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제로 검색을 해 보면 서양사람들은 산채로 먹는 산낙지, 개불이나 고기대가리가 접시 한 쪽에서 뻐끔거리는 회 같은 거에 질겁을 하는 모양이던데 저는 남해안 출신이라 고정돈 눈도 꿈쩍 않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패스하고, 살면서 접한 음식들 중 먹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1. 굴, 멸치젓과 홍어

그렇게 해산물이 넘쳐나는 동네에 살았어도 이상하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진 굴이 안 땡기데요. 아버지가 밥상마다 챙기시던 멸치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던 멸치젓도 그렇고요. 가오리무침, 가오리찜은 먹어봐도 삭힌 홍어는 또 잘 안 먹는 동네라 이 셋은 서울로 터전을 옮기고 나서 처음 먹었습니다. 한 번 트고 나니 왜 이 맛난 걸 여지껏 안 먹고 살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맛있더군요. 그리고 이 셋이 다른 음식세계로의 진입을 좀 더 수월하게 해 준다는 걸 알았습니다.


2. 블루치즈, 두리안

이런 종류의 느끼함과 구리함이 공존하는 음식은 한식에선 좀체 발견하기 어렵죠. 이태리 치즈 중에 casu marzu란 게 있다고 해요(아래 사진). 치즈 표면에 구멍을 뚫어 놓으면 치즈파리가 들어가 알을 낳고 그 구더기의 발효 작용을 통해 썩혀 먹는 거라고 합니다. 곰팡이치즈까진 먹어봤는데 구더기치즈는 아직 못 먹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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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슈르스트뢰밍

스웨덴 친구가 하도 겁을 줘서 먹기 전에 엄청 쫄았던 건데 막상 열어보니 별 것 아니었던 겁니다. 삭힌 청언데, 과메기와 멸치젓과 홍어를 짬뽕한 맛이랄까... 단지 가스폭발에 대한 무서움증이 좀 있어서 캔 터질 거 걱정하는 거 아님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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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미알, 전갈, 날개미, 땅강아지, 노린재

인도차이나 전역, 특히 내륙지역에서는 이런 곤충류를 많이 먹습니다. 아마 큰 동물이나 바닷고기가 없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거였겠죠. 개미알 자체는 별로 특징적인 맛이 없는 쌀뻥튀기 모양인데, 채취하는 과정에서 개미도 많이 딸려오기 때문에 요리에도 개미가 듬뿍 고명으로 얹어져 있죠. 첨엔 개미를 좀 골라내면서 먹다가 이젠 그냥 안 보고 먹습니다. 뭐 보더라도 별 감흥은 없습니다. 보통 계란오믈렛이나 계란국 같은 식으로 먹지요. 눈에는 눈, 알에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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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www.oknation.net/blog/print.php?id=698702


전갈은 튀겨서 먹는데, 혀가 얼얼할 수도 있다며 꼬리의 침을 떼고 먹으라고 하더군요. 현지인들은 그 맛에 침을 안 떼고 먹는 사람도 있나봅니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주기적으로 날개미떼가 날아와 온동네를 뒤덮을 때가 있습니다. 불빛 아래에 바구니만 갖다 놓으면 금방 가득 차는데 여기에다 향신료 조금, 소금 조금 넣고 맨후라이팬에 달달 볶으면 꽤 먹을만한 맥주 안주가 됩니다. 땅강아지는 보통 튀겨 먹어요. 역시 맥주 안주. 노린재는 구워 빻아서 우리로 치자면 쌈장 같은 걸 만들어 채소나 찰밥을 찍어 먹죠. 첨엔 냄새가 역했는데 먹다보니 익숙해지더군요. 사진은 구운 노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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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www.oknation.net/blog/print.php?id=698702


5. 곤달걀

여기엔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처음으로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 자전거를 탄 호리낭창한 여고생 세 명이 흰 아오자이를 펄럭이며 제가 커피를 마시고 있던 카페를 지나쳐 골목 입구의 자그마한 노점에 서더군요. 마침 커피도 다 마신 참이라 여고생들이 뭐 맛난 걸 먹나 저도 따라 사먹어 보려고 갔는데, 조그만 손 안에 뭘 쥐고 티스푼으로 떠먹긴 하는데 잘 보이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손짓발짓으로 주인장에게 나도 저걸 다오 했더니 그냥 삶은계란처럼 보이는 걸 주더라고요. 그래서 껍질을 깨먹으려고 탁탁 쳤더니 여고생들이 황급히 말리며 한쪽 끝을 까서 주더군요. 티스푼으로 퍼먹으라는 시늉을 하면서. 깨진 끄트머리로 들여다보니.... 히엑, 병아리가 절 노려보고 있어요... 여고생들은 킥킥대며 절 관찰하고 있고 안 먹으면 필시 웃음이 폭발할 거 같고... 눈을 질끈 감고 먹었더니, 웬걸? 그냥 삶은계란 맛이었어요. 질감만 약간 이질적이고 맛은 그대로 계란이더군요. 다 먹고 여고생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더니 막 박수를 쳐주더라고요. 그러고 쯩빗론=카이룩=곤달걀을 트게 됐습니다. 요새도 곤달걀 먹을 때면 백조같이 아오자이를 펄럭이며 날아간 아이들이 옹송거리며 머리를 맞대고 모여앉아 먹었던 그게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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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피아, 코피루왁

피아는 이 동네(태국 북부/라오스) 말고 다른 데서 먹는지 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의 제1위에서 꺼낸 반쯤 소화된 풀죽인데요, 거무튀튀한 게 걍 수분이 덜 빠진  똥 같습니다. 하지만 제1위는 목구멍에 좀 더 가까우니 토사물이라 부르는 게 맞겠죠. 이동네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을 때는 늘 이 피아로 만든 양념장을 곁들이는데요, 전 아직 이 맛은 잘 적응이 안 돼요. 여기에 소고기를 찍어 먹으면 그냥 잔디 뜯어서 쌈싸먹는 느낌이랄까... 여튼 아직 별로 안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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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munchies.vice.com/articles/northern-thailands-raw-food-movement-involves-blood-and-guts


코피루왁은 인도네시아의 지인이 보내줘서 먹어봤는데 그렇게 특별히 맛있는 줄은 모르겠더군요. 이동네 시골에 그런 거 하는 농장에서 얻어온 생두(똥모양 그대로인-_-)를 처리해서 직접 볶아 먹어도 봤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것도 똥을 먹는 거잖아요. 요즘에는 거의 자연에서 채취한 건 없고, 사향고양이/족제비 등을 가두어 기르면서 커피를 먹인다네요. 이 과정에 동물학대도 많이 발생하고, 이미 본질은 변해버렸는데 여전히 비싼 가격으로 중간 유통업자들만 이익을 보고 하는 꼬락서니가 맘에 안 들어서 이건 안 먹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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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grossfoodguide.com/kopi-luwak-a-coffee-made-from-poo/


7. 참새 꼬치, 오리대가리 튀김, 닭발, 오리발

한국 살 때 광화문에 있는 꼬치구이집에서 자주 술을 마셨는데요, 거기서 처음 참새꼬치를 먹어봤습니다. 11월부터 개시해서 물량 떨어질때까지만 판다고 해서 얼른 시켰더니 참새대가리가 부리까지 붙어 있잖겠어요. 어어어 하고 있었더니 쥔장이 고것이 하이라이트라며, 살짝 터지는 뇌의 고소함이 어쩌고 하기에 입맛이 똑 떨어졌는데, 그렇게 먹어보니 맛있긴 하더군요. 이동네에도 오리대가리를 세로로 반으로 갈라 튀긴 걸 맥주안주로 많이 팝니다. 뭐 먹을 거 있갔어 하지만 그래도 참새보단 많아요.

닭발은 지금은 없어진, 부산 연산동 근처 <닭발의 천국>이란 곳에서 텄습니다. 숯불에 한 번 구웠다가 팬에 볶는 게 포인튼데, 정말 맛있었어요. 그 비주얼과 강한 매운맛에도 불구하고 부산 갈 일 있을 때마다 먹었죠. 오리발 튼 건 홍콩의 무한리필 딤섬집으로 기억하는데, 더 많이 먹은 건 태국 어디에나 있는 오이시 부페에서였어요. 뭐 이제는 돼지족발, 우족탕, 닭발볶음, 오리발찜 다 섭렵했네요. 곰발바닥은 요즘은 안 먹는 요리겠죠.


8. 어성초

의외로 제가 잘 안먹는, 손으로 꼽는 몇 안되는 것 중 1위는 어성초입니다. 우리나라 이름은 약모밀이라는데, 생선비린내풀이란 뜻의 중국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죠. 고향집에서 이걸 키웠는데 덤불 근처만 지나가도 생선비린내가 코를 찔러요. 수퍼히어로급으로 비위가 강하신 아버지도 어성초 녹즙을 드실 때만큼은 표정을 좀 찡그리십니다. 베트남에서 특히 이걸 많이 먹는데, 적응하려면 앞으로도 꽤 시간이 지나야 할 듯합니다. 비슷한 다른 풀들은 잘도 먹으면서 왜 얘만 이렇게 어려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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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www.goodfood.com.au/good-food/cook/five-of-a-kind-asian-herbs-20140320-353n0.html


어떤 신기한 음식에 대한 경험들이 있으신가요?


덧) 출처가 없는 사진들은 위키피디아에서 퍼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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