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리뷰 둘

2023.09.21 18:20

daviddain 조회 수:262

기획] ‘폐쇄된 엘리트주의자의 초상’, 윤리적 질문을 외면하는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런은 두손으로 현실의 시공간을 왜곡하고 조각내는 소년적 유희에 몰두하는 영화감독이면서, 심각한 고뇌와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출자다. 오펜하이머의 ‘파괴’는 유희와 고뇌를 오가는 그 복합적 비전에 그럴듯하게 들어맞는 사례일 것이다. 오펜하이머의 손은 나치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성찰 없는 속도전에 뛰어들지만, 그의 얼굴은 폭탄의 개발과 투하가 불러오는 여파를 직시한다. 그는 세계의 원리를 통제하려 드는, 그러나 세계가 자신의 통제 바깥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전형적인 크리스토퍼 놀런 영화의 주인공이자 필름누아르 무대의 눈먼 탐정이다.

중략

하지만 이 과감한 파동이 이끄는 영화의 목적지는 대단히 미심쩍은 곳이다. 트리니티 실험의 핵심적인 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 <오펜하이머>에서 원자폭탄 폭발은 현실 속의 수많은 윤리적 논쟁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뒤얽힌 사건이라기보다는 한명의 거대한 인간이 일으킨 신화적 징벌처럼 묘사된다. 그것은 이 영화가 전제하는 계급성과 무관하지 않다. 놀런에게 있어, 수많은 인류는 물론 지구라는 행성의 운명까지 좌우할지 모르는 폭발의 연쇄반응은 오직 엘리트주의적 영웅의 섣부른 실천과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주의 집단의 판단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했을 때, 실험에 참여한 수많은 이들이 현실에서 보였다는 서로 다른 복잡한 반응은 놀런의 시선에 들어올 수 없다. 오펜하이머가 관심을 두는 좌파 사상과 공산주의 집단 사이의 긴장은 그저 청문회 과정에서 그를 발목 잡는 경력의 흠집으로 치부될 뿐이다.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러모스의 사막에 모든 구성원이 거주할 만한 크기의 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책임자인 그로보스 대령(맷 데이먼)이 이를 수락하면 그 자리에 거대한 마을이 생겨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유능한 책임자의 계획과 관료주의의 실행력을 유사 종교적인 권능으로 취급할 뿐, 집단의 경험과 충동은 다루지 않는다. 그가 우주에 탐닉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세계를 바꾸는 절대적인 원인이 된다. <오펜하이머>는 폐쇄된 엘리트주의자의 초상화이며 은근히 그 관점에 동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오펜하이머>는 아이맥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오펜하이머의 얼굴 뒤로 분열하는 원자의 추상적 이미지와 장엄한 우주의 기록을 보여주곤 한다. 이 과대망상적인 장면 연결은 신의 시점에서 영화적 우주의 논리를 재구성하려는 의지의 표상일 것이다. 특정한 대상을 카메라 앞에 제시하고 연결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편집은 감각을 확장하는 영화적 몽타주가 아니라 그 안으로 모든 맥락을 끌어당기는 개념적 착상에 불과하다. 그 이미지의 연쇄가 스크린을 뒤덮을 때 기능을 멈추는 것은 오펜하이머의 얼굴과 우주의 원리가 결합하면서 생겨난 결과물인 원자폭탄에 대한 현실 윤리적 질문이다. 스트로스 제독의 청문회와 오펜하이머의 비공식 청문회를 교차하는 이 영화의 법정영화 구조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모호함과 논쟁적 사태의 판단 불가능성을 덧입히는 형식으로 성립하는 대신, 스트로스의 시원찮은 악행을 고발하면서 반대편에 있는 오펜하이머에게 도덕적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소심한 옹호로 축소된다. 한 인간의 실천과 그의 통제를 벗어난 결과물이 빚어내는 딜레마를 파고들지 않는다. 다만 오펜하이머에게 비극적이면서도 초월적인 선지자의 면모를 부여하면서 끝날 뿐이다. 영화가 건네는 오펜하이머의 도덕적 승리는 그를 사로잡은 죄의식과 딜레마를 압도한다. <오펜하이머>는 강렬한 경험의 폭탄이지만, 폭발물이 남긴 잔해까지 시선에 담아내지 않는다. 나는 그 외면에 비겁함이 있다고 느낀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3424


오펜하이머’의 시나리오는 이상하게도 두 딜레마를 회피한다. 해당 시기 오펜하이머가 겪은 갈등 묘사를 생략하거나 경구로 짧게 신비화한다. 영화 후반에는 일찍이 재앙을 예견하면서도 오펜하이머가 (예수처럼) 비극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수난을 자초함으로써 속죄했다고 (그것도) 다른 인물의 대사를 빌어 암시하는 것이 고작이다. 강의실을 만원으로 만드는 달변가였다고 알려진 오펜하이머는 영화 속에서 본인의 갈등을 완전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법이 없다.


다행히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한 일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놀란의 태도는 숭배보다 경외와 매혹에 가깝다. 경외나 매혹을 표현하는 데에 설명은 알맞은 도구가 아니기에 위에 쓴 회피는 불가피했을수도 있다. 동일시의 ‘혐의’도 가능하다. 오펜하이머는 어쩔 수 없이 관의 소집에 응한 물리학자가 아니라 로스앨러모스 입지 선정부터 맨해튼 프로젝트 전반을 운영한 기획자다. 당대 일급의 재능을 갖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스템 안에서 성공적 프로덕션을 몇 번이나 해낸 감독이 그에게 감정이입한데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감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놀란 감독은 오랫동안 감정 표현과 대사, 여성 캐릭터 조형에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서 한 인물의 의식에 집중한 ‘오펜하이머’를 두고 마침내 놀란이 심리를 정면으로 다뤄 약점을 보완했다는 호평도 있다. 과연 그럴까? 관객은 영화를 보기 전보다 오펜하이머의 정신에 접근했을까? 도리어 영화는 오펜하이머를 범인에게 이해불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장성 레슬리 그로브스(맷 데이먼)는 오펜하이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당신이 딜레탕트에다 바람둥이이고 연극적이고 불안정한 사람이라고 들었다.”라고 캐릭터를 요약한다. 이 시점까지 1시간가량 영화를 지켜본 나는 흠칫했다. 내가 그런 캐릭터를 보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놀란은 오펜하이머의 퍼스낼리티를 행위로 보여주지 못한다. 천재스러운 아포리즘이 있을 뿐이다. 오펜하이머는 분명히 윤리적으로 모순된 사람이었지만 전 인류적 비극에 연루되고도 무너지지 않은 단단한 중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견고함의 실체를 영화를 보고 나서도 알기 어렵다. 2023년의 ‘오펜하이머’는 인류가 자멸을 선택하고마는 역설적 정황과 그 복판에 선 지성에 대해 60년 전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보다 예술의 언어로 더 밝힌 바가 있을까?



‘오펜하이머’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두 청문회의 결과와 트리니티 실험의 성공 여부가 영화 내내 삼중의 서스펜스로 작동한다. 놀란의 전작들에서 우리를 감탄시킨 것 같은 액션 시퀀스는 전혀 없지만 ‘오펜하이머’의 뇌관은 역시 일종의 스펙터클이다. 광활한 우주와 닮은 천재의 뇌리, 그를 중심으로 별자리처럼 연결된 당대 최고 과학자와 권력자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결정적으로 즉각적 사상자 없는 트리니티 실험의 폭발 이미지가 ‘오펜하이머’의 스펙터클이다. 놀란은 동시대 어떤 작가보다 힘(power)의 묘사에 사로잡힌 감독이다. 그가 다루는 힘의 실체가 시간과 공간일 때(‘덩케르크’, ‘메멘토’) 그 결과는 스위스 시계의 무브먼트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을 다루고자 할 때 놀란은 그 불완전함과 예측불가함 앞에 경직되고 만다. 스펙터클의 정의는 시각적으로 큰 충격과 효과를 주는 이미지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버섯구름은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위력적 이미지이고 역사상 최대의 스펙터클이었다. ‘오펜하이머’는 놀란의 진일보한 신작이라기보다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위험스러운 영화로 보인다.


https://magazine.weverse.io/article/view?lang=ko&colca=2&artist=&searchword=&num=872

ㅡ 저는 오펜하이머에 별 인상받지 못 했고 바비가 더 독창적이고 실체를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하네요. 놀란이 발전했다는 생각은 0이었고 천재, 엘리트에 대한 경도라는 점에서 위험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좀 합니다. 이 두 평론이 제가 느꼈던 찝찝함을 다소 설명해 준 거 같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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