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노동의 속박에 묶인 몸이라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 2일권 티켓을 사서 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금요일에 장기하의 무대가 아주 재미있었다더군요. 못가서 아쉽습니다.


사실 이번 펜타포트는 크게 끌리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락이라는 장르에 아주 애착이 큰 것도 아니고, 제가 알만한 밴드가 그렇게 많이 오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럼에도 굳이 간 이유는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이 일단 컸고, 또 250과 이날치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을 뽑으라면 단언 250을 뽑을 수 밖에 없겠지요. 2022년 각종 상을 다 휩쓴 데다가 뉴진스의 데뷔곡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서 상업적 성공까지 했으니까요. (디토...!!) 토요일 오후 다섯시쯤에 가서 잠비나이란 밴드의 음악부터 감상했습니다. 메탈에 아쟁이나 다른 국악을 섞은 희한한 음악이었는데 굉장히 음울한 곡이어서 듣다보니 좀 처지더군요. 이후 메인 밴드인 스트록스의 공연을 들으러갔는데 저는 그렇게 큰 팬은 아니라서 그냥 저냥 듣다가 마지막 250의 무대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50의 앨범 "뽕"을 이전에 열심히 듣긴 했지만 큰 감흥은 못얻었습니다. 관광버스나 휴게소에서 울려퍼지던 그 속된 느낌 때문에 코리안 일렉트로니카로 받아들이기는 좀 어려웠거든요. 이히~ 하는 코러스와 함께 쿵짜라짝짝 쿵짝짝 하고 나오는 음악을 EDM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스스로 많은 걸 내려놔야하는 느낌? 그렇지만 락페에서 듣는 음악은 역시 달랐습니다. 리믹스 버젼이라서 다른 것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어떤 음악을 같이 듣는 건 그 음악을 훨씬 더 생생하게, 이어폰 너머에 숨어있는 정수를 감각하는 느낌이랄까요. 


현장에서 250의 음악을 들으며 제일 좋았던 건 그가 뽕짝이라는 장르를 패러디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뽕짝 장르를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우스운 불협화음의 재료로 인식하고 그걸 패러디로 써먹는데 250의 뽕짝은 웃기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무대에서는 계속해서 7080의 구시대적인 영상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 영상들조차도 유머가 아니라 시대적 미쟝센으로서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 무대를 즐기는 사람들도 낄낄대거나 우스꽝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이 무대는 엄청 신선했습니다. 뽕짝이 품고 있는 세속적인 감흥이 락페의 탈속한 느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락페는 보통 젊음의 상징이죠.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다지만 역시나 10대와 20대가 락의 이 반항적이고 때론 음울하면서 폭발적인 에너지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10대와 20대에게, 최소한 4050(그것도 극소수)이 듣고 즐길만한 '천하고 저속한' 음악을 웃지 말고 즐겨보라고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장르적으로도 뽕짝은 아마 락이라는 장르의 반대 장르를 뽑자면 제일 먼저 뽑힐만한 그런 장르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뽕짝을, 락페에서 틀고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250의 이 무대는 굉장히 실험적이었습니다. 1020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과연 이 "아재아짐"스러운 음악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을 것인지 정면으로 도전장을 날리고 있었으니까요.


이 뽕짝을 어떻게 정의내려야할까요. 개러지 장르와는 또 다른 환희와 우울의 복합적인 정서가 있었습니다. 멜랑콜리하다고 하기에는 훨씬 더 처연하고 구슬픈, 그래서 경제적 빈곤마저도 괜히 느끼고 마는 그런 헤진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나게 빠른 bpm으로 몸놀림을 이끌어가는 이 리듬에는 분주하다 못해 산만한 느낌까지 있었습니다. 리믹스 버젼이라 중간중간 힙합스러운 사운드도 나오긴 했지만 이 뽕짝스러움은 정말 특이했습니다. 제가 보통 일렉을 들을 때는 현실에서 초탈한 느낌을 받고자 듣는데 (화학형제의 Star Guitar 같은) 이 뽕짝은 길바닥에 완전 붙어있죠.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뽕짝이 듣는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곳은 "환란"이라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따라가기 버거운 리듬을 계속 쫓아가면서 감정은 또 가라앉는 대신 슬픔과 우울과 음陰의 기운들을 계속해서 발산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차마 현생의 고통을 잊을 수 없으니, 그 현생의 고통을 인정하는 채로 리듬만이라도 신난 무엇을 즐기자는 타협적인 그런 음악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뽕짝을 함께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이 기괴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진지하게 이 뽕짝에 몸을 흔드는데, 10대나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통아저씨 춤 비슷한 것을 추거나 팔자눈썹을 한 채로 씰룩씰룩하는 광경이 얼마나 초현실적이었는지요. 다들 뉴진스의 하입보이나 걸그룹이 다른 안무를 틱톡을 보며 따라하지, 누가 이런 관광버스 춤을 춘단 말입니까. 1020이 4050 이상의 이 문화를 완전히 전유해서 심취해있는 풍경 자체가 정말 신기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일원 중 하나로 다이아몬드 스텝 비스무레한 걸 열심히 밟았습니다. 




나이트에서도 댄스타임이 끝나면 잔잔한 노래로 숨 돌릴틈을 주곤 했죠. 이 노래를 다들 떼창하는 것도 진풍경이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대만의 락밴드 웬디 완더의 공연으로 락페를 시작했습니다. 락페에 이런 밴드가 오는데 노래가 꽤나 괜찮으니 들어보라~ 고 해서 예습만 살짝 해둔 상황이었습니다. 밴드와 청중의 인연이라는 게 있기라도 한 걸까요. 그 전날 250의 공연을 보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저희가 묵는 호텔에 웬디 완더도 묶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들이 암만 봐도 일반인 같지 않은 행색을 갖추고 있었고 자기들끼리 중화권 언어로 뭐라뭐라 떠들더군요. 친구에게 '쟤네 웬디 완더 아냐?'라고 했더니 친구는 맞는 것 같다고 흥분해서 빨리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저희 층에 도착하기 전에 "너네 혹시 웬디 완더 아님?" 이라고 물었더니 오오 맞다고 하길래 제 친구는 엄청 흥분했고 저는 그의 말을 얼레벌레 통역했습니다. 우리가 너네 팬이다, 내일 너네 공연을 제일 고대하고 있다~ 그러자 아 고맙다 내일 너네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웬디완더가 대답을 했는데 이 모든 대화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찰나에 이뤄졌습니다 ㅎ 조금만 더 정신이 있었다면 같이 사진을 찍어주라고 했겠지만 엘리베이터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어서 ㅎㅎ


일요일 락페에서 여러 팀의 공연을 즐겼지만 저는 웬디 완더의 공연이 제일 좋았습니다. 저는 조금 모던하면서도 그루브한 느낌의 락밴드를 좋아하는데 웬디 완더의 노래들이 딱 그렇더군요. 애시드 재즈는 디사운드 이후로 다시는 안들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듣게 될 줄이야~ 여자 보컬분이 한드 많이 본다면서 짧게 한국말을 해준 것도 귀여웠고, 노래들도 매우 세련되고 좋았습니다. 괜히 왕가위스러운 감성도 느꼈다고 할까요. (세련된 중화권 문화의 상징으로서 유일하게 거들먹거릴 수 있는 ㅋ) 노래를 잘 모르는데도 듣는데 장르적으로 그냥 제 취향에 딱 꽂히더군요. 




그 유명한 한국관광공사의 배경음악으로 유명한 이날치도 드디어 영접했습니다! 아마 한국인들이 가장 순수하게 "국뽕"을 들이킬 수 있던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ㅎㅎ 제 예상과 다르게 이날치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첫곡을 바로 범내려온다로 선보이더군요. 수많은 사람들과 이 노래를 함께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게 되니 신명이 났습니다. 역시 좋아하는 노래는 무대로 직접 즐겨줘야 그 찐맛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날치의 공연을 즐기면서 현장에서 한류라는 걸 좀 실감했습니다. 세계적 문화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서양인들이 좋아해주는 영상이나 자료로 보고 괜히 으쓱해하는 게 아니라,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적'인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달까요. 락은 서양, 특히 백인의 음악이고 이 전까지 완성도 높은 락을 한다는 것은 해외의 락과 최대한 유사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이 백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제 서양에 인정받거나 이들의 이해를 담보하지 않고 한국인들이나 간신히 이해하는 무엇을 락으로 믹싱해서 내놓는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21세기가 되면 한국인들은 락페에서 판소리를 즐긴다는 게 과거의 저희에게는 얼마나 비현실적인 소리였는지? ㅎㅎ 당연히도 현장에는 이날치의 음악을 즐기는 외국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날치의 다른 노래들도 좀 예습을 하고 갔으면 좋았겠지만... 다는 몰라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다행히도 온스테이지 채널을 통해 미리 들은 노래들을 공연해주셔서 재미나게 즐겼습니다. 락페에 제일 걸맞던 노래는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였던 것 같습니다. 그 반복적이고 갈수록 고음으로 질러대는 후렴구가 청중들을 흥분시키더군요. 




체리필터의 공연을 보면서 낭만고양이를 열심히 떼창했지만 무대는 적잖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노래 중간중간에 너무 마가 많이 뜨고 멘트들도 탕후루만큼이나 달달해서 듣는 내내 음... 하는 심정이었달까요. 한 때 대한민국 락그룹을 대표하던 그룹의 공연이 왜 이렇게 재미가 없어졌나 하면서 한국 락씬을 잠깐 걱정했습니다만, 그런 제 기우를 날려버리듯이 새소년이 등장했습니다. 작년 락페에서도 보고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올해에는 한층 더 거물이 되어서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한국 락씬은 새소년이 이끌고 있구나, 이런 그룹이 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이 날 새소년의 보컬 황소윤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그런 감상마저 들었습니다. "불경스럽다...!!" 무대 위에서 껄렁껄렁대며 기타를 연주하고 탁한 보이스로 노래를 하는데 와우... 오죽하면 20세기 후반에 락 장르가 인기를 끌 때에 왜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락을 사탄의 음악이라고 배척했는지 상상할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을 휘어잡는 그 카리스마와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 자신감이 한명의 개인에게 주어지면 안될 것 같다는 위기감마저 들었습니다. 실력과 자신감을 채운 락스타는 "지저스"의 위치마저도 위협할 정도가 되더군요. 미국인들의 절대적인 우상의 인기를 위협하던 그 당시 락스타들은 비즈니스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미국 보수적 개신교도들에게 굉장한 위협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락스타들은 대놓고 '악마적인' 음악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ㅎㅎ)


무대는 정말 굉장했습니다. 황소윤의 퍼포먼스는 두 말하면 입아프죠. 심야행은 정말 들어도 들어도 명곡입니다. 이 날 귀가를 해야했기에 무대를 다 못보고 떠나서 살짝 서운했습니다. 송도 달빛공원을 새소년의 노래를 들으며 떠나는데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올해 진짜 더웠고 딱히 오고싶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은 아주 후련했습니다. 아마 내년에도 또 올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라인업이 더 빵빵했으면 좋겠습니다.


@ 락페만큼 연령과 성별과 다른 자본에 크게 구애없이 평등한 페스티벌이 또 있나 싶습니다. 


@ 락페에 가면 사람들이 막춤을 엄청 춥니다. 무대 위에서 가수도 춤을 춥니다. 도대체 박완규는 왜 김경호에게 춤추지 말라고 역정을 냈던 걸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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