾았다. 근데 너 이거...' 라면서 뭔가 호들갑을 떠는데. 제니퍼는 '아 쫌 걍 냅두라고!!' 라고 성질만 버럭 내죠. 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 에세이 내용이 플래시백처럼 펼쳐져요. 대체 그 에세이 내용이 뭐길래 그 난리인 걸까요. 우리 제니퍼씨의 13세 시절엔 뭔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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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폼 나게, 자유롭게 잘 살고 있는 제니퍼씨입니다만. 대체 13살 때 무슨 에세이를 썼길래...)



 - 뭔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잘 안 잡히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거의 30분 정도 시간이 흘러도 그래요. 그러니까 13세 때 이 분이 승마 레슨을 받으러가서 알게 된 남녀 코치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 건 알겠고.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 분이 에세이를 적은 것도 알겠는데. 엄마는 그 에세이 내용 때문에 기겁을 하지만 제니퍼는 아주 당당해요. 그들과의 특별한 관계, 특별한 만남에 대해 애착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고 그걸 다르게(?) 해석하는 엄마에게 아주 강렬한 반감을 갖죠.


 문제는 엄마의 이 호들갑이 제니퍼의 마음 한 구석의 무언가를 자극했다는 겁니다. 수십년을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뭔가 애매하고 찜찜한 구석이 있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나요. 뭐였더라. 왜 그랬더라. 그때 내가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래서 결국 제니퍼는 그 때 있었던 뭔지 모를 그 일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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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름답게 그지 없는 관계에서 뭔 일이 생겼길래 엄마는 그렇게 기함을 하는 건지?)



 - 그냥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제니퍼의 그 아름다운 추억, 특별했던 관계의 실체는 가스라이팅에 이은 미성년자 성폭행이었습니다. 우리 멋진 코치님들은 부모를 신뢰하지 않고 본인의 구질구질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춘기 질풍노도 어린이의 심리를 이용해서 씐나게 성착취를 한 후에 마무리까지 아주 잘 해서 마무리를 한 세상에 둘도 없이 나쁜 놈들이었던 거죠. 그리고 제니퍼는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한 건지 무의식 중엔 다 알고 있었으나 그걸 인정할 수 없어서 그 코치들이 주절주절 떠들어댄 헛소리들을 진심으로 믿으려 애를 썼던 거고. 그러면서 기억 저 편으로 그걸 묻어 버리고 살고 있었던 것.


 그래서 훈훈한 분위기로 시작했던 영화는 런닝타임 절반을 넘기면서부터 끔찍한 스릴러가 됩니다. 그 코치들, 특히 남자 코치가 제니퍼를 어떻게 속이고 어떻게 자길 따르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제니퍼를 손에 넣은 후 어떤 짓들을 자행했는지를 '하나씩 떠오르는 제니퍼의 기억'이라는 식으로 차근차근 꼼꼼하게 보여주거든요. 보기 불편한 장면들이 계속 나와요. 그래서 영화가 끝날 땐 '성적인 장면들은 다 성인 대역 배우를 통해 촬영했습니다'라는 자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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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알고 나서 다시 보면 참으로 음험해 보이는 사람들이죠.)



 -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작가 겸 감독인 제니퍼 폭스의 실제 체험이라는 게 또 호러인 거죠. 영화가 끝날 때엔 실제로 이 분이 적었던 에세이, 당시 승마 배우던 사진 같은 걸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거 다 사실 맞음!'이라고 못을 박는데 정말 공포물이 따로 없어요. 게다가 영화의 엔딩을 고려한다면 이 사건에는 딱히 사필귀정 같은 게 없습니다. 마지막에 그 코치를 찾아가서 한 방 먹이긴 하는데, 정말로 그 인간이 받아야 할 처벌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 없거든요. 


 그러면서 이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런 사건 피해자 여성들의 심리입니다. 어떻게 멀쩡하고 똑똑한 소녀들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되는가.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한 여성들은 본인이 피해자이면서도 왜 그걸 쉴드 치고 미화 시키려고 하는가. 이런 경험은 그 피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치게 되는가. 이런 것들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스스로의 의지를 통한 기억 조작(?)을 보여주는 전반부의 전개였네요. 플래시백으로 뭘 한참 보여주다가 갑자기 '아, 그게 아니라' 라면서 조금 달라진 버전으로 다시 보여주는 식의 연출이 자꾸 나오는데요. 처음엔 그냥 오래된 기억이 왜곡되는 걸 보여주는 연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어린 성폭력 피해자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거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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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제니퍼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도 좋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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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로라 던의 원맨쇼에 가까운 영화이고 정말로 잘 합니다. 로라 던 좋아하시면 꼭 보세요. 플랫폼을 극복하시고... ㅋㅋㅋ)



 - 이런 성격의 영화에 좀 어색한 얘깁니다만, 보다보면 재밌는 구석들이 많습니다. 특히 사람의 '기억'에 대해 다루는 게 재밌어요.


 예를 들어 과거 회상 파트에서 여자 코치를 맡은 배우가 엘리자베스 데비키에요. 이 분은 참 럭셔리하게 예쁘기도 하시지만 일단 키가 190이 넘으시잖아요. 그런데 현재 파트에서 같은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로 유명한 프랜시스 콘로이. 나름 170이지만 로라 던보다 훨씬 작습니다. 처음엔 그냥 190넘는 할머니 배우는 드물겠지. 하고 말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그 캐릭터에게 갖고 있던 인상을 엘리자베스 데비키의 외모를 통해 표현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기도 하구요.


 제니퍼가 엄마나 다른 그 시절 인연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과거 회상을 수정(?) 해나가는 연출도 좀 재밌어요. 그게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사람의 기억이란 엄청나게 쉽게 왜곡이 되죠. 다 기억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남 얘길 들어보면 전혀 뜻밖의 사람이 튀어나오고 어떤 행동의 의미도 달라지고 그 상황의 분위기도 180도 뒤바뀌고 그렇잖아요. 그렇게 제니퍼가 자신이 스스로 왜곡해 놓은 기억들을 수정해나가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연출이 센스 있었습니다.


 사실 영화 초반은 좀 산만하고 따라가기 어렵다는 느낌이었습니다만. 중반 이후로는 이런 재미를 찾으며 열심히 집중해서 달렸구요. 참으로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로라 던의 연기가 정말로 좋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이 분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시작부터 끝까지 끌고 나가는 영화를 본지 엄청 오래 됐더라구요. 튀는 조연이나 카메오스런 단역들로 나온 모습들만 봐 온 것 같은데. 새삼 '응. 좋은 배우였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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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분이 실제 제니퍼 폭스. 작가 겸 감독님이시고 이 이야기를 실제로 겪으신 분입니다.)



 - 암튼 뭐... 다 보고 나면 참으로 암담해지는 이야깁니다. 

 뭐 막 파국적 결말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걸 다 극복해내고 정의를 구현하는 해피 엔딩과도 거리가 멀구요. 그래도 어쨌거나 우리의 주인공은 결국 수십년간 자신을 속여왔던 행동을 끝내고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니까 아주 나쁜 건 아니겠죠. 감독이 이걸 직접 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도 긍정적인 의미로 볼 수 있겠구요. 이런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며 목소리를 낼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런 작품의 '취지'를 떠나서 그냥 스릴러나 드라마로서의 '재미'를 놓고 봐도 꽤 잘 만든 영화였어요. 사건의 진상을 찾아가는 과정도 위에서 적은 '기억의 장난'을 갖고 재밌는 미스테리를 만들어 냈고, 진상을 깨달은 후의 그 참담한 전개도 완전 끔찍하지만 어쨌든 몰입해서 볼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하지만 뭐... 결론은 아시죠? ㅋㅋ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시즌' 뿐입니다. 티빙에 팔려가는 김에 요 영화도 티빙으로 이전이 되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어떻게될진 제가 모르겠고, 좀 아쉽네요. 많은 분들 보시면 좋겠다 싶은 잘 만든 영화였는데 말이죠. 그냥 시즌을 탓합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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