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걸의 소림사

2023.09.24 20:44

돌도끼 조회 수:272

1982년에 개봉한 장흠염 감독의 영화.
기획 제작은 홍콩, 출연진과 장소는 대륙에서 제공한 합작영화입니다.

원래는 1978년에 '소림삽십육방'이 대히트하는 걸 보고 시작한 기획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만들던 도중에 한번 엎어졌고, 스태프부터 완전히 물갈이를 해서 리셋합니다. 어찌어찌하다 대륙의 인사들과 줄이 닿고 거기에 일본의 쇼린지겐뽀(소림사권법)까지 숟가락을 얹으면서 판이 커졌습니다.

교체되어 들어온 감독인 장흠염은 원래부터 대륙과 연줄이 있던 사람이고, 그무렵 '백발마녀전'(물론 10여년 후에 나오게되는 임청하 영화와는 다른 영화)을 대륙 로케로 찍기도 했습니다(무려 등주석 본인이 촬영현장에 인증샷을 남기고 가기도...)

이 장흠염이란 분이 국내에는 거의 안알려져있지만 실은 무협영화 쪽으로 어마어마한 분인게요... 60년대에 장흠염이 만든 영화 '운해옥궁연'이 히트하자 거기에 자극받은 쇼부라다스가 무협영화를 대량생산하기로 결정하고 '운해옥궁연'의 무술감독이었던 유가량과 당가를 스카웃하기까지 했다고 하거든요. 그리고는 다들 잘 아는 호금전 장철의 무협영화들이 나왔다고... 그러니 60년대 무협영화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할수 있는 분.

이양반이 북경에서 무술학교 공연하는 걸 보고 출연자(들)한테 반해서 '반드시 저사람(들) 데리구 영화 찍어야지!'라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해요.

한편, 쇼린지겐뽀는 소 도신이라는 일본사람이 소림사에서 배워온 무술의 정수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무술인데, 일본내에서 상당한 수련인구를 자랑하기는 했지만 일본 사람들도 소 도신이 소림사 출신이라는 주장은 뻥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여기 빡친 소선생이 중국을 방문해서 깜짝 쇼를 하기도 했는데, 대충 그러던 중에 대륙과 합작으로 소림사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선 거기 끼면 좋은 홍보수단이 될거라고 생각한 듯..

또 한편, 그시기 대륙은 경제 개방을 하려고 간보던 때인데, 홍콩사람들이 쿵후 영화를 만들어서 세계적으로 돈벌이를 하고있는 한편 중국무술 붐을 일으키고있는 걸 보고는 홍콩을 본받아 우슈를 홍보할 영화를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을 높으신 분(들)이 하고있었나봐요.

이렇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백푸로 대륙 로케 및 오리지날 소림사 현지촬영, 주요 출연진 대부분이 실제 무술 챔피언 및 고수들 출연. 이런 엄청난 조건하에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1000 단위의 인민해방군이 엑스트라로 동원되었다고 하고, 쇼린지겐뽀 측에서도 조연 및 엑스트라를 제공했다고...

82년 1월에 공개된 '소림사'는 스타일면에서는 홍콩 영화가 한창 현대화되고 있던 시기에 나온 영화치고는 올드했습니다만, 그래도 홍콩에서 대히트해 그해 랭킹 상위권에 올랐고, 곧이어 개봉한 대륙에서는 흥행 1위 영화가 됩니다(대략 9000만 관객이라는 듯...) 중국어권 이외 지역에서도 연달아 대박이 났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유명한 13곤승과 이세민의 이야기입니다.
이세민이 왕세충과 대립하던 시절 곤경에 빠졌을 때 소림사 스님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고, 나중에 당태종이 된 이세민이 그때 은혜를 잊지 않고 소림사에 사례를 하고 인증샷 남겼다는 이야기. 바로 이 이야기가 소림사가 무술의 성지로 중원 전체에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라고 해요. 다른 사람도 아닌 당태종이 인증해줬으니 말 다했죠.
그렇게 해서 소림사가 천년 넘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걍 막연히 무술의 성지라고 소문만 났을 뿐, 정작 소림 무술과 관련되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거 말고는 없다네요. 소림사가 나오는 억만가지 이야기가 있긴 해도 그건 다 무협'소설'이고 더구나 죄다 오리지날 소림사가 아닌 남소림 (소림사가 청나라 조정과 대립하다 군대의 공격을 받아 불타버린다는)이야기였어요. 남소림 아닌 실제 소림사 이야기는 달랑 13곤승 하나밖에 없다네요. 그러니 실제 소림사에서 촬영한 첫번째 영화도 당연히 그 이야기일 수 밖에...

구체적인 내용으로 가면 아무래도 '소림사십팔동인'이나 '소림삼십육방'같은 선배 영화들에서 받은 영향이 짙게 드리워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 스토리는 배경을 그대로 청나라로 옮기고 남소림으로 바꿔도 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말미에 가면 군대가 소림사를 불태우겠다는 엄포까지 놓고 있잖아요. 아마도 기획초기에 남소림 영화에서 받았던 영향의 흔적이 아닐까 싶기도...
뭐 기초적인 뼈대는 악당한테 부모를 잃은 소년이 소림사에 들어가 빡세게 배운 무술로 복수한다...는 심플한 이야기고, 그 사이를 어떤 아이디어로 채우느냐의 문제인데, '십팔동인'이나 '삼십육방'같이 소림사에 실제로 가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만든 영화는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동원해 그 사이를 채웠지만 이 영화는 그냥 소림사 현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일을 합니다.

수많은 무협물에서 수백번을 보았을 소림사지만 그걸 실제 눈으로 본 사람은 그 당시 대륙 바깥에서는 없었잖아요. 남소림 전설을 사실이라고 믿고 소림사가 진짜로 불타 없어진 줄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니... 그때까지 나온 대부분의 소림사 영화가 남소림 영화였고, 대륙에 못들어가니 대체제를 찾다 불국사에 소림사 간판을 달고 찍은 황당한 경우까지 있었지만, 이 영화는 처음으로 북소림-오리지날 소림사의 실제 모습을 보여줬으니 그 임팩트는 대단했습니다.
소림사 말고도 본격 개방 전이던 대륙 본토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구경거리였죠.
거기에다 그럭저럭 액션 영화로서는 제 할일을 하는 스토리, 그리고 진짜 무술인들이 보여주는 실기가 더해졌으니, 흥하지 않을 수 없겠죠.  

간판 스타인 이연걸은 뭐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겠고,
사부님 역으로 나온 우해는 산동성 무술팀 대빵으로 당랑권 명인으로 이름난 사람이었다고 하고,
끝판왕 역의 우승혜는 검술로 챔피언 먹은 사람이고,
사형으로 나오는 호견강은 남권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무술 챔피언(이걸 이용해 '소림사3'에서는 호견강과 이연걸이 각각 남북소림의 대표로 나오기도...)이라고 하고,
역시 사형으로 나오는 손건괴도 도법으로 챔피언 먹었던 사람이라 하고... 등등, 중국 이외지역에서는 이연걸 한사람만 떴지만 대륙에서는 주요 출연진들 대부분이 무술계에서는 이미 쟁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술 드림팀, 어벤저스... 뭐 이런 형편...
이렇게 무술 챔피언들을 모아 한데 갈아넣은 영화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거의 없었을 듯...
그리고 엑스트라들까지도 어지간하면 실제 무술인들이 출연하고 있다는 것 같으니까... 그 임팩트는 당시로서는 굉장했죠.

시대극으로서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걸리는 게 많습니다. 일단 영화의 시대 배경이 소림사가 막 유명해지게 되는 초기시절 이야기인데, 현재의 소림사를 찍어서 보여주다 보니 영화 속에 나오는 절은 너무 오래되어 보이죠ㅎㅎ
글구 영화에 나오는 각종 무술과 무기 대부분이 청나라 말쯤에 정립된 것들입니다. 그밖에도 잔잔한 착오들이 꽤 많은데, 예 뭐 이런 영화 보면서 그런 거 따지는 넘이 이상한 넘이겠죠ㅎㅎ

이 영화는 우슈를 세상에 알림과 동시에 소림사를 세상에 팔아보자는 목적으로 만든 프로파간다...PPL 영화니까, 시대를 고증하기 보다는 현대의 우슈를 알리는게 우선이었을 테고, 어차피 그 시기 무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ㅎㅎ
목적 달성에 성공해서, 이 영화 찍던 당시만 해도 소림사는 주변 개발도 전혀 안되어있는 황무지 같은 상태였다가 영화 개봉후 관광객이 폭증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아주 영업 잘하고 있죠.
영화가 나온 후에 대륙에서는 무술붐이 일어서 대륙산 무술영화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오기도 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내수용으로만 그쳐 해외에서는 듣보신세지만 그래도 대륙에서 조금만 인기가 있어도 장난 아니니까... 수많은 대륙 청소년들이 제2의 이연걸을 꿈꾸면서 무술학교를 찾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대히트해 소림사 붐을 일으켰고, 오프닝 크레딧 나오기 전에 소림사를 소개하는 짤막한 영상이 나오는데(이건 지역, 시기에 따라서 몇가지 다른 버전이 있습니다.) 일본 상영판에서는 여기 소 도신이 소림사에 가서 인증샷 남긴 게 들어갔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후에 쇼린지겐뽀가 떡상해서 숟가락 얹은 효과를 잘 챙겼다고 하네요. 일본은 이 영화가 히트한 영향으로 '소림삽십육방' '소림사십팔동인'같은 고전이 뒤늦게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제목에 소림사만 붙으면 가져갔나봐요ㅎㅎ

한국에서도 대히트, 이연걸이 성룡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대스타가 되나 싶더니, 딱 소림사 1,2,3편까지만 흥하고 그뒤 바로 추락해버렸죠. 그리고나서 재기한 게 황비홍이니... 이연걸은 아마 한동안 머리카락 컴플렉스가 생겼을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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