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권'

2024.03.08 18:09

돌도끼 조회 수:114


icKCqKAfblvrKZHQCDpIBDc6C2m.jpg


1980년 이혁수 감독작품

[취권]이 서울단관 90만이라는 그때까지 유례가 없던 미친 대흥행을 하자(10만이면 히트작 소리 듣던 시절) 자극받은 한국 영화계가 미친듯이 아류작을 찍어냈었습니다.
그때는 관객들이나 영화사나 공히 관심이 외국영화쪽으로 쏠려있었고 영화사들은 그저 외국영화 수입권을 얻기위해 의무제작편수를 채우는 용도의 B무비들을 양산했습니다.(일정편수의 한국영화를 제작해야 수입권을 주던 시절) 그 목적에 부합하는게 쿵후영화였죠.
일단 (돈 안들이고) 후딱 만들어서 극장에 걸기만 하는게 목표였으니 그래도 고정팬이 있어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볼 만만한 장르였던 겁니다. 그래서, 사회전반적인 쿵후영화에 대한 인식은 아주 조치 아니하였습니다.

그시기에 국산 쿵후영화를 막 찍어내던 공장장들이 있었어요. 이형표, 이혁수, 남기남 등등... 그래서 전 예전엔 이분들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었습니다만... 이형표 감독은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 영화사에서 꽤나 알아주는 분이었다는 모양이고 이혁수 감독은 나중에 대종상 받는 영화도 만들고 그랬던 걸 보면, 이시기에 감독님들도 그냥 시키니까 억지로 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시기에 나왔던 이분들 쿵후 영화는 대부분이 그냥 날림으로 막만든 티가 날뿐, 진짜 각잡고 작품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이 느껴지는 걸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거든요...

그때 만들어진 영화들은 거진 제목이 'X권'이었죠. 붐의 원조가 [취권]이었으니...

[소권]은 80년에 개봉해서 나름 히트했다고 하는 이형표 감독작 [애권]의 자매품쯤 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애권]에 사중전, 옹소호, 두취화 같은 대만 배우들이 출연했고 (장철 후기작으로 유명한) 진신일이 무술지도를 맡았더랬는데, 이왕 외국에서 돈주고 사람들 불러왔는데 하나만 찍고 보내긴 서운했던지 그분들 데리고 한편 더 찍은 영화...

이 영화를 이런저런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보면
'대원군의 쇄국정치가 끝난후 친청파, 친일파, 친노파로 정국이 갈려 당파싸움이 벌어질 즈음...' 블라블라하는 스토리가 뜨는데, 개소리ㅂ니다.

이건 마치 방송국에서 막장드라마 방송하기 전에 발표하는 기획의도 같은 그런 거랄까... 그 의도하고 실제 내용하고 하나도 안맞잖아요.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 실려있는 80년대 이전의 별로 안유명한 영화 스토리들은 그런식으로 영화의 실제 내용하고는 동떨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는 대충 비슷하긴 한편이네요. 진짜 완전 엉뚱한 소리 적어놓은 영화들도 많은데...

간단하게 정리하면 태권도와 가라데의 대결이야기ㅂ니다.
일본애들이 '1000년 전통의 한국 무술' 태권도를 말살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파견합니다.(근데 태권도를 말살하겠다고 쳐들어온 조직이 달랑 세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넘들은 태권진본이라는 책 하나만 찾아 없애면 태권도를 없앨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영화 내용 대부분이 가라데, 쿵후, 태권도파의 사람들이 태권진본을 둘러싸고 치고받고 한다는 겁니다.

근데 정작 이 태권진본은 작중에 누구나가 탐을 내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관심을 안가지는 괴한 물건입니다.
주인공은 그책을 거의 내내 가지고 다니면서도 읽어보고 수련할 생각도 안하고, 나중에 책의 저자를 찾아가서 직접 무술을 배웁니다. 그러면 애초에 가치가 없는 책 아닌가요? 저자한테 물어보지 않으면 알아먹지도 못할 내용이라면...
글구 그때쯤 되면 아무도 이책에 신경도 안쓰고요. 정작 주인공이 태권진본 저자한테 배우는 무술은 또 책하고는 관계없는 딴 거...
그니까 이게 맥거핀도 아니고, 그냥 무협지에 흔히 나오는, 전설의 무공비급을 둘러싼 무림인들의 다툼이라는 플롯을 집어넣고는 싶었는데... 그걸 어떻게 적용할지는 생각 안해본 것 같아요.
이런식으로, 흉내는 내보지만 뭔가 어설프다 싶은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제목이 '笑권'. 그러니까 웃기는 권법, 또는 웃는 권법인데... 작중 거기에 대한 묘사가 1도 안나옵니다. 주인공이 태권도도사에게 배우는 마지막 필살기는 태권도도 아니고, 무술에 무용을 접목한 새로운 무술...
그니까 웃는거 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제목이 '舞권'이었다면 또 몰라...

아마 이 영화에 [소권]이라는 제목이 붙은 건 당시에 성룡의 [소권괴초]가 개봉준비중이었기 때문에, 제목만이라도 비슷하게 붙여 눈나쁘고 주의력 떨어지는 사람들을 현혹시켜 한번 땡겨보자고 한게 아닌가 싶어요.
(덧붙여서 포스터에 나온 저 재미있어 보이는 콧수염 아저씨는 영화에 안나옵니다. 대체 누군지 모르겠어요. 선전문구들도 다 개뻥이고... 그니까 거의 전체가 사기..ㅎㅎ)

거기다 그 춤추는 무술이란게, 싸우다가 그냥 뜬금없이 댄스를 합니다. 댄스 동작을 접목한 무술 동작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싸우다 갑자기 춤을 춰서 상대방이 당황하고 긴장 풀었을 때를 노려 기습, 그리고는 그냥 일반적인 주먹질 발길질로 패서 피니시.
수련하는 장면은 거창하고 길게 보여주더니 실제로는 무슨 이딴 걸 수련씩이나 하나 싶은 세상 조잡한 속임수였어요.
이것도 무술영화에 흔히 나오는, 주인공이 새로운 무술을 배워서 마지막에 그걸로 끝판왕을 물리치는 구도를 따라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적용할지는 생각 안해본 듯한....

영화의 각본, 대사, 연출 공히 絶라 유치합니다. 이건 뭐 그시기에 나온 X권류 영화들의 공통사항이니까 뭐 그런갑다 하고 넘길 수 있지만... 나오는 캐릭터들이 그닥입니다.

요즘 햄버거 팔고있는 김모씨하고 비슷한 외모에 이름까지도 서병헌인 배우(당시에는 하후성이라는, 중국사람 이름처럼 보이는 예명을 썼습니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주인공 캐릭터가 무능력에 비호감에 제일 재미가 없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는 故 장혁 선생이 연기하는 정체불명의 떠돌이입니다만, 이 캐릭터는 주인공보다 더 비호감이고 너무 하는 일이 종잡을 수 없어 스토리를 엉망으로 만드는 주범입니다. 서병헌과 장혁 두분을 통해 성룡과 원소전의 케미를 흉내내보려한 것 같습니다만...

여성 태권 고수로 나오는 민복기는 내내 아무것도 안하다 남자주인공 혼자 다해먹은 뒤에 갑툭튀해서 얼굴만 비치고... 초청해온 인사들 중 사중전은 일단 출연은 시켜야된다는 강박에 억지로 끼워넣은 것 같은 역할이고... 배우들 활용이 썩 좋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옹소호와 두계화는 악역으로 나름 써먹은 편...

액션은 뭐 그럭저럭 볼만한 편입니다. 아주 형편 없지도 않고 딱히 인상적이지도 않고...
아쉬운 점은 무술액션을 통한 서사의 진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거...
주인공이 작중 성장하거나 더 강해진다는 느낌이 없고요.
세계관 최강자나 얼굴도 잘 안나오는 엑스트라나 실력차이가 나 보이질 않습니다. 명목상 태권도와 가라데와 대결이지만 그냥 왜넘이 하면 가라데 우리편이 하면 태권도인가보다 싶고... 보통 영화에서 태권도하면 발차기를 강조하는게 일반적입니다만, 이 영화는 뭐 왜넘들도 발 잘만쓰고, 진영을 막론하고, 엑스트라까지도 다 발차기가 장난 아니니...(전부다 태권도한 사람들일테니까요...ㅎㅎ)

사실 전 어렸을 땐 이런 한국산 저품질 무술영화들을 아주 싫어했었습니다. 그치만 뭐 시간 꽤 지나 다시 보게되니 그 허술한 부분들이 옛날에는 화가났는데 요새는 웃기고 재미있어졌습니다. 그래서 뭐 지금은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런 영화를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항마력이 꽤 필요할지도...ㅎㅎ







실은 영화 보면서 제일 놀랐던 건 앞부분에 나오는 영상자료원 로고였습니다. '허걱 이런 영화까지?' 싶어서...ㅎㅎ 그치만 이런 영화까지도 신경써준다는 게 더 반가웠었죠. 명작들 복원하기도 바쁠테니 자주는 안나올 것 같지만요...


과거 몇몇 영화데이터베이스가 [소권괴초]와 [소권]을 헷갈려했던 것 같고요. 거기다 MBC에서 뜬금없게도 [오룡대협]을 '소권'이라는 이름으로 방영한 적도 있어서 그 영화까지 셋이 혼동되어서 약간의 카오스가 있었던 듯... 물론 [소권괴초]나 [오룡대협]에 비하면 이 영화는 완전 듣보잡이라 애초에 헷갈릴 일도 없긴 하지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8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3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50
125929 네메시스 5 신상 돌도끼 2024.04.08 68
125928 [영화바낭] 현시점 기준 아마도 가장 존재감 없을 콩, '킹 콩(1976)'을 봤습니다 [13] 로이배티 2024.04.07 331
125927 프레임드 #758 [4] Lunagazer 2024.04.07 88
125926 한국 정당사에서 ‘국민의 힘’은 역대 최악인듯; [5] soboo 2024.04.07 877
125925 [넷플릭스] '리플리', 와우!! [9] S.S.S. 2024.04.07 499
125924 기동전사 건담 시드 프리덤 (+스포) [1] skelington 2024.04.07 130
125923 커피와 운동 [1] catgotmy 2024.04.07 203
125922 고척은 1회부터 뜨겁군요 [9] daviddain 2024.04.07 154
125921 초간단바낭 ㅡ 뎀벨레 보면 신기하다니까요 daviddain 2024.04.07 59
125920 '네미시스 4 천사의 절규' [2] 돌도끼 2024.04.07 100
125919 신 가면라이더 관련 잡설 [6] DAIN 2024.04.07 210
125918 네미시스 3 [2] 돌도끼 2024.04.06 95
125917 [영화바낭] 쓰던 걸 또 날려 먹고 대충 적는 '고지라' 오리지널 잡담 [20] 로이배티 2024.04.06 301
125916 단상 - 1인분의 삶을 살고 있나요, 푸바오가 떠나고 크누트를 떠올린 누군가, 봄날은 가더라도 상수 2024.04.06 148
125915 지브리 좋아하는 애니 catgotmy 2024.04.06 126
125914 무릎 회복 시도 [2] catgotmy 2024.04.06 125
125913 류현진 한 이닝 9실점' 충격의 고척돔 5회말, 키움 타자들에게 들어보니... [고척 현장/스트라이크 비율 68% 류현진 ‘공략’ 키움 오윤 타격코치 “적극적으로 치자 했다” [SS고척in] [1] daviddain 2024.04.06 143
125912 '네미시스 2' - 존 윅 감독의 딱히 자랑거리는 안될듯한 경력? [1] 돌도끼 2024.04.06 118
125911 사전투표하고 왔어요 [4] Lunagazer 2024.04.06 356
125910 프레임드 #757 [4] Lunagazer 2024.04.06 57
XE Login