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외한으로 살기

2019.03.01 18:34

어디로갈까 조회 수:1375

문외한(門外漢)이란 문 바깥의 사람을 말하죠. 漢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경시되는 존재입니다. 
중심에 접근할 힘과 용의가 없는 사람으로 무관심과 무지에 안주하는 태도를 지녔죠.
취향에 맞지 않아서 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문외한이 아니에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고 있는 사람이 참된 문외한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문외한이라는 걸 깊이 깨달은 사람은 그 깨달음의 절 안에서 만큼은 문외한이 아닌 거에요. 그런 문외한은 '이미', '어느덧', 
문 안에 있는 자의 삶과 같은 골격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대체 그걸 무슨 재미로, 어떤 의미가 있어서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문외한의 진정한 면모입니다.
이를테면 '헬레이저' 류의 영화를 보면서 문외한은 이렇게 생각하죠.
'왜 저런 지옥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는 거지? 이렇게 저렇게 무서운 장면들을 배치해 놓았지만, 결말이 어떻게 나건 결국 기괴하고 엽기적인 장난질에 불과하잖아?'

이를테면 야구를 보면서 문외한은 이렇게 생각하죠.
'공을 어느 방향으로 치든 주자가 달리는 곳은 뻔하지. 그는 공을 잡거나 놓치든가 할 것이며, 이편 아니면 저편이 이길 것이고, 어떤 경우든 그건 세상에 의미가 없는 일이잖아.  따라서 전혀 흥미가 일지 않아~'

이를테면 레이싱 경기의 문외한은 이렇게 생각하죠.
'레이서는 앉아서 단지 운전만 하고, 단지 속도에 관여하는 게 요령의 전부잖아. 커브 돌 때 약간의 기술을 부릴 수 있다고 그걸 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어?'

이를테면 축구의 문외한은 이렇게 생각하며 경기를 비웃죠.
'대체 공 하나를 가지고 왜 저 야단을 하면서 열한 명이 뛰고 구르느냔 말이다!'
 
모든 문외한들이 갖는 공통점은, '타인의 몰두'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인생이라는 태어나 죽기까지의 어이없는 긴박 속에서, 또 다른 몰두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란 그들에겐 참 신기하 -고도 어이없- 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문외한이여! 그렇지만 그들에겐 그것이 인생의 긴박이랍니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이 편에서 저 편까지의 거리 이상의 넓이를 갖게 되었답니다

저는 테니스의 문외한이지만 윔블던 테니스 경기 구경하기를 좋아해요. 사각의 경기장을 왕복하는 공을 아스라한 시선으로 좇다보면 다소 명상적인 상태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런 순간이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덧: 오늘부터 제 집이 난방배관 공사 후의 인테리어 작업에 들어갔어요. 
반나절 동안 마루 까는 기사분들 작업 지켜보는 게 퍼즐맞추기의 알고리즘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즐거웠습니다. 
모르는 분야의 작업 현장을 반나절 구경하고도 조금도 피로하지 않은 게 신기해서 장난삼아 써본 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91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442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3284
126046 구로사와 기요시 신작 클라우드, 김태용 원더랜드 예고편 [2] 상수 2024.04.23 331
126045 혜리 kFC 광고 catgotmy 2024.04.23 264
126044 부끄러운 이야기 [2] DAIN 2024.04.23 414
126043 [티빙바낭] 뻔한데 의외로 알차고 괜찮습니다. '신체모음.zip' 잡담 [2] 로이배티 2024.04.23 342
126042 원래 안 보려다가 급속도로.. 라인하르트012 2024.04.22 263
126041 프레임드 #773 [4] Lunagazer 2024.04.22 68
126040 민희진 대표님... 왜그랬어요 ㅠㅠ [8] Sonny 2024.04.22 1525
126039 미니언즈 (2015) catgotmy 2024.04.22 96
126038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스위트 아몬드, 라떼 catgotmy 2024.04.22 98
126037 최근 읽는 책들의 흐름. [8] 잔인한오후 2024.04.22 426
126036 듀게 오픈채팅방 멤버 모집 물휴지 2024.04.22 49
126035 눈물의 여왕 13화?를 보고(스포) [2] 상수 2024.04.21 363
126034 [왓차바낭] 선후배 망작 호러 두 편, '찍히면 죽는다', '페어게임'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4.04.21 288
126033 프레임드 #772 [4] Lunagazer 2024.04.21 46
126032 LG 우승 잔치는 이제 끝났다… 3년 뒤가 걱정이다, 구단도 냉정하게 보고 간다 [5] daviddain 2024.04.21 225
126031 [넷플릭스] ‘베이비 레인디어’ 굉장하네요 [10] Gervais 2024.04.21 1094
126030 [왓챠바낭] 다시 봐도 충격적일까 궁금했습니다. '성스러운 피' 잡담 [4] 로이배티 2024.04.20 714
126029 프레임드 #771 [2] Lunagazer 2024.04.20 333
126028 비 오는 날 mlb 벤클 영상 daviddain 2024.04.20 381
126027 그냥 이런저런 킹콩 잡담 [1] 돌도끼 2024.04.20 43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