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정치적 이슈와 얽혀서 표창원씨가 아이돌처럼 급부상했을 땐 사실 그냥 시큰둥했었습니다.


근데 그 후로 이 양반이 이런저런 글 쓰고 인터뷰하는 걸 보니 점점 호감이 생기더군요.


일단 진짜로 현직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지는 식견을 보여주는 한국에선 흔치 않은 전문가(...)이기도 하구요.


뭣보다도 또 한국의 이런 전문가들치곤 (자꾸 한국 들먹여서 죄송;) 글을 깔끔하게 정돈해서 잘 써요.


대학 교수니 국회의원이니 무슨 기업 대표니 하는 사람들이 직접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잘 한다,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 분에게 더 호감이 갑니다. ㅋ



암튼 다들 아시다시피 요즘 수원에서 발견된 토막 시체가 화제인데요.


바로 얼마전에 오원춘 사건이 벌어졌었다는 것 때문에 그 때와 마찬가지로 또 장기 매매니 인육 캡슐이니 하는 자극적인 기사들과 루머들이 떠돌고 있죠.


오원춘 사건이 장기 밀매, 인육 캡슐과 연관된 내용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종결됐지만 지금도 이 동네 사람들은 다들 인육인육거리고 있고.


이번 사건이 터지니 또 앞뒤 안 가리고 인육, 장기 어쩌고 난리가 나서 짜증이 솟구치는 와중에 표창원씨의 이런 글들이 참 위로(?)가 됩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4628&plink=ORI&cooper=DAUM


이건 시신 발견 직후에 sbs 라디오에서 인터뷰한 건데.


어느 정도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 지금 시점에서 읽어보니 정말 감탄이 나옵니다. 우왕! 이런 게 전문가!!!! 라는 느낌.


옆에 계시다면 존경의 눈빛을 한 시간 정도 쏘아드리고 싶은 기분이구요.



오늘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서 또 퍼날라지고 있는데 역시 내용이 좋습니다. 글도 깔끔하구요. 


https://www.facebook.com/cwpyo/posts/919242901449783


요기에 있는 글인데. 전문을 맘대로 옮겨도 되는지 모르겠.... 지만 일단 옮겨 봅니다. 문제가 된다면 지울게요. ^^;;


 

[범죄사건 보도에서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이번 수원 토막시신 발견 보도 중에 '인육, 장기매매'와 연관짓거나 범인의 특성을 '도전, 과시, 자신감' 등으로 과대 포장해 보도한 내용들은 당사자들껜 정말 죄송하지만 '범죄보도의 기레기' 범주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국에선 매체의 특성을 크게 두 범주로 나눕니다. '타블로이드''브로드쉬트'

원래 인쇄용지의 크기 차이에서 비롯된 이 용어는, 진실과 객관에 기반한 비판을 추구하는 '정론지'와 진실이나 사실여부에는 별 관심없고 자극과 흥미만을 추구하는 '옐로우 저널'로 나누는 것이죠.


정말 죄송하지만, 우리 언론에 범죄보도와 관련해서만큼은 '정론지'라 불릴 매체가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개별 기자나 기사에서는 '객관과 진실에 기반한 비판'을 추구하는 치열함과 탐구를 읽을 수 있는 적도 있지만, 발생 사건의 보도는 '경쟁', '속도' 딱 두가지 가치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치거나 고의로 희생시키는 모습들을 모든 매체에서 발견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중과 싸우지 (혹은 대립하지) 않겠다'는 비겁함입니다. 대중의 여론이 인육, 인신매매 등 자극이나 음모, 과장 등으로 형성되거나 굳어질 경우 여론에 편승하거나 더 부추기는 방향으로 달려나가지, 이에 부합되지 않거나 반대되는 근거나 단서, 사실 혹은 논리들이 있어도 축소하거나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동안 1999년 경 부터 15년 동안 무수한 사건에서 무수한 기자들의 무수한 전화를 받고 무수한 이야기들을 해주고 인터뷰를 해 왔습니다. 때로 1시간~2시간 해당 사건 자체 뿐 아니라 과거 유사사건, 외국의 유사 사건, 관련 범죄학 혹은 범죄심리학 이론, 프로파일링 적 해석 등을 이야기 해 주면, 어떤 경우엔 미리 짜놓은 방향과 맞지 않을 경우 단 한 줄 보도되지 않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제 이야기를 마치 본인이 취재한 것처럼 인용없이 보도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간략히 한 두 줄 인용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제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한 것 처럼 보도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인터뷰도 하지 않았는데 한 것 처럼 보도되기도 하는 경험들을 해 왔었습니다.


특히, 모든 언론사의 '사건 담당'기자는 대부분 신임이거나 수습 심지어 '인턴'을 시켜 인터뷰 요청을 해 오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매번 이들이 바뀔 때, 새로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다 해 줘야 하곤 했습니다.

영국의 타임즈나 가디언 텔레그라프 등의 '범죄전문 기자', '범죄전문 대기자' 들의 기사나 칼럼을 대학원 범죄학과 경찰학 과정에서 부교재 격으로 인용하던 모습과는 너무 다른 한국의 현실이죠.

경찰관일 때와 경찰대학 교수일 때는, '공적인 의무'라고 생각해 (거의) 모든 언론 인터뷰 요청에 응했고, 무수한 반복 대답을 했고, 의도나 취지 혹은 본질과 다른 인용에도 묵과해 왔습니다하지만, 이제는 자유인이고, 그런 '대상'으로 소비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한 매체 사건기자가 전화해 와 똑같은 "사이코패스, 보란듯이, 전시, 과시'의 방향으로 몰아가며 "다른 전문가들도 다 같은 의견"이라며 합류할 것을 재촉하더군요. 기사방향과 제 의견은 전혀 다르니 인용하지 마시라고 해도, '다른 의견'으로 인용하겠다고 해서 절대로 인용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제 의견은 최초 SBS 한수진의 전망대 인터뷰 내용과 같습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볼 때는, 과감 대담 잔혹, 이상.. 이렇게 보이는 면이 많지만, 자신의 거소에서 범한 살인의 증거, 시신을 유기해 책임과 처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누가 볼 지도 모르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상황에서의 범죄자의 행동에는 비합리적인 인식과 판단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죄의 방법, 시기, 장소, 도구 등에 대한 분석은 크게 두 가지, '범행의 성공과 검거회피'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범인으로서는) 합리적 선택인 MO, 아니면 들키고 검거될 위험이 높아지는 불리한 행동임에도 (때로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욕구와 충동 때문에 행하는 Signature .


일단 이 사건 시신 훼손 및 유기 방법이 Signature에 해당한다고 볼만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MO 의 범위 내에서 이해와 해석이 가능합니다.

범죄는 당연히 나쁘고, 비난해야 하며, 응당한 처벌이 뒤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은 수사를 행하는 과정에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과장과 상상에 기반한 비논리적 추정을 늘어놓는 것은 도움이 안됩니다. 특히, 시민들의 제보가 필요한 이번 사건에선 더욱 그렇죠.

용의자가 검거된 이후 그의 범행을 입증하고, 동기를 구축하고, 죄질을 판단하기 위한 해석과 분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사의 작성, 취재와 보도, 그 근본 목적은 무엇일까요?

범죄보도에 있어 '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경쟁과 속도에 대한 데스크 등 상부의 압박과 강요 앞에서도 '기자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소신과 용기 그리고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의견과 주장, 존중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기사의 일부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 언론의 전화를 받지 않는 제 입장, 이해와 존중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제 의견과 분석, 주장이 전체로 다 여러분께 전달될 수 있는 방법으로만 언론과 만나겠습니다.

 

*한 마디만 더 덧붙이면,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 대변인에게 더 많이 더 자극적으로 보도되도록 하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죠. 그 반대로,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이 검거되지 않은 사건이나 곤혹스런 사건의 보도를 줄이기 위한 '홍보'노력을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언론이 지나치게 수사기관의 보도자료나 흘리는 언질에 의존하게 되면, 또다른 형태의, 권력이나 기관의 홍보대행사로 전락하는 '기레기'가 될 수 있습니다.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며 보도거리를 찾는 일은, 발과 손 머리를 모두 동원해 늘 쉬지않고 뛰고 움직여야 하는 아주 힘든 일이죠. 그래서 전 '기레기가 아닌 기자님', 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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