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작이니 30년 전 추억의 영화네요. 런닝타임은 3시간 6분. 스포일러는 딱히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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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숏' 컷인데 런닝타임 3시간 6분은 무슨 일이고...)



 - 도입부 소개 같은 게 무의미해서 대충 요약을 하자면 LA에 사는 11 커플의 일상을 짧게 짧게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마침 LA는 광대 파리의 이상 발생으로 난리가 났어요. 뉴스에선 매일 전쟁이라도 난 듯이 파리 대책이 전달되고 하늘엔 파리 잡는 살충제를 뿌리는 헬리콥터들이 편대 비행을 하고 있네요. 그리고 우리의 11 커플은...

 소개는 포기하구요. 가난하기도 하고 잘 살기도 하고 교양 있기도 하고 무식하기도 하고 기타 등등 각자 성격은 다르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인생을 그리 잘 살고 있지는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 11팀, 22명 + 알파의 사람들이 며칠간 LA의 같은 시간대에서 보내는 일상, 갑작스레 마주치는 사건들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슥 훑어 보여주는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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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임팩트가 가장 강하고, 또 영화의 메시지도 가장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이것이 아니었나 싶구요.)



 - 영화는 1993년산이지만 한국엔 1995년에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전 이거 말고 '20세기 레미제라블'이라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죠. 이유는 단 하나, 그보다 얼마 전에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을 보고 장 폴 벨몽도 아저씨의 간지에 반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봤는데. 솔직히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체 이게 왜 레미제라블인데?'라는 궁금증만 안고 극장에서 나왔는데...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보니, 어라. 입장할 때 아저씨가 표를 안 받으셨네요. 그런데 그때 참으로 황당하고 부도덕한(...) 생각이 든 겁니다. 표가 그냥 있으니까, 잘 얘기하면 이걸로 영화를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본 영화를 또 보고 싶진 않았고. 제가 갔던 극장은 스크린이 딱 두 개였는데 나머지 하나에서 하고 있던 게 바로 이 영화, '숏컷'이었습니다. 대충 시간도 맞았고. 마침 씨네리에서 이게 걸작이네 뭐네하는 기사도 잔뜩 읽은 후였고. 그래서 매표소 아저씨와의 협상을 간단히 마치고 바로 다시 입장해서 이번엔 이걸 본 거죠. ㅋㅋ 근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20세기 레미제라블'은 상영 시간이 2시간 55분. 이 영화는 3시간 6분이었으니 결국 그 날 하룻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6시간 동안 본 셈이네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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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퍼 제이슨 리야 워낙 주목 받던 시기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가만 보면 크리스 펜 저 분도 여기저기 엄청 나오셨다는 걸 30년 후에야 깨닫습니다. ㅋㅋㅋ)



 - 솔직히 그 전에 로버트 알트만 영화를 본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터넷도 없고 (제)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도 없던 시절이라 그냥 영화 잡지에서 몇 줄 읽은 잡지식 외엔 감상에 보탬이 될 아무 정보 없이 그냥 본 거였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22명의 캐릭터들이 와장창창 뛰쳐나와서 몇 분 단위로 바톤 터치를 해가며 전개되는 3시간짜리 영화... 를 보고 뭘 얼마나 이해 했겠습니까만. 참으로 시니컬하면서도 은근히 애잔한 그 분위기랑, 끝까지 다 보고 나니 '어라, 이게 뭔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네?'라는 느낌에 감탄했던 것. 이렇게 딱 두 가지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어요. 그래서 언젠간 다시 봐야지... 하다가 이제사 봤습니다. 거의 30년만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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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연맨 아저씨의 젊고 느끼하던 시절도 반갑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영화에서 비중은 작은 편이구요.)



 - 일단 출연 배우들을 읊어 보겠습니다. 앤디 맥도웰, 줄리안 무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팀 로빈스, 프랜시스 맥도먼드, 톰 웨이츠, 매들린 스토우, 릴리 테일러, 잭 레몬, 매튜 모딘, 앤 아처, 제니퍼 제이슨 리, 크리스 펜, 릴리 톰린, 로리 싱어, 프레드 워드, 피터 갤러거, 그리고 '풋 루즈'의 로리 싱어... 대략 제 기준 유명한 사람들만 늘어 놓아도 이 정도입니다. ㅋㅋ 그리고 영화의 형식상, 나오는 시간은 짧아도 이 사람들이 거의 다 주연이라고 볼 수 있고 그렇죠. 

 이 중에서 1995년 기준 한국에서 안 유명했던 분들은 지금 다시 보면서 참 반갑고 좀 웃기고 그랬는데요. 특히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보고 놀랐네요. 일단 당시엔 그냥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파고'가 그 다다음 해에 한국에 개봉했죠) 나온 것도 몰랐고, 또 이토록 젊고 생생하며 심지어 맡은 역할도 팜므 파탈 비슷하게 나온 영화를 보게 될 거라 생각을 못 해서 그게 제일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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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보면 아역 배우들도 엄청 나오는 영화인데, 어째 단 한 명도 이후 성인까지 배우로 버텨낸 분이 없더군요. 허허.)



 - 그 유명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박혀 있긴 한데. 그게 카버의 원작 소설 하나를 각색한 게 아니고 이 양반의 단편 아홉 개를 각색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뭉쳐 버린 걸로 유명하죠. 아주 도전적인 작업이었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 결과물은 아주 좋습니다. 물론 제가 원작 아홉편을 다 읽어본 팬이 아니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냥 영화만 보면 이것 자체로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걸 의심할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매끄럽게 잘 붙어 있거든요. 물론 원작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테마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걸 이렇게 합쳐서 멀쩡하게 하나로 만든 것도 참 대단한 능력이구나 싶었구요. 


 다시 보면서 감탄한 건 일단 편집이었습니다. 각본을 애초에 그렇게 잘 썼으니 가능한 거지만 어쨌든 되게 느슨하게 연결된, 그리고 그 중 몇몇은 사실 아예 따로 노는 이야기들을 되게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엮고 연결해서 보여줘요. 바로 전 커플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다음 커플 이야기의 첫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같은 테마,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도록 짜 놓았는데 그게 참 그럴싸해서 '사실 앞 커플이랑 지금 얘들은 이야기 속에서 한 번도 안 만난 별개의 이야기인데?' 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동안엔 거의 안 들어요. 


 또 이야기의 리듬이 되게 좋습니다. 얼핏 보면 대충 끊어지는 것 같은데 끊고, 또 이어가는 타이밍이 적절하고 각자의 분량 배분, 순서 설정도 좋아서 등장 인물이 너무 많다는 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런닝타임은 180여분이지만 커플이 11팀이니 팀당 시간은 16분 밖에 안 되잖아요? 그렇게 짤막한 이야기 열 한개를 보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서 지루할 틈이 거의 없더군요. 이 팀 저 팀 계속 건너 뛰다 보니 '이번엔 또 누구야? 얘들은 무슨 상황이었지??'라는 생각을 내내 하느라 강제로 집중 당한 것도 있었구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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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톰린은 이때 이미 '나이 든 아줌마' 역할이었는데 아직도 현역... 톰 웨이츠는 뭐, 허허. 너무 잘 어울려서 그냥 배우 같습니다. 미국의 김창완(...) 같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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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메리칸 스윗 하트께서도 나오시구요. 이 짤을 위의 짤과 나란히 붙여 놓은 이유가... 음.)



 - 그래서 뭐 결국 무슨 이야기냐면... 

 간단히 말하면 현대인 비판. 뭐 그런 거죠. 겉과 속이 다르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각자 다 자기 연민만 쩔고... 그리고 뭣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그런 부분을 이리저리 놀려대고 야유하다가 가끔은 정말 정색하고 까기도 하구요. 

 앞서 말 했듯이 이 중 몇 명은 정말 큰, 인생을 바꿔 놓을만한 사건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 외의 대부분은 대체로 별 거 없이 시시콜콜한 일들만 좀 겪다가 이야기가 끝나 버리는데요. 뭐 11팀이나 되는 사람들이 싹 다 중대한 파국을 맞으면 그것도 괴상하겠죠. 영화 클라이막스 처리하기도 힘들 거고... ㅋㅋ

 그런데 이 또한 대략 조율이 되고 의도한 대로 만들어진 부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영화의 컨셉 자체가 'LA 주민들의 우중충 찌질 피곤한 며칠' 뭐 이런 느낌이라서 굳이 모두 다 격렬한 체험을 시킬 필욘 없는 것이고. 또 이렇게 되니까 더 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들구요. 가만 보면 등장 인물들도 거의가 비호감 풍자 타겟들이지만 그 와중에 슬쩍슬쩍 멀쩡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도 비슷하게 현실성을 유지해주는 부분 같았어요.


 그냥 개인적으론 '공허함'이라는 표현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다들 내면이 텅 비어 있거나, 아님 인생이 허망하거나 그런 느낌이고. 이야기의 결말도 많이 그래요. 뭔가 기적(?) 비슷한 게 일어나는 척 하다가 그냥 무심하게 슝~ 지나가 버리는 것 또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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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 루즈'에서의 강한 젊은이 캐릭터와 완전히 반대되는 역할이었는데.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그래도 맡은 일 착실히 잘 해주신 로리 싱어씨.)



 - 근데 뭐 영화의 의미니 뭐 이런 것에 대해선 이미 수십년간 쌓인 비평들이 있으니 굳이 제가 또 따지고 들 생각은 없구요. ㅋㅋㅋ

 중요한 건 이게 3시간 6분이나 되는데도, 게다가 노장의 걸작 소리를 듣는 별로 안 상업적인 의도로 만든 영화인데도 그냥 한 번에 슥 볼 수 있을만큼 재밌다는 것.

 그냥 대충 봐도 와닿는 게 있으면서 웃기고 슬프고 씁쓸하게 다양한 감정들을 체험할 수 있는 영화니까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구요.

 그래서 혹시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한 번 시도해보셔도 좋을 법한 영화... 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원래 그냥 '재밌는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는 거.

 끝입니다. ㅋㅋㅋ




 + 폴 토마스 앤더슨이 이 영화를 그렇게 좋아해서 '매그놀리아'를 만들었다는 얘긴 전부터 들었는데. 정작 그 영환 안 봤어요. 이상하게 안 보고 싶더라구요.



 ++ 몇몇 캐릭터들의 국부 노출 씬이 있습니다. 야하단 느낌 전혀 없이 걍 일상의 '아이 부끄러' 같은 느낌으로 연출되어서 별 문제될 건 없지만 어쨌든 블러는 붙어 있구요. 다만 딱 한 남자 캐릭터만 블러의 혜택을 못 받아서 그만... (쿨럭;)



 +++ 매들린 스토우를 참 오랜만에 봤는데. 다시 보니 예쁘긴 확실히 예쁘셨네요. 매력도 있구요. 뭐하고 사시나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내년에 나온다는 티비 시리즈 '웰컴 투 데리'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으셨어요. 뭐라고? 데리?? 하고 확인해보니 맞네요. '그것'의 프리퀄격 이야기랍니다.



 ++++ 이야기 구성을 잘 해놔서 중요 인물이 22명이나 나오는 이야기 치곤 크게 헷갈리는 게 없었는데, 제겐 릴리 테일러와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자꾸만 헷갈리는 몹쓸 병이 있어서 딱 이 두 분만 몇 번 헷갈렸습니다. ㅋㅋㅋ 저만 이런 건가요!!!



 +++++ 가만 보면 대체로 '정말로 나쁜' 역할들은 거의 남자들이 맡고 여성 캐릭터들은 상대적으로 죄가 적은 편이네요. 아니 사실 가장 큰 죄는 여성 캐릭터가 짓는데 나쁜 사람으로 묘사가 안 되어서... ㅋㅋ 그리고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재수 없는 놈들을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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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들이 제 원픽입니다. 마지막에 크게 사고 치는 모 캐릭터가 더 나쁘긴 한데, 그 일 직후로 영화가 끝나 버리니까요. 결과적으로 가장 불쾌했던 건 이 분들인 걸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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