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소비 내한 콘서트 소식이 들려서 몇번 검색을 해보니 요아소비가 어떤 아이돌과 챌린지를 하는 숏폼이 뜨더군요. (참고로 전 요아소비 팬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 자체가 이상할 건 없었는데, XG라는 이 아이돌은 누구길래 일본에서 제일 잘나가는 아티스트와 저렇게 챌린지를 하나 궁금해졌습니다. 처음에는 YG의 산하 레이블인줄 알았습니다. 일단 노래를 들어봤는데 으잉? 아이돌 노래라기엔 노래가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사실 케이팝 장르가 이미 손을 안뻗친 곳이 없지만 이런 바이브는 케이팝이라기에는 분명히 이질적이죠. 멤버들의 살짝 이국적인 외모도 그렇고 뮤직비디오가 담고 있는 키치한 감성도 그렇고, 일본쪽 아이돌이겠거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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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rin이라는 멤버가 저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


저는 이 XG란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먼저 perfume을 떠올렸습니다. 어딘가 뿅뿅거리는 것도 그렇고, 이쁘거나 멋짐을 추구한다기보다는 뚜렷한 자기 세계를 밀어붙이는 느낌도 그랬습니다. 잘 나가는 케이팝 아이돌일수록 이런 컨셉을 밀어붙이긴 더 어려울 거란 생각마저 했습니다. 왜냐하면 별의별 컨셉으로 변화를 줘도 케이팝 아이돌은 근본적으로 '숭배'를 밀어붙이는 산업이기 때문이죠. 예쁘고, 잘생기고, 춤 잘추고, 노래 잘하고, 일반인들보다 "잘난" 사람들을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가 케이팝 산업에 깔려있기 때문에 이렇게 패셔너블한 컨셉은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그에 비하면 XG의 TGIF란 노래의 컨셉은 훨씬 더 자유롭고 개성적이죠. 대중들의 호불호를 딱히 신경쓰기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독립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노래는 훨씬 더 패셔너블합니다. 일반적인 케이팝의 싸비 부분에서는 고음을 자랑하며 한층 더 빡센 안무로 포인트를 빡 주는데, 이 노래는 싸비에서 오히려 훅 떨어트리고 춤도 훨씬 더 다운된 분위기로 추죠. 


일본에서는 응원단 복장의 "아이도루"만 나오는줄 알았는데 이렇게 모던한 걸그룹도 나오나 싶어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 그룹의 프로듀싱이 굉장히 특이합니다. 전원 일본인인데 데뷔를 한국에서 했습니다. 방송활동도 엠카, 음중, 뮤직뱅크 같은 한국 음악방송에서 합니다. 아주 능숙하진 않지만 다들 한국말도 할 줄 압니다. 노래 가사는 팝송처럼 아예 다 영어로 작사가 이뤄졌습니다. 일본인 가수가, 한국에서 데뷔하고 활동을 하는데, 노래 가사는 다 영어입니다. 겉으로만 봐도 총 3개국의 정체성이 혼합되어있는 상태죠. 


여기서 질문. 이 그룹은 케이팝 아이돌입니까?



이 질문은 또 다른 전제를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를 케이팝 아이돌로 규정한다면, 이 때 "케이팝"은 무엇이며 "K 케이"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영화의 국적을 따질 때는 투자된 자본의 국적을 제일 먼저 따집니다만 과연 같은 방식으로 아이돌의 케이팝 정도를 가릴 수 있을까요. XG의 경우 제작사는 일본의 에이벡스의 산하 제작사이고, 제작자는 제이콥스라는 분인데 이 분은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일본인인 혼혈입니다. 심지어 제작자도 한국인으로서의 국가적 정체성이 일반적인 한국인보다 복잡하죠. (자체 프로모션용도로 보이는 제작 다큐멘터리가 유튜브에 올라와있는데 한국어랑 일본어를 둘 다 잘하는 분입니다) 이 그룹의 멤버들은 약 5년간 트레이닝을 거쳤는데 그 트레이닝도 한국에서, 한국인 트레이너와 프로듀서에게 받았습니다. 국적만 외국인일뿐 한국적 아이돌 트레이닝을 받고 한국 음방에서 활동하며 한국어도 쓴다면, 충분히 케이팝 아이돌이 아닐까요? 만약 국적을 꼬투리 잡으려면 순식간에 케이팝 아이돌로 활동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에 대해 반문할 수 밖에 없게 될 겁니다. 트와이스의 미. 사. 모는 ? 블랙핑크의 리사는? 뉴진스의 하니와 다니엘은? 


아마 어떤 분들은 XG가 가지고 있는 케이팝 아이돌의 정체성을 긍정하기 위해 한국인이 없는 또 다른 케이팝 아이돌 '블랙스완'의 사례를 댈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이들을 케이팝 그룹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XG의 나무위키 항목에 보면 대표나 프로듀서가 한 인터뷰에서 'K pop 그룹이 아니라 ' X pop 그룹이다' 같은 멘트를 한 걸 상당히 고까워하고 있거든요. 또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다른 (케이팝) 아티스트를 대답을 못하고 대답을 둘러대는 모습에서 좀 비호감을 사기도 했습니다. (뭘 알고 그러겠습니까? 소속사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케이팝과 거리를 두려고 정신교육을 하니까 아티스트들이 저런 이상한 반응을 한 거겠죠)




[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롤모델이 블랙핑크인 것이 너무 티가 나긴 합니다 ]


제 입장에서 이런 논란들은 좀 사소한 꼬투리 같기도 합니다. 어떤 그룹의 국가적 정체성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아이돌을 소비하는 데 있어 그냥 노래가 좋고 퍼포먼스가 매력있고 멤버들이 끌리면 그만이죠. 그렇지만 이 그룹의 노래를 듣고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갈라파고스 같은 "아이도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일본 아이돌도 어느새 이 정도로 케이팝을 따라잡는 선까지 왔구나... XG를 좋아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좋아하기 보다는 "케이팝 종주국"의 국민으로서 괜한 긴장감이나 불안을 느꼈다고 할까요. 마치 태권도나 양궁 금메달이 한국이어야 하는 것처럼 케이팝 최고 인기 그룹도 케이팝 그룹이어야 한다는 제 안의 국가적 팬심을 발견하고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케이팝을 단순히 장르로 즐긴다기보다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이 최고를 점유하는 어떤 문화산업의 왕좌를 다른 국적에게 뺏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XG의 멤버들이 홍콩이나 타이완이라거나 필리핀이나 타이랜드 국적의 멤버들이 케이팝을 경유해 케이팝 아이돌로 활동한다면 그건 조금 다른 종류의 긴장을 느끼게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으로만 이뤄진 그룹이 케이팝 그룹으로 활동한다는 건 어딘지 껄끄러운 느낌이랄까요. 이것은 아마 멤버의 국적보다도, 이들의 활동 경로가 불편한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 음반회사가 미국 본토의 팝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의 케이팝 시장을 일종의 경유지로 활용하는 그 느낌이 별로입니다. 제이팝 시장의 느낌을 세탁하기 위해 케이팝 시장을 경유지로 활용한다는 그 지점이 뭔가 불편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상업적으로 보면 딱히 비즈니스일뿐인 이 아이돌 산업에서 굳이 국가적 정체성을 찾는 것은, 혹은 국가적 정체성을 한번 표백한 느낌을 찾는다는 것은 과연 제가 민족주의적으로다가 아이돌 소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굉장합니다.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 아이돌 그룹이 음악방송 활동을 하는 그 양이나 예능에 출연한다는 게 어지간한 자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한국에서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새로운 음반 활동을 할 때마다 꾸준히 컴백 무대를 잡고 방송을 돕니다. 한국인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이렇게 한국의 음악방송 활동을 고집하는가 하면, 케이팝 팬들이 한국의 음악방송을 엄청나게 보기 때문이죠. 조회수가 기본으로 백만 뷰를 넘어갑니다. 예를 들어 STAYC란 아이돌이 대중적으로 가장 히트를 쳤던 노래가 ASAP란 노래인데 뮤직뱅크 조회수는 160만입니다. 같은 노래로 뮤직뱅크에서 활동한 다른 회차도 110만 뷰가 나옵니다. 뮤직뱅크의 댓글도 한글보다 영어나 다른 언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이돌을 알리는데 유튜브의 한국의 음악방송은 아주 좋은 수출 경로가 되죠. 


이것은 그만큼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하나의 장르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어떤 원산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의 경우로 XG가 케이팝 시장이 아니라 제이팝 시장에서 데뷔했다면? 아마 지금 거두고 있는 성공을 거두는데 훨씬 더 많은 상업적 투자를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마 케이팝이라는 시장 안에서 먼저 눈도장을 찍으면서 케이팝이라는 장르가 담보하는 최소한의 완성도는 가지고 있을 거라는 일종의 인증서도 얻게 됩니다. 그렇기에 XG의 케이팝 시장 활동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케이팝 시장은 이제 완전한 국제적 시장의 규모를 지니게 되었다, 굳이 한국 팬들의 인기를 얻지 않아도 이미 세계를 향한 수출시장으로서만 활용할 수 있을 정도다, 케이팝의 프로듀서와 트레이너 등 "케이팝스러움"은 자본으로 구매할만큼의 어떤 브랜드가 되었다... 이건 꽤나 신기한 일이면서, 또 괜히 마음 복잡해지는 일이죠. 언젠가는 기획사나 연습생이 가진 한국이라는 국적을 뛰어넘어 케이팝 시장이 더 치열한 경쟁판이 될 거라는 예고장이니까요. 




시장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적어놨지만, 전 사실 이 그룹이 좋습니다. 케이팝 아이돌에게서 없는 그루브와 자유로움이 있으니까요. 저는 아이돌의 첫번째 덕목을 춤이라고 보는데 이 그룹의 안무는 생각보다 꽤나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Jurin이라는 보브컷의 멤버가 춤을 꽤나 잘 춥니다. 그리고 케이팝 시장이 이 새로운 그룹에게 배울 게 있으면 또 과감히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케이팝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국적과 로컬리티를 다 초월해서 뭐든지 흡수하고 자기것으로 빼앗아가는 하이브리드의 특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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